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령님의 임재를 유지할 수 있는가?
2010. 10. 17. GFC 3부 예배 주일 설교 정리 ? 라이언 와이어트
♧ 주님의 임재를 나르는 제사장으로 살아가자
1. 첫번째 열쇠: 주의 깊게 걷는 것 Walk carefully
2. 두번째 열쇠: 나의 마음과 애정을 계속 성령님께 맞춰 나가라
3.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고 찬양하라 Praying and Singing in tongues.
4. 위치적인 믿음 Positional Faith
5. 찬양과 경배
6.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앙망하는 것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되 친밀하게 알지는 못한다. 주님은 인격이시므로 우리는 주님의 임재하심을 즐길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성령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계시해주시는 분이다. 많은 이들이 영적 전이를 받지만 시일이 어느 정도 경과하면 기름부으심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의 임재와 기름부으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Holy Spirit with me & around me.
내면의 기름부으심은 절대 떠나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내 안의 기름부으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연습을 통해 사람에게 안수할 때 주님의 권능과 기름부으심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안의 성령님은 떠나지 않지만 우리 주위에 가질 수 있는 주님의 임재는 항상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 기도하지 않는 한은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다.
10년 전에 호화스런 식당에 앉아 있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이 떨기 시작했다. 천장을 보니 머리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실제적인 구름이 있었고 식당을 가로질러 움직이고 있었다. 이 즈음에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항상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식하고 살았었다. 별로 건강하지 않은 체면(unhealthy dignity) 이었다.
성령님은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성령님이 생각하시는 것만 생각하길 원하신다. 나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왜 하필 이 시간, 이 식당으로 오십니까……’ 하고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 내가 망가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머리 바로 위에 구름이 임했을 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졌고 포크도 거의 들 수가 없었다. 거의 발음도 할 수가 없을 정도의 무거운 임재였다. “나를 빨리 여기서 데리고 나가주세요.”라고 겨우 얘기했다. 두 달 반 동안 매일매일 주님의 영광이 나에게 찾아왔다. 매일 아침 깨어나 “예수님!”하고 부르면 영광의 구름이 방으로 들어왔고 외출할 때도 따라왔다. 그 분의 임재는 계속 짙어졌다. 두 달 반 동안 사람들이 나를 식당에서 끌고 나가야 했다. 주님의 영광 가운데 잤고 주님의 영광 중에 깨어났다.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주님과의 만남이 십분 정도로 여겨졌다.
이 시기 가운데 성령님은 나의 친구가 되셨다. 주님의 영광 가운데 어떻게 사는지를 배웠고 삶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래서 [거주하시는 영광 Abiding Glory Ministry]이라고 사역의 이름을 정한 것이다. 나는 주님의 영광 가운데 살고 싶다. 주님은 어떻게 주님의 임재를 모셔들이는지 그 비밀과 열쇠를 주셨다. 내가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한 비밀들도 알려 주셨다.
또한 로마 카톨릭의 ‘사제’가 아니라 구약성서에 나오는 ‘제사장’으로서의 삶의 양식과 스타일대로 살아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한 특정한 그룹을 불러내셨고 소유권을 주장하셨는데 그들이 레위 지파였다. 그들은 일반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지 않았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하셨다. 내가 살고 있는 방식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들의 모든 삶은 성별되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산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너무 아름다우신 분이며 너무 기이한 분임을 보며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기를 원한다.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인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을 위해 산다.
나의 사역 전체는 여기서 출발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이 옷을 입는 방식도 하나님 앞에 성별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마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붙이고 다녀야 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항상 주님을 위해 자신의 삶이 분리되어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보상이 있다. 주님의 존귀하신 임재를 나르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제사장은 주님의 임재를 다루는 자였다.
