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신자는 모두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신자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양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참된 신자는 당연히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제가 울산에서 목회할 때 한번은 주일밤예배 설교를 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저에게 성도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주님의 음성을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그랬더니 일부 성도님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손을 드신 분들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만 계속 손을 들고 계시고 나머지는 손을 내리십시오.”
그랬더니 대부분 손을 내렸습니다. 제가 이 질문을 왜 했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많은 신자들이 자신은 주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구원받은 자라면 주님의 음성을 이미 들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경험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일이 없다면 그는 구원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여기서 “죽은 자들”은 몸이 아니라 영이 죽은 자를 가리킵니다. 즉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살아나리라”는 것도 육이 아니라 영의 부활 즉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거듭납니다. 마치 천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처럼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누구도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구원받은 자라면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일이 없다’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나 가능한 것이지 나와는 상관이 없다.’ 이런 생각도 받아들이지도 마십시오. 그것은 사탄이 지어낸 거짓말입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라고 현재진행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과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뿐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거듭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어떤 신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브와 린다 올슨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생각보다 더 많이 듣고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모두 이 말에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음성’을 ‘소리’로 혼동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처럼 귀로 들리는 소리를 들어야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간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예수님은 “내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했으므로, 거듭난 자는 모두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가 모두 귀로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음성은 소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들은 일이 없다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거듭날 때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까요? 그때 사람들은 귀가 아니라 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곧 천국의 의사소통방법입니다. 여러 천국간증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천국의 의사소통방법은 입을 사용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직접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천국에서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의 주된 의사소통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대부분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 10:19-20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이처럼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 밖이 아니라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 속 즉 영 안에 계시기 때문에 굳이 들리는 소리로 말씀할 필요가 없습니다. 육(혹은 육의 귀)을 통하지 않고 우리 영에 직접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모리스 세룰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묵상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속사람에게 말씀하신다. 그 속사람이란 우리의 영혼이며 우리 안의 참 사람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영혼 대 영혼의 교류를 갖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 속에 있는 참 사람, 즉 내적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그분은 고요한 가운데 때로는 즉시 깨달음을 주는 낮은 음성으로 당신의 영혼과 교통하신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 속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예수님은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할 것을 주실까요? 환상을 보여주실까요? 음성을 들려주실까요? 아닙니다. 그럴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생각으로 주십니다. 주님은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 플로이드 맥클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과 생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구하면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여러 가지 생각을 심어주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 여러분이 잡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분명히 기도에 집중하고 있었고 딴 생각을 한 것이 아닌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떤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깨달아지거나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곤 하는데,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것은 단지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입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말씀하시면, 우리는 즉시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에 말씀하시는데,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직접 우리의 마음속에 그의 생각을 넣어 주십니다. 때때로 그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환상 중에 주님을 자주 뵙고 입신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생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케네스 해긴 목사님 역시 영적인 많은 경험들을 하셨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탁월한 책에서 상대가 선지자라 할지라도 주님은 대부분 영의 증거나 내적 증거를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주님은 소리 없는 음성인 생각을 통해서 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소리 없는 음성을 제대로 들어야 소리 있는 음성도 바르게 듣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찰스 피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어나 다른 지각 전달 수단을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경우, 누군가가 가르침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즉 생각 그 자체가 우리 마음에 직접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생각에 대한 표식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이 행하시는 사역이다. 성령이 이 사역을 어떻게 행하시는 지는 아무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성령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 직접 우리 마음속에 생각 그 자체를 새긴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마음에 직접 역사 하시는 성령은 외적인 표시를 통하여 살아있는 생각을 전달한다. 성령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연구와 노력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성경구절들을 끊임없이 계시한다.”
오늘날 신학적인 오류가 교계에 차고 넘칩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학자와 목사님들의 다수가 그저 연구와 노력으로 성경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구와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학은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 즉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신학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존 웨슬리와 찰스 피니, 썬다 싱, 케네스 해긴 그리고 저의 신학 역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바울이 연구와 노력을 통해 성경을 이해하려고 한 가말리엘에게서 성경을 배웠을 때, 그는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라고 고백한 대로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는 자가 되어 진리를 옳게 분별하고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는 역으로 핍박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연구와 노력으로 성경을 이해하려고 했던 자들은 핍박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핍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상 세 사람의 말이 증거해 주듯이, 생각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된 방식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것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생각은 단순히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은 음성입니다. 물론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음성인 것은 아닙니다. 전파를 통해서 여러 방송국이 말을 하듯이 여럿이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생각은 셋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음성(영이 아니라 혼의 음성)이거나 마귀의 음성,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러므로 분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이 내 생각인지 마귀가 주는 것인지 아니면 주님이 주시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 생각은 머리의 작용입니다. 그것은 혼의 음성입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도 머리로 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영 안에 계시며 그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인 생각은 영에서 올라옵니다. 그리고 영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우리 영에 공명이 됩니다. ‘아, 바로 이거야!’ 라고 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 외에도 생각이 주님의 음성인 경우에는 다음 4가지가 동반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이 말씀하실 때는 성령의 감동이 동반됩니다.
