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용서

[스크랩] 이젠 김남준 목사님도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수 있다고 외치시네요..

하늘감동 2009. 8. 1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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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매 (9권 남음)

 

 

김남준 목사신앙과 은혜 경험 시리즈 제9탄

참된 신앙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필독서

참된 삶의 뿌리는 회심입니다

우리에게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할지라도 희망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돌아갈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듭나고 회심하게 될 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신세계를 경험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온 삶이 깨어져 나가고 형언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로 변화됨을 느낀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과 경건의 비밀에 대한 신비한 경험,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인간의 정동(情動), 이 모든 것이 바로 거듭남과 회심을 통해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거듭남과 회심에야말로 신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접붙여지는 비결과 비밀이 있다.
저자 김남준 목사는 이 책에서 이토록 긴중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거듭남과 회심이 오늘날 거의 잊혀져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죽어 있는 영혼을 주권적으로 다시 살리시는 중생의 필요성과 하나님을 떠나 방탕한 길을 가던 죄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키는 회심의 필요성이 너무나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 데 대해 통탄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불변하는 진리의 핵심은 오로지 복음에 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며, 영영토록 썩지 아니하는 복음의 씨야말로 절망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을 다시 살려 아버지의 생명 안에서 거하게 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애타게 부르짖는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당신의 회심은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회심입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회심한 사람입니까?”라고 절절히 물으며 저자는 참으로 보이지 않는 교회의 한 지체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속의 은혜를 믿으라고 권고한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피맺힌 음성으로 청유한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열렬히 주장한다.
하염없이 그러나 염원을 담아 우리의 문 엶을 고대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오랫동안 문 밖에 세워 두지 말라. 바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기의 회심을 위하여 기도하라.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라. 참된 신앙을 갖도록 간절히 간구하라. 회심 없이는 신자가 될 수 없음을 가슴 깊이 새겨 두라.

[특징]
■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거듭남과 회심의 의미와 중요성, 회심하지 않은 상태의 심각성, 회심하지 않은 자에 대한 경고,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용서와 사랑, 회심의 불가피하고 절대적인 필요성 등을 조목조목 전하며, 이 거듭남과 회심이야말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살게 되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며 신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접붙여지는 참된 비결임을 가르쳐 준다.
■  본문은 세심하게 나눈 소주제에 따라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 또한 말미에서는 장 전체의 내용을 되짚어 보며 좀더 심층적으로 내면화할 수 있도록 문답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깊이 있는 내용을 어려움 없이 읽되 깊은 동일화 과정을 겪으며 더욱 절실하게 자신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본문 중에서]
신앙의 세계는 참 아름답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통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아름다운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향한 돌이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제껏 자신을 주인 삼고 살아온 날들을 깊이 뉘우치고 회개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회개에는 구원하실 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절실한 신앙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믿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드러난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한 믿음, 이것으로써 아름다운 신앙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리켜 회심이라 부릅니다.
신자의 신앙생활은 결국 두 가지 방향으로 집약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던 악한 날들로부터의 돌이킴, 그리고 돌이킨 그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한 길을 가는 꾸준한 성화의 생활이 그것입니다. 오늘날 조국 교회에서는 이러한 신앙의 핵심적인 교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신자로 취급당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거듭나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교회의 개혁을 말함에 있어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혼들의 변화, 돌이킴을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온 교회와 함께…….
이 책은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과 또한 회심하였으나 은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입니다. 부디 이 작은 책을 통해 그런 독자들은 회심하고 교회는 그들을 더욱 잘 돌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2009년 5월 그리스도의 노예 김남준
-『저자 서문, 하나님을 향한 돌이킴』 중에서

