[스크랩]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즉흥설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2005. 12. 27.
잠언 28: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율법에 대해서 교회 안에 굉장히 잘못된 생각들이 있습니다. 율법은 왜 존재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그래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이것은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비진리입니다. 진리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거꾸로 말하면 법률입니다. 율법은 말 그대로 법입니다. 법이 왜 존재합니까? 법은 지키라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의인들은 율법을 통해 죄만 깨닫고 제사만 드린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단순히 율법으로 죄만 깨닫고 '아, 우리가 말씀대로 살 수 없구나. 그러니까 어린양의 피만 의지해야 된다.' 하고 삶 속에서는 죄 가운데서 살고 제사만 드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셨을 것입니다. 율법을 주실 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을,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다.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따라서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다.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따라서 너희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봐야 합니다. 율법은 결코 단순히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한 것(롬 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인데 사람은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인간이 타락해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야 되는 것이 사라졌을까요? 아니오.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타락 전의 아담에게나 가능했던 일입니다. 모세 시대 때도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물로 예표 된 어린양의 피를 믿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비록 성령은 그들 속에 주어지지 않았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지었을 때는 제사를 드려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구약시대 때의 참 신앙과 거짓 신앙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말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구약시대 때 진정한 신자는 단지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조건은 다릅니다. 그러나 성령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들 중 의인이라, 완전자라고 불릴 정도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성령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선지자에게는 성령이 주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제가 지금 '구약시대 때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구약시대 때 신앙이 무엇이냐? 예표를 통해서 예수님의 속죄 보혈의 능력을 믿을 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였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정 수준 이상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의인이라, 온전한 자라 불릴 정도로, 어떤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완전히 악에서 떠난 자라고 불릴 정도로, 그런 수준까지도 말씀대로 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완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중에 하나 범한다고 멸망 받는 것이 아니고 제사를 드려서 용서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자백이 있는 것처럼, 구약시대 때도 제사를 드리므로 용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지 단지 이 율법 책을 통하여 죄를 깨달으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정도로 완벽하게 율법을 지킨 것은 아니지만 그가 율법을 범하지 않고 지키는 자였다는 건 분명합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에게 심판이, 멸망이 임했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지키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능력이 아담 속에 있었습니다. 순종을 선택하면 순종으로 구원이 필요 없는, 바꾸어 말하면 구원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이후에는 율법이 주어졌어도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공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꼭 아셔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공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신자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회개를 통해 죄에서 돌이키고,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예수님의 보혈 공로가 적용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실제로 일정 수준 이상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절대 제사 드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제사 드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 것이라면 출애굽해서 나온 사람들은 하나도 멸망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때 외에는 계속 제사를 드렸습니다. 계속 피를 의지하고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그들의 다수가 멸망을 받았습니다(고전 10장).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주를 시험하고 원망하다가 멸망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니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삶으로 나타나야 했습니다.
구약이 이러할진대 신약은 어떠할까요? 에스겔이 예언했습니다.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내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보십시오. 하나님은 신약에도 율법을 지키는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율법으로 단지 죄를 깨닫는 자들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로마서 3장 31절에 "믿음이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굳게 세우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굳게 세운다는 말은 지키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공로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은 폐해졌고 우리가 율법을 지키든 말든 천국 간다.' 이것은 교회 안에 유포되어 있는 이단 사설입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율법이 폐해졌다고 할 때 의식법이 완성된 의미에서 폐해진 것이지 도덕법이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도덕법은 영원히 폐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식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도덕법은 지켜야 합니다. 즉 안식일, 안식년, 희년, 제사 드리는 것, 음식 먹는 것은 안 지켜도 되지만 도덕법을 지키지 않으면 살아있는 법이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고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피를 안 믿었다고 생각하십니까?(마 7:22-23)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보혈도 안 믿고 선지자가 됐을까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 귀신을 내쫓고 많은 권능을 행했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 쫓고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곤 안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단순히 그것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호통 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법이 있는 것입니다. 법이 없는데 어떻게 불법을 행합니까? 십자가만 있는데 어떻게 불법을 행합니까? 십자가의 속죄만 있는데 어떻게 불법을 행합니까? 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의식법을 제외한 도덕법을 일컬음)입니다. 신약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율법(도덕법)입니다. 율법은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롬 3:31)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의 도가 전해지고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해서 율법이 폐해집니까? 