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적 신앙과 재림

[스크랩] 릭 조이너 목사님의 책 "추수"에서 발췌했어요. 휴거와 짐승의 표시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같아 올립니다.

하늘감동 2010. 4. 25. 04:34

휴거

 

성경에는 “휴거”란 말이 없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 곧 살아남은 성도들이 “변화”하여 죽지 아니함을 입고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만나는 사건을 나타내는데 쓰이는 현대 용어이다(고린도전서 15“51~54 과 데살로니가전서 4:15~17 참조). 여기에서 끌어 올려 간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이 땅에서 하늘의 처소로 우리의 몸이 옮기는 것이며, 몸은 영체로 변화 받고 그 때부터 계속해서 신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으리라“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 사건이 흔히 일컫는 ”대 환란“ 이전에 일어나리라고 분명하게 밝혀주는 성경 구절은 없다.

 

현재 널리 퍼져 있는 “환란 전” 휴거설은 교회사에서 볼 때 1830년대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으로 그 유래를 더듬어 보면 스코틀랜드의 [마가렛.맥더널드]라는 여인 한 사람이 받은 “환상들, 계시들과 예언들”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 새로운 설은 후에 [에드워드.어빙], [잔.다비]와 뒤에 내려와서 [스코필드]에 의해 널리 보급되었다. 두 권의 저서 속에 [맥더널드]의 계시들을 실어 발표한 [라벗.노턴]박사는 그녀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놓은 (이는 환란 전 휴거설에서 나오는 결론임) 최초의 인물임을 인정했다.

 

지난 한 세기 반동안 뛰어난 설교가와 교사들 중 얼마가 이 교리를 받아들이고 널리 퍼뜨렸다. 이애 못지않게 많은 이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중에는 [스펄전], [찰스.피니], [조지.뮬러]와 [G.캠밸.몰간] 같이 널리 알려지고 존경받는 설교가들, 또 이 교리가 보급된 후 이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들을 취한 수많은 동시대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교리가 나오기 이전에 이에 반하는 교리를 강단에서 외쳤거나 그 같은 뜻을 밝힌 저명한 종교개혁의 지도자들 중 명분의 이름만 들어 보아도, [마틴.루터], [잔.위클], [윌리엄.틴데일], [요한.칼빈], [잔,낙스], [매튜.핸리], [조나단.에드워즈], [잔.웨슬리], [조지.화잇필드]와 [데이빗.브레이너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교리의 기원이 의심할 만하며 성경이 어느 입장도 세워줄 수 있다는 애매함 때문에 성숙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휴거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에 상관없이 이 교리를 정통성의 판단기준으로 사용한 일은 거의 없었다.

 

전체 성경이 환란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증거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험한 환란의 때에 누릴 영광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머물러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원할 것이다. 교회는 마지막 때에 사상 가장 극심한 환란의 때를 통과하며 이를 이기고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종노릇하는데서 해방하도록 이끌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주님의 뜻이 대 환란일지라도 말이다. 이 는 교회가 가장 순수하게 되는 때이며 가장 큰 승리의 때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 “(주님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고린도후서 2:14)

 

이 때는 달아날 때가 아니다. 이 때는 교회가 그의 영적인 칼을 뽑고 공격을 해야할 때이다. 환란전 휴거의 교리는 교회 내부에 도피근성을 효과적으로 키워왔지만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전진하는 교회의 대다수가 이 멍에를 집어 던졌다. 주님이 이사야를 통하여 권면하셨듯이

“일어나 빚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잠잠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이사야60:1~2)

 

캄캄함이 세상을 덮을 바로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백성 위에 임하리라. 이때는 빛과 어두움 사이에 최대의 전투가 벌어질 때이며 빛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사도가 말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다(사도행전 14:22). 환란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관문이다. 이때는 역사상 어느때 보다도 살아서 주님을 섬기기에 최고의 시간이다. 태초부터 선지자와 성인들과 의인들이 이 마지막 세대가 볼 것을 보기 원했다. 이곳에서 이 일에 참여하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다. 이 위대한 기회를 놓치지 말자.

