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뢰아의 인간론(이중아담론)
김기동목사(성락교회, 베뢰아)는 인간은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라고 주장을 하는데, 특히 그의 "이중아담론"은 특히 유명하다.
그는 창세기1장27절의 남자와 여자는 몸과 혼, 즉 인격만 가진 존재이며, 2장7절의 아담은 영과 혼과 몸을 가진 인간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즉 창세기 1장과 2장의 기사는 서로 다른 사건이며, 창세기 1장의 인간은 “아담”이 아니라 “사람”이며, 창세기 2장의 인간은 “아담”으로써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베뢰아에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통교회의 유명한 Y목사도 동일한 주장을 함으로서 큰 문제가 야기된 적이 있었는데, 후에 그는 베뢰아에서 교육을 받은 자로 밝혀졌다.
다른 이단들도 이 영향을 받아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곳이 있는데, 신천지, 김풍일등도 이러한 주장을 한다.
김기동목사의 설명을 옮기면 "창세기 1:27의 '하나님께서 …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할 때의 이 남자와 여자는 영을 소유한 인격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영이 그 안에 없는 짐승과 같은 존재로서 혼과 육만을 소유하여 남자와 여자 - 즉 암컷과 수컷이라는 하나의 자웅을 구분하는 말이라고 한다.
<마귀론 81 (상권, 49페이지 아래. 83페이지)
"창세기 1장 27절의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할 때의 이 남자와 이 여자는 지금 말하는 인격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남자와 여자라는 곧 암컷과 수컷이라는 하나의 자웅을 구분하는 이치로서의 표현입니다."
<마귀론 (상. 85페이지 중간아래)
"이와같이 땅에 충만한 수의 사람 중에서 아담 하나를 뽑았으니, 그 아담이 얼마나 개화된 인간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한 사명자를 불러 이 기존적인 인격 위에 항구적 가치를 부여 하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귀론 (상. 85페이지 아래)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부터 시작했으나, 아담은 충만한 수의 사람 중 하나를 뽑아 경건한 자녀를 얻기 위해 분리시킨 것입니다."
베뢰아의 신학에서는 분명히 아담을 첫인간으로 보지 않으며, 창세기 1장과 2장을 다른 사건으로 본다는 것이 그의 저서에 의하면 명백한 사실이다.
짐승과 같은 인간이 이미 창조되어 있었으며(이 짐승과 같은 존재를 베뢰아에서는 네피림이라고 부른다), 그 짐승과 같은 인간 중에서 하나를 특별히 선택하여 생기를 부어넣어준 생령적인 존재가 아담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즉 창세기 1장과 2장은 각각 다른 사건의 기록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론에 그릇된 영향을 끼치며, 성경해석학적인 관점에서도 오류가 되어진다.
김기동목사는 1983년에 자신이 속했던 침례교 총회에서 이 인간론의 문제가 지적되어지자, 앞으로는 이중아담론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각서를 제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 후에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그 교단에서 1987년 11월에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김기동목사는 왜 각서를 제출하였는가?
이제 베뢰아의 인간론, 이중아담론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이며 비성경적인가를 증명하여 보자.
베뢰아의 인간창조에 대한 주장은 그야말로 비성경적이다.
베뢰아는 하나님이 동물적인 암컷과 수컷을 만들어 놓고, 그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개화된 인간을 하나 골라 생령을 불어 넣어줌으로 아담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논리를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긴다.
1. 성경에서는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다"(창2:7)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담은 흙에서 창조된 것이 맞는가? 아니면 동물적인 인간 중에서 선택되어진 것인가?
어원적으로 볼 때에, 히브리어 “아담”이란 말의 의미는 "사람, 인류"이며, 또한 아담이란 말의 어원은 흙(히브리어, 아다마)에서 어원을 갖는다. 즉 아담이 흙으로 만들어진 첫 사람이라는 말이다.
김기동목사는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무시하고, 아담이 동물적인 인간 중에서 골라진 사람이라고 주장을 하는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
과연 창2:7이 흙으로 만들어진 후에 한사람만 선택하여 생기를 불어 놓어주엇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가?
