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복(回復)
마태복음 17:9-13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의 수제자를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웅 중의 영웅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으로 더불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황홀경에 빠진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예수님의 일행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런 엄청난 사건이 있은 후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산상에서 엘리야를 보았기 때문일까? 제자들의 뇌리에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엘리야에 관한 예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엘리야가 세례 요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에는 회복의 비결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회복되기를 원하시죠? 아마 누구에게나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한 두 가지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회복의 비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먼저 선지자 엘리야가 와야 합니다.
제자들이 변화산상에 나타난 엘리야를 보고 기억에 떠올린 예언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말 3: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요엘 선지자의 성령강림에 관한 예언(욜 2:28-29),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예언한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언(마 24장)의 경우처럼 말라기 선지자의 이 예언 역시 이중적인 예언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두 가지를 예언하고 있고, 따라서 두 번에 걸쳐 성취되게 될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이 예언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직전에 각각 성취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왕입니다. 보통 왕이 어디에 가기 전에 먼저 가서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준비하는 자가 바로 선지자 엘리야입니다(말 3:1).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두 번 오시기 때문에 선지자 엘리야의 출현도 이 세상에 두 번에 걸쳐서 있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의 초림 직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이 땅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사자 즉 엘리야는 누구입니까? 진짜로 엘리야 선지자입니까? 아닙니다 세례요한입니다.
마 17:10-13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그러면 세례요한은 세례요한이지 어떻게 세례요한이 엘리야 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이 오리라 한 엘리야인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이 세상에 다시 출현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엘리야를 보냈듯이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다시금 엘리야를 보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시킬 것입니다.
얼마 전 새벽 기도 시간에 하나님은 저에게 새로운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성령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오리라 한 엘리야의 사명은 단지 유대민족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례요한 한 명으로 족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직전 복음은 예수님이 친히 예언하신 대로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고, 엘리야의 사명은 모든 민족을 준비시키는 것으로 확장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하나님은 초림 때와 같이 한 사람의 엘리야를 보내지는 않으실 것이다. 모든 민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수백 수천 수만의 세례요한들을 세상에 보내실 것이다.'
여러분, 저는 허황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런 증거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이렇습니다.
의학박사 리차드 이비가 쓴 "하늘나라 기행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자기 집 2층 베란다에서 거꾸로 떨어져 목이 부러지고 머리가 깨져서 피가 다 흘러나와 사망한 후에 겪었던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간증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그가 차를 몰고 시내를 달리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는 즉시 "주님 제가 무엇을 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여기에 오게 한 것은 오늘 밤 아더 블레시트에게 기름을 붓기 위함이란다. 내가 그에게 약속한 대로 그를 제 2의 세례 요한으로 만들어 만백성에게 '주가 오실 때가 가까웠느니라' 하고 알리도록 할 것이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더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의 입술을 통해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게 기름을 붓는다. 아더! 제 2의 세례 요한이 되어 세상 통치자들에게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다'라고 알려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것은 세상 백성들에게 내게 돌아오라고 하는 최후의 공식 초청이 될 것이다. 나는 곧 돌아온다."
주님이 그의 입술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동안에 리차드 이비는 금빛 안개로 차안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천국에서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 더 소개해드리지요. 얼마 전 조용기 목사님이 추천한 사무엘 리라는 이란 출신의 젊은이가 쓴 "십자가의 군병"이라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신비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그는 근사한 양복을 입고 멋진 넥타이를 메고 샘소나이트 가방을 든 채로 예루살렘거리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중 어떤 호수 옆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그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는 길고 횐 머리카락과 회색의 길다란 턱수염을 한 노인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크고 나무로 된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그 테이블에는 많은 고서들이 수북히 놓여 있었습니다.