예전에는 나를 바라보는 많은 청중들 가운데 살았으나 이제는 나를 바라보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성경에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라고 부른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나라, 가장 영광스런 나라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 즉, 하나님의 나라이다. 주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 거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계속 그들 가운데 거하고자 의도하셨다.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여 그 얼굴이 빛났던 모세가 죽음의 언약인 율법의 언약 가운데 이 경험을 했다면 생명의 언약 가운데 경험하는 우리가 영광은 얼마나 위대한가라고 말했다. (고후 3:6~9)-개역한글/NIV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문자)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문자)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He has made us competent as ministers of a new covenant--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Now if the ministry that brought death, which was engraved in letters on stone, came with glory, so that the Israelites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its glory, fading though it was,
will not the ministry of the Spirit be even more glorious?
If the ministry that condemns men is glorious, how much more glorious is the ministry that brings righteousness!
모세는 말하기를 주님의 영광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구별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출33:15~16)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Then Moses said to him, "If your Presence does not go with us, do not send us up from here. How will anyone know that you are pleased with me and with your people unless you go with us? What else will distinguish me and your people from all the other people on the face of the earth?"
1. 첫번째 열쇠: 주의 깊게 걷는 것 Walk carefully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유지하는 것은 간단한 것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데 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하신 단순한 진리들을 순종한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들었지만 실제로 그대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경에서 ‘걷는다’라는 말은 매 순간 순간의 삶을 뜻한다. 가끔씩 하는 것이 아니라 매초매초 마다의 삶을 뜻한다. 주님은 이 비밀을 말씀하시며 환상을 보여주셨다. 어떤 비둘기 같은 이가 어깨에 내려 앉는 것을 보여주셨는데 이 소중한 비둘기가 계속 어깨에 머물러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득 차서 넘실거리는 커피 몇 잔을 나른다고 생각해보자.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걸으려면 마구 걸어갈 수 없을 것이다. 컵을 주의해서 바라보며 조금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조심스럽게 걸을 것이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엡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엡 4:22~3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성령님은 너무나 민감한 분이시므로 다른 이들에게 열매가 되지 못하고 세워주지 못하는 말을 하면 이것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든다. 내 삶 가운데 성령님을 모셔 들이기 원한다면 나의 생각을 주의하며, 나의 말하는 것을 주의해야 하며,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을 주의하며 내 발이 어디로 가는지도 주의해야 한다. 나는 성령님을 담는 영광의 그릇이다.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들에 나를 내어주지 말아야한다.
엡 5:1~5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 5:7~10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비둘기를 바라보며 주의 깊게 걷고 있을 때… “성령님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님을 근심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계속 묻는다면 나의 영은 계속 민감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행동을 하면 나의 영이 그것을 금새 알 것이다. 양심이 깨끗하지 않은 자들은 영이 둔감하여 죄를 행해도 별로 찔림이 없다. 성령님께 민감한 자들이 느끼는 것만큼 그들은 느끼지 못한다.
엡 5:15~16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베드로를 뒤덮은 성령님의 그림자 때문에 베드로가 걸어갈 때 그 그림자만 덮여도 병자들이 낫게 되었다. 성령님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나르기 원합니다!!
2. 두 번째 열쇠: 나의 마음과 애정을 계속 성령님께 맞춰 나가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삶 가운데 임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사랑과 마음을 주어 왔던 바로 그것을 먹게 된다.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삶 가운데 소유하게 된다는 것은 진리다. 그러므로 주님의 임재를 연습해야 한다.
오래 전에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동료들은 내가 크리스챤인줄 몰랐는데 나는 어떤 실험을 했다. 아무리 바빠도 내 마음과 애정을 계속해서 주님께 드렸을 때 (매 순간 습관적으로 멈춰서 “성령님 나를 만지소서”하고 기도했다) 갑자기 직장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셨다. 내가 직장에서도 주님의 방문을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강력한 임재로 인해서 떨며 울기도 했다. 주님은 항상 이렇게 하기를 원하셨다. 단지 내가 충분한 초점을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 동안 주님과의 수많은 대면의 순간을 놓치곤 했던 것이다. 월요일마다 (주말 동안) 죄를 가득 짓고 돌아온 직장 동료들, 내가 크리스챤임을 모르는 숙취한 동료들이 내 주변에서는 더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조심하였다. 그들은 서류를 가지러 온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나의 사무실에 들어와 앉아 시간을 보내었는데 그것은 “주님의 임재”를 느꼈기 때문이다. 주님의 임재 때문에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 그냥 좋았던 것이다.
