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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요한복음 3:5 " 물과 성령으로 "에서 "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늘감동 2014. 6. 19. 21:47

요한복음 3:5 " 물과 성령으로 " 에서 " 물 " 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는데, 이것을 어렵게하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지식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 물은 무엇이라고 한다' ' 저명한 신학자나 목사님이 물은 무엇이라고 했다 '

성경 구절을 근거로 물은 '세례다 ', ' 회개다' , '말씀이다 ' 아주 다양합니다. 주석조차 다양한 풀이를 합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의도한 뜻이 이렇게 많았을까요?

이런식이라면 해석은 더욱 무성해지고 예수님이 의도한 답은 이도 저도 아닌, 오리무중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개연성이 없는 다른 구절에서 따와서 퍼즐을 풀듯이, 암호를 풀듯이 해석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둘째는 대화라는 특수한 상황을 깊이 이해하지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은 실제 상황입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가 직접 만나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극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설명,주장하는 글도 아니고, 다중적 의미가 허되는 시나 예언은 더욱 아닙니다.

 

대화 참여자에 맞추어서 이해해야하고, 적어도 니고데모의 이해하는 수준을 벗어날 이유가 없습니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답을 한 것이지 우리에게 답을 한 것이 아닙니다

1차적으로 니고데모의 질문을 위한 답으로 우선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후대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2차적인것입니다.

더우기 예수님은 후일에 쓰일 서신서에 나오는 물에 대한 풀이를 의식하고 니고데모에게 답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니고데모로서는 우리처럼 어떤 성경 구절과 연결할 선지식이 없습니다 우리가 니고데모가

이해하는 수준에서 이해한다면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로, 후대 성경을 읽는 우리의 관점을 배제하고, 니고데모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대화 속의 "물" 이 무엇인지 본뜻을 더 잘 이해할수 있다고 봅니다

대화 안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굳이 대화상황 밖으로 나가서 신학적,학문적 고찰을 하거나

대화 밖에서 개연성없는 풀이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고 의미부여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 자신의 선지식을 비우고 오직 대화 상황에 충실하여 본뜻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니고데모가 되어보고, 예수님도 되어보는 상황 설정을 통해 대화간의 주고받은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3:1~11)

 

1)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 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5 을 다시 보시길 바랍니다. 성경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3:5 에는 '거듭" 이라는 단어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 born again ' 이 아니라, ' 다시' 라는 뜻의 'again'이 빠진 체로 ' born ' 만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과 7절에 등장하는 '거듭남' 이라는 표현과 분명히 구별되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거듭남과 상관없는 물을 언급하신걸까요? 그것은 니고데모가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가야하느냐고 의문을 표했기 때문입니다. 그 육신적인 의문에 댓구하여 예수님은 먼저 육신적으로 첫번째 태어나야함을 말씀하신것이고, 또 이어서 성령으로 태어나야함을 말씀하신것입니다. 어법으로도 물로 태어나는 것은 거듭남과 관련이 없습니다 거듭남은 성령만을 한정한 말이기에 물과 성령 양쪽을 다룬다면 거듭난다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않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첫번째 출생과 두번째 출생을 다룬다면 어법상 거듭난다가 아니라 태어나야한다는 일반적인 표현이 맞습니다.

 

둘째,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은 물에서 태어나는것과 성령으로 태어나는것을 합친말입니다.

킹제임스흠정역본 요한복음 3:5 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또한 영어 성경 확대번역본에서는 사람이 물에서 나고 심지어 성령에서까지 나지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 Jesus answered, I assure you, most solemnly I tell you, unless a man is born of water and [[a]even] the Spirit, he cannot [ever] enter the kingdom of God. )

 

 

셋째, 이어진 6절에서 물에서 나는것은 육으로 난 것을, 성령에서 나는 것은 영으로 난 것을 대조적으로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대조적인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앞서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을 부연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에서 나는 것은 육으로 나는 것을 짝하여 부연설명하고, 성령으로 나는 것은 영으로 나는 것을 짝하여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넷째. 물에서 나는 것은 생물학적 육신의 탄생을 말하는 이스라엘 랍비들의 관용어구입니다.

