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설교자 프란체스코
김기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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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감정적으로 청중과 교감을 잘할 뿐더러 그 감정상태의 시작과 높낮이와 절정을 잘 이끌어갈 줄 아는 설교자는 사람들을 움직인다. 설교는 원고 내용의 전달이 다인 줄로 알면 대단히 부족한 것이다. 어느 설교자이건 청중과의 감정적인 교감을 늘 연구해야 한다. 보통 사람이 하루에 말하는 시간은 합쳐봐야 10분에서 11분 정도라고 한다. 한 문장 말하는 데 2초반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언어 외에도 외모, 복장, 몸짓, 음성, 분위기 등에 의사소통을 더 의존한다. 귀만이 아니라 오감, 무의식, 직관 등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어보다는 비언어적 요소들을 더 믿는 경향이 있다. 들뜬 음성과 불안한 얼굴로 “여러분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확실하게 돌보십니다” 한다면 어떨까? 분명히 말한 내용은 진리이지만 사람들은 말한 사람의 음성과 표정을 믿어 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설교자는 비언어적인 요소를 개발시켜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청중의 감정이 열리도록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이 열리게 만들면 무슨 말이든 경청할 것이다. 물론 그런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복음 메시지를 심어야 한다. 자기 욕심만 채우는 설교를 한다면 아무리 감동을 주어도 악한 설교자가 될 것이다. 프란체스코는 이 면에서 탁월한 설교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그가 숲에 들어가서 설교 연습을 할 때는 자연을 느끼면서 그리하였다. 사람들 앞에서 할 때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함께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했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극단적이라 할 만큼 금욕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절대로 금욕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의 설교는 타오르는 불처럼 열정과 감성으로 가득 찼다. 그는 사랑과 동정심과 인간적인 면을 표현했다. 그래서 청중은 마음으로부터 그와 만났다. 당시 이태리에서는 부자들이 힘을 쓰며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자들 간에는 세력 다툼이 심화되어 각각의 이권에 따라서 갈라져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늘 서로 증오심과 이기심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기독교 공동체의 영광과 형제애를 강조했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평화’였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그의 노래 내용대로이다. 프란체스코의 감성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 그가 새들에게 한 설교이다. 그가 한 마을에서 설교할 때 제비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그는 설교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하라고 명했다. 그러자 제비들이 복종한다. 조용한 가운데 그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가 다른 마을로 가다가 길에서 조금 떨어진 숲을 보았다.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새들이 앉아 있었다. 그는 함께 가던 동료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새들에게 다가간다. 새들은 도망하지 않았다. 그가 설교를 시작하자 나무에서 날아와 땅에 내려왔다. 그의 설교가 마쳐지고 축복이 내려질 때까지 새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걸어다니면서 새들 사이를 지나고 심지어는 그의 옷이 스쳐도 새들은 그대로 있었다. 얼마나 자연스러웠고 얼마나 사랑의 확신으로 충만했던가. 이제 그가 새들에게 한 짧은 설교를 들어보자. 나의 형제 자매인 새들이여, 그대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우러러 찬양해야 합니다. 어느 때건 어디에 있든지 그렇게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대들이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또한 두 겹 세 겹의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주셨습니다. 더욱이 그대들 종족이 멸절되지 않게 하시려고 그대들의 조상을 노아의 방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프란체스코가 새들에게 설교를 마치자 모든 새들이 일제히 날개를 펴고 머리를 숙여 절했다. 그리고 일제히 노래를 하며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했다. 하긴 누구든 이렇게 짧고 아름답게 설교하면 열심히 듣고 감사할 것이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진실인지 모르지만 그의 깨끗한 마음과 탁월한 감정이입을 설명하고 있다.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풍부한 감정이입인가. 새들도 그것을 느낀다. 우리가 긴장하면 청중도 그것을 느낀다. 그래서 분위기는 긴장된다. 프란체스코를 보면서 설교자들은 비언어적인 요소를 충분히 훈련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경우에 청중의 감정에는 상관이 없이 자기 입장에서 자기 말투로 자기 할 말만 하고 들어가는 설교자가 너무도 많다. 설교자는 지금 청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거기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전할 내용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말을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아니다. 지금 청중과 내가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설교해야 한다. 그래야 그 좋은 내용이 그들에게 물이 흘러 들어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때로는 밀물처럼 때로는 폭포수처럼 밀려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