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역의 초기에 있어서, 나는 젊었으며 보수적인 목회자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주변에 좀 특별한 사람들 ( 소위 말해서 예언 은사자들) 에 의해 둘러싸여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 하나님 왜 접니까?" 여러 번을 나는 물었다... 그 수련회가 열린 교회는 초교파이지만 보수적인 성결 교회로서 윔버의 치유 사역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열려있긴 했지만 예언 사역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었던 곳이었다... 난 나의 세션을 마쳤으며 우리는 점심시간을 가지게 될 즈음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죤 윔버는 강단에 서서 내 귀에 속삭였다. " 성령님께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언의 은사를 내려 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겠어요? "... 4천명이나 되는 목말라 하는 심령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나는 죤에게 다시 다가가 속삭였다. "내 자신이 예언은사를 받지 못했는데도 말이예요?" 죤은 대답하기를, "그냥 나가셔서 하나님께서 누군가 에게든 다가가 만지시기를 기도하세요" 라고 말했다... 죤은 나아가 내가 성령께서 예언은사를 내려주시도록 기도할 거라고 광고를 해버렸다. 그래서 난 그저 기도를 드렸다. 그 순서가 바로 끝나자 마자 사람들이 내게 몰려왔다. 이내 긴 줄이 형성되었고 사람들은 내게 무언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 인생에 있어 무엇을 원하시는지 뭐 그런 것들을 예언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결국엔 난 그저 모든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 여러분.. 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난 예언은사도 받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 알지 못해요. "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해명하는 가운데 난 그저 멍하니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 끔찍한 실수입니다. 이것은 정말 말 예요. 난 어떤 예언적 은사도 받지 못했어요" 그렇게 말하고 난 그저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 일이 있기 전 날... 죤 윔버는 날 celebration of discipline의 저자인 리차드 포스터에게 소개시켜주었다. 리차드는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기 위해 내가 사람들에게 기도해 주는 것이 끝나도록 기다렸다. 난 배고팠고 게다가 될 수 있으면 멀리 최대한 빨리 여기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차로 향할 때 또 한 무리의 행렬이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내가 무언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예언을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물론 난 어떤 예언도 그들에게 줄 수 없었다. 마침내, 우리는 탈출을 감행하고 10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식당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내가 샐러드 바에 가서 음식을 주워담고 있을 때 다른 수련회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예언을 내려주도록 요청을 받고야 말았다. 그 다음엔 한 커플이 내가 그들에게 내려줄 예언적 말씀이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 내 테이블로 다가왔다...
흥분을 했건 절망을 했건 어찌했건 간에 하나님에게 무언가 듣기 희망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절제를 못하거나 예의가 없는 것 같다. 난 점점 그러한 사람들의 요구에 대해 참을 성을 잃어갔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만나기를 원해왔던 리차드 포스터랑 함께 내가 있다는 사실이 그런 상황에서 내 화를 더 자극했다. 참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리차드 포스터의 celebration of discipline 을 읽었다면 그가 얼마만큼 웃긴 유머감각의 소유자인지 결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나의 접시를 내려놓고 그에게 " 리챠드씨. 난 예언적 사람이 아니예요. 끔찍한 실수가 오늘 일어나고 말았어요" 라고 말을 했을 때 그가 얼마나 깔깔대고 웃었는지... 하지만 그것은 이후 몇 년간 다가왔던 일들을 생각해 볼 때 그리 중대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잘못된 사람을 예언 은사자 들의 팀을 이끄는 목회자로서 잘못 세우셨다고 내가 여러 번 느꼈던 것의 처음도 끝도 아니었던 것이다. ## 예언적 사역으로의 내키지 않은 첫 발걸음 우리의 경험은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일례로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왕성한 역할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 cessationist - 해석주의 신학도가 아니라 모르겠음) 달라스 신학교에 다니는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성령을 경험케 하시고 오랜 힘들고 고통스런 영적 여행 가운데 예언 사역 받아들이게 하셨다. 그 밖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동역을 하기 위해 오게 되었고 그 중엔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여러 스텝들도 포함 되어있었다. 어찌됐든 주님의 도우심으로 켄사스 시티에 있는 은혜훈련원(grace training center)이라는 신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대부분의 교회가 그러하듯 우리도 스텝들부터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목사들과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 등이었다. 