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믿음의 여섯 가지 적 (캐네스 해긴)

하늘감동 2012. 2. 4. 00:49

믿음의 여섯 가지 적


나는 사람들이 “마귀와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들은 마귀와 싸우게 되어 있지 않고, 둘째로 예수님이 이미 우리를 위해서 마귀를 패배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용물이셨습니다.

또 나는 사람들이 죄와 싸울 것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죄와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죄를 깨끗케 함에 대해 설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깨끗케 하시는 분입니다.

오직 한 가지 믿는 자가 싸워� 할 싸움은 "믿음의 선한 싸움" 뿐입니다. 이와 같은 싸움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믿음의 ‘적’이나 ‘방해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만일 믿음의 적이 없다면 싸움도 없겠지요).


첫 번째 적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실패함


고후 5장17절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 생활을 방해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실제로는 새 피조물이란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이것이 불신자들이 받은 전부라면 그는 아직도 마귀의 자녀이서서 여전히 지옥에 가야하므로 별로 좋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는 그의 옛 것, 죄의 길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만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용서 받은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간신히 살아가는 교회의 일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허우적거리는 달동네에서, 천국에 가기 위해 애쓰며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본성을 우리 영에 가지고 있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하나님의 상속자들이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공동 상속자 (joint heirs) 입니다.


두 번째 적 :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는데 실패함

나는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약 성경 중 특히 서신서를 읽어 내려가며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그 안에서”(in Whom), “그 안에서”(in Him) 등의 구절들을 기록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그것들을 써 내려가는 것이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그와 같은 표현이 약 140번 정도 나옵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성경 구절을  그것들이 당신의 일부가 될 때까지 읽고 묵상한다면 당신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읽을 때 당신 자신에게 “이게 바로 나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가진 것들이다”라고 말하십시오.

내가 방문했던 한 교회의 목사님이 그가 본 중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인이라고 표현했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류 신학대학원에서 받은 기독교 교육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그 교회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그녀의 시간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부흥 집회가 그곳에서 열리고 있는 동안 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성경 구절들을 외우고 선포하라고 강력히 권했습니다. 한참 후에 이 여인이 내게로 와서 성경 스물다섯 구절을 고백하였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느끼는 것도 달라졌고,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가 항상 가직도 있던 것인데 그 당시 그 빛 가운데 걷기 시작한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그녀는 그녀의 삶에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바른 이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녀의 믿음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녀의 염려하는 습관을 치료했습니다.


세 번째 적 : ‘의’를 이해하는데 실패함


고후5장 21절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요일 1징 7절) 그러므로 새로운 탄생으로 우리는 의로운 새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피조물을 만드시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그 분은 우리를 의로운 새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마치 우리가 전혀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죄의식도, 자책감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몸이 굳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속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의 과거는 존재를 멈추었기 때문에 우리의 죄들은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렘 31장34절).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기억합니까? 어떤 사람은 “그렇지만 저는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죄를 지어 왔는걸요? 제가 어떻게 의로울 수 있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물음의 답은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발견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를 지은 신자가 그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 두 가지 일을 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시고 (2)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는 ‘죄의식’을 느끼며 ‘불의한 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임재로 들어오기에 합당치 않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바른 위치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의함’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의’라는 단어 앞에 접두사 ‘불’이 앞에 있습니다. 그 뜻은 ‘의롭지 못함’입니다. 우리가 ‘불의’로부터 깨끗하여 졌으면 우리는 다시 의로워진 것입니다.


네 번째 적 : 예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를 이해하는데 실패함


요한복음16장 23~24절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가 예수 이름의 능력을 깨달았을 때, 우리가 그 이름이 무엇을 할 것인지 깨닫는 그 때 우리는 사단을 패배시키고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18절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이적들은 초대 교회와 사도들, 목회자들에게만 아니라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따른다고 했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예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예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이길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새 방언을 말할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을 때 그들이 나을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궨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이름은 우리의 것입니다.


다섯 번째 적 : 하나님 말씀 따라 행동하는 것에 실패함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알고 그것이 진리인 것 같이 행동한다면 그것이 우리 삶에 실체가 됩니다.

