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061124 이스라엘은 다음 두 가지 기도를 하지 않아서 망했다! [onething]
이스라엘은 다음 두 가지 기도를
하지 않아서 망했다!
2006. 11. 24
단 9:1~3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 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이 예레미야서에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십년 만에 해방을 맞이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예언이 우리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기복신앙입니다. 그것은 진짜 샤머니즘입니다. 예언을 점술같이 이용하는 것. 예언이 우리 미래를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되었다고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예언 받아 가지고 미래에 좋은 일이 일어나고 예언기도 안 받은 사람은 미래에 좋은 일이 안 일어난다면 그게 뭡니까? 그러면 예언이 하나님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예언이 하나님의 위치에 있는 것이고 그것은 진짜로 기복신앙이고 점술입니다.
예언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도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친밀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은 기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느냐 기도하지 않느냐? 외식적으로 기도하느냐, 정말 마음을 쏟으면서 진실로 하나님께 다가가느냐? 우리가 얼마나 기도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교회의 미래도 기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가 설교나 모이는 성도 수 이런 것에 달려 있는 게 아닙니다. 교회의 미래도 기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기도하는 집이 되느냐? 거기에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한다면 기도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만큼 마땅히 기도를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제일 중요한 사역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목회자입니다. 그런 면도 있습니다. 또 어떤 면에서 보면 중보기도 자들입니다. 보는 측면에 따라서 다릅니다. 교회 안에서 제일 중요한 사역자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목회자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중보기도자고 그 둘입니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건 예언사역자도 아니고 다른 사역자도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제일 중요한 게 그겁니다. 그 정도로 중보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중보기도에 여러분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기도에 여러분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기도에 자녀들의 미래도 달려 있습니다, 부모의 기도에 자녀들의 미래가 달려 있고 기도에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나라의 미래도 결국에는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이 되느냐 마느냐. 그것이 다 성도들의 기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김정일과 부시 대통령 그 사이의 회담이나 혹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부시 대통령 회담이나 그런데 달려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사람들은 다 꼭두각시입니다. 다 허수아비입니다. 실권자들이 아닙니다. 노대통령이 실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허수아비 노릇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패하고 나라가 어두우니까 악령에게 휩쓸려 가지고 놀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노대통령도 부시도 김정일도 실권자가 아닙니다. 김정일 때문에 속 끓일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처리하려고 하면 단번에 죽일 수 있는데. 김정일 가문을 멸해 버리면 됩니다. 김정일 자신하고 자식하고 전부 몰살시키면 되는데.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면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속 끓일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교회가 깨어서 교회다워지고 교회가 깨어서 정말 기도에 힘쓰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짜로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냥 자기나 위해서 기도하고 그냥 종교적으로 기도하고 작은 믿음으로 기도하고 이거는 별거 아니지만 정말 깊이 들어가서 제대로 기도하게 되면 기도하는 시간은 정상회담 시간입니다. 그게 진짜 정상회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상회담의 의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 나라의 권력을 갖고 있고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하고 회담해서 뭔가를 끌어내는 거 아닙니까? 온 우주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분이 하나님이세요. 진정한 중보기도는 정상회담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모든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개인의 안건을 놔두고 개인의 삶을 두고 정상회담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자녀들을 놔두고 가족을 놔두고 경제를 놔두고 정상회담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교회를 놔두고 정상회담 하는 것입니다. 부흥이라는 주제로 정상회담을 하고 국가안보라는 주제로, 남북통일이라는 주제로 정상회담을 하고 그게 진짜 정상회담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게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예언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에게 우리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정상회담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무엇과 같을까요? 나무에게 있어서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생활도 기본적으로 은밀히 하는 거 아닙니까? 공개적인 사역이 아니잖아요. 강대상에서 설교하거나 앞에 나와서 찬양하거나 예언사역 하거나 구역예배 드린다거나 이런 거 하고 다르잖아요. 그러나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게 정말 생명입니다. 거기에 모든 게 달려 있습니다. 기도하는 일에 좀 더 힘을 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뿌리가 너무 얕게 내리면 안 됩니다. 깊은 기도로 들어가야 됩니다. 뿌리를 깊게 내려야 됩니다. 깊은 기도로 들어가서 성령의 생수를 빨아 당겨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꼭 구해야 될 게 두 가지가 있는데 13절에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꼭 기도해야 될 내용 중의 하나는 죄악을 떠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 힘으로 죄악을 다 떠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우리 힘으로 죄악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패가 우리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적인 부패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악을 떠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죄악을 떠나기 위해서 기도한다는 건 무엇입니까? 죄악을 떠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진지하게 결단했다는 얘기입니다. 