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하나님과 함께 할수밖에 없는 알이랑 민족 - 아리랑의 비밀 (유석근 목사님)

하늘감동 2010. 1. 8. 22:4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명난다


  행마다 열자씩 4행 40자의 이 분장(分章) 가요. 이 노래를 우리는 ‘아리랑’이라고 부른다. 아리랑…. 이 노래만큼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 온 노래도 없으리라. 슬플 때도 아리랑, 기쁠 때도 아리랑….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함께 민족의 한과 기쁨을 노래해 온 단 하나의 노래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남녀노소 상하귀천 없이 입을 모아 불러 온 노래…. 들어도 들어도 싫지 않은 이 노래는 과연 언제부터 무슨 연유에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일까? 현재까지 아리랑의 비밀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연구가 거듭되어 왔으나 시원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아리랑은 매우 단순한 노래이다. 그러나 아리랑은 굉장히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노래이다. 아리랑은 선택받은 종족인 우리 겨레의 직계 조상 셈의 현손(玄孫) 욕단 족속이 홍수 후 동방으로 천동(遷動)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다(창 10:21; 25; 30).


  아리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랑’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모든 종류의 아리랑 노래에서 변하지 않고 쓰이고 있는 후렴구가 ‘아리랑’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아리랑’이라는 말은 특별한 뜻과 사연이 배어 있다는 증거다. 사실 한국인은 ‘아리랑’이라는 말 자체에 친근감을 느끼며 흥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리랑 연구가는 ‘아리랑’은 뜻이 없는 단순한 후렴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무 뜻도 없는 말이 한국인의 마음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사로잡아 왔단 말인가?

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가 그렇게 알맹이 없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리랑’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아무리 궁구를 해보아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에 하나 그의 주장대로 ‘아리랑’이 단순히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아무 뜻이 없는 말"이라고 치자. 그럴 경우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이면 그것이 ‘아리랑’이라는 말인가?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아리랑’은 끝까지 해명이 필요한 어떤 특별한 뜻이 있는 말로 간주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더욱이 ‘아리랑’은 후렴구다. ‘아리랑’이 노래의 후렴구라는 사실은 오히려 ‘아리랑’이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후렴은 노래 곡조의 앞, 혹은 뒤에 붙여 반복해서 부르는 짧은 가사로, 대부분 그 노래의 중요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귀중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아리랑’은 선민 한민족의 키워드(keyword)이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다(알이랑→아리랑).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 ‘알’은 ‘하느님’을 의미한다.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은 처음에 ‘알’이었다. 그런데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서 ‘한알님’이라고 했다. 그것이 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느님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알’은 ‘하느님’이다('하늘'의 어원도 한알, 즉 큰 알(大卵)이다. 하늘은 둥굴기 때문이다. 한알→하날→하늘).


  유대인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는 바로 이 ‘알’에서 파생된 말이다(‘알라’는 아랍어로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인 아랍 사람들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즉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인류 최초의 신명이 ‘알’이었는데, 노아에 의해 홍수 이후의 세대로 전해졌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영어의 ‘With’에 해당한다(갑돌이랑 = 갑돌이와 함께, 갑순이랑 = 갑순이와 함께). 따라서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이다.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라는 종교적인 말이다. 놀랍게도 우리 겨레가 민족사를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제천민족(祭天民族), 곧 천손민족(天孫民族)이라는 사실이 '알이랑'이라는 말 한 마디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아리랑’은 본래 ‘알이랑’(알이랑→아리랑)이다. ‘알’은 성경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처럼 ‘하느님’을 뜻하는 단어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 영어의 ‘With’에 해당한다. 그래서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종교적’인 말이다.


  고개를 넘어 간다

  그렇다면 ‘고개를 넘어 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고대 한민족이 이란 고원을 지나 파미르고원을 넘어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 갔다는 말이다. 실로 많은 고개를 넘은 것이다. ‘파미르고원’을 지나(支那) 사람들은 총령(蔥嶺:파총, 재령)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 파(蔥) 마루(嶺) 그대로 파마루(파미르)이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고원(蔥嶺)에서는 파(蔥)가 많이 야생한다고 한다. 파미르 고원은 ‘파마루’로서 파(蔥)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루이기에 파마루(파머루) 고원인 것이다. ‘파미르’라는 지명의 어원이 한국어 ‘파마루’이다.


  이러한 언어적인 연관성은 우리 조상들이 참으로 ‘파미르고원’을 넘고 ‘천산산맥’을 넘고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고고학적 증거이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시비리(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지고 밝익알(바이칼) 호수가 나온다. 우리 겨레는 이 ‘바이칼’ 호수를 거쳐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제일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에 이르러 배달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백두산 산정에 올라 창조주 한알님(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느님)께 천제(天祭)를 드린 후에!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따라서 이 노래 가사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이요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with God, with God, with God, just God.

     Accompany with God, I will take over the mountains.)


  ‘아리랑’은 대홍수 후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욕단계 천손민족(天孫民族) 우리 조상들이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동방으로 천동(遷動)할 때에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던 것이다(창 10:21; 25; 30).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민족이 숨결이며 역사의 맥박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요 '알이랑'은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이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다(알이랑→아리랑). ‘알’은 성경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처럼 ‘하느님’을 뜻하는 단어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 영어의 ‘With’에 해당한다. 그래서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종교적인 말이다.

  따라서 아리랑은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부르던 노래로서, 가사의 의미는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이요,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는 뜻이다.

  ‘알이랑’은 선택받은 종족인 한국인의 직계 조상 셈의 현손(玄孫) 욕단 족속이 대홍수 후 동방의 산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다(창 10:21; 25; 30). 아리랑은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인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누구를 뜻할까? 문맥상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된다. 왜냐하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바로 앞의 가사는 “하느님과 함께(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는 뜻으로서,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 곧 욕단 계열 천손민족(天孫民族)의 찬송이며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하느님을 버린 자들, 곧 배역자들을 의미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악담이나 저주가 아니다. 만약 노래 가사가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했다면, 그것은 실제로 발에 병이 나라고 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사는 “가는 놈”이 아니고 “가시는 님”이다. 따라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발병이 나서라도 더 떠나가지 못하고 나의 품으로 되돌아오라는 회귀원망(回歸願望)의 연정(戀情)을 노래한 것이다. 즉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버린 자들을 향해 다시 순수한 하느님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을 사랑으로 촉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겨레의 노래 ‘알이랑’에는 ‘하느님을 위한 열정’과 ‘잃은 자를 위한 연민’이 함께 깊이 배어 있다. 즉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의 2절은 청천 하늘의 잔별만큼이나 우리 가슴엔 수심도 많다고 노래한다. 왜 알이랑 찬송을 부르며 동방으로 천동(遷動)하던 욕단 계열 천손민족(天孫民族) 우리 조상들의 가슴엔 그리도 근심이 많았을까?

  그것은 1절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때문이었다. 즉 유일신 신앙(제천신앙)을 저버린 자들이 제천민족 우리 조상들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근심과는 차원이 다른 ‘거룩한 근심’이었다(고후 7:10).

 

  이와 같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알이랑' 찬송은 욕단 족속이 동방의 산지를 넘어 이 땅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리고 우리 겨레의 삶 가운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출처: 알이랑 민족 갱신 사역 - 유석근 목사님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하늘감동2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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