호수의 물은 마치 그를 초청하는 것처럼 보였고, 마음속에서 한 작은 음성이 그 호수의 물 속으로 자신을 던지도록 사무엘 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 말에 순종하여 근사한 양복을 입은 채로 그리고 값비싼 가방을 든 채로 급히 물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신선한 물은 매우 좋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그의 발에 무언가가 닿았습니다. 그가 주워서 들어보니, 그것은 컵이었습니다! 그 컵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보았더니 컵 맨 밑바닥에 히브리어 단어가 하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늙은 노인에게 가서 그 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노인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뛸 듯이 일어나서 그에게 키스를 하며, 또 포옹했습니다.
노인은 평생동안 그 컵을 계속 찾아 왔으며, 그 컵을 찾아다니는 동안 그의 머리카락은 백발이 다 되었지만,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공부하는 책상 곁에 있는 물 속으로 사무엘 리가 뛰어들어서,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찾아오고 있던 것을, 너무 쉽게 발견한 것을 보고 그는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이 컵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무엘 리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컵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동안, 세례 요한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례를 줄 때, 아마도 그것을 사용했을 것입니다."라고 노인은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사무엘 리는 충격을 받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처음에 그는 이 꿈에 대하여 매우 혼란스럽게 느꼈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건 단지 꿈이었을 뿐이야!"
그러나 훗날 그는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의 컵을 찾았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오심에 대해 전파했으며,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세례 받으라고 선포했습니다.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자가 되도록 사무엘 리를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신 것은 언젠가 사무엘 리가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이러한 소명 때문에, 그 물 속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물은 성령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컵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놓기 위하여 그는 자신을 그 물 속으로 던져 넣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전 저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몇 일 전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해석을 해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꿈에서 그 목사님은 고기를 잡기 위해 물에 들어갔는데 거머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거머리들이 발에 붙고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기겁을 하며 그 거머리들을 파내었습니다. 그런데 살 속에서 이상한 글씨가 보여 자세히 보았더니 "엘리야와 세례요한" 이렇게 써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제2 제3의 세례요한으로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다른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견된 일입니다. 오늘 날 미국에서는 많은 선지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의 수장격인 빌 해몬 박사는 "선지자와 개인적 예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유태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엘리야가 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말라기의 예언을 성취하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선지자였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9, 10, 14) 세례요한이 선지자 엘리야의 능력과 영으로 왔습니다. 선지자인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의 길을 예비하였으나, 이제는 선지자들의 무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길을 예비할 것입니다. 1980년도에 선지자들의 무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북아메리카 대륙만 해도 10,000명의 선지자들이 교회 속에 풀려 나오도록 준비 과정에 있다고 저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무리는 엘리야의 능력과 영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말라기의 예언 즉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련된 예언을 성취시킨 것처럼 오늘날의 선지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예언을 성취할 것입니다."
또, 선지자의 무리 가운데서 특별히 돋보이기 때문에 "선지자 중의 선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지자 릭 조이너가 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책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지막 날에 사도들을 보내려 한다. 그들은 바울, 요한,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그들을 세우기 위하여 세례요한 같은 자들을 많이 보내서 내게 헌신하도록 그들에게 가르치게 할 것이며, 회개가 그들의 삶의 기초가 되게 할 것이다. 그 사도들도 역시 세례요한 같을 것이다. 세례요한의 가장 큰 기쁨이 신랑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던 것처럼, 이들은 나의 신부가 나를 위해 준비되도록 하는 그 한 가지에 헌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광야에 길을 내며 사막에 강을 내는 일에 이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들은 높은 곳을 낮아지게 하며 낮은 곳을 높일 것이다. 네가 저 문을 들어서면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말씀 그대로 마지막 날에 주님은 세례요한과 같은 자들을 '많이' 보내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보내시는 세례요한과 같은 자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하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즐겨 받을 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세례요한과 같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할 사역자들을 즐겨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혹 그들을 임의로 대우하지는 않았습니까?
