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죽음과 순종

[스크랩] 우리가 만든 이미지의 하나님을 섬기기 - 존베벨

하늘감동 2010. 2. 17. 10:07

 

  바울이 신약에서 우리에게 쓴것을 보자.


로마서 1:20-21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였음을 주의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출애굽하셨다는 것은 인정하였으나, 그분께 합당한 어떤 영광도, 존귀도 드리지 않았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존경을 드리지 않는 신약시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바울이 무어라 하는지 살펴보자.

 

로마서 2: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의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는 다시 한번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영광이 격하되어 버린 것을 보게 된다. 이번에는 '송아지'가 아니라 '썩어질 사람의 형상'이다. 이스라엘은 동물이나 곤충의 형상을 한 금우상들을 경배하는 사회로 둘러써여 있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람들을 경배하는 문화로 둘러싸여 있다.
지난 몇년 동안 이 말이 내 머리 속에서 줄곧 맴돌았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이미지대로의 하나님을 섬겨왔다."

 

 

  몇백 교회들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하나님의 이미지와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이미지로 격하하는 마음가짐들을 보아왔다. 이런 정신이 교회에 스며들고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치료자로 인정하는데 재빠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입으로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나, 그들의 행동과 마음가짐으로는 주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것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그들은 말한다. "하나님은 나의 친구야. 내 마음을 아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확실히 하나님께서 우리 맘을 아시는 것은 정말이다. 그러나 대개 이러한 말은 하나님의 계명과 어긋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친구라 부르신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과 임재에 떨며, 대가가 무엇이든지간에 곧바로 순종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분이 마땅히 받으실만한 존귀와 영광을 못 받으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즉시로 그분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나,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준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자신들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생각으로써 길러왔다.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그들의 이미지는 생명력 있는 말씀을 통해 계시된 이미지보다는 자신들의 제한된 인식에 의해 형성된다.
  이것이 사람들을 권위에 대해 쉽게 비판하도록 만든다..

 

  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와 같이 정당화시키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은 실지로 행복이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에 대한 순종보다도 우선한다고 믿고 있다.


  한 교회 지도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 나는 아내와 이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18년 동안 우리 관계는 좋지 않았거든요. 이젠 더이상 함께 영화를 보지도 않고 재밌는 일을 함께 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아시죠? 만일 내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주님께서 보여주시겠지요."   그러나 이미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무시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여간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정당화를 위해 왜곡시킨다. 이는 마치 주님이 "내가 성경에서 이혼을 미워한다고 말했던 것은 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단다. 나는 네가 행복하고 너와 함게 재밌는 일을 할 배우자를 만나길 원해. 이혼해도 돼. 만일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나중에 회개할 수도 있어."라고 말한 듯이 말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은연 중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흑과 백이 있지만, 나에게는 회색이야. 다른 사람들이 하면 잘못이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순종이 내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나는 그것에서 면제야."


  이것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해질 때, 또한 집단적으로도 행해진다. 그러니 교회에서조차 ㅡ 교회지도자들의 삶에서부터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메시지까지 ㅡ 하나님의 영광이 썩어질 사람의 단계로 바꾸어지는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하나님의 영광의 격하가 어떠한 메시지를 회중에게 전달하게 될까?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말씀하셨다거나, 정말로 말씀하신대로 하시지는 않으실거야."라는 것이다. 그리고나서는 '우리 사회에 왜 이리 죄가 만연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찾아 볼수가 없지?' 의아히 여긴다. 그러니 죄를 짓는 사람들이 교회에 수동적으로 그저 앉아서 설교에 감화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함이 '말씀이 기본인 교회들'에서 만연하는 것도 당연하다. 믿는 자들이 과부나 고아들,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병자들을 소홀히 하는 것도 놀랄 것이 없다.


  우리가 지난 20년간 강대상과 방송을 통해 설교해왔던 메시지들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부드러운 아빠'의 이미지로 부각시켜 왔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원할때면 언제든지 주고 싶어하시는 솜사탕같은 아빠로 만들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한 일시적인 순종을 낳을 뿐이다. 자녀들을 이러한 태도로 기른 부모들은 결국은 아이들을 망치게 된다. 버릇없는 아이들은 권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부족하며, 특히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필요할때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더욱 반항적이 된다. 권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하나님께 쉽사리 화를 내고 반항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을 볼수 있을까? 불순종과 반항이 오히려 정상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순종이 보다 더 설득력이 있게 될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경외를 그분의 백성들에게 다시 회복시키시고, 백성들을 그분에게로 돌이키셔서, 그분만이 진실로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참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것이다. 그분은 약속하셨다.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있음과 주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이다."(민 14:21)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유오디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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