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감동 2019. 9. 14. 18:45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

 

본문 : 마태복음 6:14,15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유기성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용서받아야 할 때도 있고 용서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죄를 짓고 용서받는 것도 어렵지만 못지 않게 용서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고, 용서가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이들을 많이 봅니다. 용서해 달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뻔뻔해 보입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이 살 길은 용서하는 길 뿐입니다."

 

사실 용서는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 것일까? 지금이 용서가 어려운 분노의 시대라서 더욱더 용서가 어려운 것일까? (심지어 남성혐오, 여성혐오 젠더갈등) 특히 교회 다니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용서는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남을 용서하는 것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피로 구원받으니까, 나의 믿음으로 구원받으니까 이것만 강조하다보니 용서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빛을 보지 못 하고 간과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치우친 구원의 가르침이 균형을 잡고 제자리를 찾아야할 때입니다. 둘째는 용서를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용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상처 받았어" 하며 자신의 상처에 분노하고 또는 자기연민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 상처가 사실은 자신에게 늪이 되고 덫이 되고 올가미가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 합니다그 상처에 매여서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마귀에게서 온 것을 모르고 속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조장합니다 과거의 상처, 과거에 당한 일들을 자꾸 떠오르게 합니다 분노하게 하고 원한을 갖게 합니다 마귀가 가론유다에게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듯이 여러분에게도 충분히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용서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에서 용서하지 마라 하고 말하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해묵은 과거를 들춰내며 분노와 미움을 조장하는게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여러분이 용서하지 못하게 해서 지옥에 끌고 가려는 마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고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여러분에게 온 것이 아니라 마귀가 넣어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위대한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 사랑을 나를 극복하고 실천하는 것이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용서해야하는 것일까요?

1) 조건적으로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나를 결단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내가 용서해야 하나님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것입니다. 그가 회개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믿는 사람일지라도,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그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가 받은 죄용서와 구원은 취소되고 무효가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것과 나에게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나의 용서를 전제로 합니다. 그건 제외할 수 없는 필수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한 자, 용서하기로 작정한 자를 용서하시지 용서하지 않는 자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공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하셨는데, 정작 그런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이고 불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내가 진심으로 죄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나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합니다. 그것이 나를 용서하신 분의 조건적인 요구인 것입니다. 다른 모든 죄는 예수의 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는 죄를 예수의 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용서하지 않는 죄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회개는 하는데 용서는 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짓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어떤 회개를 열심히 했어도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단코 용서받지 못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피로 죄사함 받기를 원한다면 조건적으로 여러분은 남의 죄를 먼저 용서해 줘야합니다.

2) 하나님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길줄 알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비유로 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데나리온 빚진 자가 나옵니다. 우리의 화폐단위로 바꿔말하면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 정도 됩니다. 6000배가 될 정도로 달란트가 큰 단위라는 것이죠. 그래서 만달란트는 6000만원, 백데나리온은 100만원 정도의 우리돈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6000만원 탕감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100만원 빚진 사람을 탕감해주지 못해서 무자비하게 닥달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남에게 큰빚을 졌다가 탕감을 받는 은혜를 받았다면 그도 남에게 인색하지 않고 받은 은혜대로 작은 빚을 탕감해 줄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결국 큰 자비를 받고도 자신은 무자비함으로 응수하여 그는 탕감받은 모든 것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8:33에서 큰 빚을 탕감해준 사람이 진노하여 이렇게 지적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겼는데 너도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지, 내가 너를 용서하였는데 너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지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평한 정의입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겼는데 너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나는 무엇이 되는 것이냐? 내가 너를 용서하였는데 너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너를 용서한 나를 거부하는 것이고 모욕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더욱이 너에게 잘못한 사람의 죄보다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죄를 용서받은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누가복음 636절에서 37절에 잘 나옵니다.

"36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하나님이 자비로우심 같이 우리도 자비로와야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과 같이 우리도 은혜를 베풀어야합니다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심과 같이 우리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심 같이 우리도 용서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정의이며 조건입니다.