초등학교 때 집 가까운 곳에, 많은 계란을 따뜻한 방에 두고 관리하면서 병아리로 태어나게 하는 작은 부화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그 집에 들러 병아리가 깨어나는 광경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방안에 많은 계란들이 있었고 그 중에 어떤 계란은 소리가 났습니다. “톡톡톡톡톡.”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노른자에서 이미 다 만들어진 주둥이로 껍질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잠시 후 껍질에 금이 가고 흰자에 젖은 노란 솜털을 입은 작고 귀여운 병아리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몇 마리가 그렇게 깨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껍질을 깨고 나오자마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한참 동안 말입니다. 껍질 속에 들어 있을 때에도 병아리였고 껍질 밖에 나왔을 때도 병아리였지만 껍질 안에 있을 때에는 바깥 세계가 이렇게 크고 넓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얀 껍질에 둘러싸인 타원형의 작은 공간이 그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을 깨고 나왔을 때 펼쳐진 세상은 그가 알 속에 있을 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드디어 병아리로서의 일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신자가 거듭나고 회심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그가 거듭나고 회심하기 전에도 사람이었고 그 후에도 역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거듭나기 전에 그가 알고 있던 세계는 거듭나고 회심함으로써 알 수 있는 세계에 비하면 아주 좁고 작은 계란 속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모두인 것처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거듭나고 회심하게 되었을 때 알 수 있는 은혜의 세계는 이전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매우 새롭고 특별한 세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이 만든 언어로는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을 인하여 얻게 되는 이 놀라운 구원의 경험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온 삶이 어떻게 함께 변화되는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변화는 너무나 크고 놀라운 것이어서 우리는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나님께 대한 솟아나는 사랑,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 하나님께 대한 떨리는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경건의 비밀에 대한 신비한 경험,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인간의 정동(情動),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거듭남과 회심을 통하여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듭남과 회심 안에 신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접붙여지는 비결과 공동체적인 삶, 유기체적인 생명, 통치, 그리고 지체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연합 등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거듭남과 회심이 거의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죽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주권적으로 다시 살리시는 중생의 필요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탕한 길을 가던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켜야 할 회심의 필요성이 너무나 가볍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돌이켜야 할 주체는 죄지은 인간이 아니라 변화된 세상과 바뀐 현대인의 사고방식과는 너무나 멀리 계신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를 성경이 가르치는 방식대로 믿지 않고 바꿔 버림으로써 인간에게로 돌이켜야 할 하나님의 필요성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진리는 불변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영영토록 썩지 아니하는 복음의 씨야말로 절망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을 다시 살리사 아버지의 생명 안에서 살게 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지금도 성경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당신의 회심은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회심입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회심한 사람입니까?”
2009년 5월 그리스도의 노예 김남준
-『책을 열며, 병아리의 추억』 중에서

