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장을 펴놓고 제 설교를 들어주십시오.
오늘 아주 전하기 어려운 설교를 할 것입니다.
제 육은 제가 지나치게 무거운 설교를 해왔다고 저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메시지를 주시길 원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메시지는 어쩌면 당신을 위한 메시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이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리석은 짓이나 장난을 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습니다.
저는 뻔한 미사여구에 지쳤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변화시키 못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눈물)
여러분, 이제는 부흥에 대한 말을 듣기도 지쳤습니다. 영적 각성에 대한 소리도 듣기에 지쳤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부어질 성령에 대해서도 지난 50년간 같은 소리를 들어왔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듣기 좋은 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문제가 많은 자신들의 결혼이 걱정된다고 말만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듣고 있기가 이제는 아주 피곤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말만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부도덕해졌는지 미국 사회가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비지니스 세계의 부패에 대해,
그리고 이슬람의 득세와 기독교 세력의 약화에 대해서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기가 이제는 피곤합니다.
그것들은 그저 헛된 말들일 뿐입니다.
큰 집회들도 피곤합니다. 그런 집회들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현세를 따라가는 방법, 교회 성장법, 매끄러운 인간관계, 컴퓨터 시대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들에 대한 집회에 지쳤습니다.
교회의 사역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육적인 것들이며 그런 것은 영적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것으로는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저는 점점 더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보다 세상이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음악이 하나님의 집을 장악해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오락이 하나님의 집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가 오락에 마음을 쏟고 책망이나 징계를 몸서리 치게 싫어하고
아무도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갔더니 그곳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숨겨진 죄를 낱낱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교회에 간 것이 언제였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 왔기에 젊은이 들이 죄에 대한 찔림을 받는 그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에 간 적이 언제였습니까??
젊은이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고 아파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을 본 적이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하늘에서 젊은이들에게 부어져서 죄를 깨닫게 하는 그런 임재가 있는 교회에 간 적이 언제였습니까?
설교를 듣다가 영혼에 불이 부어져 그 말씀이 하늘의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적이 언제였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그런 말씀을 이곳에서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비통함이 언제 사라지게 되었습니까?"
사역에서 비통함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 포식하며 사는 세대에는 비통이라는 단어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습니다.
비통함은 극심한 아픔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비통함이란 강한 감정이 일어나 찌르는 듯 예리한 내적 고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상태와 여러분 주변의 상태에 대한 자각으로 인해서 깊은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이 비통함입니다.
주님의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미사여구와 부흥에 대한 말들을 발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영적 각성은 짧은 순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 잛은 영적 각성과 부흥의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약속들은 곧 다 잊어버리고
몇 주 혹은 몇 달 안에 그 전보다 더 수동적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저를 이번 한번만 만나주시면 이전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마치 불꽃놀이 처럼 많은 돈을 들이고 소란스럽지만 곧 꺼져버립니다!
모든 진정한 열정은 비통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비통함의 세례가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을 일으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파멸된 상태를 회복시키려고 하실 때, 기도하는 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를 비통함의 강물에 잠기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와 사람들의 상황을 보시고 느끼는 하나님안의 비통함을 그 사람에게 공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그 사람을 주님의 마음의 비통함으로 세례를 주십니다!
느헤미야서에 그런 상황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가장 관심을 갖는 거룩한 도시였지만, 불의로 가득 차있었고 이교도와의 결혼으로 더럽혀졌습니다.
유대인들이 다른 가난한 유대인을 노예삼고 있었고 하나님의 집이 더럽혀졌으며 제사장들은 이교도들과 한통속이 되어 배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상황을 다루시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폐허를 회복시키겠습니까?
어떻게 하셔야 할까요? 지금 우리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다른게 있다면 우리의 처지가 그들보다 수 배는 더 악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처럼 사람들이 점점 더 악해지는 때가 이제 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소아 성애자들이 있어 어린이 성추행, 근친상간, 간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부도덕으로 무너지는 가운데 더러운 음란물이 넘쳐나고 있으며 그것들을 온 세상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사이비 영화제에 미국에서 열세 살짜리가 성인과 별 성행위를 다하는 그런 영화가 출품됐다고 합니다.
그 사이비 영화제 사람들은 우리는 이제 도덕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넘어서 극한으로 몰아 부치게 되었다고 뽐내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은 이런 것을 받아들이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도덕적 폐허가 하나님의 집에 숨어 들어왔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교인들이 집에서 HBO(음란물도 상영하는 채널)을 보겠습니까?