 

신자가 이 사건의 때에 관해 갖고 있는 어느 한 이론이나 또는 모든 이론이 어떤 경우에라도 진리, 즉 성서가 가르치는 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결단과 헌신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 같은 교리를 놓고 갈라진 분열상은 우리가 무지하고 유치한 것을 드러낼 뿐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 교리나 성경에 분명하지 않은 다른 교히들에 관해서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확신이 오는대로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맡겨야만 한다. “환란 전”의 입장을 반대하는 이들이 내어 놓은 이론 중의 얼마는 똑같이 어리석고도 파괴적이다. 마찬가지로 “환란 전”의 입장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변호가 교회 내부에 최소한 똑같이 파괴적인 “도피 근성”과 운명주의를 널리 퍼지게 한 결과를 빚어 왔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환란 전 휴거”설이 아니라 그보다는 교회를 철저하게 휘어잡아 온 도피근성이다. 성경 전체가 증거하는 바는 주님께서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세상을 리기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주님은 상황이 악화될 때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삽시간에 끌어내 가시지 않으신다. 이 때문에 계시록에서 각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간곡한 당부는 “이기는 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늘 시련과 환란을 대비하여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아마겟돈이 다음의 정지 신호등에서 임할 수도 있다! 금세기에 수백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위해 비인간적인 고문을 받으며 죽어 갔다. 어린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것 때문에 굶어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들에게는 그것이 “대” 환란이고 아니고가 별로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원수의 영역에서 산다. “세상은 악한 자의 권세 안에 처한 것”(요한일서 5:19)이다.

 

아마도 무엇보다 기괴하고 악마적이며 얄궂도록 뒤틀려 있는 것은 현재 바로 미국과 다른 주요 서방국가에서 기독교인들이 자녀들이 납치를 당해 사단 숭배 의식에 인간 희생제물로 바쳐지고 있는가 하면, 이에 반해 이슬람은 세계지배(이슬람이란 “복종”을 뜻하며 그들이 목표는 세계를 그들이 교리에 복종시키는 것이다)의 의도 하에 현재 전 세계에서 교회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회교 사원들을 세우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가 되었는데도 기독교인들은 “휴거”에 대한 자기들의 다른 입장 때문에 사실상 분열되어 서로를 거짓 교사들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천사들이 이를 가리켜 그들이 이제껏 보아 온 미혹된 인간들의 모든 어리석은 짓들 중에서 거의 최고의 것으로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대가 어두워질수록 그런 어리석은 일로 교회가 치르는 대가는 점점 더 커갈 것이다.

 

짐승의 표시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지혜있는 자들에게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고 호소하면서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고 했다(계시록13:18). 이 계시의 말씀이 처음 교회에 주어진 이래 기독교인들은 666표를 찍으려고 올 자를 줄곧 경계하며 살아왔다. 이는 현재 이땅에서 결실 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어떤 결정적 요인들을 우리가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빚어지고 있는 결과이다.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표냐 아니냐는 것이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표를 받는 것이 죄는 아니다. 죄가 되는 것은 짐승에게 경배하는 것이다. 표는 이를 받는 자기 이제껏 사실상 짐승을 경배해 오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이다. 표 받기를 거부하지만 매일 매일 짐승의 영에 가담하고도 하나님의 진노에서 자유할 것인가? 짐승의 영에 속한 자들은 666표나 이 짐승으로부터 오는 다른 어떤 것일지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면서도 이를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짐승의 영으로부터 자유하면 이 표가 문자 그대로이건, 은유적이건, 또는 짐승으로부터 오는 다른 무엇이건,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를 받을 리가 없을 것이다.

 