예언 은사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가르칠 때는 은사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교육 받았던 그들 개개인이 학습했던 것에 대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곤 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때때로 우리가 자연적으로 지닌 강점 및 전에 습득한 교리적 훈련의 산물들과는 대립되게 되는 적이 많이 있다. 성령의 초자연적 징후가 기록된 성경 안에서 강한 성결적인 훈련과정들을 통합시키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고 우리는 믿었다. 그것이 우리가 은혜 훈련 센터를 시작한 주요 이유 중에 하나였다. 바울은 고린도서신에서 우리가 약한 가운데 하나님의 강함이 완벽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후 12:9)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원래부터 있지 않은 무언가로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은 그분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베드로는 무식한 어부였지만 교육받은 유대인들로부터 사도라 칭함을 받았다. 바울은 스스로 의롭다 하는 바리새인이었지만 이교도들로부터 사도로 칭함을 얻었다.
** 반 카리스마 파 되기 - 카리스마 파 : 미국에서 일어난 성령주의 운동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1972년 2월, 내 나이 16살 때, 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다. 켄사스 시티에 있는 Evangel Temple 이란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서 성령께서는 나를 완전히 감싸는 것 같았다. 그리곤 난 내생에 처음으로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경험이 있기 전, 난 방언 은사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난 내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아무런 것도 몰랐다. 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내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부탁을 드렸다. - 사설 : 참 재미있는 부분이네요.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혼란을 겪어서... 제가 아는 몇 몇 목회자도 이런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는... - 난 물었다. " 이게 뭐예요?" 그들은 대답하길 내가 다음날 모임에서 이것에 대해 더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력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졌기에 난 즉시로 장로교회의 리더들에게 불려가 그 경험이 사탄의 속임수라고 설득을 당했다. 난 점차적으로 거짓 된 경험에 의해 속임을 당한 것이라고 결론을 짓게 되었다. 그래서 난 나의 경험들을 완전히 부인하게 되었다. 난 내 자신을 어떤 성령파 ( charismatic ) 적인 것으로부터 저항하기로 다짐했다. 이유를 내리기를 어떤 것이든 진짜처럼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게 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순결한 신자들에게 방언을 하는 것과 같은 거짓된 경험에 대해 경계하기 위해 뽑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 몇 년간 카리스마파(성령파)의 신학을 폭로하고 그러한 거짓된 경험으로 포터 타락하게 된 사람들을 을 구출하는 것이 나의 임무가 되었다. 난 카리스마파 적인 사람들을 카리스마적 교리를 싫어하는 것 보다 더 싫어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마치 모든 것을 가진 듯 호언 장담하는 것 같았다. 난 그들이 자만과 오만에 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추측으로는 그들은 많은 것들이 결여되어있는데 특별히 말씀 대한 열정과 개인적 거룩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의 신학은 성결적인 정통파가 아니었다. 젊은 크리스쳔으로서 난 여러 신학적 위인들에 감동된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 예... 죤스토트, 기타 등등) 난 신학적 정통파에 열심을 바쳤으며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에 대해 반대 하는 게 나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난 중서부 지방의 여러 캠퍼스 사역에 참가해 연설을 하곤 했다. ** 또하나의 실수 1976년 미시시피의 조그만 마을에 초대 된 나는 루터교 교회에서 25명의 신자 앞에서 설교를 하게되었다. 그들은 목회자를 뽑으려 하고 있었는데 나는 성령에 세례에 대해 반 카리스마 적인( 반 오순절, 혹은 반 성령적) 버전으로 설교를 했다.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메시지로서 죤 스토트의 책자에서 뽑은 내용들로 성령파적인 것들은 잘 빼어내어 신학적 충돌이 없게 된 것이었다. 나는 곧 목회자로 선발이 되었지만 그 교회의 몇몇 리더들이 종종 다른 마을에 가있는 적이 있었는데 때 마침 설교할 때가 그 때 였다. 중간에 그들이 다시 찾아와서 설교 부분 중에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없냐고 물으며 중요한 부분으로 지적한 것이 성령에 의한 방언이었다. " 전 방언을 믿지 않는데요" 나는 말했다. 그리곤 난 이렇게 말하면서 괴로워했다. " 오~~ 난 성령파적인, 카리스마파 교회의 목회자가 되고 말았어. 이런 굉장한 착오가 어디 있담... " 난 믿을 수가 없었지만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그곳으로 이끄신 것이었다. 이 교회로 이끈 나의 경험은 하나님께서 그전의 카리스마파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었다.