벧후 1:20-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성령의 감동이 있고 그 후에 예언의 말씀이 임합니다.
왕하 3:15-16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이것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성령의 감동이 오기 전에는 예언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음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내 속에서 말씀하시기 전 대개는 성령의 감동이 먼저 옵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내용이 계시적입니다.
우리는 말하기 전 무엇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0:19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막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눅 12:11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눅 21:14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이것은 설교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설교 준비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핍박자 앞에 설 때에 대한 것인데, 예수님은 그때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고 미리 연구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 지혜가 아니라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꼭 박해시가 아니라도 설교나 대화중에 성령의 감동 중에 미리 연구하거나 준비하지 않은 것을 받아서 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음성입니다. 말하기 전 미리 염려하면서 혼적으로 준비한 내용은 주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은 설교나 대화 도중 준비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영에서부터 떠오르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언제나 “마땅히 할 말”만을 주십니다.
눅 12:11-12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수다쟁이가 아니며 마땅히 할 말만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때에 맞습니다. 즉 시의적절합니다.
잠 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경우에 합당합니다. 즉 내가 처한 문제나 환경과 딱 들어맞습니다.
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
그것은 은쟁반에 금 사과처럼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금보다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명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공명에 대해 신디 제이콥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외치게 된다. 우리 마음에 그 말씀이 공명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예언이나 말씀을 들으면 우리 속에 공명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즉각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게 됩니다.
넷째로,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지혜와 구재가 나타납니다.
눅 21:14-15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베니 힌 목사님은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때는 놀랍게도 ‘초자연적인 앎(깨달음)’이 여러분을 덮어씌우게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초자연적인 앎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면 갑자기 어떤 것에 대해서 환히 알게 됩니다. 갑자기 초자연적인 앎 즉 깨달음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메모해두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그럴 정도로 그것은 통찰력이 있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구재” 즉 말재주가 주어집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 특히 이사야가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사 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스데반이 이것을 경험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이 두 곳은 예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베드로는 공회 앞에서 어부 출신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탄없이” 말했습니다. 스데반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능히 당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에게 성령께서 지혜와 말재주를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평소 말을 잘 못하던 사람도 성령이 임하시면 아주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 성령이 임하셨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저의 지혜나 말솜씨에 큰 차이가 남을 자주 느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내 생각인지 아니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실 때는 성령의 감동이 동반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내용이 계시적이다, 주님은 언제나 “마땅히 할 말”만을 주신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지혜와 구재가 나타난다, 이 네 가지를 꼭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주님의 음성인지 그것도 아니면 마귀가 주는 음성인지 잘 분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제가 설교나 대화 중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혹은 “성령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을 때때로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맞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짚어보겠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 저는 환상을 보거나 귀로 들리는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제게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해야 옳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표현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먼저,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성경적인 것입니다.
마 10:19-20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이 구절에 보면 생각으로 주어지는 말씀에 대해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주어진 말씀에 대하여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입니다.
또,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표현도 성경적인 것입니다.
눅 12:11-12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 보면 생각으로 주어지는 말씀에 대해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주어진 말씀에 대하여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경적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표현 역시 성경적인 것입니다.
막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이 구절에 보면 생각으로 주어지는 말씀에 대해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주어진 말씀에 대하여 “성령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경적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는 일부 교단들의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저의 설교나 책에서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제게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혹은 “성령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 삼으며 직통계시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비성경적인 일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문제 삼는 교단들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설명한 방식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떡’은 단순히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아니고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음성입니다. 입에서 나오고 있는 말씀이 음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실로 그것은 음성입니다.
릭 조이너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매일 백성에게와 각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떡으로만 살 수 없으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그가 과거에 말씀하셨던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 역시 우리에게 일상화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날마다 먹어야 영적인 생명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강해질 수 있으며 성숙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러 광야로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처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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