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와 성찬

[스크랩] 성령충만과 성령침례- 김경규 교수(PhD) 성령론 강의

하늘감동 2011. 7. 22. 02:14

성령충만과 성령침례

 

김경규 교수(PhD) 성령론 강의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순간 즉, 중생한 순간 성령을 받는 것이 곧 성령세례라고 이해한다. 대체로 장로교회 측에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중생할 때 받는 성령과 성령세례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은 감리교와 오순절 측이다. 대개 예수를 믿는 때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믿는 자들은 결코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대신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생과 성령세례를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는 자들은 성령의 내주와 성령세례를 구분하여 생각한다. 따라서 예수를 믿어 이미 그 안에 성령이 내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성령세례를 받을 것을 강력히 권고 한다.

       왜 이와 같이 각기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지, 성경의 구 무엇을 오해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1)  Presbyterianism Position:

크리스천은 믿을 때 중생하며, 그 때 성령이 내주하며 그 성령의 내주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 근거는 바울이 말한 바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12:13)는 말씀이다. 성경이 믿는 자 모두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앗다고 말하고 잇는데 또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1I) Pentecostal Position:

       크리스쳔의 경험은 두 단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처음단계(Initial stage)- 거듭나는 단계(중생), 평범한 크리스쳔

           *다음단계(Subsequent stage)- 성령침례를 받는 단계, 처음 중생한 단계와 구별되게 체험 되어지는 단계,

           예수를 믿을 때는 성령이 머리 위에 임재해 있고 성령침례를 받을 때 비로소 성령이 내주하게 된다

                    

 

8:9,11,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약 그리스도의 영이 어떤 사람 속에 거하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성경 말씀이 사실일진대, 중생한 사람은 그 속에 성령이 내주 하지 않으므로 결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중생은 곧 거듭난 것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서 중생한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안에 반드시 성령께서 내주해 계신다. 왜냐 성경은 분명히 성령이 그 속에 내주해 계시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원 즉, 거듭남과 성령침례는 같은 것에 대한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인가?

다시 말해 거듭남과 성령침례는 동일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분명 오순절에서는 이를 분명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무엇인가?

 

* 중생과 성령침례에 대한 성경의 증언-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분부하시기를

24:49-50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행1:4-5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바 성령침례 받을 것을 기다리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만약 중생과 성령침례가 다른 것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엔 아무런 하자가 없다. 하지만 예수님 중생과 성령침례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엔 커다란 모순이 발견된다. 왜 그런가? 만약 예수님의 말씀이 모순 없는 말씀이 되려면 예수님의 분부를 받은 그 당시의 제자들은 아직 중생하지 않은 사람 즉, 아무도 아직 죄 사함을 받지 않은 사람, 아무도 아직 거듭 나지 않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과연 성경은 이들의 상태를 무어라고 증거하고 있을까?

다음의 요한복음 15:2-4 말씀을 보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2-4)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미 너희들은 말씀으로 깨끗함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성경 요13:10 에서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고 증거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기의 온 몸을 씻어달라고 요구하자, 너희는 이미 목욕한 자로서 이미 깨끗하니 또 다시 몸을 씻을 필요는 없고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가 다 깨끗한 자가 아니라 자기를 팔 자인 가롯 유다는 여전히 깨끗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예수님의 주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죄 사함 받아 이미 깨끗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미 당신의 제자들이 중생한 생태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디 이뿐인가? 예수님은 11:13 에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your Father in heaven)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씀한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자격이 없음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16:27 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 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2:11에서 요한은 증거하기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했으며, 2:22에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6:16-19 에서는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나온다. 기리고 1:50 절에서는 빌립의 믿음, 20:28-29 에서는 도마의 믿음을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것이 나타난다.