선지자 빌 해몬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재림의 임박함을 나타내 주는 푯대로써 이스라엘을 주시하고 있는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이룬 날을 20세기의 가장 큰 표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교회를 주님의 재림을 나타내는 표적으로 주시하는 사람들은 예언사역과 선지자들의 회복이야말로 예수 재림의 임박함을 알리는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표적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임박하였음을 알려준 가장 위대한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신학자들은 그 당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표적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교파에 속한 목회자들은 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표적인, 성령께서 왕이신 예수의 재림과 또 모든 지상에서 그의 주권을 위해 적절한 준비를 하도록 세우고 있는 선지자들의 무리,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엘리야가 왔지만 아무도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세례요한이 오리라한 엘리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마음이 둔하여져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회복시키기 위해 보내신 선지자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지자들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하는 그들의 메시지를 달게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서 회개하고 회복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엘리야는 회개를 촉구하는 자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입니다. 본래 선지자의 주요기능 중의 하나는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죄를 책망한 선지자 나단이나 아합왕에게 좋지 않은 예언을 한 선지자 미가, 그리고 니느웨에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 요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는 또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취한 아합 왕에게 보냄을 받았고 그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함으로 사악한 왕 아합으로 하여금 베옷을 입고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엘리야! 그는 이스라엘 나라의 왕과 백성들의 회개를 위해 하나님이 강력하게 사용하신 특별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초림이나 재림 직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리라고 약속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 주님은 다른 선지자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초림이든 재림이든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회개이며, 엘리야는 가장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한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말 3: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이것은 세례요한에 관한 예언입니다. 말라기는 세례요한이 오면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 혹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사역을 묘사한 것입니다.
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것 역시 세례요한에 대한 예언으로 볼 수 있는데, 그가 와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돌이키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겔 18:30-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요한복음 1:6에 보면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약속한 대로 하나님은 선지자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이 엠 바운즈는 기도에 대하여 가르쳤고, 제가 존경하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믿음"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또 멀린 캐로더스 목사님은 감사와 찬양을 주로 가르치고 데이빗 씨맨즈는 내적 치유에 대하여 가르치며, 존 아반지니 목사님은 재정과 물질 축복이 그의 주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는 교회 성장과 영적 전쟁에 대하여 가르치고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은 오중 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전합니다. 이것이 그분들의 주된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주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회개입니다.
마 3:1-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며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세리와 군병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도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속히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그 지역의 지배자인 헤롯왕에게까지 목숨을 걸고 헤로디아와의 불륜을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목이 잘려 순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세례요한의 사역입니다. 세례요한은 바로 회개의 메신저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종말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말씀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멸망을 받습니다. 오직 회개한 자만이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때 가장 필요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예수님의 초림 때도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반드시 세례요한이 먼저 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 이전에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1:15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초림 때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 때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그러므로 재림 때는 배나 더 회개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말세지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죄를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 3:19-21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이 말씀을 문맥에 주의하여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이 말씀 역시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죄를 고집하거나 미적미적 거릴 때가 아닙니다. 결단을 내리고 죄를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회개할 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 17:11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엘리야는 세례요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회개의 메신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 회복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와 선지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각자가 회개해야 할 것을 회개하면 다음과 같은 회복의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1) 처음 사랑이 회복됩니다.
계 2:1-5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할 것 중의 하나는 에베소 교회처럼 정통 교리를 갖고 있고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외양적으로는 많은 것을 행하고 수고하고 인내심을 발휘하지만 마음에 주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그 무엇도 하나님 앞에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회개하면 처음 사랑이 회복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의가 회복됩니다.