저는 이채널을 본적이 없습니다. 저희 집에는 TV가 없습니다.
뉴욕 타임즈에 서프라노라는 란에서 오늘 읽었는데 이들은 마피아 같은 자들로 성행위 중 죽이고 불구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들은 속이고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다음 드라마에서 일어날 일을 말하며 이런 드라마에 중독되어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런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웃지마십시오.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회중이 웃음)
여러분 중에 오늘 이곳에서 손들고 찬양하며 기분을 내다가 집에가 이런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하나님의 사랑, 언약의 사랑에 대해 설교해 왔습니다.
저는 주님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에 대해 설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은 안전하다는 설교만 늘 듣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호색으로 되갚는 교인들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되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29:13 "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느헤미야 1:1-3입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폐허가 된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느헤미야에게 와서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고 성벽은 무너졌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은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이었지만 이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오직 폐허와 파괴, 절망과 좌절만을 봤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비통함의 세례를 주셨습니다.
6절입니다.
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느헤미야는 제사장이 아니라 왕의 잔을 지키는 직업인이었습니다.
그는 안락하게 사는 귀족으로 부족한 게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잠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그런 자가 아닌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잠시 관심을 갖다가 잊어버리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나는 주저않아 통곡하고 슬퍼하여 금식하고 밤낮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의 형제인 하나니와 다른 사람들은, 하나니도 나중에 예루살렘의 지도자가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습니까?
주께서 왜 그들은 회복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비통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울지도 않았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폐허만을 봤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날, 하나님의 영적인 예루살렘인 교회가 세상과 결혼한 것을 보고 걱정이 되지 않습니까?
지금은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아주 차갑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남편과 아내들이 그렇게 수동적으로 잠잠히 있습니다.
그들은 부드러운 메시지를 전하는 교회를 찾아다니며 책망과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이 그렇게 타락해가는 것을 보는데 당신은 그들의 고통에 대해 전혀 관심이 가지 않습니까?
그것보다 당신 내면의 예루살렘에서 영적인 능력과 열정이 점점 말라가는 폐허의 징조가 보이고
영적으로 미지근한 상태인데도 모르고 있으며 혼합된 것들이 들어와도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눈이 멀게 되면 이런 상태를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제가 당신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며 당신의 삶에 대해 알고 있기에 이런 징조가 나타날 때
목사이기에 당신에게 다가가서 당신을 사랑하지만 진실을 말해야겠습니다.
무엇인가 세상이 당신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TV인지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가족들에게 갖고 있던 깨어진 마음과 긍휼을, 구원받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더이상 찾아보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은 변했습니다.
무엇인가 당신을 변하게 하고 있습니다. 라고 제가 말한다면
당신은 무릎 꿇고 기도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파괴된 부분을 갑자기 직면하게 된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저는 이렇게 많은 주 안에 성결한 자들이 노래한 오늘 드려진 찬양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정말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 중에 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모릅니다
더 이상 싸우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거의 실패의 기록 같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잃어버리자 더 이상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단이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애쓰며 싸우며 나가는 것을 중단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힘들여 기도하기를 중단하게 합니다.
여러분이 TV앞에 앉아 여러분의 가족이 지옥으로 가는 것을 바라만 보게 합니다.
..
제가 지금 한 말이 당신이 한 행동이 그릇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합니까?
아니면 이런 말을 당신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러 보냅니까?
목사가 와서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당신이 변질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씩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씩 잊어버리고 있다고 말해주면
여러분이 제게 '목사님 설교 듣고 TV를 없애버렸어요' 라고 말해도
그것이 저에게는 또는 다른 목사님들에게 전혀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저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잠입해 오면 예루살렘의 성벽이 갑자기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파괴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우리는 이제 더 종말로 다가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되지 않습니까?
그들은 지옥에 갈 수있습니다.
여러분이 설사 그리스도의 신부라 해도
비통햄, 애도, 금식은 왜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금식하며 기도해서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줄 압니다.
저는 예수님의 몸에 관한 일반 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 밤중에 일어나지 않습니까?
예레미야는 밤낮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의 죄를 회개합니까?
