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ADHD는 질병이 아니다. (ADHD는 없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ADHD가 뭔지 잘 몰랐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기사에서 가끔 본 적이 있었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영문 약칭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정말 무슨 장애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1학년 담임선생님이 ‘혹시 모르니까’ ADHD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고, 아이를 데리고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한 결과 ADHD 진단을 받았다. 다른 병원을 찾아갔더니 거기서도 ADHD라고 했다.
진단을 받고 나서, 나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다는 걸 교사들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애를 썼다. 내가 잘못 키워서 그런 걸 괜히 애한테 문제가 있는 걸로 몰아 버리는 게 될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학교에서 인정받는 주류 엄마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아이는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나는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게 만들려는 내 노력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정확히 말하면 우리 사회와 학교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학생들)과 똑같지 않다는 것을 일단 인정한 후에는,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은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의 학교교육 시스템 속에서 우리 아이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켜내기가 매우 어렵겠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나는 아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자기 고유의 것을 잘 지키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해 주는 게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약은 애초부터 단 한 알도 먹인 적이 없다. 행동치료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아이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 내가 아이와 같은 편이 되자, 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놀랄 만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협력자가 되었다.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었고, 엄마와 동지 같은 관계, 협력자의 관계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아이는 명랑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 지금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다. 학기마다 공개수업이나 학부모 면담 때 담임선생님을 만나 보면 ‘어른스럽다’, ‘생각이 깊다’는 칭찬 외에는 다른 얘기가 없다. 몇 년 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학교 선생님들은 원래 학부모 앞에서 이렇게 칭찬만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너무도 다른 경험이다. 지금의 선생님들
우리 아이가 예전에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으나 이제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아졌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아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일 뿐이다. 예전에는 뭔가 자신을 바꾸려고 애를 썼다면, 지금은 자기가 가진 성향과 자질을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예전에는 없었고 지금은 생긴 것뿐이다.
나는 아이와 함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됐다.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언제나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눈앞에 드러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면 현상 너머, 그 안쪽 깊은 곳에서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일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편안하고 충만한 상태에서는 자신과 주변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는 것, 이것이 본질이다.
우리 아이가 겪은 이 모든 일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ADHD는 약물치료가 아닌 부모와 환경의 변화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애초에 ADHD가 아니었다’고 봐야 할까. 어쨌든 둘 중 하나다. ADHD였다면 약물치료 없이 좋은 결과를 본 사례가 될 것이고, 만약 ADHD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오진으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사례가 될 것이다. 만약 우리 아이
나는 이 책에서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 좋은 결과를 볼 수 있게 되었는지를 내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려 한다. 또 ADHD에 대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오해와 잘못된 인식, ADHD 약물치료의 위험성과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교사나 의사의 입장과 부모의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 왜 달라야만 하는지, 부모가 교사나 의사의 입장에 동조해서 아이를 대상화할 때 아이가 얼마나 처참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또 ADHD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핍박받고 고통받는 이 아이들이 가진 귀중하고 특별한 재능과 자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약물치료라는 폭력적인 방법을 도저히 아이한테 쓸 수 없어서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엄마로서의 간절함이 결국 가장 좋은 방법과 결과에 이르게 한 것이지만, 그게 오직 신념과 노력에만 그쳤더라면 이렇게까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 내 아이가 직접 겪었고 실제로 분명한 결과를 봤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절박함과 시시때때로 부딪치게 되는 좌절,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맞는지 틀렸는지’ 미칠 것만 같은 불안과 혼란을 고스란히 겪어 내면서 여기까지 온 터라,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그냥 이론이나 관념으로 하는 말과는 분명 다르리라 생각한다.
ADHD는 병도 아니고 장애도 아니다. 그냥 아이가 가진 어떤 특징이고 성향일 뿐이다. 창의적인 아이, 호기심이 많은 아이, 활동적인 아이, 통찰력이 있는 아이, 예민한 감각을 가진 아이… 수도 없이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절대음감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아이는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이 사회와 학교가 ADHD라는 분류표를 달아 버린 어떤 성향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아이들을 어떤 학자는 ‘사냥꾼 기질을 가진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또 어떤 학자는 ‘인디고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학교와 병원에서는 ‘ADHD’라고 부른다.
이 아이들은 분명 특별한 아이들이다. 특별히 우월하다거나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가 가진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 특성을 아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ADHD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특별함으로 인해 어떤 아이들보다도 빛이 나는 아이들이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분명한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ADHD와 관련된 책은 내가 찾을 수 있는 한 거의 다 찾아서 읽고 공부했다. 수많은 연구 결과와 주장과 의견들이 있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떤 방향을 잡을지 결정해야 했다. 나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부모로서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책들을 만났다. ADHD를 병이나 장애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미 많다. 이 아이들의 남다른 재능과 장점에 주목하는 관점을 가진
이 책에 쓰인 주장과 관점과 사실들은 모두 학자들이 쓴 책을 통해 얻은 것들이고, 따라서 분명한 출처를 밝힐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 책은 경험자로서 내가 선택한 주장과 관점, 내가 교과서로 삼은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입장일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나 본 의사는 나에게 ‘어느 한쪽을 정해서 그쪽만을 따르라’고 조언했다. 맞는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부모들에게 나도 이 말을 하고 싶다. 되도록 많이 읽고, 많이 공부하고, 그중에서 가장 옳다고 생각되는 입장을 선택해서 거기에 충실히 따르라고.
모든 것이 좋아지고 나서, 나는 우리 아이가 ADHD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고 거기서 끝내고 싶었다. “세상에… 이렇게 멀쩡한 애를 ADHD인 줄 알 뻔했어!”라고. ADHD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얘기라고 등 돌리고 외면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행히 그들과 같은 처지가 아님’을 기뻐하며 안도하며 감사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미용
지금 그 아이들과 부모들이 겪고 있는 그 고통 속에 내가 있었을 때, 나는 다행히도 본질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멘토를 만났고, 딱 떨어지는 관점을 제시해 주는 책 몇 권을 만났고, 그 덕분에 내 아이와 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만약 그때 미친 듯이 해답을 찾아 헤매는 나를 멘토가 무심히 외면했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그 고마운 책들의 저자들이 만약 그 책을 쓰지 않았다면 나와 내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살리고, 그 한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순환의 고리를 중간에 잘라먹지 않고 연결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결국 이 책을 쓰게 됐다. 이 책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과 아이를 살릴 수 있는 해답을 얻게 된다면 내가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지 않을까.
--- <ADHD는 없다>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