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2
2006. 10. 22.
오전 시간에는 첫째로 영적인 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성전 사면에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별하는 담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은 우리가 성도이고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담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잘 안다. 이런 체험을 했고, 이런 은사를 받았다. 교회 안에서 이런 직분을 가지고 있고 이런 봉사를 하고 있다. 다 헛것입니다. 담이 있어야 합니다. 사방으로 담이 쳐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변화되지 않은 내 자신 속에 무슨 말씀을 채우고 무슨 은사를 채우고 무슨 활동을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입니다. 담을 쌓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거룩해져야 하고 우리 자신이 달라져야 합니다. 담에 대해서 말씀드렸고요. 두 번째로는 영적인 구멍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담이 있다 해도 구멍이 뚫려 있으면 소용없습니다. 구멍은 첫 번째로, 우리 방어막에 구멍이 생기는 이유는 개인의 죄 때문에 구멍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죄를 심상히 여기는 풍조가 이 시대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신앙을 본질을 모르고 정말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것입니다. 죄를 심상히 여기면서 성경공부는 열심히 합니다. 죄를 심상히 여기는 것이 만연되어 있으면서 영성운동을 합니다. 사도다. 선지자다. 예언이다. 기적이다. 양심은 화인 맞아 있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고 시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영적 교만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고 자기 왕국을 세우느라고 가득 차 있고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고 자기 위치에 위협이 될 것 같으면 멀쩡한 사람을 이단이라고 매도하고 그러면서 사도고, 선지자고, 그러면서 예언을 하고 기적을 행하고 은사운동을 하는 것은 다 가증한 것입니다.
담이 허물어지면 사도가 사도가 아닙니다. 담이 허물어지면 선지자가 선지자가 아닙니다. 담이 허물어지면 목사는 목사가 아니고, 장로가 장로가 아니고, 권사가 권사가 아니고, 성도가 성도가 아닙니다. 담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담이 거룩입니다. 그 담이 거룩이고, 정결이고, 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 담이 반드시 세워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방어벽에 구멍이 생기는 이유는 영적인 오염 때문입니다. 영적인 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첫 번째로 개인의 죄 때문입니다. 그것(개인의 죄)이 가장 큰 구멍이고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영적인 방어막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영적인 오염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떤 사물에 영적인 영향력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떤 물건에 귀신이 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에 귀신이 붙을 수 있다. 귀신이 붙은 더렵혀진 물체를 제단에 드리는 것만으로 해도 그 가정에 구멍이 뚫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막에 구멍이 뚫기고, 귀신이 그 안에 들어와서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이 붙어있는, 영적으로 오염된 것, 이 영적으로 오염되어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물건이 우상입니다. 거짓 신을 대표하고, 또 거짓 신을 예배하기 위해서 사용된 이런 물건들은 거의 대부분 귀신들이 붙어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무지해서 특별히 우상에 대해서 믿지 못할 만큼 무지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상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교도들의 우상을 집안의 장식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이교도들의 우상을 집안의 장식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우상을 가지지 말라.’, ‘우상을 집안에 들이지 말라.’ 이것을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우상과 거짓 신들이 새겨진 그림들은 가증한 물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몰아낸다.’고 했습니다. 또 신명이 27장 15절에 보면 ‘우상이 저주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다니엘서 11장 31절에 하나님이 우상을 ‘멸망케 하는 미운물건’이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미운물건’이라는 것은 혐오감을 자아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증스럽기 때문에 극도의 혐오감을 자아내는 물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 다음에 ‘멸망케 한다.’는 것은 황폐하고 공허하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물건이 마귀에게서 너무나도 더렵혀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극한 혐오감을 느낍니다. 아주 가증스럽게 느낍니다. 어떤 물건들이 마귀들에 의해서 너무나도 더렵혀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집안에 들이는 것만으로도 그 가정이 황폐해집니다. 그 가정이 황폐케 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멸망케 하는 미운물건’, 즉 우상들입니다. 이런 것을 장식으로 해놓고 살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당연히 이런 것들을 없애버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로버트 하이들러의 책에 의하면 ‘삶에 영적인 오염을 허용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이런 징후들을 경험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첫째가 계속되는 악몽입니다. 이유 없이 계속되는 악몽을 꿀 때 집안에 귀신들이 달라붙어 있는, 영적으로 오염된 물건이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불면증입니다. 