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자녀 교육

[스크랩] 39세의 시각 장애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23세의 성령신학교 신학생 자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하늘감동 2012. 8. 13. 01:41

저는 부산큰믿음 교회를 섬기다가 올해 성령신학교 신학 연구원에 입학한 시각장애 성도입니다. 서른 아홉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달 25일에 하나님의 은혜로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이렇게 부끄럽지만 여러 성도들에게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된 건 작년 4월 경이었는데 제가 무척 존경하는 전도사님 부부께서 부산진역 무료 급식소에서 ‘새희망교회’라는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천막교회를 시작 하시면서 부터입니다. 기도 중에 새희망교회를 위해서 중보 해야 한다는 감동을 받았는데 마침 예배시간이 주일 저녁이라 우리 교회 예배를 마치고 새희망교회로 직접 가서 예배를 위해 중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전도사님 부부와 함께 새희망교회를 동역하는 관계(사실상 영적인 부모님으로 생각하는 관계임)여서 저와는 자연스럽게 만났고 함께 자주 식사도 하고 영적인 교제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어린 나이에 어려운 사역을 믿음으로 해 나가는 기특한 아가씨라고만 생각했는데, 우연치 않게 본인의 중고등학교 시절과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야기를 듣고 그 자매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혼자 있을 때 자매 생각을 무척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랐습니다.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자매가 저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사라와 같은 약속의 관계입니까? 아니면 하갈과 같은 육신의 관계입니까?’

저는 당연히 ‘하갈’이라는 답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사라’였습니다. 분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점점 커져서 분별이 분별이 아니게 되어버렸거든요. 그냥 이 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몇 달을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전전긍긍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직장에 있을 때는 그 자매를 잊어야 한다고, 그것이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집으로 돌아와서 방언기도만 시작하면 끊임없이 ‘그 아이의 짝은 너다’라는 감동이 밀려와서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미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11월 쯤이었던가요? 갑자기 전도사님 사모님께서 넷이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다짜고짜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빨리 터트려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 들었지만, 모르는 체 하고 있는데 사모님께서 한술 더 뜨셔서 말을 해야 하나님이 작업을 시작하시지 않겠냐고 하시고, 또 서울 올라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혼자 어떻게 할 거냐고 결혼해서 같이 가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말 놀랍고 기가 막혔습니다. 하나는 아무에게도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았는데 사모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셔서 놀랐고, 또 하나는 그 전날 제가 예식장 안에서 예식홀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꿈을 꿨는데 전도사님 부부가 꿈에 나타나셔서 홀을 가르쳐 주셨거든요. 물론 결혼식도 무사히 치루었구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두분의 말만 잘 들으면 이 자매와 잘 될 수도 있겠구나!’ ‘적어도 내가 미친 건 아니었구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고백해 보자!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마음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래서 2주 후에 그 자매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사모님의 말씀도 듣긴 했지만 거의 긍정적인 결과는 기대하지 않았구요. 그런데 자매의 반응이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저는 완강하게 거절하거나 아니면 정중하게 그냥 좋은 사이로 지내자는 답변 정도를 예상했는데 대뜸 좋아한다는 그 말이 전부냐고 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얼떨결에 평생 믿음의 길을 함께 가자고 말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돌아 온 답변은 기도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가 텅비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자매님의 마음이라고, 그리고 기다리겠다고만 말하고 헤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사모님은 이미 6월 경에 응답을 받으셨고, 그 자매에게 제가 고백하기 한 달 전에 저를 놓고, 배우자 기도를 해 보라고 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믿음으로 하나님 붙들고 담대하게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불안하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던지요.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신학교 입학 시기는 다가오는데, 답을 듣지 못하고 혼자 서울에 올라가게 되면 이대로 그 자매와의 관계가 끝날 것 같기도하고...


 그래서 또 한 번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서울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함께 큰믿음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에 동참하자고 했습니다. 정말 어떻게 생각하면 염치 없는 일이었죠! 그 자매는 다니던 신학교를 그만둬야 하고 전도사님 부부를 제외한 모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답은 ‘가겠다’였습니다. 아마도 그 모든 상황을 넘어설 만큼 확실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나 봅니다. 나중에 사모님께 들은 얘기인데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저와 결혼하라고 말씀하셔서 순종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정말 힘들다고 했답니다.