느헤미야는 자신과 자신의 백성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내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폐허됨에 대해 들었을 때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왜 거룩한 하나님께서 거룩한 도시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 당하고 산산히 흩어지게 하셨는지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우리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빌딩이 무너져 2천명의 사람들이 죽게 하셨는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TV에서 한 목회자가 하나님과 911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제 안에 강렬한 거룩한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하나님을 비난하지 말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다니엘 9장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911로 미국을 깨우시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라 사단의 계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미국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소리를 좀 낮추겠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화가 났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다니엘 9장 5절입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미국이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의인이 정부에게도 경고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4절 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로 돌아갑니다.
비통함과 관심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관심은 어떤 큰 프로젝트나 사역에 관해 갖는 마음입니다.
당신의 망므을 사로잡아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지난 주에 들은 남아공에서의 수 천의 사람들이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과
오늘 홀다자매에게 수 만의 사람들이 인도의 캘커타에서 죽어 가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여러분의 감정이 동요되고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 말하고 집회를 열고 광고를 하고 지지하고 기획하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50년 동안 사역을 해오던 중
비통함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역은 ..
폐허를 보고 무릎 꿇고 기도하고 비통한 주의 마음을 전이 받지 않은 것은, ..
여러분 이 교회는 비통함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6개월 동안의 비통함과 눈물 속에서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전원 도시에서
우리는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안에 메마름과 공허가 있는데 정말 이게 다라면 원하지 않는다고
수 주 동안 계속해서 절망 속에서
필사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제 안에 메마름과 죽음을 고백하면서
뉴욕 42번가에 오게 되었고
헤로인을 파는 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여기 당신을 죽여줄 좋은 것이 있어요" 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무너졌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건물 옆에 주저않자 울었습니다.
저는 비통했습니다. 이곳에서 4블럭 떨어진 장소였습니다.
저는 울며 소리 질렀습니다.
저는 사역을 구하지 않았었고 교회를 세울 의도도 계획도 없었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기도를 느꼈습니다.
틴 챌린지를 시작할 때 느꼇던 그 비통함을 다시 느꼈습니다.
제가 해온 50년의 사역동안 비통함 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역은 없습니다!!
한번도,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것들은 육적인 것일 뿐입니다. (울음)
저는 세계를 다니며 목회자들의 울음을 듣습니다.
죽어 있고 메마른 목회자들.
어떤 목회자는 아내 몰래 외도를 하고 있습니다.
설교도 계시도 언약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오 하나님.. 이제 저는 압니다.
비통함을 갖기 전에는 그 상황에 대해 비통해하기 전에는
제 설교는 그저 설교일 뿐입니다.(눈물)
지금은 너무 늦었고 프로젝트는 너무 많고 시간은 없다고 합니다.
애통해 하는 주일학교 교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곳에 오지 않고 있고 지옥게 갈 수 밖에 없는 아이를 위해 울어주는 교사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갖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계획과 꿈을 갖고 있습니다.
수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게 깨어진 마음으로 오지 않습니다.
수 시간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며 애통해 하며 깨어진 마음이 되어 오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디어만 넘쳐납니다. 저는 이런 일에 지쳤습니다.
진정한 기도생활은 비통함 속에서 시작됩니다.
일생을 건 결단은 그곳에서 만들어 집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겠다고 결단하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분의 마음을 나누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분이 보는 것을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 너무나 적습니다.
그분은 교회의 상태에 대해 보여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너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물으실 것입니다.
그 비통을 느끼게 된 종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결정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더 이상은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며 비통함의 세례를 주는 강 속에서 걸어 나가든지
이걸로 충분하다 하며 포기하며
그저 평범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며 이런 짐은 질 수가 없다고 하든지
주의 짐을 지고 회복의 도구가 되든지 결단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 그런 짐을 져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판입니다.
저는 제 마음을 열고 제 안에 비통함을 여러분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러분이 무릎 꿇고 기도하도록 돕기 위해 한 것 입니다.
여러분에게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비통함의 강물 속에서 누구도 거부 할 수 없는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오면 한 국가와 국민이 기도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를 읽으십시오
여러분이 비통함 속에서 걸어 나가서 다시 수동적인 교인으로 돌아가
평범한 교인( 사실 평범한 기독교인 이란 존재 할 수도 없지만) 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애통함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이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사단이 주님의 신실함에 대한 간증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그냥 지속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느헤미야가 부르심에 응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믿었다면,
그는 하나니야 일행에게 여행 짐을 꾸릴 테니 하루 이틀 정도만 기다려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나섰을 것입니다.
'시작합시다. 해봅시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
비통함도, 금식도, 깨어짐도 없이.
