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Re: 인간의 세가지 본성 영 혼 육 (케네스 해긴 )
제1장인간의 3가지 본성(nature)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바울) (요3:7)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논증하고(reason) 생각(think)하는 부분
인간의 3가지 본성: 영(spirit), 혼(soul), 육(body)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Hebrews(4:12)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혼(soul)과 영(spirit)을 쪼개다 -> 서로 다르니까 쪼갠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1 Thessalonians 5:23 May God himself, the God of peace, sanctify you through and through. May 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 be kept blameless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하나님과 접하는 것은 영이다. 이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오직 영만이 영과 접할 수 있다.
*새롭게 태어남은 사람의 영(the human spirit)의 거듭남인데, 이는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겠다”
*요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John3:1 Now there was a man of the Pharisees named Nicodemus, a member of the Jewish ruling council.
3:2 He came to Jesus at night and said, "Rabbi, we know you are a teacher who has come from God. For no one could perform the miraculous signs you are doing if God were not with him."
3:3 In reply Jesus decla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see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again."
3:4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Nicodemus asked. "Surely he cannot enter a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to be born!"
3:5 Jesus answe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3:6 Flesh gives birth to flesh, but the Spirit gives birth to spirit.
3:7 You should not be surprised at my saying, 'You must be born again.'
3:8 The wind blows wherever it pleases. You hear its sound, but you canno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So it is with everyone born of the Spirit."
*예수께서 *”육(the flesh)으로 난 것은 육(flesh)이요, 성령(the spirit)으로 난 것은 영(spirit)이니”(6절)라고
*롬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Romans 2:28 A man is not a Jew if he is only one outwardly, nor is circumcision merely outward and physical.
2:29 No, a man is a Jew if he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circumcision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written code. Such a man'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할례의 대상: 마음(heart), *할례를 행하는 주체: 성령(the Spirit)임 (율법(the written code)이 아님)
*방언:
*고전14:14(14: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14:14 For if I pray in a tongue, my spirit prays, but my mind is unfruitful)->확대 번역성경에서는 “내 영(내 안에 있는 성령으로 인해)이 기도하면 … ” 이라 되어 있다.
*바울은 고전14:18에서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말했다. 바울은 “내 영”이란 말과 “나”란 말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우리의 몸을 통해 물질적 세계를 접하고 영을 통해 영적 세계를 접한다. 그리고 혼(soul)을 통해 정신세계를 접한다.
*인간의 3가지 본질 요약
(1) 영(spirit): 영적 영역(the spiritual realm)을 다루는 인간의 차원: 하나님을 아는 인간의 부분(the part of man)
(2) 혼(soul): 정신 영역(the mental realm)을 다루는 인간의 차원: 지성(intellect), 감성(sensibility)과 의지(will),
(3) 육(flesh): 물리 영역(the physical realm)을 다루는 인간의 차원. 우리가 사는 집.
*당신 자신을 혼(a soul)을 가지고 있고 육체(a body) 안에 사는 영(a spirit)으로 생각하십시오.
제2장 인간의 첫 번째 차원-영
*사람은 혼을 가지고 있고 육체 안에 사는 영적 존재이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아는 부분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부류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영이시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당신과 교제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부류여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영이시듯 인간도 영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에게 하신 말씀.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John 4:23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4:24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우리는 하나님을 논리적으로 알거나 만질 수는 없다. 그 분은 사람이 아니다. 그 분은 영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과 정신적으로는 소통할 수 없는데, 이는 그 분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영으로서 그 분께 다가갈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의 영을 통해서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took upon Himself a man’s body) 오셨다. 예수님은 육신으로(in the flesh) 드러내신 하나님이시다.
*요1:1-3,14)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 그 분은 몸을 갖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셨다. 사람은 육체적 죽음에서 그의 몸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몸을 가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죽음에 이른 나사로와 부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설명에서 이를 볼 수 있다(눅16:19-31).
*<눅16:19-31>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16: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16: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16: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16: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16: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16: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16: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16: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바울의 서신에서, 우리는 인간의 3가지 본질에 대해 언뜻 보게 된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1 Thessalonians 5:23 May God himself, the God of peace, sanctify you through and through. May 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 be kept blameless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그 날은 굉장한 날이 될 것인데, 이는 주께서 오실 때는 이 전체 사람-영, 혼, 육-이 보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새 영을 갖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그 때” 새 육신을 갖게 될 것이다.
