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스크랩] 기도실에서 만난 하나님 -데이브 로버슨-

하늘감동 2011. 1. 11. 14:17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도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는 것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데 나의 시간을 들이면서 기도실에서 기도하던 첫날 그 시점에서 보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미래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성령으로 기도하는 동안에도 나의 마음은 질문과 의심과 불안으로 소용돌이 쳤습니다. 

‘사람이 단지 그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하나님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을까?’

   그 기도실에서 보낸 시간은 정말 길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한시간쯤 방언 기도를 한 것처럼 생각이 되면 시계를 봅니다. “오, 아니야. 5분밖에 안 지나갔네!” 그러면 나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나는 전에 내가 제재소의 통나무 야적장으로 출근하던 것과 똑같이 나의 기도실로 출근 보고를 했습니다. 제재소의 호루라기 소리가 하루의 일과를 알릴 때마다 나는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시간을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 했지만 어쨌든 나는 지속했습니다. 나는 카페트와 벽지의 모든 무늬와 색깔이 퇴색된 곳도 모두 기억하였습니다. 나는 오늘날까지도 그 기도실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일 분 내에 자세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나는 마치 감옥에 있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기도실에서도 나는 큰 나무가 톱에 잘려져 나갈 때 나는 나무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 친구가 점심 도시락통에다가 커피를 가득 채우고 김이 나는 것을 맛보는 모습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특별히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왜 이 짓을 하려고 직장을 그만 두었던가? 소위 이 초자연적인 언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나의 영의 사람이 일어나서 나의 흔들리는 감정에게 말씀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부지런히 찾는 사람을 보상해 주시는 분이다.”(히11:6) 그러자 내 마음에 내가 보기에는 끝도 없는 나 자신의 실패한 모습들이 순간적으로 지나 갔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내게 가져다준 감정 때문에 나는 목이 메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이 말씀이 진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차츰 평안이 나의 고통스런 마음을 잠잠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직장을 그만 두고 매일 여덟 시간씩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절망적인 처지에서 내가 결단한 나의 결심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더 원했지만 어떻게 그 답을 찾아내는지는 확실히 몰랐던 것입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기도의 언어는 나를 함양하기 위해서(for my edfication) 비밀을 기도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지만 이 진리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일 방언 기도가 나를 함양할 수 있다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비밀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방언 기도를 하겠다고 작정했습니다.


환영하며 맞은 결정적인 사건


이렇게 해서 나는 기나긴 시간을 지속해서 기도했습니다. 한 두 달쯤 지루한 시간이 지났을 때 은사주의 성경 공부 모임에서 내가 만났던 한 여자가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교회에 와서 내 기도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로버슨 형제” 그녀가 불렀습니다. “형제가 오랫동안 수많은 시간 기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부인”
“어떤 차이를 느낄 수 있는지 내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알고 싶은데요.”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까? 무슨 차이 말이죠?”
“아닙니다. 나는 단지 어떤 차이를 느꼈는지 형제가 내게 말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나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나의 혀는 지치고 나의 목은 마르고 나의 턱은 피곤합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미안해요, 난 이제 가봐야겠네요”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또 지루한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나는 그 기도실에 쳐 박혀서 세 달 동안을 버틴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여자가 다시 와서 기도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로버슨 형제, 내가 나가는 교회 알고 있지 않습니까?”
“네, 부인,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방언을 말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네,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여러 주에서 모인 평신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행하신 좋은 일들에 관하여 간증하는 주말 집회를 가질 계획입니다. 한 번 와보겠습니까?”
“나는 정말 가고 싶어요.” 나는 기도실을 벗어날 핑계라면 무엇이든지 만들었을 것이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거기서 만납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서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이 아침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 그 집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나는 집회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해서 내 곁에 앉아 있던 나이 든 여자가 목발을 짚고 걸어 왔으며 누군가가 그것을 받아서 구석에 세워두었던 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그 여자가 걸을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거기 앉아서 강사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아주 흥분해 있었습니다. 나는 기도실에 갇혀서 3개월을 보냈으니까요. 이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실제로 살아 있는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까요! 나는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마침내 한 남자가 큰 덩어리의 노트 더미를 들고서 말을 하려고 일어섰습니다. (만일 그 노트가 두루마리였다면 펼쳐 놓으면 집 뒤까지 이를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령으로 충만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정교한 언어와 단조롭고 곧은 목소리로 그는 ‘예수, 위대한 천국의 중매자’, ‘인류의 고난의 바다’, ‘전능하신 하나님’ 등에 관해 강의했습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정말 끔찍하구나! 차라리 기도실에 돌아가 있는 게 더 낫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지도 않는 데 나타나시다
 