마치 우리가 믿기 때문에 율법이 폐해진 것처럼, 그렇게 가르치는 수많은 목사와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혼잡케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믿기 때문에 믿음이 율법을 폐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율법을 폐하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하지만 바울은 반대로 그 믿음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버림을 받지 않는 줄로 압니다. 믿음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천국 가는 자격을 주지 않습니다. 믿음은 물론 우리가 과거에 율법을 지키지 못한, 또 현재도 완전히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 사함을 줍니다. 그러나 믿음은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은혜를 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구약시대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죄가 전혀 없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거짓말한 적이 있지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인정을 받지 않았습니까?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는 것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거나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는 것과,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든지, 우리가 믿는데 그 믿음이 행함 있는 산 믿음이 되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앞의 것을 주장하면 이단입니다. 그러나 뒤의 것을 강조하는 것은 정통입니다. 어떤 사람은 회개해야 된다, 죄에서 돌아서야 된다고 하면, 우리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꼭 가져야 된다고 하면, 그런 믿음이 아니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하면 '아, 은혜로 구원 받지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나 믿음 혹은 복음의 기본도 모르고 하는 무식한 말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구약시대 때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타락 전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4장에 구약의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으로 나옵니다. 야고보서 2장에도 구약의 아브라함과 라헬을 예를 들잖아요. 그때도 믿음으로 구원 받았고 그때도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때 양으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의지한다 해서 악을 행하면서 구원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선지자들이 보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구약시대 때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에게 보냄을 받았습니까?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제사를 지내면서 피를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임할 심판과 진노를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악을 행하고 회개치 않은 자들이 지금 천국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이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그들이 피를 의지했기 때문에 천국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시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죄에서 떠나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갑니다. 물론 행함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야 하는 율법의 행위와는 다른 것이지만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들은 반드시 지옥에 갑니다(마 7:21). 왜냐하면 율법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지키라고 주어진 법이고 따라서 범하면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락 전의 아담처럼 타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그 피로 용서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4절을 보면 "율법이 육신의 연약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율법은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정당한데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습니다. 즉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뤄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보십시오. 여기 보면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그 영은 성령님입니다. 성령이 신약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이 소원이 성령의 소욕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로 우리 안에서 성령이 운행하시면서 성령의 소욕을 일으켜 주시는데 그것을 좇아서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 영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능히 하시나니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뤄지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우리 안에서 서로 대적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는 내가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경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자가 보혈 공로만 의지한다고 무조건 천국에 갑니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바로 너희 믿는 자들이, 너희 구원 받은 자들이, 바로 성령이 너희 안에 역사하고 있는 자들이, 명목상의 신자가 아니라 성령이 그 안에 운행하심으로 성령의 소욕이 있는 자들이, 육체의 소욕을 좇아 행하면 안 된다. 육신을 좇지 말고 그 영을 좇아야 한다. 만일 너희가 육신을 좇아서 육체의 현저한 일을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열매가 나오고 그런 사람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음으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맥을 무시하고 로마서 8장 1절만 똑 따서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것만 가지고 영혼들을 속이는 너무나 많은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분통이 터집니다. 사람들이 그 구절을 너무 왜곡시키기 때문에 저는 그 구절을 싫어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 맞는 말입니다.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 우리는 신자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다. 이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그들은 해방된 자들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과 성령을 통해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내 속에서 역사하는 죄와 사망에게서 해방된 것이지 율법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지켜야 되는 것이지 무슨 율법에서 해방이 되요? 율법이 폐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율법에서 해방이 되요? 왜 그것을 꼭 율법에서 해방이 된 것으로 이상하게 해석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 속에서 역사했습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부패와 타락을 통해서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 속에서 역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의 생명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생명의 법이 내 안에서 역사합니다. 이제는 성령의 법이 내 안에서 역사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이 나를 옭아매고 나를 포로로 삼고 나의 지배자, 폭군이 되어서 죄로 끌고 갔는데, 거듭날 때 하나님의 생명이 내 속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 속에 들어옴으로 새로운 법칙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육체를 좇지 아니하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너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뤄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율법이 단순히 죄를 깨달으라고 요구합니까?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게 죄인지, 죄가 아닌지만 알아라. 그 다음에는 안 지켜도 괜찮아. 너희 죄만 깨달으면 돼.' 세상에 그런 법을 누가 만듭니까? 그런 법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습니까? 율법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율법의 요구는 계명으로 표현됩니다. 율법의 요구는 십계명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그 외에 다른 모든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이것이 율법의 요구입니다.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요구입니다.