나의 용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모든 구원의 진리와 길과 은혜가 내게 있을지라도 나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스스로 거절하는 것입니다.

 

 

3) 용서해야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부정적인 많은 것에 묶이게 되고 막히게 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독을 품고 사는 것처럼 치명적입니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결국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게 만듭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의 저자 중국의 윈형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용서치 않으면 두 가지 상황이 벌어집니다.

첫째, 제 마음이 강퍅해지고 원한의 쓴뿌리가 자리를 잡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손상을 입습니다.

용서는 한쪽만 있으면 됩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할 때, 용서받는 이가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는 이가 자유를 얻습니다.“

아셨습니까? 용서는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합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치 못하는 마음과 원한을 내 마음에 두는 것을 나는 독약을 마시거나 방울뱀 다루는 것과 같이 매우 조심스럽게 대했다. 용서치 못하는 마음과 옳지 못한 감정들은 그 어떤 독약이나 방울뱀보다 더욱 치명적이다.”

브라이언 아담스라는 분은 성령님한테 이런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아들아, 믿음은 나를 움직이지만 용서는 나의 권능을 풀어놓는다.”

믿음은 하나님을 움직이고 용서는 능력을 풀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용서의 권능입니다.

 손기철 장로님이 그 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용서함으로 기름부으심이 흘러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고 월요말씀치유집회에 나와 간증했던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님은 12년이나 류머티즘성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회에서 미움의 뿌리를 뽑으면 병이 낫는데 류머티즘성관절염이 그 대표적인 병이라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매님은 기도하면서 자신이 누구를 미워했는지 떠올려보았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이면 심한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던 장면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러자 온 몸이 떨리고 무서워 울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전해졌지만 자매님은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고 몸서리치며 계속 울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구하자마자 머리 위로 따뜻한 주님의 사랑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아버지를 용서하자 정말 오랜 시간 깊은 곳에 뿌리 박혀 있던 미움이라는 쓴뿌리가 뽑힌 것입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에게 평안이 찾아왔고 관절염으로 부어 있던 발도 편해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미워하던 마음을 용서하고 진정으로 회개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의 기름부으심이 흘러들어와 그것만으로도 놀랍게 치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분명히 죄의 문제입니다. 용서는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마치 쥐약은 자기가 먹고 상대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안 죽고 자기가 죽습니다.

뱀에게 물렸으면 가장 먼저 뱀독부터 뽑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뱀 잡으러 다니는 격입니다.

당신에게 해를 끼친 그 나쁜 인간, 당신이 용서하지 못한 그 사람은 하루 24시간 중에 나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눈만 감으면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와 비슷한 얼굴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분노가 치솟고 입에서 욕이 나옵니다.

그것은 당신이 용서하지 못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만 영적으로 봤을 때는 당신이 그 사람에게 묶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묶여 있는 한 하나님과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묶인 것이 끊어져야만 죄의 문제가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통로가 열립니다. 그래서 어떤 병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데서 자유하기만 해도 치유됩니다."

 

어떻게 용서해야할까요?

1) 내가 당한 일을 생각하지 말고 나로 인해 고통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라

자신의 상처를 묵상하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나 때문에 상하신 예수님의 상처를 바라보십시오. 용서받을 수 없는 자, 바로 저와 여러분이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이유로 용서하지 않을 핑계가 없습니다. 그분의 상처 앞에서 나만의 상처를 고집할 수 없습니다. “내 상처, 내 고통만 부르짖든 내가 그의 상처 앞에 녹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 때문에 그분이 상처받아야하는가? 누구 때문에 그분이 고통당해야하는가? 바로 나, 바로 여러분 때문이라면 우리는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야합니다.

"주여 죄인의 중의 괴수가 용서함 받았으니 내가 누구를 용서하지 않으리요" 이것이 우리의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cs 루이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용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어렵습니다.

 

한번의 큰 모욕을 용서하는 건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은 다릅니다.