   내 마음은 집회와 잡념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나는 컵을 흔들면서 커피 잔 속의 동그란 물결이 잔에 부딪치는 것을 보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순전히 지루함 때문에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그 나이든 여자를 쳐다보았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가 어떤 기름부음을 느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그녀를 보는 순간 갑자기 나는 그녀와 나 사이에 어떤 사람의 엉덩이와 다리가 붙어 있는 부분에 대한 엑스레이 사진과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검은 물질이 다리뼈가 연결되어 있는 둥근 뼈 부분을 둘러싸고 다리 쪽으로 3-4 인치 가량 퍼져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움에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눈을 깜빡거려 보았지만 엑스레이 사진은 내 눈앞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보고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엑스레이를 보면서 나는 거기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이것이 무엇이지요? 제가 이 여자를 위해 기도를 하기 원하십니까? 도대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절대 침묵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후에 어떤 예배 시간에 이 간증을 나누고 있을 때 주님께서 내 영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그때 내가 네게 왜 아무 말이 없었는지 아니? 네가 그 예배를 방해하도록 놔둔 이유를 아니? 나도 그 사람이 가르치는 것을 듣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나도 듣고 있지 않았는데 왜 너에게 듣도록 했겠느냐?” 이 말씀도 그 자체가 하나의 계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나이든 여자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하기를 “부인, 엉덩이에 문제가 있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더니 경계하는 눈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갑자기 ‘관절염’이란 단어가 내 영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나는 무심결에 “오른쪽 엉덩이에 관절염이군요!”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나를 한참 뜯어 보고나서는 “젊은이, 그게 의사가 내게 한 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아니, 뭐라구요!”
“아, 네, 하나님께서 당신을 고쳐주시기 원하십니다. 부인, 내가 기도를 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나이든 여자는 나를 계속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방언하는 것을 믿지 않는 그런 교회란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이 여자에게 기도하겠다는 나의 말은 하루 중 어느 때에 기도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기억하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내가 기도하겠다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장의자 위를 건너다니면서 의자를 들썩이며 큰 소리를 지르는 오순절 교인이었습니다! 나는 큰 소리로 소리치면 칠수록 더 큰 힘이 발생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나이든 여자는 “네, 기도해도 좋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그녀가 말을 하자마자 나는 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서 그녀의 양쪽 발목을 잡고 내 쪽으로 잡아 당겼습니다. (그 동안도 그 황금의 혀를 가진 연설가는 아직도 ‘연설중’ 이었습니다!) 그 다음 나는 그녀의 발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오, 이런! 한 다리가 다른 쪽 다리보다 15센티미터는 더 짧다니!’
‘오, 이런! 이건 정말 끔찍한데! 이 여자에게 필요한 이런 기적을 난 아직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쳐다보는 것만도 겁이 나서 눈을 감고 소리쳤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 그리고 나서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힘있게 가장 어려운 극단적인 경건주의 유형의 기도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그 장면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내가 그 강한 이름을 처음 언급하는 순간 그녀의 짧은 다리가 움직이더니 갑자기 자라서 다른 다리와 똑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완전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아직도 눈을 감은 채로 나의 가장 강력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열정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그녀의 발목을 놓게 할 때까지 그녀와 씨름하느라고 그녀를 의자에서 마루 위로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그녀의 다리를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눈을 뜨고 기적을 보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할 때쯤 설교 중이던 그 사람은 부목사를 잡고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가서 저 친구가 하는 짓을 중단시키게.” (나는 그 사람을 탓하지 않습니다. 나는 큰 목소리로 기도하므로 그의 집회를 망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부목사가 소요가 일어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도착하는 순간 그 기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가 나를 막 붙잡으려는 순간 그 여자의 짧은 다리가 갑자기 15센티미터나 자라나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소요를 중단 시키기는 커녕 놀라움에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기적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방언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기적을 보았을 때 그는 말을 잃었던 것입니다.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인내의열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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