또 하나는 불안감입니다. 계속 마음이 불안한 것. 또 하나는 가정에서의 싸움과 말다툼입니다. 원래 싸웠던 사람들이 아닌데 자꾸 문제가 일어나고, 말다툼을 하고, 싸우고… 그런 것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행동에 문제가 있는 산만한 아이들. 아이들이 자꾸 삐뚤어지게 나간다던지 이상하게 된다던지. 또 집에서 유령이나 귀신들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 귀신이나 유령이 출몰하는 것. 또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영적인 존재들이 나타나는 것. 그래서 귀신의 소리라든지 발자국 소리라든지 이런 희한한 소리들이 들리는 것. 또 설명할 수 없는 악취가 있습니다. 특별히 냄새가 날 근원이 없는데 이상한 고약한 냄새들이 집안에 나는 것. 그리고 숨쉬기 어렵게 만드는 답답함. 무거움. 집안 분위기가 너무 답답하고 무겁고, 영적으로 짓눌리는 것. 그리고 계속되는 두통과 메스꺼움. 이런 것들이 있으면 혹시 영적으로 오염된 물건들을 집안에 들이지는 않았나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징후들을 경험하고 있다면 집안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물건들이 영적인 오염을 갖고 옵니까? 첫째가 거짓 신을 나타내는 물건들입니다. 이교도의 마스코트나 동물 형상의 우상이나 불상이나, 희랍, 로마, 이집트, 아프리카의 신상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크리스천들이 무지해서 여행가서 선물들을 사올 때 이런 것을 사올 때가 많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외국에 여행가서 예술적인 장식품으로 알고 사다가 집에 걸어놓은 것들이 많습니다. 예술적인 문화재라든지 작품들이 우상을 형상화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십시오. 거의 반수는 불상 아닌가요? 석굴암부터… 그것은 문화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문화재라고 하고, 관광객에게 파는 토산품의 많은 것들이 우상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미신을 섬기는 것과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은 가급적이면 안 사오는 것이 좋습니다. 안 사오는 것이 좋고, 집에 장식하면 안 됩니다. 물건이 문제가 아니고, 그 물건에 붙어 있는 귀신이 문제입니다. 그 물건을 집안에 들임으로써 내가 원하든 원치 않던 귀신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이 함께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귀신이 합법적으로 들어와서 역사하게 되기 때문에 많은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는 이교도 예배나 주술에 사용되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가면이나 부적, 주문을 외울 때 쓰는 물건, 수정 구슬, 점성술과 관련된 물건, 행운의 마스코트. 이런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제가 예전에 고등학교 때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기도하러 갔다가 주변에 있는 친척집에 갔습니다. 갔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너무 쉬고 싶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열쇠가 채워져 있어서 열쇠를 붙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이 열쇠가 열리게 해주십시오. 너무너무 힘들고 배고파서 집에 들어가서 밥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기도했더니 문이 열려서 들어갔습니다. ^ ^ 들어가서 보니까 여기저기 부적이 붙어있었습니다. 우리 집도 아닌데 내가 다 떼어 버렸습니다. 누가 떼었냐며 난리가 났습니다. 못들은 척하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잠을 한참 자고 있는데 누가 제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 부적을 쓴 무당이었습니다. 석가모니 귀신에게서 능력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귀신이고, 너는 가짜다. 그것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속이고 멸망시키는 일이다.’ 라고 말했더니 화가 많이 나서 저에게 저주를 막 퍼부었습니다. 어떤 영적인 존재가 들어온 것입니다. 저주를 퍼붓는데 불같은 것이 와서 내 몸에 붙었습니다. 무서워서 눈도 못 떴습니다. 공기라는 것이 재가 날리는 것 같이 아주 안 좋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제가 눈병에 걸렸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적이라는 것에 귀신의 능력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써준 부적을 물에 타서 먹으면 병이 실제로 낫는답니다. 저희 친척도 그렇게 되었다고 했는데, 제가 그런 부적들을 다 찢어버린 것입니다. 밤에 그 사람(무당)이 실제로 찾아온 것이 아니고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그 사람 모습을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앙갚음을 하겠다고. 부적을 그냥 부적으로 보면 안 됩니다. 정말로 그 속에 귀신들이 역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면이나 부적이나 주문을 외울 때 쓰는 물건이나 수정 구슬이나 점성술에 관련된 이런 것들을 제거해야합니다. 그 다음에 악을 숭상하고 높이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드래건과 같은 주술적인 게임. 또 악을 숭배하는 비디오 게임이나 영화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요즘에 주원이(변 목사님 아들)보면 심상치 않습니다. 요즘 TV를 통해서 만화를 너무 많이 봅니다. 요즘 만화가 얼마나 해롭습니까? 만화에 나오는 애들과 눈이 닮아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TV 만화를 통해서 귀신들이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에게 아이들 TV를 없애버리던지, 건전한 프로그램 나오는 시간을 정하고 다른 것은 못 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TV 앞에서 삽니다. 만화라든지 게임이라든지, 게임에 나오는(캐릭터나), PC방만 지나가 보십시오. 귀신을 그려 놓은 것이지 사람을 그려 놓은 것입니까? 이런 모든 것들에 악한영이 붙어있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귀적인 성향이 뚜렷한 포스터나 CD들, 록 가수나 사탄 숭배하는 음란하고, 귀신들에게 잡혀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음반에는 악한 영들이 붙어있습니다. 그런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악한 영들과 귀신들이 붙어있습니다. 사탄숭배, 무당, 뉴에이지, 프리메이슨에 관한 책들. 아무 책이나 집에 두면 안 됩니다. 문학작품을 가장한 음란한 내용들이 많은 소설들에 다 귀신들이 붙습니다. 