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지 뮬러(George muller1805~1898년)
역사상 기도응답을 가장 많이 받기로 소문 난 인물이 있다.
5만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은 영국의 죠지뮬러이다.
죠지 뮬러는 1805년 9월 27일 프로이젠 (현 독일)의 크로펜스타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거의 19세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1898년 3월10일 9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동안 1859년에 일어난
대각성 부흥운동을 목격한 사람이었고 그리고 디엘 무디와 찰스 스펄젼과 동역을 하였고,
허드슨 테일러의 소위 “믿음 선교”에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목회 사역을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유명했던 것은 고아원 사역이었다.
그는 5개의 큰 고아원을 세웠고 그의 생애동안 10,024명의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삼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1892년 그의 선교여행 말기(이때 뮬러의 나이 87세) 에서부터 1898년 3월에 그가 죽기까지
그는 그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고 그리고 1834년 그가 28세때 세운 성경연구원에서
사역을 하였다 이때가 92세였다
그리고 지난 70년동안 이일은 나에게 쉬운일이었다”
그는 1898년 3월9일 수요일에 그의 교회에서 저녁 기도회를 인도하였고
그 다음날 아침에 차를 한잔 마신 다음 조용히 주님의 나라로 갔다.
그리고 장례식은 그 다음 월요일에 그가 66년동안 섬겨 왔던 브리스톨에서엄숙하게 진행되었고 만여명의 사람들이 그의 장례를 지켜 보았다.
그는 그의 생애 동안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200번을 통독하였다.
그리고 한번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직접적으로 돈을 요청한적이 없었다.
그는 적어도 68년동안 한번도 봉급을 받은적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그가 필요한 만큼의 돈을 보내도록 하였다.
그는 한번도 빚을 지거나 은행 대출을 받은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아달을 한번도
굶긴적이 없었다. 그의 사역기간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이 연속적으로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뮬러는 두번 결혼을 하였다.
하나는 그가 25세때 메리그로브스(Mary Groves) 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그리고 그가 66세때 스산나산가(Suannah Sangar) 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다.
메리는 그에게 4명의 아이들을 낳아 주었다. 그중에 엘리야라고 하는 아들은
한살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딸 루디아는 뮬러가 세운 성경 연구원 계승자인
제임스 라이트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첫번째 부인인 메리 그로브스는
1890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가 64세 되던때에 그는 그의 첫번째 부인인 메리의 장례식에서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그가 90세때 그는 두번째 부인인 수산나의 장례식에서 역시 설교를 하였다.
뮬러는 두 아내를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내는 이별과 슬픔을 경험해야 했다.
그는 고아들의 공급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일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았으나
그의 아내가 병석에 누워 있었을 때 그의 아내를 위한 기도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아니하셨다 (이것도 뮬러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1870년 2월6일에 그의 첫번째 부인인 메리가 죽엇을 때 뮬러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녀를 이 세상의 질고에서 해방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녀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
죠지 뮬러는 자신에게는 믿음의 은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했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 나는 고린도 전서 12:9에서 말씀하는 그런 믿음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주님을 의지했을뿐이다 진실된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 했을뿐이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셨다. 순간 순간 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셨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그의 필요를 채워 달라고 간구하였다.
원래 뮬러는 가정적으로 신앙적인 배경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불신자였고,
뮬러는 자라면서 거짓말을 잘했고, 도둑질을 잘 했다. 그의 나이 14세때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어머니가 죽어가는 그 시간에도 뮬러는 친구들고 거리에서 방황하면서 다녔다.
그리고 16세때 그는 도적질을 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갔고 그의 아버지는 그를 감옥에서
석방시키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고 그리고 그를 집에 데려다가 때리고
쉐멘벡(Schoenbeck) 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아버지는 뮬러를 할레(Halle) 대학으로 보내어 사역자가 되게
그를 준비 시켰다. 왜냐하면 이렇게 한다면 뮬러가 새로운 생활을 할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뮬러는 이 학교 생활에서 영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그때가 1825년 11월 중순경이다. 이때의 뮬러의 나이가 20세 일 때인데
그는 어느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헤로 그 모임에 계속해서
참석하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 . 그 모임은 뮬러의 일생의 중대한 터닝포인트를 제공하였다.
그 성경공부 모임에서 뮬러는 비로서 중생을 하게 된다. 그후 뮬러는 런던 선교사 협회의 선교사가
되어 영국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뮬러는 1829년 그해 여름에 몸이 아파서
테인 마우스(Teignmouth) 라고 하는 도시로 휴양을 떠난다. 그곳에서 10일동안 그의 생애에
큰 영향력을 끼친 어떤 사람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은혜의 교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구원의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 그분께서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것들 공급해주실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는 정규적인 봉급을 받지 않기로 작정을 했고 자기의 충족을 위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요청을 하지 않기로 그는 작정을 하였다.