*새로운 탄생(the new birth)에 대한 예언:
*겔36:26-27)36: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6:27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Ezekiel36:26-27)36:26 I will give you a new heart and put a new spirit in you; I will remove from you your heart of stone and give you a heart of flesh. 36:27And I will put my Spirit in you and move you to follow my decrees and be careful to keep my laws.
*사람이 거듭날 때에는 영(진정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고 옛 사람은 없어진다. 과거의 딱딱하고 단단한 심령(heart)은 사라진다. 바울이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
*”심령(heart)”과 “영(spirit)”은 성경에서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당신의 심령(heart)은 당신의 영(spirit)이다. 우리가 앞서 인용했던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의 말씀은 단순히 “마음을 다해”가 아니라 “영과 혼과 육 전체로”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사람의 영: 베드로는 마음에 숨은 사람(hidden man of the heart)에 대하여 얘기한다. 베드로는 단순히 외면적인 꾸밈에 관계한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4):<NIV> Instead, it should be that of your inner self, the unfading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of great worth in God's sight. <KJV> But let it be the hidden man of the heart, in that which is not corruptible, even the ornament of a meek and quiet spirit, which is in the sight of God of great price.)” 라고 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람이다. 그것은 겉 사람 즉 살과 뼈로 된 사람이 아니다. 곧 육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속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마음에 숨은 사람”-사람의 영-을 가리켜 속 사람이라고 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다른 번역에서는 ‘썩어가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전4:16:<표준><속사람의 생활>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 갑니다.17: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룩해 줍니다.18: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NIV>16: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17: For our light and momentary troubles are achieving for us an eternal glory that far outweighs them all.18: So we fix our eyes not on what is seen, but on what is unseen. For what is seen is temporary, but what is unseen is eternal. <KJV>16: For which cause we faint not; but though our outward man perish, yet the inward man is renewed day by day.17: For our light affliction, which is but for a moment, worketh for us a far more exceeding and eternal weight of glory; 18: While we look not at the things which are seen, but a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for the things which are seen are temporal; bu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are eternal.
*겉 사람 또는 육체는 늙어가고 쇠잔해져 가는데, 이는 마치 우리가 사는 집이 쇠락해 가고 지속적인 유지와 보수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진정한 나는 늙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한 바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바로 지금의 나보다 조금도 더 늙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몇 년 전의 나보다 더 늙지 않았다. 나는 그 때보다 더 많이 알고 있지만, 조금도 더 늙지 않았다. 내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주름이 좀 더 많아질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나는 결코 늙지 않을 것이다.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이다.->우리의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물질의 속성인 노화현상은 자연현상에 속할 뿐이다.
*바울은 <고후4:17-18>에서 계속해서 말한다. “<개역>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NIV>17: For our light and momentary troubles are achieving for us an eternal glory that far outweighs them all.18: So we fix our eyes not on what is seen, but on what is unseen. For what is seen is temporary, but what is unseen is eternal. <KJV>17: For our light affliction, which is but for a moment, worketh for us a far more exceeding and eternal weight of glory; 18: While we look not at the things which are seen, but a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for the things which are seen are temporal; but the things which are not seen are eternal.”
*당신은 자연스런 관점에서 볼 때 삶을 끔찍하게 만드는 어떤 시련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그건 단지 잠시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훨씬 더 놀라운 것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겉 사람은 눈에 보이지만, 속 사람은 감춰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틀린 것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삶에서 실패하고 만다. 그들이 보는 모든 것들은 물질적인 것들이다. 스미스 위글스워쓰는 “나는 내가 보는 것에 의해 동요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것에 의해 동요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내가 믿는 것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라고 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 뿐이다.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5:1>”라고 하였다. “이 땅의 집”은 우리 육체를 말한다. 바울은 만약 우리 육체가 “무너져도” 즉 죽어서 무덤에 묻혀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도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바울은 사람의 영 즉 속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이는 영원한 것이다.
*바울은 같은 5장에서 이 주제를 계속 다루고 있다. “<고후5:6-8>6: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NIV>6: Therefore we are always confident and know that as long as we are at home in the body we are away from the Lord.7: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8: We are confident, I say, and would prefer to be away from the body and at home with the Lord.”
*바울은 6절에서 “우리는 언제나 확신한다”라고 말하고 8절에서도 또 “확신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속 사람)가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우리(속 사람, 진정한 사람)가 “육신을 떠나”면 우리는 “조와 함께” 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적인, 물질적인 세계에 살면서 영적 세계가 자연세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라는 것을 깨닫기 어렵다. 우리는 사람들을 단지 육체에 거하는 존재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다.