이런 것들을 제거해야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죄와 관련된 물건들, 예를 들어서 음란 서적, 잡지, 음란한 비디오, 건전치 못한 관계에서 받은 러브레터들, 선물들도 제거해야 합니다. 또 말씀드리자면, 삶에 우상이 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취미나 스포츠나 너무 깊이 빠져서 신앙생활 하는 것보다 거기에 더 열심이고, 거기에 더 마음이 가있고, 아주 삶에 중심에 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우상입니다. 취미도 지나치면 우상입니다. 스포츠도 그것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면 우상입니다. 낚시도 그렇게 되면 우상입니다. 낚시를 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이 우리 삶에 중심을 차지할 때,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되고, 제일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이 되고,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월드컵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것 같아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하는데 내 마음을 주님보다도 더 사로잡는 것. 내가 주님보다도 더 관심이 있고, 더 중요시 여기고, 끌려 다니는 것. 이것은 다 우상입니다. 그런 것에는 귀신들이 달라붙습니다. 우상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가정에서 없애버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방을 청소합니다. 근데 영적인 청소도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세균인 마귀와 귀신들이 기생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인형을 다 없애야 된다고 그럽니다. 예전에 어떤 유명한 여자 목사님이 인형을 다 없애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인형은 인형입니다. 우상이 문제지 인형이 문제가 아닙니다. 숭배를 목적으로 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그랬지 인형 만들지 말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뭐든지 지나쳐가면 안됩니다. 체험은 체험이고 진리는 진리입니다. 성경을 갖고 체험을 다스려야지 체험으로 진리를 만들어 내면 안 됩니다. 인형에 대해서는 자유하십시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모든 것들은 조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앞에서 말한 그 모든 것들을 집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에 구멍이 뚫리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다가 그런 것을 제거하고 일이 풀리는 경우도 많고,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 않다가 그런 것을 제거했을 때 병이 즉각적으로 치유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좋지 않은 소리들이나 악한영의 환영이 나타나다가 그런 것을 제거한 다음에 없어진 분도 많습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책을 읽었는데 록 가수들 CD 있잖습니까? 그 사람들 중에는 귀신에게 자기 영혼을 팔아먹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CD나 주술적인 게임들, 사악한 어떤 종류의 게임들, 그런 것을 불에 넣고 태우니까 거기서 비명소리가 나오더랍니다. 이런 것들을 제거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것이 구멍이 되어서 보호막에 구멍이 뚫리고, 원수 마귀가 들어와서 우리 삶에 고통을 갖다 줄 수 있습니다. 집에 가셔서 영적인 청소를 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그런 것이 어디 있나요?” 많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나안 우상들이 다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을 다 불에 태우고 가루로 만들어서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불로 사르고, 가루로 만들어서 가증한 것을 하나도 취하지 말라. 이런 것을 취하면 멸망할 것이다.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말하셨습니까. 신약에서도 바울이 선교할 때 마술책들을 전부 갖고 와서 쌓아놓고 불살랐습니다. 법궤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처럼 귀신들을 위해서 사용된 물건 가운데에는 악한 영들이 달라붙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청소하고 제거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방어막에 구멍이 생기는 이유는 조상의 저주 때문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메릴린 히키가 쓴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참 성경적이다.’ 라고 느꼈습니다. 성경적인 것입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존재한다.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세계적으로 들어서 사용하는 사도나 선지자들이 실제적으로 사역하는 가운데 수없이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런 저주가 실제로 있어서 저주 때문에 어떤 가정이 질병이 걸리고 망하고, 이들이 그것을 밝혀내고 기도해서 그 저주를 끊어버렸을 때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나는 일들이 세계적으로 하나님이 쓰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역 속에 많이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것이 믿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목사님들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부정합니다. 유명한 목사님들 중에서도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부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제가 듣기로는 장로회 통합 측에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해서 이단으로 정죄하려고 한다는 움직임이 있고, 그렇게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조상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그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에게 사망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잘못이 우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보면, 지금 남한과 북한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납니까? 