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주님..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세요
오늘 '회복' 영화를 보고 왔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너무 무관심했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죄송했어요
저도 모르게 유대인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들도 깨닫게 되었구요
독일에 있으면서 유대인수용소에도 가봤지만
안됐다 너무 끔찍하다..나치들 너무한다 그런 인간적인 생각 밖에 못했었어요
유대인들의 아픔에 대해서 너무 무덤덤했던 것 같아요
메시아닉 쥬도 만나봤었는데..신기하다 유대인인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있네
그렇게만 생각했지 그들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예수님을 믿는지 상상조차 못했어요
한번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것도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나서 같이 읽고 기도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올려요
주님..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세요
이스라엘과의 로맨스를 잊지 말아주세요
주님..한국도..북한도..기억해주세요
주님, 한국교회와의 로맨스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펌)
북한의 핵문제가 뉴스에 터지게 되었다.
북한의 핵문제는 단순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이것을 정치적인 이슈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모든 정치적 이슈의 이면에는 영적인 이유들이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믿는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세지라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선교사들과 함께 북한 핵문제를 놓고
한국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우리의 기도는 회개의 기도였다.
한국 교회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기도였다.
“다 진멸하시겠습니까? 주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는
에스겔의 강청이 우리의 기도가 되었다.
잠깐 하려던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1시간을 훌쩍 넘어
깊은 밤이 되서야 끝났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한 선교사님의 기도가 내 마음을 때렸다. 한 선교사님이 울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한국교회와의 로맨스가 있지 않으십니까?
그 로맨스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다 진멸하시겠습니까?
그 로맨스를 기억해 주십시오! "
(1) 이 기도에는 비밀이 있다
이 기도가 드려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에 큰 슬픔과 감동이 교차하며 “이건 보통 기도가 아니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기도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기도에 주님의 마음이 녹아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그랬다. 주님의 마음이 돌아섰다.
그리고 기도회가 끝났을 때, 거기 모인 50명 모두는
하나님께서 진노를 멈추시고 한국교회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이 기도의 비밀 - 한국교회와의 로맨스를 잊지 말아달라는
기도가 왜 그렇게 특별하며, 왜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실 수밖에 없었을까?
(2) 이스라엘 기도실
아이홉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기도를 많이 한다.
좀 과도하게 한다. 내게는 이것이 못 마땅했다.
다른 나라들은 별로 기도 안 해주면서 왜 이스라엘만 그렇게 기도하나? 이스라엘이 뭐 그렇게 특별한가? 이런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그런데 아이홉에 도착한 다음날 기도실에서
우연히 만난 한 미국분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는데,
이번에 이스라엘의 비밀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라고 예언 해주었다.
“글쎄 과연 그럴까?”라는 의심 속에 3주를 보냈다.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에스겔서와 씨름하면서 보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훈련 마지막 날 이스라엘에 대한 비밀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한 말 같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나님이 잊을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추억들,
로맨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홉 기도실에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방이 따로 있다.
그렇게 여러 번 기도실을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곳이었다. 관심도 가져보지 않았던 곳이다.
마지막 날 아이홉을 떠나기 전 날 새벽.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방 문 앞에 서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염없이 느껴졌다. 내가 이곳에서 너를 기다렸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갔다. 울면서 들어갔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일종의 수다였다.
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늘어놓으시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이것은 아주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많은 말씀을 쏟아 놓으셨다.
“내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를 때 어땠는지 아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그 충격이란... 넌 모를거다.”“다윗이 이 동산에서 시편을 지어 부를 때 그것이 내 귀에는 정말 아름답게 들렸단다.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지!” “모세가 비록 혈기 왕성했지만, 내 백성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했을 때 그 감동이란!” “엘리야가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그리고 베드로가 나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주님께서 그 땅에서, 그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졌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수많은 로맨스를 쏟아 놓으셨다. 너무나 하고 싶던 이야기를, 마치 10년 만에 처음 사람을 만나 쏟아 놓으시듯이 그렇게 쏟아 놓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로맨스를 하나도, 단 하나도 잊지 않고 계셨다.