욥 33:19, 26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징계는 죄의 대가로 받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양심의 가책과 정죄감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자신을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 이렇게 느끼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하면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다시는 기억도 아니하십니다.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우리를 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더 이상 그것으로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의 회복인데 회개하면 의가 회복되어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사역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3) 즐거움이 회복됩니다.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편은 다윗의 유명한 회개 시입니다. 죄는 인간의 기쁨을 말라붙게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다시 기쁨이 회복됩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리셨습니까? 그러면 죄를 회개하십시오. 죄를 회개하기까지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든 행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죄를 회개하고 다시 구원의 감격과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4) 영적 은사들이 회복됩니다.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여기서 "다시 불일듯하게 한다"는 것은 회복을 뜻합니다. 은사를 받았으나 은사가 소진되어 은사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성령 충만한 주의 종들에게 안수 기도를 받는 것도 은사를 회복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러나 은사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이 직접 죄를 깊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깊이 회개하면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은사의 회복은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5) 경제적으로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고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28장). 경제적인 번영을 막고 있는 가장 주된 요인 중의 하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회복이 뒤따르게 됩니다.
욥 22:21-23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이처럼 회개하는 자는 다시 흥합니다. 다시 말해서 경제가 회복됩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회복을 원하는 분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욥 22:24-28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이처럼 경제적인 회복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금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의 보배로 삼아야 합니다.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경제적인 회복이 일어날 때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6) 건강이 회복됩니다.
출 15:26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시 32:3-4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이로 보건대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은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실제로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병이 나은 사람보다 자기 죄를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다가 병이 나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에 보이는 육신의 질병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병의 근원이 되는 영적인 질병 즉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은 자동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 39:7-13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이처럼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치유를 위해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불쌍히 여기사 고쳐 주실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세 가지를 여러분께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들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엘리야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꼭 나 혹은 내 자녀가 아니라 우리 혹은 우리들의 자녀들 속에서 그런 사람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십시오.
둘째, 세례요한의 목을 베지 마십시오. 물론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는 달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칭찬은 잘 하고 있는 것이므로 안 받아도 큰 손해가 없지만 책망은 잘못하고 있는 것이므로 안 해 주면 큰일입니다. 책망은 칭찬보다 배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를 치지 말고 자기 몸을 쳐서 회개하고 복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셋째, 회개 이외에는 길이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회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회복이 필요할 때 절대로 인간적인 다른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오직 회개만이 살길인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7:9-13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의 수제자를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영웅 중의 영웅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으로 더불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황홀경에 빠진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예수님의 일행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런 엄청난 사건이 있은 후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산상에서 엘리야를 보았기 때문일까? 제자들의 뇌리에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엘리야에 관한 예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엘리야가 세례 요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에는 회복의 비결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회복되기를 원하시죠? 아마 누구에게나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한 두 가지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회복의 비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먼저 선지자 엘리야가 와야 합니다.
제자들이 변화산상에 나타난 엘리야를 보고 기억에 떠올린 예언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말 3: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요엘 선지자의 성령강림에 관한 예언(욜 2:28-29),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예언한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언(마 24장)의 경우처럼 말라기 선지자의 이 예언 역시 이중적인 예언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두 가지를 예언하고 있고, 따라서 두 번에 걸쳐 성취되게 될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이 예언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직전에 각각 성취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왕입니다. 보통 왕이 어디에 가기 전에 먼저 가서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준비하는 자가 바로 선지자 엘리야입니다(말 3:1).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두 번 오시기 때문에 선지자 엘리야의 출현도 이 세상에 두 번에 걸쳐서 있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의 초림 직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이 땅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사자 즉 엘리야는 누구입니까? 진짜로 엘리야 선지자입니까? 아닙니다 세례요한입니다.
마 17:10-13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그러면 세례요한은 세례요한이지 어떻게 세례요한이 엘리야 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이 오리라 한 엘리야인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이 세상에 다시 출현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엘리야를 보냈듯이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다시금 엘리야를 보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시킬 것입니다.
얼마 전 새벽 기도 시간에 하나님은 저에게 새로운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성령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오리라 한 엘리야의 사명은 단지 유대민족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례요한 한 명으로 족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직전 복음은 예수님이 친히 예언하신 대로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고, 엘리야의 사명은 모든 민족을 준비시키는 것으로 확장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하나님은 초림 때와 같이 한 사람의 엘리야를 보내지는 않으실 것이다. 모든 민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수백 수천 수만의 세례요한들을 세상에 보내실 것이다.'
