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점검 - 케네스 해긴
자기 점검 - 케네스 해긴
1947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에서는 치유 부흥이 일어났었다. 대략 1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치유 사역을 감당하는 복음전도 단체인 '더 보이스 오브 힐링' (The voice of healing)에 속해 있었다. 이의 책임자인 고든 린지는 많은 집회를 주관했고, 많은 간증문들을 그의 잡지인 더 보이스 오브 힐링 (The voice of healing - VOH)에 실어 출간하기도 하였다. 오랄 로버츠 목사는 1948년부터 이 운동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는데, 결국 그에게는 2만여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졌다. VOH에 또 다른 중요한 사역을 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로버츠에게 주어진 장소보다 더 큰 장소가 주어졌다. 2만2천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를 그를 위해 따로 만들었고, 종종 그 모든 인원이 채워지기도 했다. 그는 그 당시 가장 선두적인 치유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으며, 아무도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사역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아주 놀라운 기적들이 그를 통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에게 가서 그 자신이 자신을 살피지 않는다면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전하라" 그의 나이는 아직 서른 다섯 살이었다. 주님께서는 "제일 처음으로 그가 자신에 대해 살펴야 할 문제는 바로 그의 동료 사역자들에 대해 사랑으로 행치 않는 것이다. 두번째는 금전적 문제에 있어 그 자신을 살펴야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세번째로, 그 사람이 자기를 판단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의 식습관이었다. 흠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의 몸집은 너무 비대했고, 항상 말처럼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건강식을 강요하는 매니아가 되자는 말이 아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그것이 아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한 번 잘 되새겨보자. 그 사역자에게 자기를 살피라고 함은 성경적인 이야기였는가? 당연하다. 주님께서는 그가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주님께서 그를 심판하셔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 경고하려 하신 것이다.
-고린도전서 11:31~32 "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판단받지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 "
아내와 내가 집회를 위해 길을 나섰을 때 보게 된 일이다. 우리의 집회로 가는 길에 그 사역자의 집회 장소에 잠깐 들른 적이 있다. 그가 집회를 주관하고 있던 그 도시에는 청각 장애자와 언어 장애자들을 위한 국가에서 운영하는 한 기관이 있었다. 사람들이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 다섯사람을 그 사역자의 집회에 데리고 나왔으며 그가 그들에게 손을 얹었다. 눈 깜짝할 사이 그 모든 다섯사람이 즉시 나음을 입었다.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사역자는 바로 그 시점에서 집회를 잠시 멈추고 헌금 바구니를 돌렸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50달러의 헌금을 지참하지 못한 사람은 이곳에 오지 마세요." 사람들은 헌금을 내기 위해 서로 앞다투어 앞으로 나왔다. 이는 50년도 초기에 있었던 일임을 감안하라. 그 때만해도 지금보다 돈의 가치가 훨씬 더 컸다.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많은 돈을 거둬들이는데 이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가 자기를 판단치 않으면 언젠가는 그 죄가 발목을 붙든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속지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갈라디아서 6:7]. 이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나는 그의 사역을 통해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너무나 놀라운 기적적인 치유들을 목격했다. 한 여인이 들것에 실려 그의 집회에 나왔다. 여인의 몸은 철판처럼 뻣뻣했다. 완전히 무감각한 상태였다. 이는 매우 드문 희귀한 병이었다. 의학적으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병이었다. 그녀의 몸을 만져 보면, 마치 통나무를 만지는 듯 딱딱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집회에 데리고 나와 그 사역자의 손을 얹어 안수했을 때 그녀는 즉시 나음을 입었다. 그는 정말 놀라운 치유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소경이 즉시 나음을 입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내가 가서 그에게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전하라." 그 치유 사역자에게 가서 이 말을 전했다. 그러나 그 시간 그는 나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기에 한참 분주했다. 그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거의 마쳤을 무렵, 나에게는 인간적인 생각이 우세해 있었다. 그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치 않아. 주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을 그에게 전한다면 그는 분명히 내게 따귀라도 날리려고 할거야. 내가 그 생각을 마쳤을 무렵 그는 이미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었다. 그리고 그와 다시 이야기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3년 후 나와 아내는 보이스 힐링 집회가 열리는 LA에 있는 앤젤러스 성전에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추수감사절 때마다 항상 VOH집회를 갖고 있었다. 그 사역자의 아내가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기도 요청을 해왔다. 그녀의 남편이 의사로부터 사망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겨우 서른 여덟의 젊은 나이였다. 린지 목사는 강단에서 이 소식을 알렸다. 만약 이 뛰어난 치유 사역자가 이 젊은 나이에 죽는다면 미국의 치유 사역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VOH 사역자들을 강단 앞으로 모와 함께 손을 잡고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를 위한 기도에 참여하기 위해 일어섰다.
