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m]j,n] , Nehemiah) 「여호와께 위로를 받음」
[1]BC 597년 제 1회 바벨론 포로가 된 스룹바벨과 같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인솔자의 한 사람이다(스 2:2,느 7:7).
[2]바벨론에 사로잡혀가 수산 궁에 있던 유대인으로서, 하가랴의 아들이다(느 1:1).후에 예루살렘의 총독이 되었다. 그의 가문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확실치 않다. 그는 바삭 왕 아닥사스다 노세의(BC 465- 424 재위) 신임이 있던 주관(酒官)이었다(느2:1). 그는 어느날(아닥사스다 제 20년 기슬르월, 즉 BC 444년 11- 12월 사이) 예루살렘이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성벽은 훼파되고 성물들은 소화되었다(느 1:3)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서 울면서 며칠 동안 금식 기도하였다. 그는 왕에게 나를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에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느 2:5)라고 부탁했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삼림 감독 아삽에게 영문과 성곽 및 저를 위한집 재목을 주라고 명하고,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딸려 보냈던 것이다. 이렇게하여 느헤미야는 왕에게 일정한 기간이 차면 바사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동년(BC 445)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간 쉰 후 밤에 몰래 몇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벽을 살펴보고 그심한 파괴상을 조사했다.그 후 제사장 귀인˙방백 및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중건하자고 하니 모두승락하고 협력했다. 공사는 많은 사람들이 분담했다. 양문(羊門)과 북편 성벽들은 제사장 엘리아십과, 기타 제사장 귀족들이, 서편 성벽은 살롬과 그 딸들이, 동편 성벽은살룬 등등이 공사를 진행시켰다(느 3장).그동안그가도착한 이래 반대 태도를 취해온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주위의 여러 종족이 반대하여 박해했기 때문에, 모두 무장을 하고 복구 작업에 가담했다(느 4:1-6:14). 또, 공사에 봉사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부자의 압제때문에 생활이 곤궁하여 그 불평을 호소해 오는 자들이 있었으므로,그는 부자에게 저당 잡힌 것을 돌려 주게 함으로써 빈부의 충돌을 조정하였다. 공사는개시한 지 52일만인 엘룰월 25일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끝났다.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고 놀랐다(느 6:15,16). 이러한 대적들의 방해에 느헤미야는 경계와 세심한 경비에 의해 완공되었으며, 그 동안 그는 유대인 간의 악습을개혁하고, 그들의 불평 불만을 제거하고, 법과 질서를 확립하고, 백성에게 율법을 강해시키게 하고, 초막절을 지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예배와 성회를 부흥시켰다(느 8장이하).그는또자기형제인 하나니와 하나냐에게 성벽을 수비시킴과 동시에(느 7:1-5) 지방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내에 살게 했다(느 11장).그후성곽낙성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그 때 성문은 정결케 되고, 사람들은 두 떼로 나뉘어 감사 찬송을 부르면서 성 위로 행렬을 지어 갔으며, 거제물과 십일조를 고간(庫間)에 쌓게 하였다(느 12:27-44). 그 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12년 있는 동안민폐는 고사하고 총독의 녹까지 받지 않았으며, 자비로 유대인 150명을 먹이고, 또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했으니, 이것으로 그의 청렴 결백한 인격을 엿볼 수 있다(느 5:14-18). 당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에서 추방하던가, 가능하면 암살하려는 모략이 있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을 부흥시켜 유대를 독립국으로 하고 그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 위증 편지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내어졌는지 왕은 별명이 있을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라는 조서를 내렸다(스 4:21).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에는 에스라도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느 8:1,9,13,12:36).느헤미야는 12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바벨론으로 돌아갔다(느 5:14,13:6,BC 433)가다시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 왔다(느 13장).그가예루살렘을떠나 있을 때 대적의 박해는 없었으나, 내부에 여러 가지 번민이 있었다. 즉, 제사장 엘리아십이 이스라엘의 대적 도비야에게 성전 큰 방 하나를 주고(느 13:4,5) 레위인들에게는 월급을주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각처로 도망치고(느 13:10), 안식일을 범하고(느 13:15), 이방 여자들과 결혼했다(느 13:23). 이와 같이 문란한 상태를 본 그는 개혁을 단행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난 혼혈족인 암몬과 모압 사람은 분리시켰다(느 13:1,2). 그리고 암몬 사람과 도비야를 성전에서 추방하고(느 13:4-9), 성전에서 주는 월급을 조정했으며(느 13:10-14), 안식일을 엄수시켰으며(느 13:15-22), 잡혼을 금지시켰다(느 13:23-30). 그 후 느헤미야의 행동과 최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바사왕 다리오 치세의 말기까지(BC 405)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 같다(느 12:22). 고령으로 사망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는 이스라엘 종교사상 특수한 지위를 겸한 인물로서, 유대교 건설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그와 에스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에스라 항을 참조).
[3]느헤미야 때 아스복의 아들로,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린 방백이다(느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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