남한을 천국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하면 북한을 지옥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자유에 있어서, 먹는 것에 있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6.25가 끝나고 난 다음에 38선이 그어지기 전에 만약에 여러분의 부모님이 북한을 선택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냥 여러분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부모님이 북한을 선택했으면 여러분이 북한 동포들이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을 여러분이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남한을 선택했기 때문에 남한에서 누리는 모든 자유와 행복을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북한을 선택했다면 우리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우리는 김정일을 찬양하면서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선택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간단한 예입니다. 사업을 잘못했으면 부모님이 잘못한 것이지만 부모님이 부도나면 부모님만 부도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성공하면 부모님만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다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조상과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상의 선택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조상의 죄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성경은 조상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 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음으로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속담을 이스라엘에서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은 그 개인의 죄로 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부모와 상관이 없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습니다. 부모의 죄 때문에 우리가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부모의 죄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는 부모의 죄가 우리에게 분명하게 영향을 끼칩니다.
첫 번째로, 선재의 죄악이 우리에게 유전될 수 있습니다. 죄와 죄악은 다른 것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습니다. 부모의 죄는 부모의 죄고, 부모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부모가 심판을 받는 것이지 우리가 그 죄 때문에 심판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 죄의 책임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죄악이 전가됩니다. 죄악이라는 것은 죄를 향해 구부러진 성향입니다. 죄악이라는 것은 어떤 종류의 죄에 대해서 특별히 잘 넘어지고, 자주 같은 죄를 범하는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입니다. 성경과 우리들의 경험들은 죄가 가계를 통해서 흐른다고 말합니다. 이 죄악이 가계를 통해서 흐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간음이나 음주벽 같은 것은 세대를 거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떤 죄를 지었을 때 자식이 그 죄에 대해서 취약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어머니가 어떤 죄를 지었을 때 딸이 그 죄에 대해서 취약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에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 조상이 무엇을 유전했다고요? ‘망령된 행실을 유전했다.’ 조상들의 그 망령된 행실이 우리에게 유전되는 것입니다. 체질이 유전되는 것처럼 이러한 성향이 유전되는 것입니다. 성향이 우리에게 옵니다. 조상의 죄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묻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상이 죄 때문에 형성된 죄에 대한 성향과 취약성들이 자손들에게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다. 그 어미에 그 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얘기지만 제가 성장하면서 내 속에 있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모릅니다. 이 말의 표현이 무시무시할지 몰라도 내 속에 있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내 속에 내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을 죽이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모릅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다. 그 어미에 그 딸이다.’ 우리 교회에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둘만 좋아하면 안 됩니다. 그 아버지를, 어머니를 보아야 합니다. 둘이 좋아할 때는 서로 좋은 모습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 아버지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럼, 아버지가 나쁘면 자식이 무조건 나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주를 끊어버리고 신앙생활을 똑바로 해서 변화된 사람이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거의 그것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결혼은 단순히 어떤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를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조상의 망령된 행실이 유전되는 것은 진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합니다. 예수 피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그 피가 바뀌어서 괜찮습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뛰어 넘은 사람은 괜찮지만 믿음으로 뛰어 넘지 못하면 그것은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두 번째로, 조상이 저지른 죄의 결과를 같이 짊어지게 됩니다. 