 

들볶아대는 시어머니, 윽박자르는 남편, 바가지 긁는 아내,

이기적인 딸, 거짓말쟁이 아들을 계속해서 용서하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방법은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기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않으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룻 헤플린

내가 사람들로 인해 가장 상처를 많이 받고 좌절한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는 이 사람을 위해 죽었다"고 내 마음에 속삭이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게 되면 상심하고 있던 내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 버립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로 인해 좌절하고 동요하고 화를 낼 자격이 없습니다.

그 사람과는 도무지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극단까지 왔다고 포기해버릴 수 없습니다.

내가 해야할 일은 그를 용서하고 미움과 상처를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나를 불쌍이 여기듯이 남을 불쌍이 여기라

마태복음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에베소서 4:30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3) 용서를 선포해라

말하는대로 됩니다 내가 하는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심지어는 어떤 미동도 없을 때, 의지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말을 하면 논에 물꼬를 터주듯이 내 마음도 그 말한대로 물꼬가 생기고 말한대로 길이 열리게됩니다

 

4) 용서의 은혜를 구하세요

용서는 용써서 될 일이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도로서 구해야합니다.

 

5)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넣고 부추기는 마귀를 축사하세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죽은 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각하시겠지만, 그 사람은 20011130일 교통 사고로 사망한 후 3일뒤인 2001122일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는 나이지리아의 오니샤라는 도시에 위치한 파워 차펠 복음의 교회의 담임 목사인 다니엘 에케츄큐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사망한 후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후 돌아왔습니다. 그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 것은 그를 위한 중보기도와 그를 통해 천국과 지옥, 그리고 심판도 실재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하나님의 선처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 목사님은 이미 불타는 지옥에서 지옥행 판결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지옥의 현장에서 천사가 말했습니다.

다니엘! 당신이 본 이곳(지옥)이 당신이 받을 몫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습니다. “아니예요! 나는 목사예요. 나는 거듭났어요. 저는 이 나라 여기저기를 다니며 설교했고... 이건 있을 수가 없어요 저는 아... 안돼요.”

 

천사가 말했습니다. “됐어요. 다니엘, 당신이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당신의 아내가 용서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부인을 용서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은 부인을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 당신은 용서받게 된다는 식이죠?”

 

다니엘은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그 말을 했을 때 그의 영 깊은 곳에서 천사가 한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자기에게 내려진 그 심판이 사실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그는 자기 부인을 용서하지 않아서 자신이 용서받지 못했다고 천사가 말했을 때 그는 계속 울부짖으며 소리쳤어요. 그는 완전히 패닉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살아난 것이 큰 은혜였습니다. 그렇지 않고 남아있었다면 그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본 지옥에서는 자신과 같이 용서하지 않아서 지옥에 온 사람도 나옵니다. 그는 지옥에서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열심히 주절거리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그 여자는 복음의 메시지를 잘 알고 있었던 믿는 자였습니다. 더욱이 35년 동안이나 교회를 담당했던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이런 지옥에 오게 된 것일까요? 카멜로 브레네스는 예수님을 통해 그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 목사에게는 평생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던 특정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 목사는 그 녀의 남편을 용서할 수도 없었고 용서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자가 목사일지라도 지옥에 가게 한 치명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목사이고, 신자일지라도 조건적으로 만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 또한 그의 죄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14-15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카멜로 브레네스 목사님은 이 여자 목사가 지옥에 오게 된 진실을 알고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남편이나 당신의 아내와 문제가 있다면 그들을 용서해야하는 시간은 바로 오늘입니다오늘이야말로 그들을 불러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아니면 "저는 당신이 저에게 했던 모든 일들을 용서합니다."  서로 화해하세요!"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이 용서할 시간입니다. 용서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차일피일 미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미루다가 심판의 날이 갑자기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은 일이 됩니다. 오늘 간증처럼 지옥에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교회에 속해있고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의 용서와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로, 용서는 지금 당장 행하여야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용서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용서할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아직도 용서는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도 여러분의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누가복음 23:34)

용서가 힘들다면 예수님에게 나아가 용서의 비결을 구하세요.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용서하는 자가 되기 위해 은혜를 구하세요. 용서가 어렵다면 나 때문에 상처입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른 면,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그분의 심판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나를 구하고 세상을 구한 것은 정의가 아니고 심판이 아닙니다.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그 용서가 당신의 것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의 열매가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용서를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해 준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다른 누구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미 용서의 능력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용서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불의한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용서할 수 있기에 용서하라 요구하신 것입니다.