조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성찬에 참여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종교개혁자들이 통렬히 반대하였던 가톨릭 교회의 견해입니다.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규정하는가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교회의 정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에 대한 지식만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기독교에 대하여 종교적인 감정만을 느끼는 사람도 아닙니다. 또한 단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도 아닙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규정한다면 복음의 본질들은 무시될 것입니다. 죄인들은 거듭나거나 회심할 필요가 없고 교회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는 의미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그리스도인에 대한 성경의 규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은 사람이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 속에서 그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곧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에 지체로서 접붙여져 하나님의 영적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범하는 커다란 잘못은 구원에 있어서 회심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교인들은 더욱, 구원의 중심 교리인 회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에 접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은 등록 카드를 작성함으로써 가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에 접붙여지는 것은 거듭남과 회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제1장, 교회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 중에서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의 근거가 거듭남이라고 할 때 이것은 시간적인 순서라기보다는 논리적인 순서입니다. 회심은 살아난 영혼이 자신의 죄에 대해 반응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움직이는 영혼과 마음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죽어 있는 영혼이 먼저 살아나지 않고는 그런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거듭남이 회심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회심은 논리적으로 구원 서정(序程)의 하나로서, 거듭난 영혼이 자기의 의식 속에서 최초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지며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회심의 정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심(回心)은 거듭난 영혼이 인간의 의식 속에 활동하는 첫 번째 움직임으로서,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 회심하기 위해서 자기의 죄를 자각할 수 있도록 복음 진리를 제시받아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회심은 인간의 의식 속에 일어나는 변화이므로 도덕적인 설득의 성격을 띱니다. 이것은 인격적인 설득입니다.
따라서 죄인이 복음의 내용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회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에 관한 교리, 그리스도의 대속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등의 복음 교리들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시되지 않았는데도 어떤 감정의 변화나 감동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회심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것은 영혼의 변화로 말미암아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본성의 변화이며, 전인격적인 작용입니다. 그리하여 회심은 신자의 모든 생활에 총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제시된 복음 진리를 죄인들의 지성에 비추시고, 마음을 설득하심으로써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이것을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거듭남과의 구별
회심은 거듭남과 구별됩니다. 회심의 근거가 영혼의 거듭남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난 영혼이기 때문에 회심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다음 몇 가지 점이 지적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구원에 있어서 거듭남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독립적인 사역입니다. 이러한 영혼의 거듭남은 영혼 자체가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 있는 상태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 홀로 그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혼의 거듭남은 ‘중생’(重生)이라고도 부릅니다.
영혼의 거듭남에 있어서 인간이 스스로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전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엡 2:1). 생명이 없는 영혼이기에 자신이 생명을 부여받음에 있어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나사로가 자신을 살아나게 하는 데에 스스로 아무것도 이바지할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요 11:43).
그러나 회심은 거듭남과는 달리 인간의 의식세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주도적인 작용에 반응하는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에 역사하사 회개와 믿음을 불러일으키시는데, 인간의 의지 없이 또 인간의 의지를 거슬러 일하시지 않고 인간의 의지 안에서, 의지와 함께 그 일을 하십니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회개하고자 하는 자에게 회개하도록, 믿고자 하는 자에게 믿도록 역사하십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심 없이는 거듭남도 없습니다.
이 말은 회심이 거듭남을 가져온다는 말이 아니라, 회심을 통하여 영혼이 거듭난 것이 입증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인들에게 ‘거듭나라’고 요구하지 않고, ‘회심하라’고 요구합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이러한 가르침은 사도들에게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성경의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러한 회심을 단지 ‘회개하라’는 명령으로 요약하기도 합니다(행 8:22; 26:20).
둘째로, 거듭남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회심은 의식세계 안에서 경험됩니다. 그런 점에서 회심은 거듭난 영혼의 최초의 움직임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거듭남이 의식세계 안에서 나타난 활동이 바로 회심이라는 것입니다. 중생을 통하여 살아난 영적 생명으로 인하여 죄인의 전 본성은 새롭게 되며, 이로써 중생한 신자의 마음은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를 도입하는 것이 회심입니다.
이 회심을 통하여 신자는 두 가지 변화를 의식세계 안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의 변화로서 영혼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그리하여 회심한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을 지각하게 되는데 그 아름다움을 자주, 많이 볼수록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도덕의 질서 속에도 잘 나타나 있지만 무엇보다 성경 계시 속에 가장 풍부하게 나타납니다. 성경 계시야말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관한 증언의 진수들입니다. 회심한 영혼이 성경 말씀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셋째로, 거듭남은 창조와 같은 일반적 사역이지만 회심은 도덕적 설득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특별한 사역입니다. 이는 곧 회심은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기는 해도, 여전히 계시를 사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회심은 저항할 수 없도록 인간의 영혼을 살리시는 중생과는 달리 그의 지성을 설득하고 정서를 고양하며 의지를 북돋우시는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도덕적 설득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회심의 효과는 회심하는 죄인의 전 영혼과 마음, 전 인격에 미치게 되며 자아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두 가지 의미의 회심
회심은 좁은 의미의 회심과 넓은 의미의 회심으로 구별됩니다. 그리고 이 두 회심은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구원과 관련된 의미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로, 좁은 의미의 회심입니다. 이는 구원에 이르는 회심으로서, 거듭남이나 죄인을 의롭다고 일컫는 ‘칭의’(稱義)와 같이 일회적입니다. 이것을 ‘고유한 의미의 회심’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신자의 일생에서 단 한 번 일어나며 결코 반복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구원이 일회적인 것처럼 이런 의미의 회심도 일회적입니다.
이러한 회심의 경험은 사람마다 방향이나 깊이, 정도나 양상이 각기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영광에 대한 새로운 영적 감각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발생합니다.
둘째로, 넓은 의미의 회심입니다. 이것은 최초의 회심 경험의 반복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구원에 이르는 회심 이후에 경험됩니다. 이것 역시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지며 성화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의 회심 역시 정도와 크기, 방향과 양상 등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효과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최초의 회심과 동일합니다. 침체된 영혼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의 회심 경험의 반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영광에 대한 영적 감각이 회복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새롭게 생겨납니다. 따라서 경험의 효과에 관해서 볼 때 좁은 의미의 회심은 구원을 가져오지만, 넓은 의미의 회심은 구원의 확신과 성화의 은혜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은 누구인가?
어느 시대이든지 교회 안에는 항상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출석할 뿐이지 엄밀히 말해서 사실상 불신자들입니다.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부류는 자신이 회심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오래된 교회생활 때문에 기독교 문화에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배에 참석할 수도 있고 찬양을 할 수도 있고 또 기독교적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성경 계시와 자연,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알아가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부류는 스스로 회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사람들 중에는 실상은 회심한 신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회심하였으나 죄와의 싸움에서 혼란을 경험하며 자신의 구원 여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경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회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중 회심을 갈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또 자신의 회심 여부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회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의지적으로 회심하지 않으려는 불신앙의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든 이들은 회심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교회에 보내 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이 회심에 이르고 그런 회심의 은혜를 보존하면서 살아가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기억하여야 할 것
다시 말해서 교회에게는 이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회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멸시되거나 경계되어야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사람들로 여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무엇보다 이 사람들의 참된 회심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교회 안의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교회로부터 그들의 영혼을 위한 유익을 이미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유익이 무엇이고 또 그 책임은 무엇인지 기억하여야 합니다.