그 방에 있던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곳에 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한 민족과 맺었던 언약을, 그 추억과 로맨스를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 그 사랑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걸었던 그 순간들, 하나님과 함께 걸어왔던 지난 6년간의 목회, 20년간의 신앙생활. 그 모든 추억들을 하나님은 하나도 잊지 않고 계셨다! 비록 나는 잊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내가 잊어버린 헌신까지도, 그 작은 사랑의 고백 하나까지도, 하나씩 둘 씩 당신의 가슴 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계셨다!
그 분이 하나님이셨다!
(3) 하나님은 로맨스를 잊지 못하신다.
이 경험을 통해 앞서 이야기했던 기도 - 로맨스를 잊지 말아 달라는 기도의 비밀을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성경을 보니 이것은 아주 특별한 기도였다. 이스라엘의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드렸던 기도였다.
이것은 왕상18장36절에서 엘리야가 400명의 바알선지자 앞에서 민족의 운명을 놓고 겨눌 때 드렸던 기도이기도 했다.
[왕상18:36]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도우소서. 여러분은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더 정확한 곳을 찾아보자. 모세다.
[출32: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출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내려오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 하나님이 백성을 다 진멸하시겠다고 진노하셨다.
이 위기의 순간에 모세가 드렸던 기도가 출32장의 기도다.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들과 맺었던 하나님의 추억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과 이 땅에서 맺었던 로맨스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그 로맨스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하나님, 이 땅에서의 추억이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의 추억이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의 로맨스가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이 땅에서 그의 독자 이삭을 바칠 때.. 주님, 당신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울렸던 그 로맨스... 이 땅에서 있지 않았습니까?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당신과 씨름하며 그 땅에 하나님 백성을 기초를 놓았던 그 추억, 그 로맨스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기억해 주십시오. 잊지 말아 주십시오.” 엘리야의 기도도 마찬가지였다. “모세와 함께 광야를 걸었던 추억들, 다윗이 당신을 노래했던 그 언덕, 골리앗 앞에 믿음으로 달려 나가던 잊을 수 없던 장면. 주님 기억하시지요?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주님 잊지 말아 주십시오. 지금은 비록 이 백성이 타락하여 음란하게 바알을 섬기고 있지만, 주님, 그래도 이 땅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이삭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있는 땅 아닙니까? 그 로맨스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이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로맨스를 remind하는 기도였다.
(4) 이것이 선지자적인 기도이다.
이 기도에 하나님이 움직이셨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셨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사람, 그 분의 사랑은 일상적인 사랑을 넘어 열병에 걸린 로맨티스트라는 것을 깊이 아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었던 일종의 “협박기도”였다. 이 기도 앞에서 하나님은 결코 No라고 말하실 수 없는, 가장 확실한 비장의 카드였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의 기도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꿰뚫는 기도, 그 분의 사랑과 은혜 앞에 호소할 수 있는 기도. 그 분의 눈과 마음에 깊은 눈물 자국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도. 이것이 선지자적인 기도이다.
(5) 한국교회와의 로맨스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요?” 한국에 돌아와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계속 claim했다. “주님, 한국교회와의 로맨스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 추억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한국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습니까? 한국교회와의 잊을 수 없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나님 마음속에 새겨진 로맨스가 있지 않습니까?” 몇 날 몇 일을 주님 앞에 나아가 탄원하며 기도했다.
“주님, 주님의 교회 위해 소도 팔고, 논도 팔고 맨손으로 밭 갈며 섬기던 1907년 성도들의 추억이 있지 않습니까? 맨발로 겨울거리 걸으며 전국 방방곡곡에 하나님을 외치던 그 선배들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녹였던, 하나님의 눈을 적셨던 그 로맨스. 주님, 이 땅에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습니까? 다 진멸하시겠습니까? 심판을 거두어 주십시오.”