그걸 원한다는 얘기입니다 죄악을 떠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다른 어떤 기도보다도 그 기도를 제일 많이 해야 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나 기도의 제목을 주일날 드려지는 것이나 새벽기도 때 드려지는 기도의 제목들을 분석해 볼 때 과연 죄악을 떠나도록 기도하고 있느냐. 굉장히 좀 의심스럽습니다. 앞에 나와서 죄악을 떠나도록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거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다 “비나이다. 비나이다.”입니다. 한국교회의 기도 제목도 그와 비슷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기도의 제목에 가장 우선적인 것 중에 하나는 죄악을 떠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죄악을 떠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처럼 또 여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죄악을 떠나느냐, 못 떠나느냐 여기에 모든 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미래, 교회의 미래, 가정의 미래, 국가의 미래도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망하는 거니까 국가의 미래도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죄악을 떠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악을 떠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포로가 됐습니까? 간단합니다. 죄악을 떠나도록 은총을 간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입니다. 죄악을 떠나도록 은총을 간구했으면 이스라엘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악을 떠나도록 은총을 간구하지 않은 결과로 그런 것입니다. 죄악을 떠나도록 은총을 간구해야 됩니다. 신명기 28장 말씀이 진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이러이러한 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이러이러한 저주가 임한다. 그게 진짜입니다. 삶에서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죄악을 떠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세요. 믿음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도하세요.
저는 토마스 주남 여사 책을 과거에 읽었을 때 저에게 제일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기도할 때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데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기도하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기 때문에 응답을 못 받는다.” 우리 중보기도팀장 간증에도 보면 그런 게 나오지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모하고 자아의 죽음을 원하지만 너무 쉽게 그것을 원한다. 너무 쉽게 그걸 원한다. 충분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인데 원하기는 원하지만 충분히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게 안 된다. 그거 맞는 말입니다. 왕도가 없습니다. 죄악을 떠나기 위해서 기도하되 믿음을 가지고. 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들어주지도 않을 거 뭐 하러 기도합니까? 들어줄 거니까 기도 하는 거 아닙니까? 죄악을 떠나도록 은총을 간구하면 주실 거니까 나와 있는 거 아닙니까? 계속 주실 때까지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게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악을 떠나야 하나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들아.” 욥에 대한 기록이잖아요. 욥에 대한 언급인데 욥이 어땠어요?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치도록 허용하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엄청난 복을 받았어요. 하나님께서 울타리로 그 산업과 모든 것을 보호하시고. 그게 죄악을 떠났을 때 이루어지는 삶이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가 함께 있는 삶. 풍성하고 번영하고 창대케 되고 성공할 뿐만 아니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삶.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는 삶. 그게 죄악을 떠난 자의 삶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죄악을 떠나느냐 안 떠나느냐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죄악을 떠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죄악을 떠나기 위해서 결심하고 죄악을 떠나기 위한 은총을 구하세요. 죄악을 떠나기 위한 은총을 구하고 그 응답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진리를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없다는 얘기입니까? 없다는 얘기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못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하나님께 은총을 간구해야 됩니다. 이게 큰 함정입니다. 사람들이 신학을 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목사가 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미국이나 영국에 유학 가서 신학 박사가 되고 목회학 박사가 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망상에 빠졌습니다. 신학교 내에 있는 큰 속임수 중에 하나가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하면 성경을 깊이 깨달을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생각입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몇 번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인도의 성자 썬다 싱도 예수님께 직접 음성을 들었지 헬라어나 히브리말을 안다고 해서 성경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게 아니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야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 헬라어 알아서 어떻게 성경을 깨닫는다는 얘기입니까. 도대체? 오역된 일부분을 교정해 줄 수는 있어도 헬라어를 가지고 어떻게 진짜 말씀으로 깊이 들어가고 깨달아요. 히브리어를 알아가지고 어떻게 말씀을 깊이.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배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노력에 비해서 얻는 것은 너무 초라하고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맹들이 되어서 신학교에서 쓸데없는 헬라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 뭐하려고 그렇게 고생스럽게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지.
진리는 사람이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누가 깨달을 수 있느냐 내 힘으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리는 내 힘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지성을 내려놓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 하늘과 땅보다 높음같이 높다.” 자기 한계를 인간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내려놔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 ‘주님, 주의 성령께서 내게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내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제대로 깨달을 수가 없고 나는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주님께 매달리고 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읽고 정말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게 길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희한한 일입니다.