뮬러는 기도를 했고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그분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레포트를 발간하였다.
이렇게 매 해마다 발간된 그의 레포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이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아원 사역에 도움을 주었다. 뮬러는 자기가 발간하는 레포트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의 방법임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뮬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당신이 할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시오 그렇다고 당신이 한 일을 믿지 마시오.
오직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뮬러의 이런 믿음의 뿌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었다. 때로는 뮬러에게 금전적인 위기가
왔을때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금전적인 필요를 채울 방법이 어떻게 오는지를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오직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신다면 그들은 도움을 보낼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뮬러의 믿음의 뿌리였다.
또한 뮬러에게 있어서 최대의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시하신 것을 보는 일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해지는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이다.그래서 뮬러는 71세가 되었을 때 젊은 신앙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것은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는 일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 속사람을 양육하는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차례대로 규칙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자기가 좋아하는곳만
읽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영적인 앉은뱅이가 될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회심한 후 첫번 4년동안 영적인 성장이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성경을 읽는데 게을리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전체를 나의 마음으로
규칙적으로 읽어 갔을 때 나는 영적으로 몰라보게 성장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47년동안 나의 마음에는 평화와 기쁨이 충만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성경 전체를 100번 정도 통독하였고 내가 그것을 되풀이 해서 읽을 때 마다 나의 영혼은 신선해졌으며
그리고 평화와 기쁨이 날로 더 해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뮬러의 고백이다.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 알고 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고
그것을 묵상하는 일이다 나의 속사람의 양식이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파이프를 통해 물이 흐르듯이 나의 마음을 통해
말씀을 읽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것을 생각하고 숙고하고 그리고 마음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뮬러의 삶속에서 죠지 뮬러는 하나님 안에서 그의 영혼이 행복함을 누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한마디로 뮬러의 생애는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생애 였다.
기상을 주관한 죠지뮬러의 기도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뮬러는 애쉴리 다운이라는 큰 고아원을 세워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갑자기 고아원의 보일러가 고장났습니다. 보일러를 고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려야 하기 때문에 고아원은 온통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조지 뮬러에게 뛰어와서
"목사님,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영아들이 있는 건물에도 보일러가 고장나서 아이들이 다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하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외침을 뒤로 하고 조지 뮬러는 일어나 성경책을 옆구리에 낀 채
교회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날씨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어린아이들은 다 하나님이 제게 맡겨주신 생명들입니다.
이 어린 생명들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저는 총무일 뿐입니다.
하나님, 시간과 때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일주일 동안 봄 날씨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조지 뮬러가 부르짖어 간구하는 동안 갑자기 동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전체가
봄 날씨로 바뀌었습니다. 그 때는 지금과 같은 기상 이변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조지 뮬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북풍을 멈추고 동남풍을 불게 하셔서 영국 전체가 따뜻한 온실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보일러를 고친 다음 정상적으로 가동하자 영국에는 다시 한겨울의 세찬 바람이
쌩쌩 불어 왔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죠지 뮬러가 승선했던 배의 선장이 전해 준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죠지 뮬러를 태우고 항해했는데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뮬러가 와서 ‘선장님, 저는 토요일 오후까지 퀘벡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안되겠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은 불가능한데요.’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가 ‘선장님, 나는 57년 동안 나의 하나님을 알고 지내왔소. 그리고 지금까지 기도해서
나의 왕이신 하나님과 접견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소. 자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나는 뮬러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뮬러씨, 당신은 이 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아세요?’
그러자 그는 ‘아니요, 몰라요. 나의 눈은 안개의 농도에 있지 않소. 나의 눈은
바로 나의 모든 삶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께 있소.’ 라고 하더니 무릎을 꿇고 간단한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어나면서 ‘자! 선장님, 이제 일어나시오. 그리고 문을 열고 안개가 걷힌 것을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나는 얼른 문을 열어 보았는데, 정말로 안개는 걷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뮬러는 토요일 오후까지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었지요.”
죠지 뮬러의 고백
어떻게 평생 고아를 위해 그토록 한결같이 헌신된 삶을 살 수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뮬러는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죠지 뮬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평판과 선택, 좋은것과 싫은것, 원망등에 대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대해서도 죽었습니다
제가 두려워 했던 것은 하나님의 책망이었고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칭찬이었습니다
그러자 인생이 저도 모르게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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