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타락과 치유

성적인 죄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면?

하늘감동 2015. 2. 21. 21:29



성적인 죄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면? (1)


 ◈ 성경의 가장 놀라운 진술 가운데 하나는 성적인 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음행을 피하라”고 경고한 후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 결론을 내린다(고전 6:18).
바꾸어 말하자면, 음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까지 해친다.

나는 이 말씀이 ‘성’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사회적으로 퍼지는 병과 같은 육체적인 질병, 원하지 않는 임신과 같은 사회 문제, 죄책감과 성도착증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문제들은 매우 실재적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것들에 대해 경고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육체적, 정서적, 영적 자원의 대부분을 성적인 죄의 결과를 처리하는 데 소모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라지 못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의 상황이라면, 사탄은 우리의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우리 스스로 다른 데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인 죄가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어떻게 가로막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이 성에 온 관심을 집중할 때 당신에게는 하나님을 예배할 에너지나 의향이 없다.

당신은 하늘의 하나님과 이 세상의 신, 곧 성(性)을 동시에 예배할 수 없다.
어느 대학생에게 하나님과 마지막으로 대화해본 게 언제냐고 물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연애하기도 바쁜데 예배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계명은 그분을 예배하라는 것이다.
예배하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 죄책감에 갇히고 육체적 존재로 격하한다
성적인 죄는 우리를 죄책감에 가둠으로써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줄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항상 죄책감에 짓눌려 있거든요.
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더 멀리 가고, 그때마다 제 자신이 너무나 싫어져요.
저는 사랑을 원해요.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고 싶어요.
성을 통해 이것들을 얻으려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어요.”

밥도 자위로 인한 죄책감에 대해 줄리와 비슷한 느낌을 말했다.
그의 결론은 간단했다.
“몇 분간의 덧없는 쾌락에 비하면 그 뒤에 몰려오는 몇 시간의 아픔은 너무나 컸어요.”

죄책감은 가지고 놀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죄책감은 심각한 정신건강의 문제이다.

따라서 성적인 죄를 피하는 것이 죄책감을 피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죄책감에서 자유로울수록 성장할 준비가 더 잘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성적인 죄는 우리를 단순한 육체적 존재로 격하시키는 경향이 있다.
피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늘 제 몸만 생각할 때는 제 자신을 몸과 혼과 영으로 생각하는 게 아주 힘들어요.
제 자신을 속물로 격하시켜버린 게 아닌지 두려워요.”

나는 피트에게 자신의 문제와 싸워보라고 했다.
“온전한 네 자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면 무엇에든 안주하지 말아라.
네 마음 때문에 널 사랑하게 될 똑똑한 여자가 있을지 누가 알겠니?”

그에게는 새로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성적인 죄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면? (2)


◈ 세상 것에 가치를 두게 된다
성에 몰두하면 모든 가치 있는 것은 성적이거나 에로틱해야 한다고 믿게 되며 따라서 영적 성장이 방해를 받는다.
우리는 육적인 감각과 무관하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가치가 없다고 믿게 된다.
이보다 진리에서 벗어난 것은 없다.
사실, 성경은 육체적 쾌락은 한순간이라고 말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하다(히 11:24-28).

베티는 좋은 시간을 가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은 대개 성적 쾌락을 찾는다는 뜻이었다.
“남자애들이 따라오면 정말 짜릿해요.”  그녀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애들이 나를 잡았을 때 나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어요.
그 후로는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보였어요.
현실로 돌아오는 데는 몇 년이 걸렸지요.
하나님은 그때의 짜릿한 스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스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베티는 다시 마음껏 자라고 있다.

한편 마크는 이렇게 말했다.
“교제할 시간이 없었어요.
제가 자라지 못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저는 몇 시간씩 파티를 즐기고 더 많은 시간을 섹스와 관련된 것에 빠져서 보냈어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마크가 마침내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은 ‘보니’라는 자매를 만나고 한 사람의 인간과 한 사람의 신자로서 그녀의 신앙적 깊이에 도전을 받은 후였다.
마크는 이렇게 말했다.
“보니와의 우정이 저를 그리스도께로 더 가까이 인도했어요.
섹스를 위해 살 때는 성장을 독려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마크의 성관계는 그의 영적 성장뿐 아니라 다른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이 교제를 육체적인 것으로 제한할 때 관계는 성장을 멈춘다.
교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부분에서, 육체적인 부분뿐 아니라 지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에서까지 서로 함께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성관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만 그 결실은 훨씬 풍성하다.


성적인 죄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면? (3)

◈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사라진다
성적인 죄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사라지게 하기 때문에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된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왜냐하면 돈을 버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할 때 하나님을 향한 에너지나 갈망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마 6:24).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과 성적인 죄를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둘은 목적이 전혀 다르다.

짐에게 그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물었다.
나는 그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몇 시간의 대화를 나눈 후에야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요즘 다른 일들에 온통 시간을 다 뺏기고 있어요.”
“어떤 일인데?” 내가 물었다.
짐은 얼굴을 붉히더니 자신이 ‘성’에 적극적이 되었으며 ‘작업’에 모든 시간을 쓰고 있다고 했다.
“솔직히, 이제는 하나님을 거의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짐에게 그가 하나님을 옆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라고 했다.
일단 그가 이 점을 분명히 하자 자신의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 후 짐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갈망이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회복되고 있음을 보았다.
짐은 다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언급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는 자신이 성적인 죄 때문에 한동안 성장을 멈추는 것을 경험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가장 형편없는 선택, 자신의 성적인 죄를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계속해서 소홀하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성이 생명을 낳을 때가 많다.
그러나 성적인 죄는 언제나 성장의 침체와 정지와 영적 죽음을 낳는다.

- 얼 윌슨,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