2. 고전15:45과 고전15:47은 왜 "첫사람 아담"이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아담은 땅에서 났다고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15:47)
3. 창5:1의 기록은 베뢰아의 주장이 오류임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히, 아담)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5:1-3)
베뢰아의 주장과 전혀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창세기1장27절의 사람이 창세기2장 “아담의 계보”라고 창세기5장1절의 기록이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베뢰아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창1:26-27)을 아담이 아니라 짐승과 같은 암컷과 수컷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담의 계보에 왜 동물적인 암수가 등장하며, 하나님의 형상이 짐승과 같다는 것인가?
4. 눅3:38의 계보에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라."라고 되어 있다. 성경이 잘못 되어있다고 보는가?
5. 다음 창세기 1장에 있는 성경본문의 “사람”이라는 단어는 개역성경으로는 “사람”으로 번역하였지만, 히브리어로는 “아담”이다.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창세기 1장27절의 사람은 아담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지만, 창세기 1장27절의 “사람”이라는 단어는 바로 히브리어로 “아담”인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아담)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아담)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즉 창세기 1장의 “사람”은 짐승같은 존재가 아니라 “아담”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아담은 창세기 1장의 짐승같은 사람에서 선택되어, 창세기 2장부터 등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6. 창세기 1장과 2장의 연결을 하여주는 2장4절의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라는 구절은 창세기 1장의 내용의 대략을 2장에서 다시 상세하게 설명을 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대략"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톨레톳"으로, 성경에서는 항상 앞문장을 다시 재설명하고자 할 경우에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대략. 계보. 사적등....)
히브리어 "톨레톳"은 창세기 5장1절, 6장9절, 10장1절, 11장10절, 25장12절, 36장1절, 37장2절등에서 앞문장을 다시 상세하게 재설명할 경우에 사용되었다.
즉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과 다른 내용이 아니라, 창세기 1장을 줌렌즈와 같이 다시 상세히 설명하기위한 기록인 것이다.
7. 창1장과 2장이 같은 내용이며 연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말씀에서 증거하시고 계신다. 베뢰아에서는 예수님 말씀과 김기동목사의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을 믿는가?
마가복음10장6-8절을 보자.... 예수님의 말씀이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창1:2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창2:24)
만일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이 서로 다른 사건이라면, 예수님이 마가복음에서 창1과 2절의 본문을 같은 사건의 구절로 함께 인용하셨을 리가 없지 않는가?
8. 창2:15과 2:18을 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히브리어: 아담)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히브리어: 아담)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두었던 처음 지으신 "사람"(아담)이었으며, 배필이 없었다. 과연 에덴동산에 누가 있었으며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짐승같은 사람을 두셨는가?
하나님이 처음 사람 아담을 위하여 만드신 처음 여자가 바로 하와인 것이다.
9. 창세기 2장 7절을 자세히 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니쉬마트 하임 = 호흡. 바람)를 그 코에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 = Living Being)이 된지라."
일반적으로 "영"이라 번역되는 용어는 히브리어 "루아흐"이며 헬라어 "프뉴마"이다.
"영혼" 혹은 "혼"이라고 번역되는 용어는 히브리어 "네페쉬"이며 헬라어 "프쉬게"이다.
이 단어들의 한글적 표현은 매우 다양하므로 명확한 구별이 어렵지만, 성경은 영과 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구별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루아흐"(영)나 "네페쉬"(혼 또는 영혼)라는 단어의 원래적인 의미는 바로 "호흡"이며 "바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2장7절의 내용을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어 생령이 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기를 “혼”과 구별되는 “영”으로 해석하고, 생령을 "살아있는 영적존재"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한 식으로 해석하면 아담의 후손은 누구나 불신자이지라도 태어날 때부터 영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베뢰아에서는 아담이 영을 가진 최초의 사람이며, 아담은 아담 이전의 영이 없는 짐승과 같은 존재(혼과 육만을 가진 존재)에서 선택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 2장7절에서의 “네페쉬”는 “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생명체"로서의 의미를 뜻하며, 그것을 영으로만 해석하면 틀린다.
개역성경이 그 단어를 “생령”이라고 번역하여 “살아있는 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점이다.
즉 개역성경에 “생령”으로 번역되어, 마치 육체를 배제한 영적인 의미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공동번역)
-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표준새번역)
-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산 존재”가 되었다.(현대인의 성경)
- [KJV]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 [NIV] the LORD God formed the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성경을 보면, 사람만 생령(네페쉬 하야)이 된 것이 아니라, 짐승들도 동일한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게다가 짐승도 아담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지어졌다.