저는 제 한계를 분명하게 알아요. 저는 제 머리로 진리를 알 수 없다는 걸 너무 분명하게 알아요. 그래서 신학교 다닐 때부터 계속해서 주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주님이 제게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설교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저의 스승 되시지 않으면 성령께서 제게 조명하시고 계시하시고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러면서 끊임없이 그 기도를 했습니다. 말씀과 씨름하면서. 예수님 가르쳐 주시옵소서. 무엇이 옳은 것입니까 무엇이 진리입니까 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냥 기도한 게 아니고 마음의 초밀이 녹는 것처럼 마음이 막 녹아서 흘러 내렸어요. 내 자신의 무지, 내 자신의 한계, 내 자신의 초라함과 내 자신의 아무것도 아닌 것. 목사는 너무 되고 싶고 설교할 능력은 없고. 그 기도를 계속해서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이 임하시고 그러면서 성령께서 말씀들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고 분별할 수 있게 하시고 그게 축적되고, 축적되고, 축적되고 그게 20년, 30년이 축적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분별력이 나오고 그런 가운데서 책이 나온 것입니다. 그냥 뭐 다른 사람 책 몇 권 읽고 책을 쓴 게 아닙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정말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비결은 자기가 모른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신학교만 들어가면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 교리만 답습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사만 되면 무식해도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무식보다 교만이 더 뛰어나가지고 목사만 되면 당연히 성경은 다 안다고 착각들을 하고 있으니까. 신학교수 되면 다 아는 걸로 착각하고 있으니까. 이러니까 여러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세계는 희한합니다. 겸손해야 낮아져야 높아지는 거고 높아지면 낮아지는 거고. 어리석어야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고 지혜로우면 어리석어지고 약해야 강해지는 거고 강하면 약해지고. “내가 약할 그때 곧 가장 강함이니라.”
하나님 나라는 참 신기해요. 반대입니다. “너희가 지혜를 원하느냐 스스로 미련한 자가 되어라.” 미련한 자가 되어야만 지혜가 오는 거고. 자기를 지혜 있다고 생각하면 지혜는 벌써 날개를 내세워 멀리 떠나 버린다. 자기의 무지를 알고 자기 부족을 알고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주님의 가르치심을 원하게 될 때 그때 여러분 진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책을 쓰는 자격입니다. 희한한 자격이죠. 다른 사람은 공부 잘해서 신학교 가서 또 공부하고 외국 유학 가서 공부하고 그래서 책 쓰는지 몰라도 제가 책을 쓰는 자격은 그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도록 은총을 간구하지 아니했다.
신학 공부하는 신학생들이나 이런 분들 있으면 꼭 기억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성경만 봐가지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책만 열심히 읽어가지고는 안됩니다. 진리를 깨닫도록 하나님께 은총을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도록 하나님 앞에 낮아진 마음으로 녹아진 마음으로 은총을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정말 진리를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죠. 그렇지 않으면 속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속임수가 난무한 건지 압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고. 세상만사가 다 안 그래요? 저는 그런 말장난을 싫어해요. 기사도 그렇잖아요. 어떤 한 사건을 놓고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렇고. 사람이 단순하고 진실하고 실체를 봐야 되는데.
이게 뭐 얼마나 좋은 예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서 옛날에 어떤 목사님이 약간 어른 목사님이 후배 목사님한테 도움을 줬든가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명절이 되었는데 ‘날 찾아올 거 없네. 찾아와서 특별히 인사하거나 그럴 거 없네.’ 그랬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안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나중에 되게 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날 찾아올 필요가 없네. 그건 내 인사고 자네는 자네 인사를 해야지.’ 나 이런 거 딱 질색입니다. 인간이 왜 이렇게 꼬이고 복잡하고 말장난하고 나 그 얘기 들으면 속이 막 부글부글 끓더라고요. 인간들이 쓸데없는 말장난들. 사람은 겉과 속이 똑같아야 되고 진실해야 되고 그래야지. 인사할 필요 없네. 그랬다가 고상한 척 하면서 무슨 도라도 깨친 것처럼 그건 내 인사고. 밥맛입니다.
지금 내가 무슨 얘기 하고 있는지 아세요. 여러분? 말이라는 건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변하고 저렇게 얘기하면 저렇게 변하고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말들입니다. 말꼬리 잡지 말고. 지식이 똑 같아요. 신학도 똑 같아요. 이렇게 보면 이렇게 저렇게 보면 저렇고. 이쪽으로 몰고 가면 이렇고 저쪽으로 몰고 가면 저렇고. 그러니까 자꾸 지식을 증가시키고 학문적인 노력을 통해가지고 내가 아는 것을 확고하게 전하고 막 그냥 설득력 있게 하고. 이런 일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진리가 뭔가 그 자체하고 씨름을 해야지 무슨 진짜 진리를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분별되지 않은 자기 교단의 교리만 딱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거를 잘 설명하고 그거를 잘 전하고 그거를 잘 입증하고 이걸 무슨 신학공부라고 생각하고 있냐고요. 신학박사들의 상당수가 그 일을 한 사람들이라고요. 신학교가서 배우는 것 중에 상당부분이 그런 일들이라고요.