*반면,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사람은 속 사람이고, 마음에 숨은 사람이며, 그는 영원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그의 “이 땅의 집”이 흙으로 돌아간 후에도 오래도록(영원히) 살 것이다.
제3장 인간의 두 번째 차원-혼
*혼(soul)은 지성(intellect)이다. 그것은 감성(sensibility)이며 의지(will)이다.->혼(soul)=지성(intellect)=감성(sensibility)&의지(will)
*혼(soul):이성적으로 사고하고(reason) 생각(think)하는 부분 => 정신적인 영역(the mental realm)
*혼=감성+이성
*롬12:1-> 바울의 가르침: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해야할 일<롬12:1>(개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NIV)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바울은 바로 그 다음 절에서 마음(mind) 즉, 사람의 지성(intellect) 또는 혼(soul)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개역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NIV)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바울은 우리가 해야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1)육체(body)를 가지고 할 일: “형제들(믿는 사람:기독교인=크리스챤)아…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육체를 산 제사로 드려라
(2)마음(mind)을 가지고 할 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늘날 교회에 요구되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사람(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mind)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다.->단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게다가 성령 충만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다시 새로워진 마음(mind)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mind)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mind)을 다시 새롭게 한다. 그러나 그 분은 또한 마음(mind)을 새롭게 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의 계시를 주기 위하여 교회에 교사들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mind)은 두 가지 방법으로 새롭게 될 수 있다.
(1)우리의 개인적인 연구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먹임
(2)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교사들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음
->이러한 방법으로 말씀의 힘과 지식에서 자라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마음(mind)을 새롭게 하여 빛 가운데 걸을 수 있다.
*진정한 믿음과 정신적 동의(mental assent)
*정신적 동의란 성경이 진리란 것을 인정은 하지만, 실제로 그 말씀대로 행하지는 않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기도한 것을 이미 받은 것으로 본다. 믿음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말했고, 내가 믿고 나는 지금 가졌다”라고 말한다.->(개역: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NIV)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다른 번역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을 제공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은 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제4장 인간의 세 번째 차원-몸(body)
*사람의 영은 속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는(깨닫는) 부분이다. 몸은 겉 사람이고 물질적이며, 우리가 사는 집이다.
*(개역: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바울은 여기서 죄인(일반 사람들)을 향하여 로마서를 기록하지 않고 로마의 성도들에게 쓰고 있다. 그것은 “…형제들아…”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신에서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라고 썼다.
*바울은 몸에 대하여 해야할 일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롬12:1)->그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만일 우리가 몸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바울이 하나님께 당신 자신(속 사람: 영)을 드리라고 말한 것이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신은 이미 그 분께 속한 것이다. 이미 그 분께 속한 것을 그 분께 바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그 분의 것이다. 그러나 몸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다.->바울은 “…너의(속 사람) 몸(이 땅에서 사는 집)을…”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아닌 우리는 그 집(우리 몸)의 관리자이다.
->우리 자신은 우리 몸을 “산 제사,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즉 온전한 예배”로 드려야 한다.=영적 예배
*”하지만 몸으로 행하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어쨌든 아무리 해도 이 늙은 몸이 천국에 가지는 않을 것이니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의 몸으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다. 그 분은 성화된 몸을 원하신다. 그 분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온전한 예배”로 드리길 원하신다.->말씀대로 사는 변화된 생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했다.->의롭게 사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당신이 차고에 앉아 있는다고 자동차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일 아침 당신이 교회에 앉아 있는다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다. 당신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도 없다. 오직 거듭나야만 한다.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선해지려고 애쓰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단지 종교일 뿐이다. 기독교 신앙은 거듭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영생의 선물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이며 생명인 영생이 당신 영에 주어졌을 때 그것은 당신을 변화시키게 된다. 이 사람의 심령(heart)에 들어온 하나님의 생명은 이러한 속 사람(진정한 인간)을 새 사람으로 만든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아무리 해도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듭났고 새 본성을 가진 새 사람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이전 것(우리의 옛 죄의 성질)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육신(몸)으로 인한 죄를 짓지 않게 됨.
*우리가 거듭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참 인간에는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옛 자아에 대해 죽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났을 때, 옛 자아는 이미 죽었고 대신 새 자아를 가졌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육신에 대해 죽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육신이 옛 자아가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니다. 당신의 육신은 구원받기 전과 같은 몸, 같은 육신이다. 그러나 속 사람(옛 사람, 옛 자아)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 새 자아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 속 사람이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며,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것이다.
