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9 칠월 2007 | |||||
지난 2~30년간 산업계에는 개조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이 개조작업은 기본적인 조직 구조에서부터 제품 생산 과정, 마케팅 및 유통 과정에까지 전방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여러 산업과 비즈니스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떤 분야에서는 부진한 실적을 개선하는 정도의 적은 효과만 보고 결국에는 실패하고 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개조 바람은 여러 교회 안에서 유행이 되었고, 변화가 절실했던 많은 교회에는 큰 유익을 주었습니다. 일부 교회에서도 스타일이나 근본 조직 같은 것을 바꾸었지만, 실패한 사례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본 메시지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세상의 방법이 줄 수 있는 도움의 한계 때문에 그랬습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메시지는 매우 결정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 친구인 프란시스 프란지페인이 가끔 말하는 것처럼 요즘 교회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필요한 주님만 빼고 말이지요. 우리 안에 계셔서 주님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루시고, 이를 통해 우리를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으로부터 구별시키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저 세간의 이목이나 끄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주님께 매력적인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직접 세우실 때 가능합니다..
물론 시대에 맞게 적절하게 적응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은 그 당시 시대상황에 적합한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물가 여인에게 거듭나는 것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시고 생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목마른 사람이었지 니고데모와 같이 나이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게 각각 다른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 교회들이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 있는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각 교회에는 독특한 필요가 있으며, 고유의 목표가 있습니다. 교회가 인류 역사에 범한 가장 큰 범죄 중 하나는 너무 지겹고 경직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주님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일 입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모든 창조물들은 주님께서 얼마나 다양성과 창조성을 사랑하시는지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자를 알고 그분을 나타내는 일에 부름 받은 크리스찬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넘치는 창조력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패션, 음악, 영화, 그 외 모든 장르의 예술에 이르기까지 최신의 트렌드를 찾는 곳이 바로 교회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시대 교회는 모든 영역-음악이나 리더십, 경영, 혁신 트렌드까지도 이 세상에 몇 십 년은 뒤져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앞서 나가는 세상의 수준이나 깊이에 조차 미치지 못하는 더 슬픈 상황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변화될 것이며, 한번 시작된 변화는 더욱 빠르게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변하고자 한다면, 세상이 훨씬 잘하는 분야 예를 들면 연예오락과 같은 분야에서 세상과 경쟁하려는 생각을 먼저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술이나 오락 위에 무엇인가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예배가 쇼에 지나지 않고 영속할 수 없는 것을 세우는 일에 불과하게 됩니다. 영속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근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형태의 오락보다도 훨씬 흥미진진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장 깊은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가 가질 수 있는 두 번째 강력한 제품은 진정한 교제입니다. 주님께서 좋지 않은 것이라고 가장 먼저 지적하셨던 것이 바로 고독함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는 보고가 무척 많습니다. 아파트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나도록 서로 이름도 모르고 지냅니다. ‘Cheers’나 ‘Friends’같은 드라마가 그렇게 인기 있는 이유도 다 이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교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실제 친구를 만들기 보다는 드라마 속 인물과 가상의 관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파괴되면서 이런 외로움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장 깊은 교제를 나누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런 패턴을 따라가는 조직이라면 외로움에 빠진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처음 온 사람들이 환영받는다고 느끼도록 노력해야 하며,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서 쉼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의 깊은 교제를 보게 되었으나, 거기에 속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게 되면, 반감만 생기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교제는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진정 어린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위에 세워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교회는 이 사람들을 향해 우리 마음과 가정의 문을 열 것 입니다.
주님의 임재나 진정한 교제와 같이 정말로 중요한 요소들을 기억하면서, 교회 안에서 매우 중요한 창조성과 리더십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우리는 왕 중의 왕이신 주님- 모든 규칙과 권위, 주권 위에 계시는 분을 드러내도록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은 최고의 리더십과 경영법을 배우기 위해 교회의 문을 두드려야만 합니다. 최고의 지도자 우리 왕이신 주님을 섬기는 그분의 제자들 외에 더 뛰어난 리더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교회는 이런 리더십에서는 한참 멀어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변화할 것입니다. 수백 년간 갇혀있던 교회 안의 창조성이 이제 곧 펼쳐질 것처럼 말입니다. 창조력과 리더십은 서로 아주 긴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역사상 훌륭한 지도자들은 대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었으며, 동시에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는 한계를 뛰어 넘어서 생각했던 이들입니다. 또한 범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혁신해 나갈만한 자신감과 담대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부르심은 머리이지 꼬리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세상이 교회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기본적인 속성 역시 창조성과 리더십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가까이 따르는 자 역시 주님의 그런 모습을 배울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완전히 변화되어 그 누구보다도 큰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고 살았다는 것이 아마도 좋은 예일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는 커다란 성령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청년들 가운데 이런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 지도자들은 장차 세계 교회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새롭게 일어나는 이 세대는 지금까지의 어떤 세대와도 다른 특별한 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엄청난 잠재력을 봅니다. 급진적이고 성경적인 기독교가 이 땅에 본이 될 뿐만 아니라, 이전 세대들이 진정으로 꿈꾸어 온 바, 주님이 약속대로, 주님보다 더 큰 사역들을 시작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그 일에는 많은 장에 물들이 있겠지만, 우리 젊은 세대들은 계속해서 도전해 갈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수아 9장 3~6절에 나온 것처럼, 그는 실패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제 같은 함정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의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과 언약을 맺었고,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해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성공하기 시작했을 때, 주님의 약속의 땅을 취하기 시작했을 바로 그때, 상한 빵과 낡은 가죽부대를 가지고 오는 이들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념비적인 승리가 새로운 세대에서 일어날 때, 이들은 협력과 동맹 관계에 의지하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동시에, 이 세대는 그 약속의 땅에서 자기 부모님을 잘 섬기지 못하면, 그 땅에 오래 거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주님이 주신 땅에서 장수할 수 있는 약속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이 두가지를 잘 균형 잡아야만, 이 세대들이 바른 길에 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이스라엘 여러 세대를 거쳐 다스리면서 그 약속의 땅으로 이끄신 것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생각됩니다. 자신들의 다음세대가 일어나기 전, 그들이 청년이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역시 그 당시의 새로운 세대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부모세대의 실수로 인해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게 되었지만, 그것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의 땅을 취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들임을 스스로 검증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인내입니다.
여기 새로운 세대가 또 다시 강을 건너려고 합니다. 이전 세대에도 특출한 리더들이 많이 있어 젊은 세대들을 이끌어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들 중년 세대 역시 믿음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과거 세대의 많은 요소들이 빨리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 세대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라는 신앙의 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점점 불평하고, 화만 내는 나이든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들은 바로 스스로 비전과 신앙을 키우기 위해 무엇인가 하기 보다는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는데 시간을 더 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세대에 있다는 말은, 은혜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든 이들을 위한 시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과거의 행동들을 회개하고 진정으로 필요한 지도자로 변화될 기회가 아직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요단강 앞에 거의 다다르고 있습니다.
작성자 ANi선교회 |
'좋은 글 그리고 감동 예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누가 그를 그 자리에 두었나 (「순종」/ 존 비비어) (0) | 2009.01.01 |
---|---|
[스크랩] 오상의 비오신부님에 대한 핍박 (0) | 2008.12.11 |
[스크랩] 둘째 하늘을 뚫고 올라가서 셋째 하늘과 교통하세요! (즉흥설교) (0) | 2008.11.17 |
[스크랩] 김옥경 전도사님 사랑과 진리 교회 설교 11. 4 (전문은 아님^.^) (0) | 2008.11.17 |
수선화에게 (0) | 2008.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