강단 앞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 앞에 나가지 말아라" 나는 갑자기 몸이 굳은 것처럼 서서 물었다. "왜 나가지 말라고 하십니까, 주님? 그는 겨우 서른 여덟살이예요. 아직 죽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그에 대해 내게 말씀하셨던 3년 하고도 몇개월의 세월이 지난 그 시점에 나는 주님께서 내게 그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을 살피지 않았고, 동료 사역자들을 사랑함으로 대하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그를 판단하였고 그의 영이나마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게 그의 육신을 무너뜨리는 사탄을 내버려두었다. 그를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그는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돌아서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 시간 다른 건물에 있어야 할 아내가 내게 와서 이렇게 물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주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았지?"
"당신이 강단 앞으로 걸어 내려가다 말고는 죽은 사람처럼 경직되어 서서 얼굴이 백짓장이 되어 버렸는데, 제가 왜 모르겠어요." 아내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려주었다. 주님께서는 그 사역자가 사랑으로 행치 않는 것에 대해 자기를 판단치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서른 여덟의 나이에 죽는 것은 그를 위한 하나님의 최선은 아니었으나, 주님의 말씀대로 지옥으로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일이었다. 믿는 자가 아프고 일찍 죽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치유하기 이전에 우선 해야 할 것은 그가 아프게 된 이유를 뿌리 깊은 곳까지 살피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사역자는 매년마다 특정한 도시에 텐트를 치고 집회를 열었었다. 그 도시에 있는 교회들이 와서 그를 도왔고,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의 집회에 와서 구원을 받고 치유를 받았다. 집회 장소는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그는 그 동네에 부흥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를 도와주려 달려온 교회 바로 옆에 말이다. 그리고 하루는 그 근처 교회의 목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 교회에 있는 교인들 중 형제 누구누구와 누구누구를 토대로 저의 교회를 개척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말 그대로 행했다. 그 동네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나빴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에 있는 교인들을 이백명, 그리고 또 다른 교회에서 이삼백명, 그리고 그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인 순복음 교회에서 수백명이나 되는 교인들을 빼내서 자기의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새로 개척한 교회의 성장을 즐길 수 있기 이전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죽음을 놓고 경박한 행동을 했다니 믿을 수 있겠는가. 그는 형제를 향해 사랑으로 행치 않음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리고 수많은 믿는 자들이 일찍 죽음을 맞는 것이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랑으로 행치 않음으로 자기의 생명의 날들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주님의 지체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 자매들을 주님의 몸의 일부처럼 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사역자는 회개하지 않았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셔야 했다. 이는 하나님의 최선의 방법이 결코 아니었으나 사람이 자기를 판단치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그의 것이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떨어진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억하라. 하나님의 사랑은 믿음이나 소망보다 더 크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많은 그리스도의 지체된 사람들이 사랑으로 행하는 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행하지 않는다.
-로마서 12:9 "사랑에 거짓이 없게 하라. 악을 증오하고 선과 연합하라"
이 구절은 많이 읽혀지고 있으나, 정작 시간을 투자해서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지 않다.
"거짓"이라는 단어는 '가장하다' 또는 '겉치레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 척 가장한다.
그러나 사실 이를 인정할 수 있을 만한 행위는 볼 수가 없다. 무슨 뜻이냐 하면, "너를 정말 사랑해"라고 말하고는 가차없이 등을 돌려버리게에 주저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척 할 뿐이다.
-로마서 12:10 "형제애로 서로 다정하게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한다. 절대 자기를 먼저 생각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을 때, 말로만 사랑하고 사랑하는 흉내만 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말에 행함이 따르므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옳지 못하게 행동할 때에도 우리는 사랑으로 그들을 대해야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풍부한 상급이 주어진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를 판단한다면,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판단하면, 병원에서 오는 긴 고지서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속에 사랑함으로 행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할 때 단지 우리의 신체적인 나음을 위해 상함을 입으신 예수님의 몸 뿐 아니라 영적인 그리스도의 지체까지 분별할 수 있을때, 비로소 우리는 강하고 건강하게 될 것이다. 약하고 병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말들의 수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