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스크랩] 마틴로이드 존즈 -회개 없는 구원은 없다.

하늘감동 2009. 3. 15. 18:39

성경에 나타난 회심자들의 간증을 읽다 보면, 거기에는 회개라는 요소가 빠지지 않고 나타납니다. 성인들의 전기나 과거 하나님의 교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적 거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회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맛본 사람들은 누구나 회개의 표징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회개 없는 구원은 없다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립니회개의 필요성이야말로 성경이 논쟁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회개를 말할 뿐입니다. 성경은 회개를 자명한 일로 여깁니다. 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회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서 기독교의 구원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그러므로 저는 회개야말로 지극히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역을 시작하면서 죄를 용서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 최초의 전도자가 선포한 첫 메시지는 바로 회개 였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우리 주님이시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루 다니면서 회개를 선포하셨습니다회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 또한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촉구했습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후원 아래 오순절에 최초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어떤 이들이 가슴을 치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울부짖자, 베드로는 "회개하십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을 알 수도, 체험할수도 없습니다. 회개는 필수적인 단계이자, 첫 번째 단계입니다.  마틴 로이드 조즈의 회개, 죄인의 고백中(p16~17)

(로이드 존즈가 여기서 말하는 회개는 처음 회개를 말하며, 그후에 타락(죄가 습관이 되어버린 상태)하면 다시 회개 해야하며 범죄(순종 중 우발적으로 죄를 범함)는 고백해야 합니다. 즉 처음 회개후 다시 회개와 고백 이 두가지가 죽을 때가지 공존, 반복 될수 있읍니다. 범죄한자가 자백 한두가지 안했다고 지옥가지는 않지만 타락한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한국 교회에서 믿음의 행함을 이야기하면 이단 감별사들에 의해 가차 없이 이단으로 정죄되기 쉬우며, “행함으로 상급을 받는다.”라고 믿음과 행함을 분리, 상대적으로 믿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복음서에는 구원에 있어서 신자의 행함이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등 많은 구절이 복음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서와 바울서신에도 나와 있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빌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종교개혁 당시 마틴 루터는 로마서를 통하여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이신칭의 사상을 회복, 전개하였고 이것은 오직 말씀으로(sola scriptura) 오직 은혜로(sola gratia)와 같이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이 되었다. 이 사상은 루터가 고행(무릎으로 계단걷기등)을 통해 스스로의 구원에 이르려고 하다가 발견하게 된 깨달음이었다.그런데 이러한 깨달음은 지적 동의로의 믿음, 선행구원을 강조해온 기존 카톨릭 교회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루터는 성경적 구원관을 간과한 채 믿음보다 행함을 더 강조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 이라고 혹평하며 야고보서를 포함 4개의 서신을 정경범위에서 제외 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독일어 번역성서에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는 바울의 의인론에 “오직 ..만”(sola)을 덧붙인다. 

 

성경 복음서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과 거듭남 성화로서의 구원을 함께 증거하고 있는데 종교개혁 전통에 따라 개신교회는 칭의로서의 구원을 핵심사상으로 강조 해 왔으며, 믿음과 행함의 구원론적 관계를 복음서의 메시지가 깊이 반영되지 못하고 바울의 이신칭의 관점에서 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오랜  학습효과에 의해서 -구원은 "오직 믿음"인데 "회개"를 말한다. 그러니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직믿음"을 광적으로 오직 그것만 믿어서,다른 요소는 들어갈 틈이 없다.

(다른 요소가 있다는 뜻이아니라 믿음은 한가지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직믿음"인데 회개가 왜 들어가냐고 말하며 믿음과 행함을 구분(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행함으로 상급 받는다)하려는 못된 이 버릇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오직믿음"에서 믿음이라는 개념이 진짜 어떤것인지 왜 알고 싶어하지 않는가?  

믿음의 순종인 행함을 말하면 행위구원론, 성화구원론으로 인식되는 이 한심한 현실은 왜 그런가?

 

 바울사도가 로마서에서 의인(칭의)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행위는 율법의 행위이며 야고보서가 말하는 의인(최후의 심판대 앞에서의 의인)의 조건으로 말하는 행함은 믿음의 표현으로서의 행함(믿음이 원인이고 행함이 결과가 아니라 믿음은 행함을 포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교회가 세상에게 밟히고 개독교로 불리는 지금,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회원 모집하고, 강대상에서 잘못 가르치고, 성도는 편한것만 배우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세요!  이렇게 가르치면 안된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 입니다! 이세상을 밝히고 변화시키세요!. 이게 맞는 것이다.   

 

[마5: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예닮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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