참다운 지혜는 그 숫자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섯은 인간의 숫자다(즉 인간이 여섯째 날에 창조된 것 등). 여섯이 셋이라는 것은 인간이 삼위의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금지된 열매를 따먹은 순간에 지은 인간의 첫 죄로부터 거두어 드리는 궁극적인 추수이다. 우리는 이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이는 “가인의 씨” - 곧 “땅을 가는 자” 혹은 “땅에 속한 마음을 가진 자” -의 결말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철학, 종교와 이념들이 전개되는 흐름을 따라서 보면 우리는 그들 모두가 다같이 이 마지막 공통된 자리로 흘러들어 가 만나게 되는 모형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도성을 기쁨에 차게하는 시냇물들이 모두 함께 흘러 마지막에 하나의 생명의 강을 이루는 것과 똑같이 모든 인간 반역의 흐름들도 함께 흘러 마지막에 죽음의 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최종적인 반역과 모독은 인간 죄악의 화신인 불법의 사람이 교회,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며 그리스도께서 앉으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인간의 궁극적인 야망이 이루어진 양 보이게 하는 것이다. 사실상 그리스도 대신 인간이나 인간조직이 머리가 되어 있는 모든 교회, 사역기관, 교파 또는 운동들은 이 최후의 신성모독에 쉽사리 굴복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하나님 행세를 하며 그들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과 재간을 칭찬한다고는 결코 의심치 않을 것이다. 사도바울이 아덴의 지식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주님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일은 힘으로 안 되며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직 성령께서만이 성령께 속한 것을 낳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머리가 되신다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주님이 주님의 종들에게 치시는 주님의 인이 문자 그대로의 보이는 인이 아닌 것과 똑같이 짐승이 사람들에게 주는 표는 우리가 그것이 무엇이라고 믿도록 인도받아 온 내용 보다 훨씬 더 간교하다. 짐승의 표는 사람들의 정신과 업적(머리와 손)에 주는 것이다. 만약 어느 날 그가 실제로 문자 그대로의 666표를 갖고 온다면 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미 그 표를 찍어 놓은 사실을 나타낼 뿐이요 그런 사람들은 그 표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이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원수가 사용하는 가장 큰 위협과 속임수는 공공연히 악한 것으로부터가 아니요 실제로 선하고 의롭게 보이는 것으로부터 오고 있다. 사단의 가장 지독한 형태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죽음을 가져온 열매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부터 왔다. 사단이 우리를 시험하고 속이려고 들고 오는 것은 바로 그 나무의 선한 쪽이다. 그의 열매는 보기에 좋고 모든 점에서 지혜롭게 할만하게 보이지만 바로 악한 쪽이 그렇듯이 정녕 죽이고 만다. 그것이 죽이는 까닭은 그것이 십자가를 대신하고 따라서 우리의 머리요 우리의 생명의 원천되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인간의 선을 우리의 사악한 양심에 대한 댓가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사이비 종파로부터의 맹공격이 하나님의 참다운 역사에는 위협을 주지 못한다. 사이비 종파로부터 받는 공격으로 얼마간의 굴욕과 당혹스런 일이 있기는 해도 이는 성도들이 힘을 내고 더욱 굳게 결단하도록 역사할 뿐일 것이다. 귀신들은 재빨리 예수님과 주님의 사도들을 알아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때때로 귀찮게는 굴었어도 위협이 된 일은 없었다. 바로 종교적이요 올바르게 산다는 사람들이 주님과 주님을 따르던 이들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장차오는 날에도 똑같을 것이다. 전진하는 교회는 도덕주의적 보수파와 그들의 종교 기관들로부터 가장 큰 핍박을 받을 것이다.

 

저 "멸망의 아들“이 실제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할 곳이 바로 이곳이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간교한 짓이 될 것이다.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참 신자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과 사회에 대한 자기들의 의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귀신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귀신들이 우리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적 편협주의의 영을 경계해야만 한다.

 

거짓된 교회가 압도적인 정치권력을 잡게 될 것이지만 대중으로부터 피상적인 지지밖에 받지 못할 것이다. 1세기에도 그랬듯이 거짓된 교회가 참 기독교인들에게 가하는 공격은 얼마동안 대부분 지도층을 겨냥한 것일 것이다. 그 다음 얼마동안 주님께 돌아오는 자들이 너무나 많이 몰려들어 전진하는 교회는 그들 모두를 수용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것이다. 전 시대의 교회들과 전통적인 교회들의 상당수가 크게 불어나서 넘쳐날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이 부흥역사의 원동력이자 주 목표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같은 착각이 오래가지 못할 것은 세상에서 겪을 환난이 종국에는 거짓된 교회를 포함해서 사람의 손으로 세운 모든 종교제도들을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님이 위임하지 않은 모든 역사에 대한 주님의 심판이다. 즉 큰 “바다” 혹은 큰 인간의 무리가 궐기하여 자기들을 다스리려고 하던 거짓된 교회를 파괴시켜 버릴 것이다. 붕괴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모든 성도들을 아주 결사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거짓된 교회가 신자들 모두를 공격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때가 되면 참 교회의 지도층이 일반 신도층과 거의 구분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지도자가 거의 없게 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이들이 성숙하게 자라서 지도자로서 행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결과는 직업적인 목회자 양성에 주안점을 둔 전통적 목회 발전 방향에서 모든 성도들을 참으로 온전히 준비시켜 섬기는 일을 하도록 하는 방향으로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에서 비롯될 것이다.

 

많은 교단과 종교기관들은 주님에게 쓰여졌고 거의 막바지까지 계속 그렇게 될 것이다. 거짓된 교회들과 거대한 종교단체가 궁극적으로 참 신자들의 최대의 적대세력이 될 것이며 가장 반기독교적인 정부, 사이비 종파와 다른 종교들보다도 더 심하게 참 신자들을 대적할 것이다. 제도적인 교회에 속한 모든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교파와 주님사이에서 누구를 따를 것인지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출처: 릭 조이너의 "추수" 중에서.....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서카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