정말 진리를 사랑하고 정말 진리에 대해서 목마르고 정말 진리가 무엇인가 관심을 갖고 씨름하고 그게 세계적인 석학들도 많은 오류에 빠지고 그러니까는 자기 자신의 부족과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진짜 주님을 진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 분. 그분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무엇이 바른 진리인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저는 예수님 앞에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수십 년 동안 저의 기도제목이었어요. 간절한 기도제목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알고 전하고 책을 쓰는 것의 상당부분은 그것에 대한 주님의 직간접적인 응답입니다. 어떤 것은 주님이 제게 직접 가르쳐 주시고 어떤 것은 하나님이 쓰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좋은 책들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미혹되고 사람들이 멸망 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오는 것처럼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아서 그래요. 진리는 모두를 사랑하기를 원해요.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았다는 건 뭐예요? 진리는 어떤 의미에서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지혜인데 잠언에 보면 그 지혜가 말을 하잖아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은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들은 나를 만날 것이다.” 그랬어요. 진리의 사랑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 뭐예요? 그 지혜가 말을 했어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은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들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교회를 다니고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 하면서도 진리를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말 진리가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고 씨름도 안 했고 고민도 안 했고 그러고 교회생활에 적응해서 신나게 신앙생활 한 것입니다.
세상에 천국, 지옥이 분명히 있고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천국가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런데 성경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이런 두려운 말씀들이 나온다고 그러면 관심을 가져야 그게 사람이지. 아 이게 정말 어떤 사람이 천국 가는 건가. 진짜 천국 가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어떤 상태일까. 알곡과 쭉정이가 나오고 미련한 처녀, 슬기로운 처녀가 나오고 모래위에 집 짓는 것, 반석위에 집 짓는 것 막 나오면 그런 생각을 가져야 그게 정상이지. 어떻게 교회를 다니면서 ‘믿으면 다 천국 가는 거야 다 쓸데없는 소리할 필요 없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냐고요. 얼마나 진리에 관심이 없으면 이런 생각을 하냐고요. 얼마나 진리에 관심이 없으면. 진리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냉정하고 매몰차니까 진리도 정나미가 떨어져가지고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이 거짓 것을 유혹을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시고 저희로 하여금 멸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사람들이 미혹이 되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다 천국 간다. 미혹되고 자기 멋대로 살다가 지옥가고. 목사에게도 그런 미혹이 수없이 오고 성도들이나 신학자들에게도 그런 미혹이 수없이 오고 그건 다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자기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사랑하면 만나려고 하잖아요. 진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간절히 찾는 자들이 만날 것이다 그랬는데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 그랬어요. 그게 없으니까 못 만나는 것입니다. 그게 있는 사람은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을 읽고 회개하고 통곡이 터지고 구르고 난리가 나고 삶이 바뀌는 거고 그게 없는 사람은 이상한 책이네 그러고 목사라도 집어 던지는 거고 성도여도 집어 던지는 거고 허튼소리나 하다가 자기 갈 길 가는 거고 그러는 거지요.