대화에서 보면, 니고데모는 분명 우리처럼 '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을 갖지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니고데모의 성정으로 보아, 물에 대해 의문이 지금 우리처럼 있었다면 재차 질문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몰랐다면 니고데모는 앞서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가야하느냐고 의문을 표한것처럼 물에 대해서도 반드시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랍비로서 구원과 진리에 대해 알고자 유대인들의 좋지않은 이목을 무릅쓰고 그 밤에 찾아온 것입니다. 몰랐다면 그의 관심과 열정으로는 그냥 지나치지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물에서 나는 것은 유대 랍비들의 전통적인 표현이라는 신뢰할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니고데모, 어느 랍비의 탐색' 이라는 책과 인터넷 출처가 있습니다. 귀빠진 날이 생일을 말하는 우리나라의 관용어구이듯이, 유대인들에게 물에서 난다는 것은 어머니의 양수에서 태어난 육신의 출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 The first type of birth, "to be born of water" happens when you are physically born. Of course Nicodemus qualified for this type of birth because being born of water is a rabbinic idiom for physical birth. It is a reference to the amniotic fluid.

 

출처 서적 : Nicodemus, A Rabbi's Quest, Ariel Ministries, Manuscript #16, pg. 2.

출서 주소 : http://www.hadavar.org/drupal/content/you-must-be-born-again )

 

 

 

다섯째, 요한복음 3:7 이후에 거듭남을 성령과 관련하여 말하는 부분은 있지만, 물과 관련하여 말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물과 성령이 거듭남의 통로이고 수단이라면 성령으로 거듭남을 바람이 부는 것으로 설명하듯이 물로 거듭남도 일정부분 설명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거듭남과 관련한 물에 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않습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장 5절과 8절 비교)

 

 

여섯째, 물과 성령의 정체가 무엇인가?

 물과 성령은 본질은 다르지만 동등한 성격과 정체성이 사용되야됩니다. 성령이 뜻하는바가 상징이라면 물도 상징이어야하고 성령이 뜻하는바가 실체라면 물 또한 실체여야합니다. 그런데 거듭남의 통로인 성령은 실체인데, 회개, 말씀, 물 세례를 상징한다는 것은 성격이 다른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디 출신인가? 무엇을 매개체로 오는가?'는 수단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점으로 보아도 다양한 상징적인 개념들은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회개나 말씀, 물 세례가 거듭나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는 있겠죠. 그러나 성령만큼 결정적인 수단으로서 기여나 중요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정리합니다. 물은 어머니 양수이고, 물에서 태어나는 것은 고린도전서 15:47의 땅에서 나는것처럼 생물학적 육신의 탄생을 말합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남과 관련하여 육신적인 출생 밖에 모르듯이 오늘날의 성도님들도 거듭남과 관련하여 물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에서 난 육신의 출생, 첫번째 출생에 머물러있으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거듭남에서 '거듭' 으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은 ' 아노텐 '인데 1차적으로 "위로부터 ' 을 뜻하고 2차적으로 ' 다시 ' 를 뜻합니다. 말하자면, 거듭난 자는 '위로부터 난 자' 이고 '다시 태어난 자'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 8: 23,24 을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않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

말씀대로 예수님은 위에서 난 자이십니다 위에서 난 자이시고 위에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아래에서 난 자, 땅에서 난 자. 물에서 난 자가 비로서 위에서 난 자, 거듭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불뱀지팡이가 들린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가 들리워져한다는 것은 이 구원의 사건을 믿는자에게 거듭남이 있고 멸망치않고 영생이 있다는 것이 요한복음 3장의 주제입니다. 죄가운데서 죽지않으려면 예수님의 참 증언을 받아들이고 믿어야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지않고 있다고 요한복음 3장 11절과 32절에서 지적하고 계십니다.

 

 

참고자료 - http://cafe.daum.net/Bigchurch/LuI5/113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하늘 감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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