죄책이 우리에게 오지는 않습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묻지는 않습니다. 그 죄 때문에 우리가 정죄를 받지는 않습니다. 그 죄 때문에 우리가 심판을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죄의 결과가 있습니다. 그 죄의 결과를 자손들이 같이 짊어집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이삭이 누리는 것입니다. 이삭이 받은 복을 야곱이 누리는 것입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은 죄의 결과가 있습니다. 그 죄에 대한 결과를 자녀들이 같이 짊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어린 시절에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그런 일을 당할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를 함께 짊어진 것입니다. 함께 당한 것입니다. 다니엘이 자기 조상의 죄를 자백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끊어지도록 중보할 수 있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조상들의 죄를 회개해야 그 권세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죄를 대신 회개해야 그 저주를 끊을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조에 대한 심판은 우리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래서 그것을 끊어버릴 수 있는 권세를 얻고, 그 권세를 사용해서 그것을 끊어버리기 전까지 우리가 짊어지게 되어 있고, 우리가 그것을 갖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15년 동안을 개척교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부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겠지만 하나님께서 갑자기 교회들이 부흥되게 해주시고, 모든 면에서 형통하게 해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조상의 저주가 끊어졌다.” 15년 동안 하나님이 저를 연단하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저주가 우리에게 임해있었습니다. 고 목사님께서도 저에 대해 예언하실 때 대번에 조상들의 저주에 대해서 예언하셨습니다. 조상의 저주가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를 계속해서 짊어지고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 조상의 저주를 끊어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조상의 저주는 죄의 결과를 같이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어떤 죄는 저주를 갖고 오고, 그 저주가 가계를 따라서 흐른다. 조상의 죄성. 죄에 대한 성향에 자녀들에게 갑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죄의 결과를 자녀들이 짊어집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어떤 죄는 죄에 대한 결과만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저주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그 저주가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가계를 따라서 흐릅니다. 이 저주는 조상이 승려이거나 무당이거나 점쟁이거나 프리메이슨 같은 이런 죄에 연루되어 있을 때 더 강력합니다. 거짓 종교에 있을 때 저주들이 강력합니다. 그들은 저주를 가정이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주가 공포영화 속에서만 나오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주는 우리 실생활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명이 28장에 ‘이렇게 하면 복이 임하고, 이렇게 하면 저주가 임한다.’라고 나온 것처럼 저주는 우리 실생활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에게 저주가 붙어있는지, 하나님의 복이 임해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로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나오는데, 복을 받은 사람은 들어가도 잘되고 나가도 잘됩니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사람은 잘 됩니다. 이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형통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던 이삭이 우물을 파는데 저기 가서 파도 우물이 나오고 여기 가서 파도 우물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우물이 잘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가도 잘 되고 저기가도 잘되는 사람, 이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저주를 받은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집니다. 무슨 일을 해도 되는 일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망하고 안 됩니다.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분명히 성경에 그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복이 많은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그 반대가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이걸 해봐도, 저걸 해봐도 안 되는 것은 저주가 붙은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다른 점은 복을 받은 사람은 마치 다윗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매 점점 강해진 반면 사울은 점점 약해진 것과 같습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점점 강해집니다. 이것이 가계를 흐릅니다. 자녀들 속에서 인물이 나옵니다. 복을 받은 사람들은 자녀들이 더 잘됩니다. 그 가문이 계속 번성합니다. 점점 잘됩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은 점점 안 됩니다. 본인도 안 되고, 자녀들도 안 됩니다. 가정이 점점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고, 시간이 가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비참해집니다. 이것이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저주가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마귀는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먼저 도적질하는 일을 합니다. 재산에 타격을 입힙니다. 그 다음에 죽이는 일을 합니다. 병들게 하고, 건강을 파괴합니다. 