 아무튼 저는 결혼에 대한 어떤 답변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그 자매와 함께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신학교 4학년에 편입했고, 저는 신학연구원에 입학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에게 정말 어떻게 보면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가 저에게 너무나 냉담하게 대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고, 그 자매는 밤이면 눈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싶다고 기도하다가도 막상 저만 보면 마음이 싸늘해 지는 자신 때문에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 3월 한달 동안은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를 저렇게 싫어하는데 우리가 받은 계시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내 집착이나 욕심 때문에 한 자매의 삶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여전히 ‘그 아이의 배우자는 너다’ ‘그 아이를 내 마음으로 사랑해 주어라!’ 였습니다.

 그 자매는 아마도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성도로서 당연히 순종하고 그 뜻을 좇아야 하는데, 그 순종이 23세의 아직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삶을 모두 걸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에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희가 김옥경 목사님을 무척 사모해서 수요중보철야를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었는데 어느 한날은 둘이 정말 심하게 다투고 중보철야를 참석했습니다. 저희는 항상 강대상 정면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자리를 잡고 앉는데 그날따라 목사님께서 그 자매를 끌어안고 안수를 정말 물 붓듯 해 주시는게 아니겠습니까? 옆에서 기도하는데 정말 많이 울더군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집으로 돌아와서 자려고 하는데 그 자매로부터 메시지가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동안 본인이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앞으로 잘 하겠다고’

 잘못한 건 오히려 저인데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은 목요일 신학교 예언훈련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훈련 시간이 거의 끝나 갈쯤이었던 것 같은데 저와 그 자매와의 관계를 전혀 알지 못하는 한 형제가 저에게 대뜸 결혼 계획이 있냐고 묻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했더니 제게 마리아 데리고 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자매를 제 신부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만 기다리고 있었을 뿐, 응당 제가 한 자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소홀히 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당연히 그 자매가 순종하기만 하면 끝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네가 순종할때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6월 초였던 것 같은데요.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짜내서 같이 결혼 승낙 받으러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는 4월 언제부터인가 그 말만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더 놀라운 사실은 9월이 되기 전에 결혼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하더군요.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서 자매의 어머니가 계시는 영양을 수차례 오갔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를 말씀드리니까 차마 저를 내어 쫓거나 하지는 못하시고 그냥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시더군요. 다음에는 우리의 관계를 가장 잘 아시는 그 전도사님과 함께 갔습니다. 같은 대답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전도사님께서 산책 중에 마음이 좋지 않아서 이 일의 결과에 대한 표적을 하나님께 구했는데 그 때 목이 꺾여 죽은 뱀을 보셨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아무 걱정 말라고 하시고, 어머니를 따로 만나 이야기를 좀 해야 겠다고 하시더군요. 공개할 수는 없지만, 우리 결혼에 대한 응답을 가장 먼저 받으신 전도사님 사모님께서 기도 중에 받은 비장의 전략이 있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이틀 후에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그게 7월 26일이고, 8월 6일에 결혼식 날짜를 8월 25일로 잡았습니다. 거의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결혼식과 신혼여행 준비를 마무리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끌고 오셨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상세하게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전도사님 부부와 우리 두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계시와 전략을 주셨고 그때는 서로 몰랐지만 나중에 그 응답들을 나누었을 때 ‘정말 이건 하나님의 역사구나’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앞뒤가 딱딱 맞추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 그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서로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많이 말씀하시고, 여러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셨는지 이제는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가 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만약 우리가 현실적인 상황이나 이기심 때문에 이 부르심을 거절했다면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온 것 같은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일부를 ...


하나님이 항상 옳으십니다. 우리 두 사람 이제 자기 소견 버리고 하나님 뜻만 좇아 살고 싶습니다. 그런 가정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 증거하고 싶고, 그분께 영광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죽은 사람 살려 주시고,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신 우리 아버지께 제가 할 수 있는 일 같습니다.


우리 결혼이 온전히 주님께만 영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 너무 감사하고, 너무 사랑합니다.


출처 : 큰믿음교회
글쓴이 : 얼굴을 구하는 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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