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과 부흥

[스크랩] 부흥의 적 : 인본주의적 이상주의 - 릭 조이너

하늘감동 2011. 6. 25. 21:40

모리아에서 이반 로버츠의 첫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나사렛 사람들이 회당에서 주님이 이사야의 예언을

읽으셨을 때 받았던 것과 똑같은  도전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에서 느껴지는 권위에, 사람들은 그분을

믿든지 거절하든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는 편을 택했다. 이반 로버츠의 설

교를 들은 사람들도 같은 도전을 받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기로에 놓였다.

어린아이일 때부터 봐 왔고 함께 탄광에서 일을 했던 이 청년이 한번도 본 적 없는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마을 사람들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놀랍게 능력을 나타내실 하나님을 믿든지 아니면 그 소식을 전하는

사자(使者)를 거절하든지 선택을 해야 했다. 이들은 믿는 편을 택했다. 다시 한 번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

웨일스의 영적 분위기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제 부흥은 불가피해졌다.

 

부흥 전체가 이 한 사람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가능한 말인가? 그렇다!

내슈빌 부흥이 샘 존스의 담대함에 달려 있었듯이, 웨일스 대부흥 또한 준비된 나무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기 위해 주님이 택하신 사자를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었다고 할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최대의 부흥은 악한 이교도들의 성읍 니느웨에서 일어났다.  죄인들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히브리 선지가 요나를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미련한 자들을 사용해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들을 사용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도록 그분께 얼마나 주도권을 내어 드리느냐는 대게 우리가

받는 은혜를 결정한다.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23:29)

이제 주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이를 송축하지 않으면 그분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영적 이상주의와 계시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영적 이상주의라 하더라도 이상주의는 인본주의의

교묘한 모습일 뿐이며 인간 교만의 발현이다.

 

웨일스 대부흥이 사그라지는 데 제시 펜 루이스(Jessie Penn-Lewis)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이다. 물론 결코 나쁜 의도는 아니었지만, 제시 펜 루이스는 이반

로버츠가 마땅히 주님께 돌려야 할 관심을 너무 많이 받고 있다며 웨일스 부흥에서 물러나라고 설득했다.

다른 위대한 지도자들의 경우에도 강점은 곧 약점이기도 했다. 유명세를 싫어한다는 점이 이반 로버츠의

강점이었다.

부흥의 진정한 근원이신 주님께만 온전히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이반은 신문 기자들을

무서워했고, 아첨을 싫어했다.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기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고 듣기 위해 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집회장을 떠난 적도 많았다. 집회에서 자신이 관심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반은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지 않으면 성령이 그들에게서 멀어지실 것이라고 괴로워하며 권면했다.

당시 이반 로버츠는 전 세계의 가장 많이 알려진 설교자였지만,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기자들의 인터

뷰 요청을 거듭해서 거절했다.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사진 촬영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으로 부흥이 말미암았으며, 사람들

이 자신을 우상화한다면 영광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전기를 출판하자는 전 세계 유수 출판사들

의 요청에 아예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이반은 혹시나 오직 주님께만 돌아가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하게

되지 않을까 심히 두려워했다. 이반 로버츠의 이러한 결단 덕분에 사람들은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그분

의 임재의 복을 누릴 수 있었다.

이반 로버츠는 사랑하는 주님께만 속해야 할 관심을 자신이 조금이라도 가로챌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질색했다.  그래서 1906년에 결국 제시 펜 루이스의 조언을 따라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부흥

도 사라졌다.

 

이상주의자들은 진정한 부흥은 한 사람이 사라진다 해도 달라져선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마, 성경과

역사의 증언은 다르다. 하나님은 이 땅의 권세를 사람에게 맡기겼다. 그래서 이 땅에서 역사하고자 하실 때

하나님은 언제나 성의 무너진 데를 막아설 사람을 찾으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부흥의 불을 붙이실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 움직이신다.

부흥에는 사람이라는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부흥은 " 하나님과 기드온의 검" 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부흥을 재연하겠다는 생각으로 인간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려 했다.  온전히 성령

으로만 말미암은 부흥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령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언제나 그분의 일에 택하신 그릇을 사용하신다. 이반 로버츠는 주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그릇의

전형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세례  요한처럼 이반 로버츠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분을 가리키며 그분

이 흥하실 때 기꺼이 쇠할 자로 주신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님이 흥하실 때까지 요한은 쇠하지 않아야

했다. 부흥을 구하는 많은 이들이 이 점을 놓친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에게 기름을 부으심으로, 온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그 결과 큰 자,

작은 자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을 찾았다. 온 나라의 이목이 집중된 후에야 그는 더 크신 이를

가리켰다. 요한은 자신을 세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향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 정도의 명성을 얻게 된 사람들은 대게 주님이 흥하실 때 쇠하

려 하지 않는다. 그렇대 해도 어떤 자리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주님을 가리킬 수 있음에도 올라가기를 거

부해서 그 자리에 가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데 인간을 사용하시는 것은 태초부터 그분의 목적이었다.  에덴동산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두어 그 동산을 가꾸고 지키게 하셨다. 농부는 옥수수가 자라게

만들 수 없다. 그저 옥수수를 심고 가꿀  수 있을 뿐이다.  옥수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실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완벽한 옥수수 밭을 만드시는 데 언제나 인간을 사용하셨다.

직접 다 하실 수 있는데도 이 땅에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을 선택하신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

는 것은 그분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크게 쓰임 받아 계속해서 하나님을 가리킨다면,

그분의 영광을 더 크게 나타낼 수 있다.

 

대개 약한 종교의 영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 가운데 하나님과 연합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래서 사람이

너무 많은 영광을 취하고 있다는 이상주의적 망상을 심어 준다.  물론 우리 인간은 ' 질그릇' 에 불과하며,

모든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질그릇에 담겨야 한다는 진실을

부인하는 것은 인본주의적 이상주의다.

물론 웨일스  부흥이 중단된 책임을 모두 제시 펜 루이스에게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반 로버츠

의 친구들과 동역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반은 사역을 떠나 루이스의 집에 기거했고, 사실상 영적

은둔자가 되어 다시는 사역에서 쓰임 받지 못했다.

루이스는 현대판 이단 사냥꾼이었다. 루이스 부인의 가장 잘 알려진 책 <성도들의 영적 전쟁> (War Against

the Saints) 을 보면 , 루이는 웨일스 부흥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방언이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고 간주했다

(후에 출간된 개정판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됐다) . 파수꾼과 사사로 자임하는 이들이 하나님이 위대한

역사를 중단시키거나 탈선시키는 데 사용된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교회에 이단 사냥꾼이 아닌 장로들을

임명하셨다. 성경적 교회에서 사도와 장로들은 어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빛을 보여 주는 방법으로

영향력을 얻었다.

 

 

 

릭 조이너의 저서>교회사에 감춰진 예언  p269-273p 中에서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묘지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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