율법의 요구가 죄를 깨달으라는 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율법의 요구는 그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요구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만약에 영을 좇지 않고 육신을 좇으면 로마서 8장 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라고 써 있는 대로 반드시 죽습니다. "영을 좇아 행하면 살리라." 이것이 진리입니다. "너희가 육신을 좇아 행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을 좇으면 살리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몸의 행실과 육체의 현저한 일과 똑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현저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율법은 단순히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1차적으로 지키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의 연약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보십시오. 우리의 육체가 문제입니다. 타락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입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피만 의지하고 용서함을 받으면 됩니까? 그것을 칭의로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칭의라면 그것은 이단사설입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율법이 육신의 연약함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육신의 힘으로 말씀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내 율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바울이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 용도로 주어졌고, 그 목적으로 오셨기 때문에, 즉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의 편지라. 이것은 육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영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법이 우리 생각과 마음에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말씀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을 뿐 아니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서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안 지켜도 된다는 것은 이단사설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뿌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평생 예수 믿고도 사람들을 지옥에 가게 만들 수 있는 아주 사악한 교리입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아주 긁히는 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아주 불편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찬양해야 하지만 예수님의 보혈을 남용하면 안 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다.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물론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하는 역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을 위해서 율법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눈이 먼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율법의 역할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절대 율법의 역할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은 단순히 죄를 깨달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고 지키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이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좀 더 부언하자면, 율법의 용도는 단계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불신자들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으므로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역할을 합니다.
다음으로 율법은 우리 삶의 법이 됩니다. 어느 유명한 신학자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율법은 믿음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믿음은 율법으로 다시 사람을 인도한다." 믿음은 다시 율법을 지키고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의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니고 이제는 그것이 우리의 삶의 원칙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길이 됩니다. 우리가 걸어야 할 정로가 됩니다.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 얻는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주님께서 공급하는 힘으로 그 길을 걸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그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써 우리가 율법을 행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그게 다 율법입니다. 사랑을 뺀 믿음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이다"라고 말씀했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고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그 사랑이 율법의 강령인데 그 사랑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인데 이것을 빼고 어떻게 믿음을 논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참된 신앙인은 결국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목사님들이,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도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율법에 대한 부분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율법의 역할이나 기능에 대해서 부분 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부분적인 진리는 진리지만 부분적인 진리를 가지고 전체라고 우길 때 그것은 비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믿음도 진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음의 전체로 생각할 때 비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을 무엇이라 하는지 전체를 알아야 합니다. 총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서론은 좋은데 본론이나 결론에 가면 엉뚱한 설교들이 많습니다. 영혼을 잡는 설교들이 수두룩합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지 못하도록, 행함 있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음으로 천국 못 들어가게 하려고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 같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나 복음에 대해서나 부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설교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 같지만 영혼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으로 인도하는 그런 설교들이 횡행하고 그런 가르침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진짜가 율법주의로 몰리고 진정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을 부분적인 지식으로 보니까 율법주의자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을 훼파, 파괴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 주여! 이제는 이런 미혹이 벗겨지게 하시고 이런 무지에서 교회들이 벗어나게 하옵소서!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주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부분을 아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만 그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체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그 부분이 전체인 줄 알고 하는 말은 진리가 아닙니다. 비진리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서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이 전체인양 착각해서 진리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은혜에 대해서 부분만 이해합니다. 그래서 분별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진리의 대적들이 됩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그들에게 참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