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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감동 2011. 3. 12. 12:09

분별력의 두 기둥

2010. 3. 2. 성령신학교 개강설교 발췌요약

 

  디모데후서 2:15“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최고의 사명은 설교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바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스승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시고 성경의 참된 뜻을 우리에게 계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과 성령은 완전하지만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경만 읽거나,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그들이 쓴 책들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정보와 자료를 끌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수집해야 합니다. 검증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사람의 생각이 섞이지 않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계시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내용들을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독서하면서 제일 먼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그것을 분별해서 붙잡고 소화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잘못된 곳으로 나가지 않도록 울타리 역할을 하고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성경은 완전한 진리고 다림줄이고 시금석입니다. 성령께서 성경 저자들에게만 계시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계시하는데(욜2:28-29) 성경은 완전한 계시지만 우리들에게 임하는 계시는 성경의 문맥에 의해서, 열매에 의해서, 그 사람의 인격에 의해서 완전히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 것은 성경이 진리인 것처럼 진리입니다. 성경과 똑같은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틀리지 않는 것처럼 그것도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나님의 뜻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에는 명백하게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했지만 베드로와 모든 사도들은 복음이 유대인만을 위한 것인 줄로 알고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과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행10, 11, 16:9)

 

  동서고금의 하나님의 사람들의 책에는 그들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고, 주님의 방문을 경험하고, 또 개인적으로 성령과 깊이 교제하면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깊은 계시가 임했을 때 기록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분별이 된 올바른 꿈, 환상, 예언, 입신과 천사의 방문 등의 계시들은 성경의 의미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내가 성경만 읽어서는 모르는 것들이, 내 수준에서 성령과 교통하고 가르침 받아서는 모르는 것들이 그때 보입니다. 그것을 붙잡을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독서를 하면서 바로 그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분별력은 성경에서 오는 것인데 성경을 많이 읽지 않고 신학교 학위를 따면 거기서 배운 것이 자기 머릿속에 필터가 되어버립니다. 필터는 어떤 것을 걸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이 자기 필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필터를 신학이나 교리가 아니라 성경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그 사람을 지켜줍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성경적이지 않은 얘기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성경적인 얘기만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성경은 몇 번 읽느냐가 아니라 몇 시간을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진짜로 성경에 심취해서 나의 생각이 완전히 성경으로 채색이 되어버려야 됩니다. 분별력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미친 듯이 읽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이 목회할 때 평생의 재산이 됩니다.

 

  두 번째로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아야 참되게 되고 거짓이 없고 편벽됨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3)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바울이 가말리엘 밑에서 신학만 했을 때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대를 잇는 영적인 흐름이 사도와 선지자들입니다. 그런데 신학만 하면 바리새인이 되어, 스스로 정통이라고 착각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학을 할 때 머리로 하지 말고 영으로 해야 됩니다. 사람이 가르치는 것은 머리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영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10:20) 그 속은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아예 시작이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교리나 신학이 아니라 성경이 필터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 충만해서 성령의 가르침을 열심히 받게 되면 영적 일가견이 생깁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다이아몬드 같은 순전한 진리들, 주님의 진정한 계시들, 시금석이 될 수 있고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여러분이 독서를 하고 성경을 읽어도 보편적으로 거의 대부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성령과 교제하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음성을 정확히 들으면, 영적 일가견이 생기는데 그것이 보배인 것을, 성령의 음성인 것을 알아보게 됩니다. 여기서 분별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분별력은 성경을 억수로 읽는데서 나옵니다. 성령과 깊이 교제하는데서 일가견이 생깁니다. 그러면 압니다. 성령과 교통하면서 성령께서 주시는 계시, 성령의 음성, 성령의 가르침에 익숙해지는데서 분별력이 옵니다. 이게 분별력의 두 기둥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어서 신학이 필터가 되지 않고, 말씀 자체가 필터가 되어야 하고, 성령의 가르침을 많이 받아서 영적인 일가견이 생기면 자기가 그런 해석이나 설교는 못할 수도 있지만 알 수는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설교나 간증을 들을 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그것이 얼마나 보배로운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깊은 계시인지, 그것이 얼마나 순전한, 깨끗한 진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별력은 친밀감에서 옵니다. “아, 이게 우리 아버지 음성인가?” 아버지와 친밀하니까 금방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친밀해지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령과 가까워질 수 있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성령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사모하세요. 성령님을 의지하세요. 성령님을 귀하게 여기세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분에게 가르침을 요청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영에 그 말씀에 대한 계시와 이해들이 임하고 분별력들이 임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들이 임합니다. 지혜와 구변이 임합니다. 선지자들이 비유를 많이 사용한 것은 구변(표현하는 능력)이 임해서 그렇습니다. 지혜는 진리의 내용을 받는 것이고, 구변은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절한 비유, 적절한 표현, 적절한 단어는 다 구변에서 오는 것입니다.

 

  종교적이지 않고 성령님을 사모하고 의지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고, 성령님과 교통하고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과 친밀해지게 될 때 영적인 일가견이 생기고 진정한 분별력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미친 듯이 읽고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이 신학의 근본입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나의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11:2) 이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주어지셨습니다.

 

  성경이 완전하면 성경 한 권이면 끝나지 뭐하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서 자꾸 책을 쓰게 하시는가? 성경은 완전하고 성령님도 완전하시지만 우리들이 다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 영성 가지고 성경만 읽는다고, 성령의 가르침만 받는다고 다 알 수 없습니다. 내 영성 수준이 초등학생입니다. 성령님은 영적인 세계적인 석학들을 가르칠 수 있는 분입니다. 영적 초등학생인 내게 뭐라고 얘기하시겠습니까?

 

  “멜기세덱에 대하여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할 말이 많은데 너희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렵다.”(히5:11) 바울이 그 정도였으면 성령님은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왜냐하면 성경만 읽어서는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만 가르침을 받는다 하지만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님의 말씀은 끝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시119:96) 진리, 하나님의 말씀은 무한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만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구약을 쓰는데 모세 한 사람만 사용하시지 않은 것처럼, 신약을 쓰는데 바울 한 사람만 사용하시지 않은 것처럼 케네스 해긴, 릭 조이너, 찰스 피니, 존 웨슬리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들 각자의 가르침만으로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체의 각 부분입니다. 사도도 선지자도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예수님의 지체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예수님만이 온전하십니다. 예수님만이 전부이십니다. 사도나 선지자나 우리는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책들이 나오는 것이고 책들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처 : 큰믿음설교 받아쓰기
글쓴이 : 주님생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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