그 다음에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을 합니다. 저주가 임하면 이와 같이 점점 안 좋은 쪽으로 발전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중간에 끊어버리지 않으면 망하는 겁니다. ‘멸문지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주를 끊지 않으면 ‘멸문지화’가 되어버립니다. 가문이 나중에는 없어져 버립니다. 땅에서 그 가문이 없어져 버립니다. 어떤 가정은 몇 살이 되면 다 죽고, 희한한 병이 들기도 합니다. 다 저주입니다. 저주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를 중간에 반드시 끊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저주를 끊을 수 있습니까?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야합니다. ‘난 개인적으로 조상이 범한 죄와 상관이 없다.’라고 하면서 조상과의 관계를 부정하면 안 됩니다. 조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정체성을 가질 때 조상의 죄를 자백할 수 있는 권한이 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야합니다. 다음으로 조상의 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백해야합니다. 변명하지 말고, 합리화 하지 말고, 정당화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죄라고 부르는 것은 죄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니엘처럼 조상의 죄와 자기의 죄를 동일시하고, 그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 죄에 대해서 자백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상의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했어야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상의 저주를 끊어버립니다. 다음으로는 조상이 유전한 망령된 행실이 있을 경우에, 자기도 동일한 죄를 범했을 경우에 여기서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저주가 온 것입니다. 이 죄와 계속 타협하고 있으면서 그 저주가 복으로 바뀔 수는 없습니다. 그 죄를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그 죄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죄를 범한 조상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조상에 대해 쓴 뿌리를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 조상들을 용서하고 그들도 그 부모와 그 조상들의 일정부분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용서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다음 마지막으로는 예수님 이름의 권세로 저주와 죄악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켰으면 이제 그 영향력을 끊을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죄를 자백했을 때, 그 죄에 동참한 것을 끊어버렸을 때, 회개 했을 때, 돌이켰을 때 비로소 그 죄로 말미암은 저주를 끊어버릴 수 있는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그 권세를 사용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저주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될 때 저주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저주가 끊어진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저주 끊는다고 10년, 20년 기도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했으면 믿는 겁니다. 원리가 그런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정말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고, 내가 그 죄에서 돌이켰으면 이제는 예수님의 권세로 그것을 끊을 수 있는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예수님의 권세로 끊어버리고, 그리고 그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조상의 저주는 끊어지고, 자유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으로 대치되는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벽이 있어야 되는데 이 벽에 구멍이 이 세 가지 때문에 뚫리는 겁니다. 개인적인 죄들, 오염된 물건, 즉, 영적인 오염, 그리고 조상의 저주. 이 세 가지 때문에 구멍이 뚫려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마귀가 들어와서 우리를 헤할 수도 있고, 우리를 도적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구멍을 막아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목표로 삽니다. 성공을 목표로 살지 마십시오. 성공이 확보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성공이 확보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죄 때문에 뚫린 구멍들을 회개로 막아버리고, 영적인 오염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조상의 저주를 끊어버리게 되면 그 다음에 잘 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복을 받게 되어 있고, 성공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는 성공을 목적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은 당연하게 오는 것이고,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살면,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는 것처럼 성공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는 성공을 갖고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불신자들은 성공이 목적이지만 우리는 성공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성공을 갖고,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어떻게 하면 내가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많은 영혼들을 돕고, 선한 일을 행하고,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주님 앞에 갈 것인가.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그렇게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영적인 도적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영적인 담, 영적인 구멍, 그 다음에 이제 영적인 도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래전에 외국의 한 나라에서 바나나 값이 폭등을 했습니다. 