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데이비드 포슨의 `사랑의 하나님인가?`라는 설교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를 주십니다. 2단계를 통해 주십니다.
첫번째는 의롭다고 받아주십니다. 의롭다는 칭의에 관한 라틴어는 아주 길고 복잡해서 저는 싫습니다.
저는 뉴기니어어판 영어 성경의 정의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단순한 영어를 사용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괜찮다'
저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의인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칭호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해 의를 주는 것이 성화입니다. 이 두부분이 전부 구원의 과정입니다.
구원은 그저 과거의 죄를 용서받고 천국가는 티켓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갖는 것이고 그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의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제가 아는 영국 북부의 한 분은 청소년 보호시설의 교장이었는데 참으로 귀한 이분은
청소년들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도 변화되지 않았던 한 소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는 이 소년을 엄하게 벌을 주었다가 부드러운 선물도 주어봤지만 소년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방법을 다해봤지만 이 분노가 가득한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소년은 별로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 소년을 교장실로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 네가 새삶을 살아가도록 도우려고 했지만 너는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 가지 방법을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너의 동의가 필요하다 나는 너를 내 아들로 입양하고 싶다 우리 집에 와서 나와 함께 살며 내 성을 따르게 될 것이다
네가 문제를 일으키면 내가 곤란하게 될 것이다." 소년은 놀랐지만 동의했습니다.
소년이 그의 집에 간 순간부터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하면 진실이 아닐 것입니다. 그 소년이 그의 집에 간 순간부터 변화되기 시작했다고 하면 사실일 것입니다. 소년은 그리고 점점 더 많이 변화되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대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인으로 대해 주시고 자녀로 받아들이시며 우리가 죄를 지으면 비난을 당하십니다.그것이 복음입니다. 의로움의 복음입니다.
저는 감옥에서 설교할 때 그들에게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고 의롭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대화를 나눠 본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왔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나이에 되고 싶었던 그런 선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안타까워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기를 원합니다. 좋은소식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에게 그 일을 이루실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성도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역사를 늘 이루고 계십니다.
주변에 변해가고 있으며 결국 완전하게 될 사람들을 봅니다. 의로움의 복음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복음은 반드시 거룩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복음은 거룩해 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전하는 복음은 여러분이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를 그저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거룩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용서만 해주신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주시며 의로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불의입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참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분의 의로운 성품 때문에 누군가가 불의한 삶을 사는 것을 참으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의보다 더 진노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입니다. 그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완고한 자들로 자신들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옥에서 설교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곳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설교하는 게 아주 힘든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악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의는 종교적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에 사로잡힌 자들을 증오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는 잘 지냈지만 바리새인들과는 잘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자기의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