*몸은 새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새 몸을 가질 것이다. 지금 현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에 대해 무언가를 하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곧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그 분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조절하고 몸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 분은 우리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금욕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은 우리가 바울이 고전9:27에서 말한 대로 행하기를 바라신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NIV)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바울은 또 다시 우리가 몸에 대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말한다.->여기서 “나”는 진정한 사람, 속 사람, 마음에 숨은 사람, 영원한 사람을 말한다. 만일 몸이 진정한 사람이라면 바울은 “내가 내 자신을 쳐 복종하게…”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무엇에 몸을 복종시키는가?” 속 사람에게 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우리를 다스리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속 사람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 죄를 짓게 된다. 우리가 몸을 지배해야 한다. 즉 속 사람이 몸을 지배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세인들에게는 그들의 몸이 그들을 다스린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아기 그리스도인으로 머물게 한다. 이것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이 편지의 앞 부분에서, 바울은 그들이 여전히 아기 그리스도인인 것을 훈계하고 있다. 그 때 그는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고전3:3)라고 했다. 다른 번역에서는 “육신에 속한”을 “몸이 지배하는”이라고 되어 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만일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 몸이 계속 우리를 지배하도록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몸은 해오던 대로 계속하기를 원할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우리 몸을 우리의 통제하에 두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 속 사람은 몸을 지배하면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제5장 속 사람 안에 있는 성령님
인간의 3가지 본질 중 하나님과 접촉하는 부분은 인간의 영이다. 이것은 진정한 사람, 또는 사도들이 말했던 속 사람, 마음에 숨은 사람이다. 영생을 받는 것은 사람의 영이다.
*사람이 거듭났을 때, 영생은 그의 영 즉, 그의 속 사람에게 주어진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롬6:23) <롬6:23(개역)>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KJV) (Rom 6:23)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며 본질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KJV>(Joh 5:26) For as the Father hath life in himself; so hath he given to the Son to have life in himself” 예수님은 여기서 그분, 즉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가진 같은 종류의 생명을 가졌다고 말씀하고 계신다.->그러므로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시는 이 하나님의 생명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영을 재창조하고 우리를 새 피조물로 만드는 하나님의 본질이며 생명인 것이다.
*(행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행 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행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듭나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고, 베드로가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KJV) (1pe 1:23)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새롭게 믿은 사람들에게 안수했을 때, 저희가 성령을 받는 것을 보았다.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 8: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성령 받는 것은 구원 이후에 오는 경험임을 알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실 때, 그 분은 우리의 머리가 아닌, 우리 심령(heart)에 거하신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머리는 우리가 이런 경험을 얻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머리는 우리의 혀를 지배해 왔고, 생각이 우리의 혀를 성령께 양보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성령 받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써도 받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집)이 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몸이 우리 영의 전 또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성령께서는 우리 몸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에 거하신다. (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KJV) (1John 4:4) Ye are of God, little children, and have overcome them: because greater is he that is in you, than he that is in the world.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KJV) (Act 2:4) And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Holy Ghost, and began to speak with other tongues, as the Spirit gave them utterance.
*진정한 사람은 이런 속 사람이고, 우리가 방언을 할 때는 심령(heart)으로부터, 영으로부터, 속 사람으로부터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발성기관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몸이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도 아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다. “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KJV) (1co 14:14) For if I pray in an {unknown} tongue, my spirit prayeth, but my understanding is unfruitful.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榮光)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KJV) (Joh 7:37) In the last day, that great {day} of the feast, Jesus stood and cried, saying, If any man thirst, let him come unto me, and drink.
(Joh 7:38) He that believeth on me, as the scripture hath said, out of his belly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Joh 7:39) (But this spake he of the Spirit, which they that believe on him should receive: for the Holy Ghost was not yet {given}; because that Jesus was not yet glorified.)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그들의 가장 깊은 곳, 즉 그들의 영에 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머리 또는 마음(mind) 속에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분께서는 우리의 심령(heart)에 계신다.
