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온유해지면 연단도 끝난다 (유기성)

하늘감동 2014. 1. 4. 14:56

 

온유해지면 연단도 끝난다

 

겔 36:26-27

겔 36: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나는 왜 잘하는 것이 없을까? ‘열등감’에서 몸부림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약해보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내가 약한 것이 아니라 너무 강하여 주님이 역사하지 못한디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우리가 약한 것은 차라리 다행입니다. 주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쓰십니다.

주님이 직접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실제로는 우리가 너무 강해서 문제인 것입니다.

 

열등감에 사로 잡힌 것도 우리 자아가 너무 강한 증거입니다. 낙심도 좌절도 너무 강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스스로를 속고 삽니다. 영적인 완고함입니다.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는 성품입니다.

강한지 아닌지 확인해 봅시다.

 

‘기도하라’ ‘성경읽으라’ ‘용서하라’ ‘전도하라’ ‘감사하라’ ‘용서하라’ ‘영성일기 쓰자’

들어본 적 있습니까? 그래서 했습니까? 안했다면 강한 것입니다.

 

믿음이 좋아 보이는데 실제는 영적으로 완고한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군목, 군종, 대부분 목사, 장로 아들이더랍니다. 보고 들은 것이 있어서 일을 잘 하더랍니다. 그런데 “24 시간 예수님 바라보자” 하였더니, 전혀 반응하지 않아서 당황하였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대부분 온유한 자들이었습니다.

 

서민들은 대게 착하고 순박하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끄럼을 잘 타고

소심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과 겨루기보다는 포기해 버리는 편을 택합니다.

 

정말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온유함이 아닙니다.

 

환경 여건 때문에 온순해 보일 뿐입니다.

 

 

이등병 때 다 온유해 보입니다. 병장 되면 달라집니다.

 

호랑이도 새끼는 귀엽습니다. 크면 무섭습니다.

 

직장에서는 사람들에게 온유합니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마구 대합니다.

 

애인에게는 잘합니다. 부모에게는 퉁명합니다.

 

진정한 온유함이 아닙니다.

 

천성적인 온유함과 성령의 열매의 온유함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진돗개는 주인에게 철저하게 복종합니다. 주인 앞에서는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에게는 한없이 차갑고 강합니다. 그러나 똥개는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주인에게도 꼬리치고, 낯선 사람에게도 꼬리칩니다.

진돗개는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주인의 명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싸웁니다. 심지어 호랑이에게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을 보입니다. 그러나 똥개는 일단 강한 상대를 만나면 겁부터 집어먹습니다. 아무리 주인이 덤비라고 해도 꼬리를 내리고 도망을 칩니다.

비유컨대 온유는 진돗개와 같고 온순은 똥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유는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부드럽고 따뜻함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세상 앞에서도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그러나 우상 앞에서 하나님의 뜻밖의 세상 앞에서 더 이상 따뜻하고 부드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갑고 강해집니다.

 

 

중국의 어느 지방에 싸움닭을, 투계를 잘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있었답니다. 하루는 그 지방의 영주가 이 조련사를 찾아가서 아주 내 닭을 훌륭한 닭을 싸움을 잘 하는 닭으로 그렇게 훈련시켜 달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 닭은 몸집도 크고 닭 벼슬도 아주 붉고 큼직한 닭인 것은 틀림없는데 다른 닭을 보기만 하면 비실비실 도망가고 한구석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예요. 이게 영, 영주가 기분이 좋질 않아요. 어떻게 해야 이걸 훈련을 시킬까 해서 이렇게 전문적인 조련사에게 부탁을 했는데 한달 동안을 맡기어 놨다가 가보니깐 닭의 눈매가 또릿또릿해졌어요. '아, 이게 되가는구나.' 또 한달 후에 가 보았더니 아주 싸움을 잘해요. '그래서 이만하면 됐구나.' 또 한달 후에 가 보았더니 닥치는 데로 싸워요. '아, 이거 훈련을 참 잘시켰다. 됐다' 하고 이제 데리고 가겠다고 했더니 "아, 아닙니다. 한 달만 더 두세요." 한달 후에 다시 가 보았더니 이 닭이 마당 한가운데 떡 서있어요. 싸울 생각을 안 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른 닭들이 대들질 않아요. 감히 대들질 못해요. 아주 조용한 거예요. 이 닭이 가운데 서서 척 바라만 보면 모든 닭들이 다 비실비실 도망을 가는 거야. "이제 됐습니다. 이 닭을 가지고 가세요." 여러분 이걸 아셔야 됩니다. 그냥 있기만 해도 감히 다른 닭이 대들지 못하고 피하는 그 위엄 있는 싸움닭이 최고의 닭입니다. 푸드덕거리고 싸우는 닭은 시원치 않은 닭입니다.