용서는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겉으론 남을 용서하니 남에게만 유익이 있는 것 같지만 용서는 나를 살리는 것이고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유익을 줍니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


본문 : 마태복음 6:14,15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유기성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용서받아야 할 때도 있고 용서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죄를 짓고 용서받는 것도 어렵지만 못지 않게 용서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고, 용서가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이들을 많이 봅니다. 용서해 달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뻔뻔해 보입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이 살 길은 용서하는 길 뿐입니다."


사실 용서는 어렵습니다 왜 어려운 것일까? 지금이 용서가 어려운 분노의 시대라서 더욱더 용서가 어려운 것일까? (심지어 남성혐오, 여성혐오 젠더갈등) 특히 교회 다니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용서는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남을 용서하는 것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피로 구원받으니까, 나의 믿음으로 구원받으니까 이것만 강조하다보니 용서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빛을 보지 못 하고 간과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치우친 구원의 가르침이 균형을 잡고 제자리를 찾아야할 때입니다. 둘째는 용서를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용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상처 받았어" 하며 자신의 상처에 분노하고 또는 자기연민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 상처가 사실은 자신에게 늪이 되고 덫이 되고 올가미가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 합니다그 상처에 매여서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셋째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마귀에게서 온 것을 모르고 속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조장합니다 과거의 상처, 과거에 당한 일들을 자꾸 떠오르게 합니다 분노하게 하고 원한을 갖게 합니다 마귀가 가론유다에게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듯이 여러분에게도 충분히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용서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에서 용서하지 마라 하고 말하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해묵은 과거를 들춰내며 분노와 미움을 조장하는게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여러분이 용서하지 못하게 해서 지옥에 끌고 가려는 마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고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여러분에게 온 것이 아니라 마귀가 넣어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위대한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 사랑을 나를 극복하고 실천하는 것이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용서해야하는 것일까요?

1) 조건적으로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나를 결단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내가 용서해야 하나님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것입니다. 그가 회개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믿는 사람일지라도,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그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가 받은 죄용서와 구원은 취소되고 무효가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구원의 능력이 있다는 것과 나에게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나의 용서를 전제로 합니다. 그건 제외할 수 없는 필수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한 자, 용서하기로 작정한 자를 용서하시지 용서하지 않는 자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공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하셨는데, 정작 그런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이고 불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내가 진심으로 죄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나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합니다. 그것이 나를 용서하신 분의 조건적인 요구인 것입니다. 다른 모든 죄는 예수의 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는 죄를 예수의 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용서하지 않는 죄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회개는 하는데 용서는 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짓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어떤 회개를 열심히 했어도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단코 용서받지 못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피로 죄사함 받기를 원한다면 조건적으로 여러분은 남의 죄를 먼저 용서해 줘야합니다.

2) 하나님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길줄 알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비유로 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데나리온 빚진 자가 나옵니다. 우리의 화폐단위로 바꿔말하면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 정도 됩니다. 6000배가 될 정도로 달란트가 큰 단위라는 것이죠. 그래서 만달란트는 6000만원, 백데나리온은 100만원 정도의 우리돈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6000만원 탕감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빚진 100만원 빚진 사람을 탕감해주지 못해서 무자비하게 닥달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남에게 큰빚을 졌다가 탕감을 받는 은혜를 받았다면 그도 남에게 인색하지 않고 받은 은혜대로 작은 빚을 탕감해 줄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결국 큰 자비를 받고도 자신은 무자비함으로 응수하여 그는 탕감받은 모든 것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8:33에서 큰 빚을 탕감해준 사람이 진노하여 이렇게 지적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겼는데 너도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지, 내가 너를 용서하였는데 너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지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평한 정의입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겼는데 너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나는 무엇이 되는 것이냐? 내가 너를 용서하였는데 너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너를 용서한 나를 거부하는 것이고 모욕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더욱이 너에게 잘못한 사람의 죄보다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죄를 용서받은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누가복음 636절에서 37절에 잘 나옵니다.