섭리적 유익을 누림
첫째로, 이들이 누리는 섭리적 유익입니다. 이는 그들이 비록 구원받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특권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무거운 부담입니다. 그러나 구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세상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복음에 관해서 들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떨어진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아 거룩한 교회의 한 지체가 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회심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그러한 복음 진리를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회심하지 못한 자신의 영혼의 위험한 상태에 대하여 염려하는 목회자와 지체들의 실제적인 돌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은 비록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회심할 수 있는 은혜의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복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비록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 사람들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서 형제로 받아들여지고 지체로서 사랑을 받는다는 점에서도 이미 큰 유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적 유익을 누림
둘째로, 이들이 누리는 목회적 유익입니다. 교회의 기도는 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더 애틋합니다. 또 교회는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잃어버린 양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참으로 복음적인 교회라면 목회자와 지체들은 이들을 위해 보다 특별한 사랑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목회자가 오늘도 영혼들을 위하여 저미는 가슴을 안고 기도를 드릴 때 회심치 못한 자들에 대해서 가장 큰 마음의 부담을 가집니다. 또한 교회는, 은혜의 상태로부터 부패하여 미끄러져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지체들과 회심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더욱더 기도합니다. 물론 교회는 마땅히 신실하고 헌신적인 삶을 사는 지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심하지 못한 이들만큼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목회자는 비회심자들을 위하여 더 많이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던 심정으로 그리하여야 합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1-44).
이러한 목회자의 자세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도 고백됩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20-21). 그는 이 일을 삼 년 동안이나 눈물로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31).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가장 고유한 직무 중 하나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교회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이 누리는 목회적 유익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비회심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구원 여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합니다.

유익들에 대한 책임
셋째로, 비회심자들이 기억하여야 할 것은 이러한 유익을 누리는 것에 대한 책임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교회적 특권과 목회적 유익으로 인하여 더욱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가 가까이 하고 있는 은혜의 수단들과 목회적 섬김들은 그에게 회심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기회를 주실수록 더 많은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더 많이 기회를 주신 자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시지 않겠습니까?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이 세상에 있는 많은 불신자들은 믿고자 하여도 복음을 전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고,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울어 주는 지체들도 없었습니다. 이따금 길거리에서 한 장의 전도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한 복음 진리의 빛을 받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에게는 구원의 은혜로 나아가는 길이 항상 열려 있습니다. “신자가 되기 원하니 복음 진리를 알려 달라.”고 하면 가르쳐 줄 지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니 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면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처럼 그를 위하여 기도해 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은 아직 거듭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도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은 불신자들보다 더욱 많은 구원의 기회를 제공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의 도구들은 그가 회심에 이르면 훌륭한 기회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가 회심하지 않은 책임을 더욱 크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유익의 한계들
넷째로, 비회심자들은 자신이 누리는 이러한 유익들의 한계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유익을 누리고 있는 비회심자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으니, 그를 회심에 이르게 하는 이 모든 축복의 수단들과 은혜의 방편들은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그들을 회심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많은 기도가 저절로 그의 회심을 가져다주지도 않습니다. 헌신적인 교사나 선한 목회자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그의 회심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비회심자인 그가 회심하도록 잘 준비된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사용하셔서 그를 회심시키시는 것이지, 그것을 누리는 것 자체가 곧 회심은 아닙니다.
우리는 회심을 위한 모든 도구들이 잘 준비된 환경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가난한 마음으로 회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봅니다. 너무나 많은 비회심자들이 자신들의 영혼의 위험한 상태를 직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유익들은 회심을 위한 도구일 뿐이지 절대 회심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회심치 못한 자의 상태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회심을 촉구하시는 것은 그들의 악한 본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또 그분께 순종할 수도 없는 악한 본성을, 거듭남과 회심을 통하여 고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본성은 어떠합니까?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로마서에서는 회심하지 못한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라고 말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그러한 악한 본성은 인간의 생각하는 기능에서도 필연적으로 악과 불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중략]