만일 생령을 영적인 존재로 해석하려면, 짐승들도 모두 영적인 존재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하이 네페쉬: Living Creature)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그렇다면 사람이 "네페쉬 하야(생령)"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네페쉬란 단어는 “영”만을 가르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인적(全人的)인 사람을 가르킨다.
더군다나 “생령”이라고 번역된 네페쉬 하야는 살아있는 영이 아니라, 전인적인 “Living Being”이라는 생명자체를 말한다.
흙으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이 불어 넣어주신 생기를 가진 전인적인 존재가 바로 아담이다.
생령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창세기 1장24절에서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말하는 "생물"이라는 단어에도 이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육축과 짐승을 영적존재나 성령이라고 하지 않기 바란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네페쉬 하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창1:24)
네페쉬(생령)는 창1:20(생물), 1:21(생물), 1:30(생명), 2:9(생물)로 번역되었으며, 놀랍게도 민6:6(죽은 시체), 민6:11, 9:6에서는 “시체”라는 단어로 번역된 적도 있다.
다시 말하여 창세기 본문에서는 “생명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진 것이다.
물론 네페쉬 혹은 프쉬게는 목숨, 생명으로 번역되어질 수도 있으며 영혼으로 번역되어질 수도 있으며, 또한 전인적인 인간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즉 창세기 1장에서 짐승같이 창조된 인간 중에서 하나가 특별히 선택되어,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영을 불어 넣어주어 생령이 된 것이 아담이라는 베뢰아의 주장은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곧 비성경적인 황당한 주장으로 밝혀진다.
이 황당한 인간론은 다음 이론으로 전개되어져 가므로 더욱 위험한 사상을 낳는다.
즉 인간의 육체에는 귀신이 들어오고, 영에는 성령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더욱 해괴한 것은 영에는 인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은 인간의 몸과 함께 있어야만 인격이 나타난다고 주장을 한다.
아담 이전의 인간(네피림)은 영이 없는 짐승과 같은 존재이므로 인격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론은 삼분법도 이분법도 아닌, 그야말로 이상하고 비성경적인 인위적 신학일 뿐이다.
베뢰아에서 주장하기를, 또 귀신은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기 때문에 인격이 아니며, 인간의 몸에 들어갈 때만 인격이 나타난다고(마귀론 하, 62-63) 주장하며, 또한 귀신은 영이므로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몸에 들어올 때 반드시 가변된 천사, 미혹의 영의 도움으로만 들어오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로서는 예외적으로 천사도 영인데도 불구하고 인격이 있다고 주장한다.(마귀론 상, 80) 앞뒤가 전혀 맞지 않을뿐더러, 즉흥적이며, 물론 성경적인 근거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영이시며(약1:17), 성령도 영인데, 그렇다면 하나님과 성령께서는 인격적이 아닌 존재가 아니며, 인간의 몸에 들어와야만 인격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인가?
또 영이신 성령께서는 인격이 아니므로 우리 몸에 들어오실 때에 가변된 천사, 미혹된 영의 도움으로 들어오시는가?
베뢰아에서는 예수님도 성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인격적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인격의 정의는 무엇인가? 인격이란 지. 정. 의를 갖고 있는 존재란 뜻이다. 인간의 몸을 갖고 있어야만 인격이라는 설명은 베뢰아가 만들어낸 베뢰아적인 설명일 뿐이다.
▶ 그렇다면 베뢰아의 이중아담론이란 비성경적인 주장은 과연 어디에서 추론되었을까?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 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창4:13-17)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 하나님께 추방되면서 “자기를 만나는 자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하나님께 탄원을 한다. 즉 그 당시 땅에는 아벨이 죽었으므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 밖에 없을텐데, 가인이 누군가를 만나는 자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주장에서 베뢰아의 이중아담론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베뢰아의 의문점은 두 가지에서 시작되었다.
첫째, 과연 가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걱정하였던 “만날 자”는 누구인가?
둘째, 가인과 결혼하여 에녹을 낳은 여인은 누구인가?
이러한 의문점에서 출발한 베뢰아는 이들이 네페림이라고 인위적으로 추측하고 단정하며, 이들은 영이 없으며 혼과 육체만 가진 짐승과 같은 존재라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창세기 1장과 2장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즉 성경을 자신들 임의대로 추측하고 단정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아담이 낳은 아들과 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오직 아들만 낳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생각인가?