온유함이란, 이 '프라우어테이스'라고 하는 말은 결코 나약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비겁함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강한 위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건 군인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가장 강한 군인은 싸움 없는 군인이요. 가장 큰 힘은 평화가 있는 힘입니다. 여러분, 가장 큰 승리는 원수가 찾아와서 화해를 청하는 그러한 힘이 그것이 가장 큰 승리올시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셔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십니다,

 

겔 36: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은 예수님과 동행하기에 자신의 고집을 버린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성품이 착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인 온유한 사람은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은 환경과 여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예수님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입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 만이 온유한 자입니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어느 한 여자 집사님은 저녁식사 할 때마다 너무 언짧은 분위기에서 하 게 된다고 하였다. 이유인즉 남편이 식사 때를 맞추어서 들어오겠다고 해 놓고 는 자주 늦어서이다. 그러나 남편이 늦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보다는 남편이 늦기 때문에 음식이 식는 것이 문제였다. 이 집사님은 음식은 따뜻할 때 먹어 야 맛있는데 남편이 늦음으로 음식이 식어서 맛없게 먹게 되는 것이 영 못 마 땅한 것이였다. 그래서 늦게 온 남편에게 또 늦었냐고 인상을 찌푸리며 야단을 치면서 썰렁한분위기에서 저녁식시를하는것이었다. 물론 따뭇한 음식이 식으면 맛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맛이 떨어지게 하는 것은 늦었다고 야단치므로 만들어진 썰렁해진 분위기이다. 음식이 조금 식어 맛이 떨어질지라도 더욱 중요한 것은 기분 좋게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 러나 이 집싸님에게는 따뜻한 음식은 꼭 따뜻하게 먹어야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더 중요한 식사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것 이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고정관 념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늦게 온 남편을 반갑게 맞이하여 즐거운 저념식사뿐만 아니라 식사 후에도 남편과 오붓하고 따뜻한 저녁 시간을 가지 게 되었다. 놀랍게도그l한가지 생각만바꿈으로인하여 남편과의 관계가달 라졌다.

 

 

주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하나님,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온유한 사람의 기도와 자세입니다.

 

 

통합 측 장로교 최연소 여성목사였던 김효숙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고1학년 때 기도원에 갔다가 평생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 그 서원을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삶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치다가 고 1 때의 서원을 기억하고, 그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서원의 짐을 내려놓고 와야만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마치 하늘을 향해 결판이라도 내려는 듯이 산 위에 앉아 그 비를 다 맞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어릴 적, 철도 들지 않고 사고의 폭도 좁았던, 아무런 세상경험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서원이니 제발 잊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하늘이 맑게 개이면서 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었단다." 그 음성과 더불어 환상으로 보여진 것은 국자였답니다. 튼튼한 쇠국자였습니다. 그 환상을 보고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랐답니다. 경우 국자냐? 인생을 그릇으로 표현하신다면 자신은 그래도 귀한 잔치에서만 볼 수 있는 고급 그릇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실망했답니다. 그러나 한 선배가 그 이야기를 듣더니 "결국 하나님께서 너를 쓰시겠다는 거로구나"하고 말하더랍니다. 설명하기를 국자는 혼자서는 제대로 설 수도 없는 그릇이기에 반드시 주인의 손이 닿아야만 사용될 수가 있고, 국자는 주인이 담아주는 음식을 그릇에 옮겨주는 도구이니 하나님의 종이되라는 응답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자신이 혼자서는 볼품없지만 하나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인생,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음식을 그릇 그릇마다에 옮기는 국자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신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착하고 순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제가 온유한 사람이리라 착각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제가 순하기는 해도 온유한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한 성질하는 사람입니다.

 

온유하다는 말은 원래 길들여졌다는 의미입니다.

 

야생마처럼 거칠고 난폭한 성품이었는데 길들여져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변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또 원래는 자유인으로 제 멋대로 살던 사람이 종이 되어

그 성품이 변화된 모습을 말합니다.

강하고 사나운 진돗개 같은 개도 주인에게 철저하게 복종합니다.

 

이런 경우가 온유에 해당합니다.

 

온유란 철저하게 자기 생각, 자기 뜻을 하나님 앞에서 꺾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게 된 것을 말합니다.

 

어느 성도가 직장 회식 때 상무가 주는 술잔을 거절했다가 중간간부로부터 뺨을 맞았습니다. 사표를 쓸 마음으로 다음날 기도원에 가서 기도 중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나는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했는데, 직장 복음화하겠다는 너는 뺨 한 대 맞고 그러느냐?” 울면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온유해졌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명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 자신만 놓고 보면 제가 온유해졌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온유함은 단순히 순하고 화 안내고 순종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어떤 말이 온유한 말인지는 말 한 마리 세웠고 알 수 없습니다,

주인과 같이 있을 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진돗개가 온유한지는 혼자 있을 때는 모릅니다. 주인이 있을 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유한 자가 되었는지도 예수님과 함께 있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온유는 온유하려고 애를 써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하게 해달라고 기도 하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배우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 예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져야만 이루어지고,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함이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온유한 자란 예수님이 함께 하심이 분명히 믿어지고 철저히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잊어 버리는 순간, 그는 온유하지 못한 자입니다.

 

모세가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그는 80세가 되고 보니 40년 양들만 치다 보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신은 정말 자격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도 한번 혈기를 부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잃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타락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우상 숭배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내가” “내가” 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기를 펴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온유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능성인 것입니다.

 

지도자의 자격은 24 시간 365일 온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딤후 2: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갈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에베소서 4:1~3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러므로 우리는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에 철저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봄이 온유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훈련이 될 때까지 모든 상황이 연단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지면 모든 상황은 전혀 새롭게 바뀝니다.

연단이 끝난 것입니다.

 

인턴전도사, 임지에 대한 불만이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담임목사, 장로 교인들에 대한 불만도 컸습니다, 왜 나는 이런 교회에서 사역해야 하나?

좋은 사람과 함께 사역하고자 하는 마음이 욕심입니다, 주의 나라를 생각하면 문제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으면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 범사 감사가 나옵니다, 좋은 사람과 살려니까 불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24 시간 예수님이 바라보아집니까?

 

우리가 영성일기를 쓰는 목표가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