"36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하나님이 자비로우심 같이 우리도 자비로와야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과 같이 우리도 은혜를 베풀어야합니다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심과 같이 우리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심 같이 우리도 용서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정의이며 조건입니다.

나의 용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모든 구원의 진리와 길과 은혜가 내게 있을지라도 나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스스로 거절하는 것입니다.



3) 용서해야 자유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부정적인 많은 것에 묶이게 되고 막히게 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독을 품고 사는 것처럼 치명적입니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결국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게 만듭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의 저자 중국의 윈형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용서치 않으면 두 가지 상황이 벌어집니다.

첫째, 제 마음이 강퍅해지고 원한의 쓴뿌리가 자리를 잡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손상을 입습니다.

용서는 한쪽만 있으면 됩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할 때, 용서받는 이가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는 이가 자유를 얻습니다.“

아셨습니까? 용서는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합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치 못하는 마음과 원한을 내 마음에 두는 것을 나는 독약을 마시거나 방울뱀 다루는 것과 같이 매우 조심스럽게 대했다. 용서치 못하는 마음과 옳지 못한 감정들은 그 어떤 독약이나 방울뱀보다 더욱 치명적이다.”

브라이언 아담스라는 분은 성령님한테 이런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아들아, 믿음은 나를 움직이지만 용서는 나의 권능을 풀어놓는다.”

믿음은 하나님을 움직이고 용서는 능력을 풀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용서의 권능입니다.

 손기철 장로님이 그 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용서함으로 기름부으심이 흘러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고 월요말씀치유집회에 나와 간증했던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님은 12년이나 류머티즘성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회에서 미움의 뿌리를 뽑으면 병이 낫는데 류머티즘성관절염이 그 대표적인 병이라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매님은 기도하면서 자신이 누구를 미워했는지 떠올려보았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이면 심한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던 장면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러자 온 몸이 떨리고 무서워 울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전해졌지만 자매님은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고 몸서리치며 계속 울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구하자마자 머리 위로 따뜻한 주님의 사랑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아버지를 용서하자 정말 오랜 시간 깊은 곳에 뿌리 박혀 있던 미움이라는 쓴뿌리가 뽑힌 것입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에게 평안이 찾아왔고 관절염으로 부어 있던 발도 편해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미워하던 마음을 용서하고 진정으로 회개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의 기름부으심이 흘러들어와 그것만으로도 놀랍게 치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분명히 죄의 문제입니다. 용서는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마치 쥐약은 자기가 먹고 상대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안 죽고 자기가 죽습니다.

뱀에게 물렸으면 가장 먼저 뱀독부터 뽑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뱀 잡으러 다니는 격입니다.

당신에게 해를 끼친 그 나쁜 인간, 당신이 용서하지 못한 그 사람은 하루 24시간 중에 나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눈만 감으면 그 사람이 생각나고, 그와 비슷한 얼굴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분노가 치솟고 입에서 욕이 나옵니다.

그것은 당신이 용서하지 못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만 영적으로 봤을 때는 당신이 그 사람에게 묶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묶여 있는 한 하나님과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묶인 것이 끊어져야만 죄의 문제가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통로가 열립니다. 그래서 어떤 병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데서 자유하기만 해도 치유됩니다."



어떻게 용서해야할까요?