여러분, 저는 허황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런 증거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이렇습니다.
의학박사 리차드 이비가 쓴 "하늘나라 기행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자기 집 2층 베란다에서 거꾸로 떨어져 목이 부러지고 머리가 깨져서 피가 다 흘러나와 사망한 후에 겪었던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간증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그가 차를 몰고 시내를 달리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는 즉시 "주님 제가 무엇을 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여기에 오게 한 것은 오늘 밤 아더 블레시트에게 기름을 붓기 위함이란다. 내가 그에게 약속한 대로 그를 제 2의 세례 요한으로 만들어 만백성에게 '주가 오실 때가 가까웠느니라' 하고 알리도록 할 것이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더에게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의 입술을 통해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게 기름을 붓는다. 아더! 제 2의 세례 요한이 되어 세상 통치자들에게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다'라고 알려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것은 세상 백성들에게 내게 돌아오라고 하는 최후의 공식 초청이 될 것이다. 나는 곧 돌아온다."
주님이 그의 입술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동안에 리차드 이비는 금빛 안개로 차안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천국에서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 더 소개해드리지요. 얼마 전 조용기 목사님이 추천한 사무엘 리라는 이란 출신의 젊은이가 쓴 "십자가의 군병"이라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신비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그는 근사한 양복을 입고 멋진 넥타이를 메고 샘소나이트 가방을 든 채로 예루살렘거리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중 어떤 호수 옆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그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는 길고 횐 머리카락과 회색의 길다란 턱수염을 한 노인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크고 나무로 된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그 테이블에는 많은 고서들이 수북히 놓여 있었습니다.
호수의 물은 마치 그를 초청하는 것처럼 보였고, 마음속에서 한 작은 음성이 그 호수의 물 속으로 자신을 던지도록 사무엘 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 말에 순종하여 근사한 양복을 입은 채로 그리고 값비싼 가방을 든 채로 급히 물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신선한 물은 매우 좋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그의 발에 무언가가 닿았습니다. 그가 주워서 들어보니, 그것은 컵이었습니다! 그 컵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보았더니 컵 맨 밑바닥에 히브리어 단어가 하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늙은 노인에게 가서 그 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노인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뛸 듯이 일어나서 그에게 키스를 하며, 또 포옹했습니다.
노인은 평생동안 그 컵을 계속 찾아 왔으며, 그 컵을 찾아다니는 동안 그의 머리카락은 백발이 다 되었지만,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공부하는 책상 곁에 있는 물 속으로 사무엘 리가 뛰어들어서,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찾아오고 있던 것을, 너무 쉽게 발견한 것을 보고 그는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이 컵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무엘 리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컵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동안, 세례 요한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례를 줄 때, 아마도 그것을 사용했을 것입니다."라고 노인은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사무엘 리는 충격을 받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처음에 그는 이 꿈에 대하여 매우 혼란스럽게 느꼈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건 단지 꿈이었을 뿐이야!"
그러나 훗날 그는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의 컵을 찾았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오심에 대해 전파했으며,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세례 받으라고 선포했습니다.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자가 되도록 사무엘 리를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그에게 말씀하신 것은 언젠가 사무엘 리가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이러한 소명 때문에, 그 물 속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물은 성령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컵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놓기 위하여 그는 자신을 그 물 속으로 던져 넣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 전 저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몇 일 전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해석을 해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꿈에서 그 목사님은 고기를 잡기 위해 물에 들어갔는데 거머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거머리들이 발에 붙고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기겁을 하며 그 거머리들을 파내었습니다. 그런데 살 속에서 이상한 글씨가 보여 자세히 보았더니 "엘리야와 세례요한" 이렇게 써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제2 제3의 세례요한으로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다른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견된 일입니다. 오늘 날 미국에서는 많은 선지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의 수장격인 빌 해몬 박사는 "선지자와 개인적 예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유태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엘리야가 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글자 그대로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말라기의 예언을 성취하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선지자였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9, 10, 14) 세례요한이 선지자 엘리야의 능력과 영으로 왔습니다. 선지자인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의 길을 예비하였으나, 이제는 선지자들의 무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길을 예비할 것입니다. 1980년도에 선지자들의 무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북아메리카 대륙만 해도 10,000명의 선지자들이 교회 속에 풀려 나오도록 준비 과정에 있다고 저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무리는 엘리야의 능력과 영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말라기의 예언 즉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련된 예언을 성취시킨 것처럼 오늘날의 선지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예언을 성취할 것입니다."