또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 외에 셋의 세 아들만을 낳았을까?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구했는가? 사실 이러한 질문은 불신자나 성경 회의론자들 사이에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질문 앞에 스스로 좌절하며 질문을 회피한다.
마땅한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이단으로 빠지게 된다.
눈으로 보이는 성경적인 모순을 피해보려고 하다가 급조된 이중아담론은 오히려 더욱 모순이고 더욱 해괴한 주장이 되고만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다. 나무나 당연하게도 인류의 초기에는 형제와 자매를 포함하여 가까운 친척들간의 결혼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최초의 인류는 단 하나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결혼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은 근친결혼을 엄격하게 금지하셨지만, 아담 시대에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아내도 알고 보면 그의 이복 누이였다(창20:12).
성경을 보면, 아담은 셋을 낳은 후에도 800년을 더 살았다. 거의 1000년을 산 아담이 낳은 자녀의 숫자는 상당한 숫자였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아담의 손자까지를 합한다면 그 숫자는 더욱 많을 것이다. 창세기 4장16절에서 17절까지 보자.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에녹이라 하였더라".
본문은 가인의 아내가 누구였는지 말해주지 않으며, 가인이 놋 땅에서 그 아내를 구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아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한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당시에 그 아내가 이미 있었는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 아내의 이름과 신분에 대해서 성경본문의 내용상 그것을 밝힐 아무런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담에게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자녀들이 있었을까?
창세기 5장 4절에, 우리말 성경에는 그냥 자녀를 낳았다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아담은 아들(히브리어:벤)만 아니라 딸(히브리어:바트)도 낳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으며, 그 히브리 단어는 복수명사(sons and dauters)이다. 즉 아담은 많은 아들과 딸을 낳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NIV) "After Seth was born, Adam lived 800 years and had other sons and daughters".
(KJV) And the days of Adam after he had begotten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창5:3-10)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다.
셋은 105세 때에 에노스를 낳았기 때문에 아담이 235세 때에 에노스라는 손자가 나온 것이다.
또 에노스가 90세에 게난을 낳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또 증손자 게난이 태어난 것은 아담이 325세 때이다.
참고삼아 한가지만 더 살펴보자면 마할랄렐은 아담의 증증손자이며, 아담이 395세때에 태어났다.
창세기 5장4절, 7절, 10절등은 모두 자녀(son and daughter)를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3. 16. 19. 22. 26절들도 모두 자녀를 낳았다고 기록되어있다.
아담은 930세를 살았으며 셋을 낳은 후에도 800년 간을 자녀를 낳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사의 모든 기록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록하는 세밀한 역사책이 아니다. 즉 중요한 인물과 중요한 사건만을 기록하는 것임은 당연하다.
즉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인물들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그것을 “요인열거주의”라고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고, 아담이 235세 때에 셋이 에노스라는 아담의 손자를 낳았다(셋이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으므로).
과연 아담의 나이가 130세와 235세였던 시간, 105년 사이 동안에 셋과 에노스 이외에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러한 생각이 과연 상식적이며 일반적인 생각인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는데, 105년 동안 단 한명의 아들만을 낳았을까?
인류역사 초기에는 이렇게 근친결혼이 오늘날처럼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가인이 놋 땅에서 결혼했던 여자는 여호와 앞을 떠날 때 함께 갔던 아담의 딸, 즉 누이동생일 수도 있고, 혹은 아담의 많은 후손들의 딸들(손자)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문제는 아담과 하와, 가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었다고 추론하는 것이 상식적이며 이러한 것에 의심을 품을 수는 없다.
항상 이단들의 주장은 성경을 사사롭게 풀려는 인위적인 추측과 단정에서 비롯되어진다.
'이단 분별과 경계대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엉터리 이단에게 한 사람도 미혹되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0) | 2011.01.27 |
---|---|
[스크랩] 박성업 선교사님의 `이단분별이란?` (0) | 2011.01.25 |
'종교적 이유'로 신생아 수혈 거부한 부모 패소 (0) | 2010.10.22 |
[스크랩] 뉴스자료 (0) | 2010.10.16 |
[스크랩] 통일교 궁전 천정궁... 이런일이! [퍼옴] (0) | 2010.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