1) 내가 당한 일을 생각하지 말고 나로 인해 고통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라

자신의 상처를 묵상하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나 때문에 상하신 예수님의 상처를 바라보십시오. 용서받을 수 없는 자, 바로 저와 여러분이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이유로 용서하지 않을 핑계가 없습니다. 그분의 상처 앞에서 나만의 상처를 고집할 수 없습니다. “내 상처, 내 고통만 부르짖든 내가 그의 상처 앞에 녹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 때문에 그분이 상처받아야하는가? 누구 때문에 그분이 고통당해야하는가? 바로 나, 바로 여러분 때문이라면 우리는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야합니다.

"주여 죄인의 중의 괴수가 용서함 받았으니 내가 누구를 용서하지 않으리요" 이것이 우리의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cs 루이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용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어렵습니다.

 

한번의 큰 모욕을 용서하는 건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은 다릅니다.

 

들볶아대는 시어머니, 윽박자르는 남편, 바가지 긁는 아내,

이기적인 딸, 거짓말쟁이 아들을 계속해서 용서하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방법은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기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않으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룻 헤플린

내가 사람들로 인해 가장 상처를 많이 받고 좌절한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는 이 사람을 위해 죽었다"고 내 마음에 속삭이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게 되면 상심하고 있던 내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 버립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돌아가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로 인해 좌절하고 동요하고 화를 낼 자격이 없습니다.

그 사람과는 도무지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극단까지 왔다고 포기해버릴 수 없습니다.

내가 해야할 일은 그를 용서하고 미움과 상처를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나를 불쌍이 여기듯이 남을 불쌍이 여기라

마태복음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에베소서 4:30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3) 용서를 선포해라

말하는대로 됩니다 내가 하는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심지어는 어떤 미동도 없을 때, 의지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말을 하면 논에 물꼬를 터주듯이 내 마음도 그 말한대로 물꼬가 생기고 말한대로 길이 열리게됩니다


4) 용서의 은혜를 구하세요

용서는 용써서 될 일이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도로서 구해야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죽은 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각하시겠지만, 그 사람은 20011130일 교통 사고로 사망한 후 3일뒤인 2001122일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는 나이지리아의 오니샤라는 도시에 위치한 파워 차펠 복음의 교회의 담임 목사인 다니엘 에케츄큐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사망한 후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후 돌아왔습니다. 그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 것은 그를 위한 중보기도와 그를 통해 천국과 지옥, 그리고 심판도 실재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하나님의 선처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 목사님은 이미 불타는 지옥에서 지옥행 판결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지옥의 현장에서 천사가 말했습니다.

다니엘! 당신이 본 이곳(지옥)이 당신이 받을 몫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은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습니다. “아니예요! 나는 목사예요. 나는 거듭났어요. 저는 이 나라 여기저기를 다니며 설교했고... 이건 있을 수가 없어요 저는 아... 안돼요.”

 

천사가 말했습니다. “됐어요. 다니엘, 당신이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당신의 아내가 용서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부인을 용서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은 부인을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 당신은 용서받게 된다는 식이죠?”

 

다니엘은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그 말을 했을 때 그의 영 깊은 곳에서 천사가 한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자기에게 내려진 그 심판이 사실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그는 자기 부인을 용서하지 않아서 자신이 용서받지 못했다고 천사가 말했을 때 그는 계속 울부짖으며 소리쳤어요. 그는 완전히 패닉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살아난 것이 큰 은혜였습니다. 그렇지 않고 남아있었다면 그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간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나옵니다. 그는 지옥에서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열심히 주절거리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그 여자는 복음의 메시지를 잘 알고 있었던 믿는 자였습니다. 더욱이 35년 동안이나 교회를 담당했던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이런 지옥에 오게 된 것일까요? 카멜로 브레네스는 예수님을 통해 그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 목사에게는 평생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던 특정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 목사는 그 녀의 남편을 용서할 수도 없었고 용서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자가 목사일지라도 지옥에 가게 한 치명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목사이고, 신자일지라도 조건적으로 만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 또한 그의 죄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14-15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카멜로 브레네스 목사님은 이 여자 목사가 지옥에 오게 된 진실을 알고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남편이나 당신의 아내와 문제가 있다면 그들을 용서해야하는 시간은 바로 오늘입니다오늘이야말로 그들을 불러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아니면 "저는 당신이 저에게 했던 모든 일들을 용서합니다."  서로 화해하세요!"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이 용서할 시간입니다. 용서가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차일피일 미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미루다가 심판의 날이 갑자기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은 일이 됩니다. 오늘 간증처럼 지옥에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교회에 속해있고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의 용서와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로, 용서는 지금 당장 행하여야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용서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용서할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아직도 용서는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도 여러분의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누가복음 23:34)