또, 선지자의 무리 가운데서 특별히 돋보이기 때문에 "선지자 중의 선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지자 릭 조이너가 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책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지막 날에 사도들을 보내려 한다. 그들은 바울, 요한,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그들을 세우기 위하여 세례요한 같은 자들을 많이 보내서 내게 헌신하도록 그들에게 가르치게 할 것이며, 회개가 그들의 삶의 기초가 되게 할 것이다. 그 사도들도 역시 세례요한 같을 것이다. 세례요한의 가장 큰 기쁨이 신랑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던 것처럼, 이들은 나의 신부가 나를 위해 준비되도록 하는 그 한 가지에 헌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광야에 길을 내며 사막에 강을 내는 일에 이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들은 높은 곳을 낮아지게 하며 낮은 곳을 높일 것이다. 네가 저 문을 들어서면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말씀 그대로 마지막 날에 주님은 세례요한과 같은 자들을 '많이' 보내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보내시는 세례요한과 같은 자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하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즐겨 받을 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세례요한과 같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할 사역자들을 즐겨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혹 그들을 임의로 대우하지는 않았습니까?
선지자 빌 해몬은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재림의 임박함을 나타내 주는 푯대로써 이스라엘을 주시하고 있는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이룬 날을 20세기의 가장 큰 표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또한 교회를 주님의 재림을 나타내는 표적으로 주시하는 사람들은 예언사역과 선지자들의 회복이야말로 예수 재림의 임박함을 알리는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표적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가 임박하였음을 알려준 가장 위대한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신학자들은 그 당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표적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교파에 속한 목회자들은 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표적인, 성령께서 왕이신 예수의 재림과 또 모든 지상에서 그의 주권을 위해 적절한 준비를 하도록 세우고 있는 선지자들의 무리,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엘리야가 왔지만 아무도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세례요한이 오리라한 엘리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마음이 둔하여져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회복시키기 위해 보내신 선지자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지자들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하는 그들의 메시지를 달게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서 회개하고 회복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엘리야는 회개를 촉구하는 자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입니다. 본래 선지자의 주요기능 중의 하나는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죄를 책망한 선지자 나단이나 아합왕에게 좋지 않은 예언을 한 선지자 미가, 그리고 니느웨에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 요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는 또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취한 아합 왕에게 보냄을 받았고 그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함으로 사악한 왕 아합으로 하여금 베옷을 입고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엘리야! 그는 이스라엘 나라의 왕과 백성들의 회개를 위해 하나님이 강력하게 사용하신 특별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초림이나 재림 직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리라고 약속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 주님은 다른 선지자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초림이든 재림이든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회개이며, 엘리야는 가장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한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말 3: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이것은 세례요한에 관한 예언입니다. 말라기는 세례요한이 오면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 혹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사역을 묘사한 것입니다.
말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것 역시 세례요한에 대한 예언으로 볼 수 있는데, 그가 와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돌이키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겔 18:30-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요한복음 1:6에 보면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약속한 대로 하나님은 선지자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이 엠 바운즈는 기도에 대하여 가르쳤고, 제가 존경하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믿음"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또 멀린 캐로더스 목사님은 감사와 찬양을 주로 가르치고 데이빗 씨맨즈는 내적 치유에 대하여 가르치며, 존 아반지니 목사님은 재정과 물질 축복이 그의 주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는 교회 성장과 영적 전쟁에 대하여 가르치고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님은 오중 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전합니다. 이것이 그분들의 주된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의 주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회개입니다.