*하지만, 나는 그 분이 느껴지지 않아요. 아마도 그 분이 떠나셨나 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성령은 일단 한 번 오시면, 계속해서 계시는 분이다. 왜냐하면,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KJV) (Joh 14:16) And I will pray the Father, and he shall give you another Comforter, that he may abide with you for ever;”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mind) 가운데 계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분은 우리 마음(mind)과 직접 소통하지 않으신다. 그 분은 우리 영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영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신다. 물론 우리의 영은 내부로부터의 지적 작용에 영향을 준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KJV) Joh 16:13) Howbeit when he, the Spirit of truth, is come, he will guide you into all truth: for he shall not speak of himself; but whatsoever he shall hear, {that} shall he speak: and he will shew you things to come.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Kenneth E. Hagin 목사의 체험>
*내게 일어났던 일들 중 가장 엄청난 일은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그 곳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성령께서 우리 영을 움직이시고, 우리는 양심의 가책(conviction)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응답하고 싶어하는 충동을 느낀다. 그 분이 우리 영에게 말씀하실 때에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발생하고, 우리는 성령님과 함께 알게 된다.
*내가 처음으로 내부 음성 듣는 것을 배운 것은, 병상에 누워있을 때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스스로 터득해야만 했다. 만일 그 전에 듣기만 했다면 16개월 동안 꼿꼿이 누워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듣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이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열어 주려 했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게 하려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생각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기도하고 축복 받았음을 느끼곤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를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할 때에 그들의 믿음을 자신들의 느낌에 둠으로써 속아온 것이다.
*나는 내가 나았는지 알아보려고 심장 박동을 살펴보았다. 내가 걸을 수 있는지 내 빈약하고 야윈 다리를 바라보곤 했다. 더 나아진 게 없음을 보고는 주님께 울부짖곤 했다. “왜?”
*드디어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말씀을 듣게 하시는 때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은 말씀에 따라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 분은 성경의 저자이시다.->(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성령께서 내 마음에 그 구절의 마지막 부분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에 착목하고 그리고 사실인 것처럼 행동하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어떻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느냐?”고 의문이 생길지 모른다. 자연계의 어떤 음성도 듣지 않았다. 내 육체의 귀로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나는 내면으로부터 들었다. 나는 그 분께서 내 영에 잊을 수 없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사람이 믿는 것은 심령(heart), 즉 영(spirit)을 통해서 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것은 속 사람을 통해서이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mind) 속에는 온갖 종류의 의심들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신은 당신의 심령(heart)으로 믿는 것이다. 나도 내 생각 속에 온갖 종류의 의심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에 결코 방해 받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당신 역시 방해 받지 않을 것이다. 내 안의 음성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의 약속을 굳게 잡았을 때, 그리고 상반되는 외적인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치유되었음을 이미 완수된 사실로 주장할 때, 하나님께서는 의사의 사형선고에서 나를 구원하셨다.
*만일 우리가 그 분께 더 민감하게 되는 것을 배운다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으며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하룻밤 만에 배우지 못할 것이고, 또한 그렇지 못했다고 실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루 학교에 가고서는 이제 다 배웠노라고 하는 것과 똑 같기 때문이다. 계속 다니면서 계속 배워야 한다. 영적인 일들도 같은 방식이다. 과정 중에 실수하지 않고 배울 수는 없다. 처음으로 운전하다가 보도 위로 타고 올라갔다고 해서 운전을 그만 두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운전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성령 안에서의 발걸음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KJV) (Jam 4:8) Draw nigh to God, and he will draw nigh to you. Cleanse {your} hands, {ye} sinners; and purify {your} hearts, {ye} double minded.
*나(저자 Hagin 목사)를 성령 세례로 인도한 것도 같은 내면의 음성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런 경험에 대한 설교를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잘못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고는 귀를 닫았다. 마침내 성령께서 동일한 내면의 음성으로 내 영에게 “너는 왜 성경이 말하는 것을 보지 않느냐?”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 분은 그 주제에 대한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셨고, 그 때 나는 받아들였다. 나는 성령께서 내 영에 주신 빛 가운데로 걸었고 성령 세례를 받았다.
*(잠 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KJV) (Pro 20:27) The spirit of man {is} the candle of the Lord, searching all the inward parts of the belly.->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안내하시고 지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영을 이용하신다는 말이다. 그 분은 내면의 증거(inward witness)를 통해 우리 영에게 말씀하신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KJV) (Rom 8:14) For as many as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they are the sons of God.
*우리의 ‘영’ 역시 자신의 음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conscience), 인도(guidance), 직관(intuition)이라 부른다. 세상에서는 예감(hunch)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다. 구원 받았건 안받았건, 그는 여전히 영적인 존재이고, 그 영 안의 일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내면의 음성은 우리 생각에 길잡이 역할을 하려고 한다.
