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3/6 주일 3부 설교 중에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011. 3. 6. 주일 3부 설교 서론 부분-
오늘 본문을 읽는데 성령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5-20)
이 열매는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갈라디아서 5:22-23에 나오는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는 열매를 통해서만 그가 참 하나님의 사람인지, 거짓된 사람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본문을 읽는데 성령께서 제 심령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열매를 맺는다. 말씀, 계시, 나타나는 기적만 가지고는 그를 알 수 없다. 그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오직 열매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이 열매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기 원하시기 때문에 저는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열매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드시는 열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과일들을 즐기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맺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런 열매를 드시고,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제게 분명하게 알려주신 것은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열매일 뿐 아니라, 그것은 사람들을 위한 열매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 계시, 은사가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성도들이 기쁨을 누릴 수 없다. 무언가 조정을 당하고 속박을 당하고 무언가 마음속에 괴로움, 허전함이 있고, 공허함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열매를 맺게 될 때 그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는 것이다. 그 설교, 예언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는 것이다. 치유사역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는 것이다. 이번 집회 때는 열매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가짜고, 나의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속이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집회에는 열매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 마음속에 허전함과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성도들이 단순히 말씀, 예언, 기적을 먹는 것이 아니다. 강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사심 없는 진정한 사랑, 사랑이 있는 겉모습이 아니라 그 영에서 올라오는 사심 없는 진정한 사랑, 강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순결한 주님의 기쁨, 깊고 그윽한 평화, 오래 참음, 자비, 선함, 신실함, -과장하지 않고 충성되고, 뭔가가 마음에 걸리고, 미심쩍은 것이 아니라 믿음직스러운 것- 강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절제 -그가 자기를 높이지 않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는 것. 성도들이 그것을 먹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 받으실 뿐 아니라 집회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이 그 성령의 열매를 나눠먹는 것이다. 그러면서 은혜를 받는 것이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열매를 하나님과 더불어 먹으면서, 그래서 교회는 자꾸 잔치 집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교회 잔치 집에 말씀의 떡과 성령의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다. 잔치 집에 과일이 있는 것처럼 교회가 영적인 잔치를 베풀 때, 주일 낮 예배도, 집회도 마찬가지고 거기는 찬양단이나 사회자나 설교자나 사역하는 사람들이 맺는 열매가 있는 것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열매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만 흠향하실 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 열매를 실제로 영적으로 먹는 것이다. 단순히 말씀, 계시, 기적을 먹는 것이 아니고 그 열매를 먹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 느껴지고 우리 속에 사랑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기쁨,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래 참고 온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것들을 생각하고 절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욕심, 이기적인 것, 정욕, 탐심, 명예욕 같은 것을 제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이런 일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집회 때는 그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종이 아니다. 그는 속이는 자, 거짓 사도, 거짓 선지자이다. 참된 선지자, 참된 사도가 서는 곳에는 반드시 그가 맺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성도들이 그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된다. 그 결과로써 사랑이라는 열매를 먹으면 주님을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서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희락이라는 열매를 먹으면 주님의 거룩한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설교 들으면서, 예배 참석하면서 우리 영에 깃들고, 화평이라는 열매를 먹으면 주님의 강 같은 평화, 그윽한 평화가 우리 마음속에 깃들게 된다. 이것이 영들을 분별할 수 있는 비결이다. 영들을 분별할 수 있는 비결이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했을 때 이것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만 그 열매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 그 열매를 먹고 즐기는 것이 아니다. 예배나 집회를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는 것이다. 그 열매를 느끼고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영분별이라고 말해라.”
이것이 본문을 읽을 때 제가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화고, 하나는 불안함과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 평화, 기쁨,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또 이사야가 느꼈던 것처럼 하나님은 거룩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그분 앞에 합당하지 않고 교만한지, 얼마나 온유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사랑이 부족한지, 우리가 얼마나 그분에 대해서 경외심이 부족한지를 느끼게 되어서 불안해집니다. 그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두려워집니다. 제가 강단에 올라오기 전에 성령의 강력한 기름부음과 자유와 기쁨과 평화가 제게 임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올라오니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 교만하고 온유하지 못한가?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 거룩하지 못하고, 얼마나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한가? 내가 이 정도의 임재에도 불안을 느낀다면 정말 주님께서 내게 나타나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주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앞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부흥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부흥이 올 때 사람들이 경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흥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사람들이 통곡하며 거꾸러져서 밤새도록 울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님의 새로운 임재를 느끼면서 제 자신이 정말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내 자신이 정말 부적격하고 준비가 많이 되지 않았구나.’ 저는 주님의 임재가 평화, 기쁨만 가져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 제게 예수님의 심장을 주시옵소서. 주님, 저의 겸손과 온유가 너무 천박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경건이 너무 천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제게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임재를 강력하게 느끼지만 불안감을 느낍니다.” 주님의 임재는 반드시 겸손과 온유와 거룩과 함께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는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함께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하실 때 줄을 쳐놓고 모세 외에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돌격해서 그들이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합당한 사람으로, 정말 부흥이 오면 부흥에 합당한 사람으로 우리가 준비되어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제 자신이 부족하고, 부적격하다고 느낍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나는 얼마나 부족한 자인가? 그리고 주님 앞에 깊은 겸손, 사랑, 온유, 거룩,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정말 깊이 구해야 하겠구나. 진짜로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내게 올 때 내가 거기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