골로새서 3: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빌립보서 4:4~9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3.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고 찬양하라 Praying and Singing in tongues.
때로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영을 일깨워준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의 발전기를 돌리는 것과 같다. 20~30분 정도 방언으로 기도하면 영이 급속하게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
4. 위치적인 믿음 Positional Faith
대적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전략은 거짓말을 얘기하며 나의 생각을 공격하는 것이다. 삶의 불평들이 있을 때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이며,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무엇을 행하셨나?”를 생각하면 즉각적으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그 자리로 올라간다. 계속 로마서 8장의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그 동일한 영이 내 안에 거하신다.”를 반복적으로 되뇌며 읊조린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고 선포한다. 나는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통해 영적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부터 하늘은 우리를 위해 열려 있다. 하지만 대적은 우리 위에 있는 하늘을 닫으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무언가 누르려는 분위기, 억압적인 분위기를 풀어놓는다. 개인을 향해, 도시를 통해, 나라를 통해 그런 억압적 분위기를 풀어 놓는다. 우리는 이런 억압적인 영적 분위기를 깨고 열린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대적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가 갖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자신을 먹기 위해 우리가 매일매일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매일 반복적으로 나의 마음을 성령님께 드리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 내가 누구임을 항상 상기하며 산다면 이런 억압적인 영적 분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우리는 주일날 교회에 있는 영적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또 일상생활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때에도 성령님을 모시고 있는가?
5. 찬양과 경배
뉴욕의 모든 지역에서 범죄가 일어나는데 비행기를 타고 그 위를 날면 도시는 너무 작아 보인다. 찬양과 경배는 우리를 문제 위로 떠 오르게 만들어 문제를 작아 보이게 만든다. 문제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다. 우리가 경배할 때 크신 하나님은 더욱 우리 마음 가운데 광대해지신다. 성경에서는 찬양을 ‘제사’라고 부른다. 가장 찬양하기 힘든 순간에 찬양하라고 한다. 찬양하고 싶지 않을 때 그래도 찬양하기 바란다. 그래도 주님을 경배하기 바란다. 그러면 돌파하게 될 것이다. 내가 더욱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6.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앙망하는 것
모세도 진 밖에 있는 회막으로 나갈 때가 있었다. 회막에서 주님을 앙망하며 기다렸다. 우리는 모세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른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산 위에 올라갔지만 6일간 음식도 물도 없이 하나님을 계속 기다렸다. 그는 기꺼이 갈망을 가지고 기다렸다.
Come up to me on the mountain and just be there!
우리가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을지라도 그냥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어떤가? 무엇을 얻을까 생각하지말고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어떤가?
1년의 연봉에 해당하는 값진 향유를 주님께 드린 여인이 있다. 그것은 가장 값진 경배였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시간이 값진 것이다. 주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은 값진 경배이다. 식당에 가면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 삶 가운데 어떤 것을 다루기 원하십니까?”
내가 전세계를 돌아다닐 때 그 지역의 권세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안다. 나를 공격하는 지옥의 권세가 있다. 한 때 주님께서 비밀을 말씀하시기를 “과거에 주님이 나를 위해 돌파를 마련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영원 가운데 시간의 베일을 찢어서 걸어 들어오시는 것과 같은 주님과의 대면… 그것은 항상 새롭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지옥의 권세를 보며 돌파를 느끼지 못할지라도 과거에 주님께서 나를 위해 돌파하셨던 순간을 기억한다. 주님의 보혈로 내가 씻겨졌음을.. 주님의 육신의 휘장이 나를 위해 찢기셨음을 고백하며 내 위로 하늘이 열려 있음을 고백하며 경배한다.
주님께서 갈망을 일으키셔서 우리가 진정한 제사장이 되게 해 주소서! 주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삶을 둘러싼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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