내가 아브라함을 기억해서, 내가 다윗을 봐서 멸하지 않으시겠다던 주님의 말씀 - 한 사람, 그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데... 다윗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주님, 손양원 목사님과의 로맨스를 기억해 주십시오. 문둥병자를 돌보던 그 손길을 주님... 아들 죽인 원수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양자로 삼았을 때, 주님 이 땅에서 그런 사랑 처음보지 않으셨습니까? 기억해 주십시오. 주기철 목사님과의 로맨스를 기억해 주십시오. 감옥으로 잡혀가는 아들을 향해 순교하지 않으면 내 아들 아니라고 외쳤던 주기철 목사님의 아버지를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 이 땅에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습니까? 다 진멸하시겠습니까? 이들의 피는 다 헛것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양화진에 뿌려진 수많은 선교사들의 피는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다 간 그 분들의 스토리를 기억하시지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땅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식도 땅에 묻고, 아내도 땅에 묻고, 결국은 자신의 생명까지 이 땅에 뿌려야 했던 선교사들의 추억. 주님 잊지 말아주십시오. 하나님, 당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보석 아닙니까? 주님 대천덕 신부님의 기도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아침마다 새벽을 깨웠던 길선주 목사님의 무릎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이 땅의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습니까? 다 진멸하시겠습니까?
주님, 그 무엇보다도 이 땅위에 뿌려진 예수님의 피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 땅의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습니까? 십자가 지시기 전에 이 땅을 놓고 이야기했던 예수님과 하나님의 대화 있지 않습니까? 이 피로 한국 땅에 교회가 설 것이다! 하나님 흥분되지 않으셨습니까? 그 흥분, 그 로맨스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이것이 축복이다
이 땅에 이렇게 많은 claim할 로맨스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은가? 이 땅에 claim할 단 하나의 근거라도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다윗 한 사람 때문에 열조를 멸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소돔과 고모라에도 10명의 의인만 있으면 심판을 거두 시겠다던 주님 아니신가?
그러나 만약에 그 땅에서 이루어진 아무런 로맨스도 없고,
그것을 claim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remind하고 돌이킬 선지자도 없다면, 그것은 그 땅의 저주가 될 것이다.
이것이 선지자의 기도이다. 선지자가 없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선지자가 없다면 추억과 로맨스는 영원한 기억 너머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은혜와 자비를 호소하는 기도이지, 공의에 호소하는 기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7) 후손들은? 나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claim하며 그 이름을 잊지말아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
주님은 한국 교회와의 로맨스를 잊으실 수 없으셨다.
이 기도는 work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우리의 후손들은 누구를 claim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할까? 우리가 우리 선조들을 claim하며 기도했다면, 우리 후손들은 누구를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야 할까?
과연 오늘날은 누가 하나님과 이런 로맨스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우리 후손들이 claim할 수 있는 그 로맨스를... “주님, 주님 앞에서 그 인생을 드렸던 김 아무개와의 로맨스를 기억해 주십시오. 박 아무개가 그 인생을 드리던 순간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 미래의 로맨스를 만들 오늘의 연인은 누구인가?
“주님, 저는요? 제 삶은 어떻습니까? 과연 사람들이 제 삶을 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 claim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삶을 사는 것이 후손들을 위한, 이 땅을 위한 진정한 축복이다. 손양원 목사님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축복이 되듯이 말이다.
(8) 이것이 선교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선교의 본질이기도 하다.
선교는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땅을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과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양화진의 선교사들이 한국 땅을 축복하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하나님의 로맨스였듯이 말이다. 그래서 계시록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뿐 아니라 순교자의 충만한 수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땅에서 뿌려진 순교자의 피, 그 잊을 수 없는 로맨스를 결코 간과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 선교사와 그 땅에서 이루었던 소중한 이야기. 하나님이 그 땅을 축복하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삶, 주님의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이 땅위에서의 추억을 만들어갈 사람은 없는가? 오늘도 주님은 이런 사람들의 사랑을, 그 로맨스를 기억하신다. 그리고 먼 훗날, 아니 영원까지 이곳에서 만들었던 우리와의 그 로맨스를 기억하시고 이 땅을 축복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