회심에 이르는 길

그러면 회심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그들이 참으로 보이지 않는 교회의 한 지체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지는 길은 무엇일까요?

죄를 회개하라
첫째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거스르고 죄 가운데 살아오면서도, 신앙의 형식을 지니는 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회개하지 않았던 것을 뉘우쳐야 합니다.
또한 회심에 이르도록 베풀어 주신 수많은 기회들을 떠나 보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게 여긴 것과 태만, 그리고 부주의함에 대하여 깊이 뉘우쳐야 합니다. 무한한 영광의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하고 이제껏 회심하지 않은 것은 명백히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인생관과 가치관, 생각, 그리고 사리 판단에 있어서 죄인인 자신이 중심이 되었던 것과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왔던 것, 주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형제들을 미워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변화되지 못한 본성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 세상에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았던 것에 대해서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이 모든 불순종의 뿌리는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나, 아직 회심하지 아니한 이들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잘못하신 것이 있습니까?
세상에는 아직도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이 여러분을 교회에 불러 주신 것이 잘못하신 것입니까? 목회자들을 통하여 복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찾아가게 하시고,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라고 성령께서 수없이 타이르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비난받으셔야 합니까?
이러한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회심치 못한 자들이 당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랫동안 주님의 몸에 접붙여지지 못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살덩어리였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여러분이 참된 거듭남과 회심에 이를 때, 이전에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줄 것을 기대하시고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라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확률을 의존하여 믿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사고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여전히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주위 사람들의 증언으로써 자신의 생년월일을 확인하는 것 등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확률을 의존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변화를 동반하고, 본성을 바꾸어 놓는 일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회심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소한 다음 몇 가지 사실을 내포합니다.
첫째로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음을 알고 자신이 붙잡았던 길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로서의 구원에 대한 노력뿐 아니라, 그릇된 구원의 개념을 가지고 찾았던 모든 길에 대한 포기입니다. 예를 들어서 영혼이 구원받아야 할 필요를 알지 못하던 때에 부와 명예를 얻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것을 곧 구원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모두 포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의지의 동의입니다. 복음을 통해 제시된 구원의 사실에 대하여 누구의 강요 없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동의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영혼의 변화를 통하여 이루어진 의지의 변화이며, 신자는 회심과 함께 여기에 협력합니다.
셋째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구원하기 위하여 부르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공로를 기초로 믿는 자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행이나 공로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써 구원받는 줄 알아, 전적으로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죄인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의 가장 시급한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죽은 영혼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 홀로 행하시는 사역이지만, 회심은 인간과 함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경이 인간들을 회개하도록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마 3:2, 행 2:38).
회심하지 않은 이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은혜로 주어진다 할지라도 자신이 회개하고 믿지 아니하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잠시 말씀에 깨달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잠시 기쁨의 정서를 느꼈다 할지라도 그것이 곧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마 13:4-6).
아직도 교회에 다니지만 회심하지 않은 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대들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오래도록 회심하지 못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할지라도 교회는 여러분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그러한 영혼의 상태를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바로 여러분과 같은 이들을 끌어안고 사랑하고 가르치고 돌이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은 여러분을 위해 눈물 흘리는 목회자와 지체들과 가족들이 아니라, 회심하지 않고 있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대들이 돌이키지 않는 완고한 마음을 회심하기를 지체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에 다니지만 잠시 들른 나그네처럼 방황하는 삶이 지겹지 않습니까? 다른 성도들처럼 예배 시간마다 지상에 내려온 하나님의 나라를 느끼고 싶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마음이 녹아 내리는 은혜를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까? 죄악과 근심으로 억눌린 마음이 쏟아 부어지는 진리와 은혜로써 새로워지고 싶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지체들이 맛보고 있는 감미로운 하나님의 사랑, 어두운 세상 어디에 있든지 혼자 버려 두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동행하시는 은혜를 누리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당신과 함께 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창조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멀리 떠났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여러분 가까이 계십니다. 아니, 오래도록 그대들을 기다리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사랑의 주님을 너무 오랫동안 문 밖에 세워 두지 마십시오. 이제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회심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참된 신앙을 갖도록 간구하십시오. 당신이 회심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제1장 교회 안에 있는 비회심자들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의 정의 | 거듭남과의 구별 | 두 가지 의미의 회심
교회 안의 비회심자들은 누구인가?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기억하여야 할 것
섭리적 유익을 누림 | 목회적 유익을 누림 | 유익들에 대한 책임 | 이러한 유익의 한계들
회심치 못한 자의 상태
회심치 않은 본성의 성향
가치 판단이 자기 중심적임 | 신령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음 | 하나님의 마음이 없음 | 의지가 하나님께 굴복치 않음 | 삶에 있어서 무신론적임
회심치 않은 자들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이유
사랑하는 것을 못하게 하심 | 자신을 섬기는 자이기에
회심치 않은 죄와 심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 회심치 않은 상태의 위험 | 회심의 기회를 허비함
회심에 이르는 길
죄를 회개하라 | 그리스도를 믿으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제2장 회심치 않은 자를 위한 경고
영혼을 품고 아파해야 할 교회
경고의 나팔을 부는 교회 | 회심치 못한 영혼을 품는 교회
누구를 향한 경고인가
비회심자들을 부르심 | 미끄러진 자들을 부르심
결코 회심한 적이 없는 자들에 대한 경고
회심 없이 구원 없음 | 교회생활이 회심을 대신하지 못함
가장 중요한 질문, ‘구원받았습니까?’
회심 없이 성장 없음
관계를 요구하는 사랑
악을 행하는 회심자
구원의 확신 속에서 악을 행할 때
구원 기준의 객관성 | 하나님의 징계
회심의 때를 회고하라
회심의 은혜를 보존할 의무
전인격적인 돌이킴
돌이키지 않는 이유
죄인들의 회심, 하나님의 소원