용서가 힘들다면 예수님에게 나아가 용서의 비결을 구하세요.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용서하는 자가 되기 위해 은혜를 구하세요. 용서가 어렵다면 나 때문에 상처입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른 면,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그분의 심판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나를 구하고 세상을 구한 것은 정의가 아니고 심판이 아닙니다.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그 용서가 당신의 것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의 열매가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용서를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해 준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다른 누구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미 용서의 능력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용서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불의한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용서할 수 있기에 용서하라 요구하신 것입니다.

용서는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겉으론 남을 용서하니 남에게만 유익이 있는 것 같지만 용서는 나를 살리는 것이고 나에게 더할나위 없는 유익을 줍니다.










 


  



 <우루과이 한 작은 성당의 벽에 써있는 기도문>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하지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하지 말아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하지 말아라!

내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 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말아라!

죄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하지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                                                 


 



  





  


하나님께 용서받은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용서할 의무만 있습니다

 

 

 


마태복음 18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누가복음 17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고린도후서 13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골로새서 3

 

12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용서하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 : 마태복음 6:14,15.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어떤 분은 구원받고도 용서하지 않았다고 지옥에 갈 수 있냐고? 그런게 성경에 나오냐고?’ 의문을 가질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정말 용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마가복음 11:25에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는 기도할 때만 용서하라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할 때에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을 우리는 다른 구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23~26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찾기 전에 용서하고 하나님을 찾기 전에 화평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예배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 원하십니까? 먼저 누구에게든 혐의가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기도는 용서하지 않는 심령에는 역사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용서는 나의 기도 응답을 위한 것입니다. 나아가 용서해야 하나님과 관계가 좋은 상태가 되고 용서해야 건강하고 용서해야 형통하며 용서해야 복을 받고 용서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용서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쓴뿌리와 질투와 복수심과 원한과 적대감은 이러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방해합니다. 결국 여러분을 파괴하는 중요한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젠 용서하세요! -
용서는 감정에 의지하면 시작하지도 못합니다. 의지적인 결단과 순종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용서했다고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했을 때, 그리스도인은 용서함으로 계속 주님과 동행할 것인가, 아니면 이 순간부터 자기 마음을 따라 살 것인가, 기로에 서게 됩니다.

C. S.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모두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용서하고 싶은 일과 용서하기 싫은 일을 자기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한이 우리를 삼킬 것입니다. 그 원한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독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실패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마저 무너진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원한으로 속을 끓이며 사는 것은 지옥의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를 기다리면 안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냥 용서하기로 결단하는 겁니다
.

말을 하고 나니 꽤 쉬운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용서하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모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용서의 말을 건내는 순간, 여전히 화가 풀어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용서가 감정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때, 용서와 우리의 감정이 일치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제 마음과 생각을 빚어 주세요. 주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 주세 요. 주님처럼 사랑하도록 도와주세요"’

용서의 경험은 우리가 원해서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를 이전 어느 때보다도 그분께로 더 가까이 이끄십니다.
용서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가장 크게 자라게 됩니다. 단순히 깨어진 관계의 회복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 신실하심, 은혜에 대하여 수 많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용서하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과 하나되는 성숙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 배신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초대교회의 큰 문제였습니다.
그 때 복음서가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제자들의 배신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따라 오시며 다시 세우시는 주님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가 배신자들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초기와 비교할 수 없는 대 핍박이 일어났을 때, 교인들은 담대하게 핍박에 맞섰습니다. 엄청난 순교자들이 일어났습니다. 실패자였던 자신들을 받아준 은혜의 경험이 이제는 순교의 갈망으로 나아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강력함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교리 훈련이나 율법적인 생활로 가능할 수 없습니다. 교리로는 배신자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젠 용서하세요!
주님은 용서하는 일을 우리 혼자 겪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가 용서를 결단할 때, 주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시며, 그 분이 치유와 화해의 주님이심을 알려 주십니다. 끔찍한 일을 당하여 용서해야 하는 고통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외가 있다는 암시는 전혀 없으며