마 3:1-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며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세리와 군병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도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속히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그 지역의 지배자인 헤롯왕에게까지 목숨을 걸고 헤로디아와의 불륜을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목이 잘려 순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세례요한의 사역입니다. 세례요한은 바로 회개의 메신저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종말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말씀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멸망을 받습니다. 오직 회개한 자만이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때 가장 필요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예수님의 초림 때도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반드시 세례요한이 먼저 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 이전에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1:15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초림 때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 때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그러므로 재림 때는 배나 더 회개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말세지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죄를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 3:19-21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이 말씀을 문맥에 주의하여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이 말씀 역시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죄를 고집하거나 미적미적 거릴 때가 아닙니다. 결단을 내리고 죄를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회개할 때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 17:11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엘리야는 세례요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회개의 메신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 회복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와 선지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각자가 회개해야 할 것을 회개하면 다음과 같은 회복의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1) 처음 사랑이 회복됩니다.
계 2:1-5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할 것 중의 하나는 에베소 교회처럼 정통 교리를 갖고 있고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외양적으로는 많은 것을 행하고 수고하고 인내심을 발휘하지만 마음에 주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그 무엇도 하나님 앞에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회개하면 처음 사랑이 회복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의가 회복됩니다.
욥 33:19, 26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징계는 죄의 대가로 받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양심의 가책과 정죄감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자신을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 이렇게 느끼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하면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다시는 기억도 아니하십니다.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우리를 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더 이상 그것으로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의 회복인데 회개하면 의가 회복되어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사역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3) 즐거움이 회복됩니다.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편은 다윗의 유명한 회개 시입니다. 죄는 인간의 기쁨을 말라붙게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다시 기쁨이 회복됩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리셨습니까? 그러면 죄를 회개하십시오. 죄를 회개하기까지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든 행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죄를 회개하고 다시 구원의 감격과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4) 영적 은사들이 회복됩니다.
딤후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여기서 "다시 불일듯하게 한다"는 것은 회복을 뜻합니다. 은사를 받았으나 은사가 소진되어 은사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성령 충만한 주의 종들에게 안수 기도를 받는 것도 은사를 회복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러나 은사를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이 직접 죄를 깊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깊이 회개하면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은사의 회복은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5) 경제적으로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고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28장). 경제적인 번영을 막고 있는 가장 주된 요인 중의 하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회복이 뒤따르게 됩니다.
욥 22:21-23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이처럼 회개하는 자는 다시 흥합니다. 다시 말해서 경제가 회복됩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회복을 원하는 분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욥 22:24-28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이처럼 경제적인 회복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금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의 보배로 삼아야 합니다.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경제적인 회복이 일어날 때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6) 건강이 회복됩니다.
출 15:26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시 32:3-4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이로 보건대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은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실제로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다가 병이 나은 사람보다 자기 죄를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다가 병이 나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에 보이는 육신의 질병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병의 근원이 되는 영적인 질병 즉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은 자동적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 39:7-13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이처럼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치유를 위해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불쌍히 여기사 고쳐 주실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세 가지를 여러분께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들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엘리야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꼭 나 혹은 내 자녀가 아니라 우리 혹은 우리들의 자녀들 속에서 그런 사람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십시오.
둘째, 세례요한의 목을 베지 마십시오. 물론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는 달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칭찬은 잘 하고 있는 것이므로 안 받아도 큰 손해가 없지만 책망은 잘못하고 있는 것이므로 안 해 주면 큰일입니다. 책망은 칭찬보다 배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를 치지 말고 자기 몸을 쳐서 회개하고 복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셋째, 회개 이외에는 길이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회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회복이 필요할 때 절대로 인간적인 다른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오직 회개만이 살길인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겸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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