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용서

용서 ( C. S 루이스 )

하늘감동 2012. 11. 12. 19:28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용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어렵습니다.

 

한번의 큰 모욕을 용서하는 건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은 다릅니다.

 

들볶아대는 시어머니, 윽박자르는 남편, 바가지 긁는 아내,

이기적인 딸, 거짓말쟁이 아들을 계속해서 용서하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방법은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기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않으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외가 있다는 암시는 전혀 없으며

하나님은 결코 빈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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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용서란 훌륭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용서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용서라는 말만 꺼내도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게 마련입니다.

용서란 너무나 지키기 힘든 고차원적인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하기 싫은 창피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용서하란 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절반은 제게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당신이 폴란드인이나 유대인이라면 과연 게슈타포를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소?”

저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알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알고 싶습니다.

고문을 당해 죽게 되더라도 목숨 때문에 신앙을 부인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정말 그런 상황 속에서 신앙을 부인하지 않을지 알고 싶은 것처럼 말입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의 한복판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른 방법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용서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할 수 있다면 용서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