*이 내면의 음성을 따랐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마음의 고통들이 정말로 많이 있다. 만약 우리가 이 내부의 증거를 따랐다면, 결코 투자해서 돈을 잃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이 내부의 음성을 들었더라면, 어떤 거래나 사업상의 협력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훌륭한 젊은이들이 잘못된 무리에 속해서 잘못된 친구를 고르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만약 하나님의 영에 귀를 기울였다면 저지르지 않았을 실수들이 많이 있다.
<Kenneth E. Hagin의 간증>
*나는 몇 년 전 교회의 부흥을 위한 어떤 목사의 초청을 받아들인 적이 있다. 내게는 그 집회에 대해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떤 특별한 인도도 없었다. 나는 그냥 가도 되겠다고 짐작했다. 부흥 집회의 계획에 따라 그 교회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저녁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 중에 이 다음 번 교회에 가지 말아야겠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분 이상의 것이었다. 차츰 없어지려니 하고는 무시하려고 했다. 그리고 성령으로부터 나왔을 때, 그 느낌은 차츰 없어졌다.
다음날 다시 기도하는 중에, 이 내면의 음성이 다시 그 교회에 가지 말라고 강하게 말렸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그 교회에 겠다고 목사님과 약속을 했던 것이다. 이미 약속을 했고 광고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가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것은 내 계획상의 유일한 집회였고, “지금 내 앞에 열려 있는 문이 이것 하나 뿐이므로 그냥 계속할 뿐이야”라고 생각했다. 내가 기도 처소에서 일어났을 때, 그 느낌은 또 다시 내게서 떠났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날 기도 중에, 성령께서 다시 그 교회에 가지 말라고 말리셨지만 난 다시 무시했다. 내가 그 교회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목사님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나는 몇 가지 이유에서 그 집회에 대해 유감스러워 했다. 그러나 내가 단지 며칠만 있다가 떠날 것이라는 의문들이 생기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목사님에게 계획대로 일주일 동안 설교하겠다고 말했다.
마을에 쾌적한 모텔이 몇 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목사님 자신은 매우 좋은 집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를 전도자 숙소로 데려갔는데, 거기는 그의 집 뒤의 닭장과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 그는 “이번 집회에서 모금하려는 헌금이 약간 있는데, 만약 남게 된다면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에 당신에게 25불에서 50불 정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헌금을 위해 집회를 계획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의 전도 팀을 데리고, 1200마일 이나 여행하여 그 곳에 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여행 경비 모두와 나 자신의 경비를 지불해야 했다. 나는 나와 그들의 식사와 쾌적한 모텔의 숙박료를 지불했고, 그 주의 마지막에 나는 40불을 받았다. 나는 그 마을을 떠나 다음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은행에서 300불을 빌려야 했다.
말할 필요 없이 내부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은 모험의 대가는 값비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좋은 교훈이 되었다. 만약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영이 생각을 지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말씀에 의해 걷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과 속 사람이 우리를 제어하도록 하는 것이다.
3개월 후에, 나는 집회를 열었고, 그것은 주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재정상태는 매우 좋았고, 청구서들을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그 집회 이후 즉시 몇몇 부흥집회에 초대되었지만, 나는 주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곳이 어디인지 증거를 얻지 못했다. 나는 음성을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어느 초대에 응해야 할지 내 속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진행되었던 집회의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그런 짧은 기간의 예고로는 또 다른 집회를 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송도 만들어야 하고 지방 신문에 실을 광고 등등…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자, 뭔가 해야겠어요. 나에게 그 도시에서 집회를 열어달라고 여러 번 초청했던 아무게 형제에게 전화를 해야겠어요.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오늘 밤에 전화하면 그가 내일 신문에 광고를 실을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다음 월요일 밤에 집회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른 방으로 가서 그에게 전화를 하려고 수화기를 들었다. 그 때 내 안의 음성(증거는 아니었다)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고 나는 펄쩍 뛰었다. 음성은 “하지마, 하지마”라고 했다. 나는 수화기를 들긴 했지만 다이얼은 아직 돌리지 않았다. 나는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고 물었다. “주님, 지금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저는 6월까지 준비된 집회가 없습니다. 게다가 갚아야 할 채무도 있고요. 제가 무엇을 할까요?” 이번에는 전과 같이 아무런 음성도 들을 수 없었지만 나의 안에서 내적 존재(inner being)로부터 “그냥 기다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음을 알았고 그래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물었다. “뭐라고 그래요?” “전화 안 했어요” 내가 대답했다.