*** 하나님에게 한방 먹음 난 그 교회에서 처음으로 나를 향한 예언을 맞닥드리게 되기 까지 몇 개월간을 계속 섬겼다. 물론 난 그 예언을 믿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몇 명의 교회 맴버와 난 어느 모임에서 full gospel 경영자 모임의 의장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갔다. 그 사람은 날 불러내어 말했다. "젊은이의 뒤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을 옮기려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즉시 수 백 명의 젊은 이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아니겠지..’ 난 생각했다. 난 이미 멕시코에 있는 선교단체와 일하기로 이야기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이미 마음을 남미의 익은 곡식 밭에 사역의 방향을 정했기 때문에 그 예언을 듣고 좀 불쾌했다. ‘그럴 수는 없지...’ 그리고 그 사람은 말했다. " 당신이 마음속으로 바로 이순간 ‘그렇게 될 수 는 없어’ 라고 말할 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장 시행 하실 것 입니다." 사람들은 박수 쳤으며 날 끌어안았다. 하지만 난 화가 났고 당장 그곳에서 나오고 싶었다. 바로 다음 주, 난 세인트 루이스에 한 친구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곳에 있는 큰 오순절교회(charismatic)의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날 보고 말하길 " 난 우리가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란 걸 알아요. 하지만 난 당신에게 좀 특이한 요청을 가지고 있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나에게 말씀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이야기 하시기를 매주 토요일 마다 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인 곳에서 당신이 설교를 하게 될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네요. " 난 생각하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이미 yes 라고 대답했다. 난 매우 충격을 받았고 내 마음속으로 이러한 오순절(charismatic) 교회에서 설교하기로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에 대해 혼란스러웠다. 난 정말 스스로에게 난처했다. 내 친구는 뭐라고 생각할 것인가? 그 토요일 밤 집회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목사님께서는 천여 명의 갈채하는 젊은이들 앞에 날 일으켜 세우시고 다음 주에 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순간의 부담에 못 이겨 다음주에 설교를 하기로 난 동의하고 말았다. 난 스스로가 몇 번 더 설교할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내 말을 너무 잘 받아 들이기에 내가 생각하길 아마도 그들의 교리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달, 나의 결혼식 날에, 나의 장로들은 그 목사님과 함께 개인적 만남을 가졌으며 날 그 큰 교회의 청년 사역자로 날 보내기로 동의했다. 나에게 어떤 상의도 없이 그들은 결혼 피로연의 마지막 순간에 그 결정을 그저 알렸다. 하지만 난 너무나도 훌륭한 나의 아내 다이애나와 결혼한 것에 신이 난 나머지 그저 간단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원하든지 난 그것을 하겠습니다." 신혼여행 동안, 나의 작은 교회를 떠나는 것과 더더군다나 오순절 성령교회의 청년목회자가 되기로 -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하다니 - 얼마나 쉽게 결정을 내렸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속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반대해 오던 것들에 대해 하나님에 의해 지속적으로 매복공격을 당한 것 같이 보였다. 난 내 삶의 제어권을 분명히 다시 되찾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난 그 때 미져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급진적 오순절 성령 교회의 '새언약회'의 부목회자(pastoral staff)의 위치에 있었다.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단 말인가? 새 언약회에서 난 나의 사무실을 Tim Gustafson 이라는 루터파 출신 목사님과 나누어 썼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낫 선 새로운 성령파 적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난 작게나마 이것이 성령의 은사로 향한 내키지 않은 여정의 시작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여전히 방언은사에 대해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상태였다. 