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WhY:viaOOy(yo'shiyyahu), WhY:viwaOOy(yo'wshiyyahu) (렘 27:1) [그] !Iwsiva(마 1:10,11)
[영] Josiah[여호와는 붙들어 주신다](후원하신다)의 뜻. 다윗왕조 제17대의 유다왕(전 640/639-609재위).그치세는 31년에 걸친다. 그에 관한 성서의 기록은, 왕하 22,23대하34,35의각장에보여진다. 아버지 아몬왕이 암살된 후, 불과 8세로 즉위했다. 어머니는 보스갓 아다야의 딸여디다. 청년시대의 조언자는 대제사장 힐기야로서, 요시야는 그 교도에 잘 청종했다. 빠르게도 그 치세의 제 8년부터, 하나님의 뜻따라 생활 행동하기를 원했다. 그치세의 제12년에,우상을 파괴하고, 이교적예배를 금했다. 예배의 순화는 장기간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어서 행해졌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까지 미치고 있다(왕하 22:1,2,대하 34:1-7,33). 그해 그는 성전의 수리를 명하고, 직공들은 열광적으로 이 공사에 종사하여, 이 목적달성 위해 위탁된 자금을 충실하게 썼다. 이 제18년의 성전 수리 중에, 대제사장 힐기야는, 주의 집에서 [율법서]를발견하여, 서기관 사반에게 전하고, 사반은 왕 앞에서 이것을 읽었다(왕하 22:3-14,대하34:8-20). 요시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인민의 배교와 타락을 노하시고, 재화로서 임하실 것과, 요시야는,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춤으로써 이 재화를 만나지 않고서 평안히선조와 함께 잠들 것이 약속되어 있음을 여선지 홀다에 의해 알았다(왕하 22:8-20,대하34:15-18). 요시야를 크게 감동케한 이 예언은 신 28-30장,특히 신29:25-28이었다. 따라서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서에는, 물론 현 신명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5서 전체의 필사였던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문서는, 므낫세의 치세하의 배교와 박해에 의해 파기되었거나, 상실된 것으로 생각되는데(왕하 21:16,대하 33:9),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서는, 성전 소유의 율법의 사본으로, 성소가 더렵힘을 당한 때, 숨겨졌던 것으로 생각된다(신 31:9,26). 또는 고대습관 따라, 성전 건설시, 벽속에 봉납된 율법서였다고도 생각된다. 신명기가 이미 오랜 책이었음은, 그 내용이 이스라엘인의 초대 역사적 생활을 반영하고, 요시야 시대을 반영하고 있지 않는 사실에서 단정된다.요시야는 율법서의 내용을 안 때, 개혁의 열심을 더욱 진기시켜, 제2회의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철저한 우상파괴에 착수했다. 예루살렘 성전에 바알,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천체예배 위한 모든 기명을 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밭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했다(왕하 23:4이하).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상을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렸다(왕하 23:7). 이 밖에도 전안의 미동(男娼)의 집을 헐고(왕하 23:7), 벤 힌놈의 골짜기의 도벳(자녀들이 몰렉의 불에 바쳐지 던 곳)을 배제했다(왕하 23:10). 유다 열왕이 나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단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도 왕이 다헐고, 거기서 빻아 내려서, 그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버렸다(왕하 23:12). 이 정화는 유다 전토 뿐 아니라, 이전 북방민족이 거하고 있던 지역에도 미쳤다(왕하 23:19,대하 34:6-7). 즉 북 이스라엘 멸망후 앗수르에 의해 정책적으로 특별한 보호를 받던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의 전과 대항하기 위해 세운 벧엘의 제단(왕상 12,13장)같은,유명한성소도 파괴했다(왕하 17:28,23:15-). 이들 일은 요시야가 그무렵 앗수르의 정치적 지배를 사실상 무시하고, 국토를 스르로 통치할 수 있을 마큼 되어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요시야는 또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헐고, 벧엘에서 우상 예배를 행하던 제사장의 뼈를 취해내어,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버렸다. 산당의 제사장도 단 위에서 다 죽이고, 해골을 단위에서 불살라 버렸다(왕하 23:16이하). 그리하여 여로보암시대에 행해진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은 성취되었다(왕상 13:2). 요시야는 유다로 돌아와, 다시 유다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 박수, 드라빔, 우상, 가증한 것을 다제하였다(왕하 23:24). 이렇게 하고 유월절 축제를 성대히 집행하여 종교개혁을 끝냈다. 사무엘 때 이래 이와 같이 엄숙하게 축하된 축절은 아직 없었다(왕하 23:1-25,대하 34:29-35:19). 한데, 요시야의 개혁은 외적으로는 철저했으나, 그것이 이스라엘인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음은, 이 시기에 예레미야의 말이 분명히 해주고(렘 2-6장),요시야의사후우상예배가 곧 부활한 것으로도 알게 된다. 요시야는 종교개혁 후 수십년에 걸친 성서의 기록은 없는데, 그 주위의 제국에는 대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요시야는 바벨론과 애굽과의 대립항쟁에 휘말려 들어가, 요시야는 므깃도의 산길에서 애굽의 바로느고를 영격하려다가, 도리어 느고에 의해 쓰러져, 여기서 큰 기대를 걸게했던 요시야의 정치적, 종교적 개혁운동은 종말을 고했다(왕하 23:29).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 깊은 슬픔으로 애도되었다(대하 35:24). 그리고 그는 유다의 최대의 왕의 1인으로서 기록되었다(왕하 23:35). 예레미야는 또한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렘 22:15,16), 그의 개혁이 외적으로는 철저히 행해졌으나,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었던 것은, 이 시기의 예레미야의 말에 의해 분명하다(렘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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