다음 날 저녁 우리는 다음 부흥집회에 대한 계획을 토의했다. “자, 뭔가를 해야만 해요. 충분히 오래 기다렸어요. 뭔가를 해야만 해요. 왜냐하면 지불해야 할 청구서가 있어요.” 신문광고를 내야 하는 마지막 시한이었던 어젯밤에 고려했던 그 집회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전날이라도 미리 알려주기만 하면 어느 때건 가능한 시간에 교회로 와주기를 요청했던 약 200마일 떨어진 곳의 어떤 목사님을 생각했다. 나는 일어나 전화하러 갔다.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려 하는데, 또 내 안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마.” 나는 따졌다. “하지만 주님, 저는 뭘 해야 합니까? 저도 살아야 합니다. 내야 할 집세도 있고 애기들도 키워야 하고 지불해야 할 청구서도 있고요. 그리고 이번 주일 저녁 예배 후로는 들어올 수입이 전혀 없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제가 가길 원하는 곳이 있고 제가 하길 원하는 일이 있다. 그 분의 대답은 단지 “기다려라”는 것이었다. 성령의 인도를 바라며 그 분이 하시는 일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분께서 말하지 않는 것도 의지한다. 정말로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분의 약속을 의지하는지, 그리고 그 분께 완전히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시기인 것이다.
성령께서는 내가 있던 바로 그 곳에 머물라고 감동을 주시는 듯 보였고, 내게 어떤 좋은 것을 준비하셨으며, 내가 만약 떠난다면 그것을 잃을 것처럼 보였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말할 수 없다. 그저 다음날 아침 목사님이 내게 한 주 더 머물 수 있겠느냐고 물어볼 것이라는 것을 내 안에서부터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하면 집회를 4주 동안 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내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물었다. “그 분이 뭐래요?” 나는 “전화를 걸지 않았어요.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라고 말했고 아내는 이해했다. 다음날 아침 목사님이 말했다. “저기…음…제가 좀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요.” 그는 주저하면서 약간 우물거렸다. 나는 “저는 무슨 얘긴지 알고 있지요. 대답은 ‘예’입니다”라고 말했다. “머물 수 있겠습니까?” 그가 물었다. “예, 한 주 더 있겠습니다.” 그 넷째 주 집회야말로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교회가 매일 가득 찼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 받았으며 신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 주가 거의 끝날 무렵 어느 오후에 한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해긴 목사님, 저ㅡㄹ 기억 못하실 거예요” 하며 자기 이름을 말했다. “저는 목사님 집회에서 성령 세례를 받았어요. 주님께서 당신께 1000달러를 드리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바로 내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것이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채로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인데,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걷기를 원하신다. 믿음은 심령(heart)의 것이다. 우리의 영은 하룻밤 새에 이런 믿음의 길을 걷도록 훈련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가면서 여러 번 실수할 것이고 하나님을 놓칠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을 계속 찾을 때, 내면의 음성에 인도되도록 우리 영을 훈련시킬 수 있다.
제6장 질문과 대답
*인간의 세 가지 차원에 대한 최근 세미나에서 나는 한 시간을 내어 참석한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데 할애하였다.
1)질문: 사람의 영의 모양을 어떻게 묘사하겠습니까? 사람의 몸에 비교해 볼 때 어떻습니까?
답: 우리는 영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꼭 잴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특별한 연관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증거는 사람의 영적인 몸(spiritual body)은 그 사람의 자연 상태의 몸(natural body)과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역>
*(고후12:2-4) 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NIV>
(2 Cor 12:2-4) 2. I know a man in Christ who fourteen years ago was caught up to the third heaven. Whether it was in the body or out of the body I do not know--God knows. 3.And I know that this man--whether in the body or apart from the body I do not know, but God knows—4. was caught up to paradise. He heard inexpressible things, things that man is not permitted to tell.
*바울은 여기서 자기 자신의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것이 바울이 돌에 맞아 죽었을 때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그러나 그는 일어나 걸어서 나갔습니다. 이 체험이 이 때 일어났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우리는 언제 이 일이 일어났는지 다른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상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영과 몸의 모양을 비교해보기 원한다면 바울이 영의 상태에 있을 때의 모양은 그의 자연 상태의 모양과 비슷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줄어 들어서 난쟁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랬다면 자신도 알아볼 수 없었겠지요. 또한 영의 세계에서 키가 10피트 이상의 거인이 되지도 않았는데 그랬다면 역시 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영의 모양도 몸의 모양과 거의 똑 같았다고 제게는 여겨집니다.