바나나 가격이 오르니 바나나 도둑이 성행했습니다. 바나나를 키우는 사람들이 좋은 것이 아니고, 기쁜 것이 아니고 그것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한다는 것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인삼이라는 것이 한 해 키우는 것도 아니고, 인삼을 그렇게 열심히 키워놨는데 인삼 도둑이 인삼을 다 뽑아가는 겁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면 뭐합니까. 도적이 와서 갖고 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도 똑같은 현실입니다. 우리가 지혜가 있으면 뭐하고 능력이 있으면 뭐하고 재능이 있으면 뭐합니까. 우리가 성실하면 뭐하고, 열심히 일하면 뭐합니까. 영적인 도적이 있습니다.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영적인 도적이 있고, 도적이 들어오는 구멍이 있습니다. 개인의 죄가 그 구멍입니다. 영적인 오염이 그 구멍입니다. 조상의 저주가 그 구멍입니다. 그 구멍을 막지 않고 열심히 살아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보다는 형편이 낫겠지만 열심히 산다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산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산다고 반드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단순히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이 구멍을 막고,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번창하고 창대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좀 다른 쪽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담의 구멍을 막고 영적인 도적을 막을 뿐만이 아니라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도적이 틈타는 삶의 완전히 반대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니까 어디를 가든지 형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니까 점점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와 함께 하니까 엄청나게 성공하고 부요케 되는 것입니다. 도적이 틈타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우리 마음에 충만케 되어야 하고, 하나님으로 우리의 영이 충만케 되어야 하고, 하나님으로 이 교회가 충만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충만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낮에, 밤에 계속 임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강해져야 합니다. 찬양이 노래가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임재가 강해져야 합니다. 예배가 의식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임재가 강해져야 합니다. 말씀이 가르침이 되면 안 됩니다. 말씀 전할 때에도 하나님이 임재가 강력해야 합니다. 기도가 종교적인 것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임재가 기도시간에 강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들을 사방에서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영혼들을 사방에서 불러들여오는 힘입니다. 이것이 약해지면 부흥은 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법궤가 부적이 아닙니다. 왜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를 모셨을 때 오벧에돔이 그 때부터 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미합니다. 법궤는 부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신 것입니다. 개인 뿐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교회 안에서 증가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부흥의 원동력입니다. 그것이 부흥과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이것이 없이 사람만 모여들면 공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 초점 맞추고, 주님의 임재를 위해서 더 많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면류관을 썼는데 면류관이 그 사람보다 더 영광스러우면 무슨 창피입니까? 사람이 더 영광스러워야지요. 면류관이 더 휘황찬란하면 되겠습니까? 의인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것이지 면류관이 해와 같이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이것은 면류관의 영광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해와 같이 빛나고 달과 같이 빛나고 별과 같이 빛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들은 말씀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영으로 나아갑시다. 온 마음으로 중심으로 나아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제 마음에, 영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내 온 영에서, 내 마음에서 그런 고백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은사와 축복, 어떤 성공을 주셔도 제 마음이 결코 교만하지 않고 점점 겸손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부터 우리 마음이 떠나지 않고 더 주님을 제 마음이 향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것을 주시더라도 제 것으로 착각하지 않고 청지기로 나누고 베풀고 그 모든 것을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며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게 있는 재물, 권세와 모든 것이 사랑의 실천의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는 나무 가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살게 해주시옵소서. 아버지, 성공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같이 되는 것이 성공입니다. 하나님 닮는 것이 성공입니다. 돈, 권력이 있다고 무슨 성공입니까?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은혜 베풀어주시옵소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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