세상에 우연은 하나도 없어요. 우연히 책을 읽었는데 어떤 사람은 깨달아서 회개하고 변화되어서 천국가고 어떤 사람은 막 무관심하고. 그럼 그게 뭐에요? 인생이 도박도 아니고 이게 뭐 던질 때 아무거나 나오는 것처럼 그게 뭐에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신학 하실 분들이나 혹시 이 설교를 듣게 될 목회자분들이나 진리를 사랑하세요. 그리고 진리를 찾으세요. 간절히 찾으세요. 무엇이 진리인가 찾으세요. 자기 힘으로 안 된다는 걸 알고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제게 부어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세요. 한 달 기도하고 일 년 기도하고 진리를 아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5년 10년 20년 기도하면서 점점 더 정확한 진리 속으로 말씀과 씨름하고 많은 좋은 책들의 도움을 받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고 그러면서 점점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도 진리를 사모하고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 앞에 녹아내리는 마음으로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매달릴 때 그게 벌써 고등학교 때, 신학생 때 그때부터 그런 일을 시작했는데 그런 다음에 제가 한 달 만에 진리를 지금 이해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일 년 만에 이해하거나 이년 만에 이해하거나 그게 아닙니다. 점진적으로 조금조금 또 깨달아지고 또 이해가 증진이 되고 또 분별이 되고. 그게 여러 해를 걸쳐 통해서 깨달아지면서 그게 축적되면서 그래서 지금 제가 알 수 있는 것을 아는 거고 쓸 수 있는 것을 쓰는 거고 분별할 수 있는 걸 분별하는 거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업을 안 거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만 가지고 제 책이나 설교를 분별하겠다고 달려드는 그 자체가 오만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 인생은 예언에 달려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예언을 멸시치 말고 예언을 존중해야 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이 있고 우리의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기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알았으면 그걸 붙잡고 기도제목으로 삼아서 기도해야 되는 것이지 예언가지고 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미래는 예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달려있는 겁니다. 세상 사람은 몰라도 신자는 무릎으로 사는 것입니다. 무릎으로 살고 무릎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에 더 많은 비중과 가치를 부여하세요. 그리고 기도에 더 많은 힘을 쏟으세요. 기도 시간을 더 늘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기도할 때 마다 기도는 중요한데 늘 무슨 문제 해결이나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게 나쁜 거 아니에요. 그럼 문제해결 누구한테 해달라고 해요. 하나님한테 해달라고 해야지. 그게 나쁜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사나 달라고 하고, 능력이나 달라고 하고, 교회나 부흥시켜 달라고 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기도해야 될 제목 중에 하나는 악을 떠나도록 기도해야 되요. 주님, 내가 악을 떠나길 원하지만 주님 내가 주님 말씀대로 살고 주님 닮기를 원하지만 내 속에 있는 부패들이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부패, 우리 부모로부터 내려온 부패, 내 인생에서 내가 잘못된 선택들을 오랫동안 함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뿌리내린 그 부패. 이 세 가지 뿌리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죄악의 뿌리들이 사람 속에 있습니다. 아담으로 내려온 죄성,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망령된 행실, 우리 부모들이나 우리 조상들이 잘못 삶으로 말미암아 그게 유전적인 약점으로 도덕적인 약점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나 우리의 또 잘못된 반복적인 선택이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뿌리내리게 된 그런 죄성들.
이거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의지만 가지고 안 됩니다. 의지만 가지고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극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되는 겁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거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죄를 떠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간절히 구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 다른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제목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우선적이고 핵심적인 제목. 죄를 떠날 수 있는 은혜를 은총을 제게 부어 주옵소서. 그 다음에 진리가 좁은 길이기 때문에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열심히 신앙생활 해도 엉뚱한 데로도 갈 수 있는 거고 멸망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위험성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특히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이나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자요.”
오늘 제가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 신간 ‘성령의 은사’ 라는 책을 현재 읽고 있는데 그 책에 보니까 스미스 위글스워스 목사님이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그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러셨어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조금 아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오늘날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에게 얼마나 들어맞는 말인지 몰라요. 조금 아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뭘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정말 우리의 무지와 무능, 지식하고 하나님 말씀하고 신령한 지혜하고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게 같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공부 잘했으니까 하나님 말씀도 잘 알 것이라는 그런 망상을 갖지 말고 신학을 했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잘 알 것이라는 그런 허튼 생각 갖지 말고 신학박사가 됐으니까 하나님 말씀을 잘 알 거라는 그런 덜 떨어진 생각 좀 갖지 말고. 자기 자신의 부족과 자기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진리를 알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성령님과 교통하고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진짜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들 마음속에도 그게 있어야 되고 성도들도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그런 목마름이 있어야 진짜. 주님이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 그게 주의 음성인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각성하게 되고 정결하게 되고 변화되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신앙생활 해도 굉장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기도할 때 한번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죄악을 떠나도록 기도하고 진리를 깨닫도록 기도하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달라고 기도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맙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감사드리고 찬송 드리고 찬양 드리며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것이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 기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예언이 아니라 기도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을 믿습니다. 저희들에게 기도의 영을 부어 주옵소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옵소서. 저희들에게 더 많은 기도의 부담감을 주옵소서. 우리가 더 성령에 사로잡혀서 성령으로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미래가 바뀔 뿐만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복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두 가지를 꼭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는 죄악을 떠나도록 은총을 간구해야 됩니다. 또 하나는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은총을 간구해야 됩니다. 이것은 다 인간의 힘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도 진리를 바르게 행하는 것도 다 인간의 힘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계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에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에게 죄악을 떠날 수 있는 은총을 주시옵소서. 진리를 깨닫고 죄악을 떠나는 자가 되게 해 주시고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모든 악에서 떠났던 욥의 인생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보호하심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삶이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삶이 바로 그렇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