*눅16:19-31에서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는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졌습니다. 부자는 죽어서 장사되었을 때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음부(hades) 혹은 지옥(hell)은 몸을 떠난 영들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 곳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 (그들은 구원에 대해서는 약속어음을 받아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존하신다는 의미입니다)은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아버지입니다. 그 부자가 나사로를 보았을 때 그는 나사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비록 영의 세계에서지만 나사로는 이 세상에 있을 때의 모습처럼 보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 부자는 나사로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가 나사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영의 세계에서도 그는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몸(physical body) 뿐만 아니라 영의 몸(spirit body)도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천사들은 영이지만 그들은 어떤 형태나 영의 몸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영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이 사실을 해석하듯이 하나님이 단지 영향력이나 우리가 느낄 수 없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양(shape)이나 어떤 형태(form)의 영의 몸(spirit body)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은 모세가 시내산 위에 있을 때 하나님께 얼굴을 마주하고(face to face) 말을 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출33:20)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보여질 수 있었던 얼굴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세에게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가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33:22-23)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때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습니다. 만일 그 제자들이 어떤 이상한 형태의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았더라면 그들은 선지자들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눅9:1-9) 1: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3: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4: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9: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만일 모세가 10피트 정도 컸더라면 제자들은 모세인줄 몰랐을 것입니다. 모세는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여졌을 것입니다. 영의 크기가 얼마나 되느냐의 문제는 뇌의 크기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뇌의 크기가 그 사람의 정신적인 능력을 결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거의 비슷한 크기의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더 머리가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의 뇌라는 육체적인 기관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그 뇌 속에 좀 더 많은 것을 집어 넣은 것뿐입니다.
*영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영들은 거듭났습니다. 영이 진짜 당신입니다. 성령님은 당신의 영 안에 살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당신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은 당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배우고 발전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2)질문: 거듭나기 전에 사람에게 영이 있습니까? 영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까(renewed), 아니면 새롭게 만들어 지는 것입니까(re-created)? 성경은 우리가 새로운 창조 즉 새 피조물(a new creation)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창조된 것(a re-created)이 맞습니까?
답: 새로운 창조(a new creation)가 맞습니다만 아직도 재창조(a re-creation)인 것은 그 사람은 과거에 아니었던 무엇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창세기를 봅시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땅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몸이 아니라 사람의 영이 그를 지배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와 교제하는 기쁨을 위해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자, 그의 영(his spirit nature)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새로운 탄생(the new birth)의 거꾸로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죄를 지었을 때 그는 영적 존재로 존재하는 것을 중단한 것이 아니고, 그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고 마귀의 본성이 그의 영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영적 마귀의 자식(a spiritual child of the devil)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 이라”(요8:44) *이 마귀의 본성이 인류에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첫 아들이 둘째 아들을 죽이고 그 사실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거듭나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이 성경 말씀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계속 읽어봅시다. -> (롬5:13-14) “13: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이 말씀은 사망이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다스렸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스리다(reign)”란 말의 그리스어는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망은 왕으로서 다스렸습니다. 사람을 지배하였습니다 (had dominion over man). 그러나 이 죽음이 그쳤지만 사람들은 계속 육체적으로 죽고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다스렸던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고 죄에 대한 보상 (atonement)이 가능하도록 레위 제사장제도를 세우셨을 때 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게 하는 죄가 갚아졌기 때문에 영적 죽음은 그 사람들을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계속 죽었습니다.
*롬5:12-14은 영적 죽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거듭나야만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영적으로는 마귀의 자식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아담의 죄 즉, 사람의 죄에 대한 범칙금을 지불하고 사람에게 새 생명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영생을 제공하십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새로운 태어남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영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새 사람 즉,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nature)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ure)이 됩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옛 것들이 몸 밖에서는 지나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늘 가지고 있던 똑 같은 그 몸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속으로는 새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 새 사람이 당신을 지배하도록 허락해야만 합니다.
3)질문: 내 영으로 무엇을 알 때,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까?
답: 지식이 당신 자신의 영이란 사실은 반드시 틀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무엇인가 일어날 것을 그들의 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게 대하여서도 예측을 하고 나도 그들이 말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점치는 것이나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영(his own human spirit)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사람은 그의 영으로 어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들의 영은 그들의 마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 자신의 영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으로 하여금 무엇을 보여주고 그에게 무엇을 말하도록 허락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