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사역

[홍민기 목사, "나는 혼나는 전도사였다"]

하늘감동 2015. 12. 30. 08:42

[홍민기 목사, "나는 혼나는 전도사였다"]

<아이들과 관계를 맺으라>

청소년 사역을 전문적으로 하다가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하다가 호산나교회로 가게 되었다. 교회에서 많은 아이들을 놓치는 이유는 대부분 교회는 표어만 있지 실제적인 사역이 없다. 아이들은 감동이 되어야 교회를 지속적으로 다니는데 교회는 2세를 위한다는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안 느껴진다. 느껴지지 않는 모든 말들은 아이들에게 소용이 없다. 아이들의 마음에 감동이 되기 전에 변화가 안 일어난다. 아이들의 변화를 위한 감동을 위해서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관계를 맺으려면 두 가지 희생이 따른다. 목양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 사역을 잘하려면 교사들은 아이들을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을 잘하면 된다. 관계를 맺으면 시간과 물질적인 희생이 따른다. 어렵고 바쁜 이민생활 중에 희생을 해야 한다. 제가 교사에게 항상 하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 백 마디보다 떡볶이 한번 사주는 것이 낫다고 한다.

교회 오면 항상 '사랑한다' '축복한다' '귀하다'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중에 한번 문자나 전화도 안하니 아무리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감동이 안 된다. 그러니 떡볶이 한번 사주는 것이 낫다. 대부분 교회는 말만 하기에 관계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가르치면 아이들은 듣는 척만 한다.

관계를 맺으려면 만나야 한다. 대부분 교회 선생님들이 거룩한 소명을 가지고 애들을 만난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변화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한번 만나 아이들이 변화하기 힘들다. 20년경험이다. 선생님은 거룩한 뜨거움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나 한 번에 끝을 내려고 하고 그것이 안 되면 실망한다. 가장 좋은 만남은 목적 없이 그냥 만나는 것이다.

청소년사역을 오래하다 개척교회를 4년 반하다가 호산나교회에 갔다. 개척교회나 대형교회나 다 같이 관계사역이 중요하다. 개척하고 3개월 지나니 고등학생만 100명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은 헌금하는 것이 아니기에 초창기에는 밥을 먹으러 오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다. 아르바이트 해서 돈을 벌어 아이들을 먹이며 잘 지냈다. 연말이 되니 부모들이 다 우리교회를 왔다. 자녀들과 같이 교회를 다니고 싶은데 애들이 교회를 안 옮기니 어른들이 옮기는 것이다. 어른들도 3분만 앉아있다 가라고 나를 잡는다. 목양의 기초는 관계사역이다.

교육목사를 할 때 어느 장로가 애들이 너무 인사를 안 한다며 인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지나가는 중등부 2명을 불러 장로님이 너희들에게 용돈을 주신다고 하니 놀라워했다. 장로님에게 만원씩 주라고 했다. 그리고 인사하라고 하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다른 애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 장로님은 인사 받느라고 죽는 줄을 알았다. 용돈을 계속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애들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처음에는 애들도 장로를 보기에 멋쩍어 한다. 그렇게 하면 애들도 인사하기가 쉬워진다.

대부분 교회는 말로만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욕을 먹는다. 호산나교회에 와서 하는 사역 중에 긍휼사역이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다. 너무 감동이 된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한다. 21세기 목회 키워드는 '감동'이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열풍이다. 힐링은 감동받아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다. 교회가 그것을 못하면 안 된다. 오히려 교회 와서 상처를 받는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목사와 장로가 좋은 관계가 되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라>

다음세대 사역은 아이들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머리색을 바꾸라는 말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어야 한다. 교육목사를 할때 한 고등부 아이가 뒤에서 친구들과 설교를 못하도록 떠든다. 보통은 야단은 치지만 야단해도 변화될 것 같지 않아 그대로 놔두었다. 어느 날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왔기에 불렀다.

아이는 또 야단을 맞는구나 하며 삐딱하게 서있었다. 색이 이상한데 싼데서 했지 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에게 만원을 주고 다음에 할때 보태서 하라고 했다. 아이는 그 다음부터 거듭났다. 제가 설교할 때 다른 아이들이 떠들어도 조용히 하라고 할 정도이다. 아이들은 들으면 변한다. 이것이 장년사역과 다르다. 애들은 듣기까지가 어렵다. 장년은 잘 듣지만 안 변한다. 애들은 엄청 떠들지만 들으면 변한다. 애들이 듣게 만들려면 관계가 있어야 한다.

<당회에 불려가 혼나는 전도사>

퀸즈장로교회 전도사로 시작할 때 고등부에 50명이 있었는데 6개월 만에 150명, 1년 만에 3백명까지 부흥했다. 교회에서 수양회를 가면 담배 피는 애들이 많다. 하지만 저는 담배를 못 피우게 하지 않았다. 내 방법은 아이들은 가져오지 말고 내가 담배를 챙긴다. 그러다 보니 장로님들에게 "네가 전도사인가"라고 혼이 많이 났다. 그냥 피우게 한 것이 아니라 규칙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 한 번씩 피게 해준다.

밥을 다 먹으면 30-40명이 우르르 나온다. 20분을 걸어 한 녀석씩 입에 담배를 넣어준다. 혼자서 못하게 하고 불도 붙여준다. 사역자가 붙여주는 담배라 애들이 기분이 나빠 담배를 끓어야겠다고 중얼거린다. 원래 그런 애들은 수련회에 가면 맨 뒤에 앉아 설교를 안 듣는다. 변화되려고 가는 애들이 아니다. 그러나 담배를 피게 해주면 맨앞에 앉는다. 그리고 들으니 변한다. 담배를 피게 해준 목사가 설교하니 듣는 것이다. 그리고 뒤집어 진다.

교회는 원래부터 죄인들만 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자신보다 좀 더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이 오면 뭐라고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퀸즈장로교회에서 당회에 불려가 혼이 많이 났다. 장로님들은 손주들이 담배 피는 것을 본받는다고 야단친다. 장로님들은 손주는 좋은 아이이고 다른 애들은 나쁜 애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고 하니 욕을 먹는다.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잘못하면 교회에 잘 다니는 애들이 다른 애들한테 물들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것이 본질이 된다. 주님을 잃어버리고 어렵던 아이들이 교회에서 변화되는 것이 잘못되면 비본질이 된다. 다음세대를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