 

이처럼 성경 도처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미 예수님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릴 것을 분부하고 있다 (24:49, 1:4-5). 이것이 이처럼 명명백백 하건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받으라고 하신 것은 중생과는 전혀 다른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예수 믿어 중생한 자들에게 또 다시 중생하라고 말하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전13: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라 시인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아 그 내주하신 성령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할 때 임하시는 내주하시는 성령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받으라고 말씀하신 성령은 전혀 별개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중생할 때 임하시는 성령의 내주와 예수님께서 받으라고 분부하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의 침례는 그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눅24:49절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I am going to send you what my Father has promised; but stay in the city until you have been clothed with power from on high). 여기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보내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행1:8 절에서는 앞선 5절에서 성령을 받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후에 8절에선 성령이 임하시면 나타나게 될 성령의 능력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이 이미 성령 받아 그 안에 성령이 내주해 있는 제자들에게 굳이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고 분부하신 것은 분명 믿을 때 임하는 분명히 다른 성령침례와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그 약속하신 성령은 이미 예수 믿을 때 그 안에 내주하시게 되는 성령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마 그것은 제자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님의 성령 받으라는 분부의 말씀을 기록할 때마다 능력을 언급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Eggenberger이 주장한 것처럼 개종사건(중생)과 성령침례는 분명 구분 되어지는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그것이 곧 일등신자와 이등신자를 구별하는 것은 아니라, 믿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는다. 또한 오순절 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예수를 믿을 때는 성령이 머리 위에 임재해 있고 성령침례를 받을 때 비로소 성령이 내주하게 된다는 입장도 전술한 바와 같이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바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12:13)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용어의 혼돈에 기인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성령 받는다는 말과 성령침례 받는다는 말은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이 말에 의해 많은 오해가 유발되지 않았나 여겨진다. 분명한 것은 누가에 의하면 행1:5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서는 그 성령세례 받은 것을 그냥 성령이 임하시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사실을 달리 표현 하고 계신 것이다. , 예수님은 성령세례 받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12:13 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는 바울의 말은 굳이 구분해야 한다면 예수를 믿을 때 내주하시게 되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지, 예수께서 떠나시면서 받으라고 분부하신 성령은 아닌 것이라 봐야 옳을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이 받기를 분부하신 Second stage 의 성령은 제자들의 능력의 사역과 그리고 교회의 부흥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참조: 2:1-4 (사도들), 8:12-17 (사마리아 지역의 전도와 부흥), 10;43-48 (고넬료 집: 이방인 선교의 시작), 19:1-7 (에베소 교회의 부흥)]

            

*성령침례와 성령충만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앞에서 중생과 성령의 내주와의 같은 것의 다른 표현임을 살펴보았다. , 중생한 자는 그 안에 성령이 반드시 내주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확실한 증언이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분명히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증거한다. 또한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분부하신 성령과 바울이 성령으로 명령한 성령 충만은 같은 것인가? 성령충만과 성령침례를 명백히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성령 받는 것과 성령침례 받는 것 자체를 혼용하며 교대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과 성령침례도 교대적으로 때로는 같게 때로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문맥을 봐가며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구분하는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일례를 들자면, 2:4 에 나타나는 성령 충만과 행4;8 4:31, 7:55, 5;21 에 나타나는 분명 다른 것이다. 누가는 행10:47 ,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과거에 우리가 받은 것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Can anyone keep these people from being baptized with water? They have received the Holy Spirit just as we have. (NIV)" 라고 증거하고 있다. 베드로는 자기가 이미 체험한 성령을 고넬료 가정에 동일하게 임하는 것을 증거하면서 자신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이로 보건대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성령충만은 사도들에게 성령체험 후에 나타난 계속적인 예수님이 분부하신 성령 받는 것과 분명한 구분이 있으나 용어적인 확실한 구분은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성령받는 것, ‘성령침례받는 것, ‘성령충만받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많은 학자들이 이처럼 명확한 구분 없이 의미상으로 구분하도록 사용 되어진 용어들을 가지고 공식화를 시도한 것이 많은 혼돈을 초래하지 않았나 싶다.

 

 

출처 : 너희가 그러고도 천국 갈 줄 아느냐!
글쓴이 : 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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