성경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 3장5절)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는가?”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왜 그들이 병 고침을 받을 수 없었는지 내게 묻곤 합니다. 그들은 “그가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장17절)나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장24절)와 같은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들은 이런 성경 구절들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그런데 당신은 이 성경 구절들이 진리인 것처럼 행동해 보셨나요?”하고 묻습니다.


장로교 목사로서 후에 ‘그리스도인과 선교사 동맹’의 창시자였던 심슨(A. B. Simpson)은 40대의 나이에 심장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으며 몇 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마이애미의 올드오챠드 비치로 휴가를 가서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병 고침에 대해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치유의 복음’이란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 그 여름에 저는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들이 구원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치유 받았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성경을 보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저는 제가 사람을 찾아가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기쁩니다. 주님의 발밑에서 홀로 성경을 펴고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저는 병 고침이 죄 많고 고통 많은 이 세상에 주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일부라는 것과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자를 위해 예수님의 축복된 십자가로 값을 지불하였다는 것에 설득되었습니다.”

심슨은 하나님께 자신의 병 고침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겠다고 진지하게 서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의 치유자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시는 대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치유에 대해 설교하고 기도할 것을 맹세한 것입니다.

이틀 뒤 심슨은 뉴햄프셔의 예배 때 말씀을 전하도록 초청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그 분이 병 고침에 대해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지에 대해 간증했고 그가 예수님을 그의 치유자로 받아들였다는 것도 나누었습니다.

그 다음날 그는 등반에 초대 되었습니다. 그의 첫 반응은 그의 심장 상태 때문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병 고침 받은 것을 선언했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그 초대를 수락하였습니다. 그 때까지 그는 병고침을 받은 것을 느낄수 없었고 단지 병 고침 받았다는 것을 선포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산꼭대기까지 오를 때까지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이 성경 말씀으로부터 떠날 때마다 그는 연약함과 고통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느낌들을 이기고 그의 치유를 선포할 때마다 증상들은 떠나곤 했습니다. 그는 이 전쟁을 산꼭대기에 오를 때까지 치렀고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며 활동적이고 활기찬 삶으로 인도하는 일을 계속했고 더 이상의 증상으로 고통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발걸음을 내딛고 나의 승리를 얻어야 했던 것입니다.”라고 결론지어 말했습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의 산물입니다. 심슨은 하나님 말씀 위에서 행동했고 진짜 믿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믿으려고 애쓰지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십시오.  


여섯 번째 적 : 믿음의 고백을 붙잡는 것에 실패함


로마서 10장 10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가복음 11장 23~24절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젊은 목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32살인데요. 의사 선생님들이 내 아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고 기도해 주시겠어요?”

우리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기도할 때 그의 아내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그녀는 항상 아이를 갖기를 원한다고 말해 왔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그들이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12개월 후 나는 그들이 엄마 손을 잡고 발을 통통 구르는 여자 아기를 가지고 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고백으로 측량될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용하실 수 있는가도 우리의 고백으로 측량됩니다. 결국 우리는 좋게든지, 나쁘게든지 우리가 고백하는대로 되어집니다 

우리는 심령으로 고백할 수 있고 우리의 입술로도 고백할 수 있는데,우리 심령의 고백과 입술의 고백이 일치할 때 우리의 기도생활은 강력해집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패배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정적인 고백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항상 그들의 약함과 실패들에 대해 말하고 틀림없이 그들이 고백한 수준대로 가라앉게 됩니다.

위에 인용했던 마가복음 11장 23-24절에서 내가 예수님의 입술을 통해 발견한 영적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백이 우리를 지배하는 법칙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한대로입니다 (we are what we say) 


마가복음 5장 25-34절에서 우리는 혈루병 앓는 여인이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하면 나으리라.”고 말한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그 녀가 말한 것은 그녀의 믿음이 말한것이었고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고한 것과 같이 우리가 " 믿음의 선한 싸움" 을 싸울때 비로소 우리는 실패와 연약함의 좁은 장소에서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구절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디모데후서 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