제3장 회심치 않은 자의 변명과 실상
회심치 않은 자의 변명
흔한 변명의 유형들 |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집중이다 | 핑계할 수 없을 날을 생각하라
회심치 않은 자들의 변명과는 다른 실상
순종해야 깨닫습니다 | 그대의 실상은 무엇입니까? | 회심 없는 죽음을 생각하라 | 죽음 이후의 심판을 두려워하라
구원에 이르는 길
“어찌하여 죽으려느냐?”

제4장 본 남편에게 돌아가리니
비극보다 슬픈 결혼
하나님의 의도
번영을 약속한 신, 바알
바알 종교와 이스라엘 | 번영을 약속한 종교 | 계속되는 우상숭배
신앙, 하나님과의 결혼
성경의 증거 | 신약의 정혼제도 | 혼인언약과 의무
혼인언약의 파기
돌이키지 않는 우리를 봄
다시 돌아올 백성들
불순종의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
자기 사랑이 회심의 길을 막음
찾아오시는 분은 하나님
기도하게 하시는 날
자기 사랑, 거짓 종교
돌아오기에 너무 먼 길은 없다
“그래도 나를 사랑하느냐?”
회심한 사랑 안에서 살라

제5장 기다리시는 하나님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비유
탕자의 비유
아버지를 떠난 삶
허랑방탕한 생활 | 유산을 낭비하는 생활 | 궁핍이 찾아옴
창조와 구원의 목적으로 돌아감
마음으로 집 떠난 탕자
아들을 부르는 아버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
죄를 깨달음 | 낮아진 마음 | 의지로 결단함
하늘 자원이 고갈될 때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가라
아버지의 기쁨, 함께 사는 것
회심의 의자에 입맞춤

제6장 회심한 자의 죄를 잊으시는 하나님 d
기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께로 돌이킨 자의 삶
죄를 떠난 삶 | 법과 의를 행하는 삶 | 자비를 베푸는 삶
하나님 사랑을 배반하지 말라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불타는갈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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