하나님은 결코 빈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

 

누구나 용서란 훌륭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용서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용서라는

말만 꺼내도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게 마련입니다.

용서란 너무나 지키기 힘든 고차원적인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하기 싫은 창피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용서하란 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절반은 제게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당신이 폴란드인이나 유대인이라면 과연 게슈타포를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소?”

저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알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알고 싶습니다.

고문을 당해 죽게 되더라도 목숨 때문에 신앙을 부인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정말 그런 상황 속에서 신앙을 부인하지 않을지 알고 싶은 것처럼 말입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의 한복판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른 방법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용서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할 수 있다면 용서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생각해야 합니다.


윈형제

용서치 않으면 두 가지 상황이 벌어집니다.

첫째, 제 마음이 강퍅해지고 원한의 쓴뿌리가 자리를 잡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손상을 입습니다.

용서는 한쪽만 있으면 됩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할 때, 용서받는 이가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는 이가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흘려보내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십니까? 반드시 용서하고 자유하십시오. 세상적으로는 용서할 수 없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넉넉히 용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크나큰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 맛본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움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때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지고 친밀함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_요일 4:20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분노의 마음으로 가득 차서 엄청난 에너지를 허비하며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과 올바른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독합니다. 율법적이고 성미가 급하고 자기방어적이고 두려워하고 기쁨이 없고 영적으로 메말라 있고 의사소통이 어렵고 비판적이고 내적 분노가 많고 독선적이고 친밀감도 결핍되어 있습니다.

위기대처에 무능력하고 태도도 부정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에 기도생활도 막힙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느니 용서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과 나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용서한다는 것은 나는 이미 십자가로 죽었기 때문에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악을 행한 사람을 심판하고 복수하려는 권리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_롬 12:19

하지만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 아닙니다. 내가 당한 수모와 수치, 억울함, 증오심 등은 내 온 몸에 퍼져 있는 독입니다. 그 감정의 독을 뽑아내야 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확인하고 인정하십시오. 고통과 아픔을 최소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용서는 봐주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 맞지만 그 판단과 정죄를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학대하거나 무시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한 고통을 부인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당신이 다 용서했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끄집어내십시오. 미움이든 수치심이든 분함이든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 앞에 토출해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두 손을 놓아버려야 됩니다. 하나님께 맡겨드리십시오.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말과 행동 등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용서하십시오. 회개와 용서를 통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비워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기름부으심은 그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 부어집니다. 기름부으심이 넘칠 때 내 마음에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참 평안이 찾아옵니다.

- 손기철, 기름부으심

               

오늘은 카멜로 브레네스 목사님의 충격적인 지옥 간증으로 말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는 1982년에 사고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대한 실체를 직접 다양하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 은혜로 다시 세상에 돌아와 자신이 경험한 사후세계의 실체를 전하는 복음전도자로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용서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모두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용서하고 싶은 일과 용서하기 싫은 일을 자기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용서는 예외 없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용서에 대해 충분히 경각심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용서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용서 그 이상의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용서를 요구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왜 조건적으로 네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하신 것일까요용서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되고 용서 다음으로 도달해야할 다음 단계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든&게일 맥도날드

용서란 관계에 상처가 생겼을 때 그 일로 인해 상대방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잊어버리는 것이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그것이 우리를 좌절에 빠뜨리는 개념이다. 인간의 속성상, 대개는 잊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설사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못했을지라도 상대에게 정말 필요한 것 곧 긍휼을 베풀기로 선택했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정확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