복음 충만 경영자 협회의 모임에서 받았던 청소년 (youth - 미국에서는 청소년 목회를 가리킴) 목회자가 되리라는 예언은 단지 2달 만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난 여전히 예언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난 다가올 몇 년간 이루어 질 것들에 대해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난 내가 받은 예언을 무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난 그저 그것이 우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여전히 멕시코에 갈 계획을 하고 있었으며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그저 이러한 성령파 교회에 대해 참고 지내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은 보수적인 복음주의자가 심지어 많은 성령파들에게도 일반적이지 않은 예언 은사와 같은 성령의 은사들에 접하게 되리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지 목한 일이었다. 1979년 봄, 교회 리더들은 나에게 youth 사역으로부터 지 교회를 개척하는 것으로 사역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같은 해 9월 난 세인트루이스 남쪽에 위치한 새로운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그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으며 나의 아내와 난 그곳에서 많은 기간을 섬기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난 서서히 멕시코의 선교사가 되기로 한 나의 계획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획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지만 하남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그 방법은 우리의 믿음에 있어서 또 다른 굉장한 도전을 제공해주었다.
** 믿음의 그 다음 발걸음 1982년 6월, 그 교회가 설립되고 3년이 지난 해, 난 내가 아는 하나님의 모습과 다른 것들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첫 번째 사람은 Augustine Alcala라는 사람으로 순회 예언 사역자였다. 그리고 그다음엔 Bob Jones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우리 교회에 합류해서 우리와 함께 수년간을 함께 섬겼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 천사의 방문, 눈에 분명히 보이는 천국의 환상과 계시들과 같은 정말 일반적이지 않은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이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의 삶과 목회의 방향에 있어 주요한 암시를 내포하는 것 같았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의 주의를 끄시는데 그렇게 관심이 있으시다면 왜 내게는 그만한 믿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라도, 그러한 직접적인 환상을 주시지 않은 것일까 난 의아했다. 난 정말 하나님의 치유능력에 대한 아이디어는 충분히 동의하였지만 그러한 예언적 경험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이들의 이야기들은 내게는 선명한 무언가 처럼 보여지긴 했지만 잘못 인도된 환상이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내려온 계시는 아닌 것 처럼 보여졌다. 하지만 내가 듣고 또 기도하였을 때, 성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셨던 계시에 대해 확인해주시기 시작했다. 보다 신기한 것은 그 럴 무렵, 나의 절친한 친구들과 동역자들 대부분이 또한 그들이 진정한 예언은사자들임을 믿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록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오랜 기간 동안 지니고 있었던 사고들과 다른 것일지라도 난 믿음의 발걸음을 한 발 내어 딛기로 결심하였고 '예언사역'을 우리 교회 안에 허용하기로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인트 루이스에서 켄사스 시티로 옮길 것을 예언의 말씀을 통해 확인해 주셨다. 우리는 1982년 겨울 또 다른 교회를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Metro C hristian Fellowship 이라고 알려져 있다. 1983년 이후로 우리의 리더들은 이러한 예언사역이 우리 교회에 얼마나 큰 축복을 가져다 주었는지 계속해서 발견해오고 있다.
MIKE BICKLE 목사님의 "GROWING IN THE PROPHETIC" 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뉴와인에서 곧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오는데 사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