그저 해보자고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어떤 것도 성취되지 않았을 것이고 성벽은 세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통함의 세례가 없이 여러분이 하려는 어떤것도 무너지고 무너질 것입니다.
그것은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주 한 자매가 저에게 쓴 편지입니다.
데이비드 형제님
저는 정말 주님에 대해 목마릅니다
방법론이나 가르치는 집회에 정말 진력이 났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으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강한 영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여성 집회에 자매 몇 분과 갔더니
그곳에 만 오천명의 여성들이 참가했습니다.
집회 첫 날 코미디가 개막 프로그램인 것을 알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더 비참한 것은 집회 지도자들이 단 한번의 기도도 하지 않았고
기도에 대해 단 한번의 기도도 하지 않았고
기도에 대해 단 한번의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웃기는 놀음이었고 저는 더할수 없게 공허했습니다.
선지자는 시온에서 안일하게 지내며 음악에 맞추어 흥얼거리지만
요셉의 환난에 대해 애통해 하지 않는 자들에게 앞으로 닥칠 재앙에 대해 소리 높여 경고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이스라엘에 임할 몰락을 보고 비통해하며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코미디를 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좋아하고
먹고 교제하고 좋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다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울고 비통해 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은 안하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 비통함의 세례에 들어가면
기꺼이 이런 세례에 순종하려는 여러분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즉각적이고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온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시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하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주님, 이제는 저의 자아를 내려 놓겠습니다. 이제 주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깨트리시고 부드럽게 하시도록 한다면
주님과의 진정한 교제 가운데로 나간다면 그런 경험으로 부터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통함 가운데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파멸 가운데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이든 어떤 것이든 회복을 주시길 원하실 때
이런 비통함의 세례를 주시며 물로 세례를 받을 때처럼 비통함의 세례 가운데서도
여러분은 걸어 나올 것인데 그 때는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금식하고 애통해하고 기도해왔기에 눈에 띄게 수척했습니다.
왕은 자신의 잔을 지키는 느헤미야의 상태를 알아보고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힘이 없고 안색이 나쁜가?"
느헤미야에게는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 놓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3일 동안 기도해 보고 왕에게 대답하겠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고 기도하고 왕께 대답하되'
느헤미야는 순간적으로 기도하고 그 즉각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의 골방으로 갈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나갈 길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비통함의 세례가 주는 영광스러운 결과입니다.
오직 기꺼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겉옷을 입으려고 하는 종만이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주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언약에 대해 설교합니다.
그러나 오직 주의 마음을 아는 자들만이
하나님께서 치유를 허락하시는 때에
하나님께서 영혼에 깊숙이 침투하십니다.
저는 혼자 이 짐을 질 수는 없지만 제 자녀, 아내, 남편이 지옥에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라는 기도가 터져 나오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는 이렇게 죽어있는 상태로 미지근한 상태로 냉담하게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필사적이 되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하나님께 언약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게됩니다.
느헤미야 1:8-9를 봅시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쫒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
여러분이 하나님게서 여러분을 걱정이나 하는 정도를 넘어서도록 역사하게 하신다면
그저 감상적인 대응이나 하는 정도를 넘어서게 하신다면 ' 하나님, 저는 결단했습니다.'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주장할 모든 권리를 갖게 됩니다.
곧 설교를 끝내겠습니다.
미국 교회 안에는 지금 진단에 능한 전문가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됬습니다.
이제는 통계를 이용해서 중국에 이교도가 몇명인지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차트와 투표를 이용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혀 모릅니다.
여러 방법론에 관한 책을 출판하고 있지만 비통함에 관하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눈물과 꺠어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남겨진 많은 자가 아니라 느헤미야에게 그분의 비통한 마음을 나누셨을까요?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이미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숙명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것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또한 버리기도 하십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왕이 내말에 귀를 기울이니 나는 이곳에 있어야 합니다.
당신들의 말에 동의하지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주님, 이것이 제가 져야할 짐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제게 나눠주십시오.
..
이제는 저는 압니다.
설교나 새로운 계시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 침묵)
새롭게 됨이나 부흥이나 영적각성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깨트려주시도록 하지 않는다면
일어나지 않을것입니다.
저는 모릅니다, 왜 무엇인가 일어날 것인지
다른 목사님들도 앞으로 아주 어려운 시간들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나눠주셨습니다.
설교하는 사람들만 아니라 정치가들도 전 세계에 어려움이 올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께서 저를 비통함의 세례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아직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5울에 집회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와 아일랜드, 민스킨과 전 세계에 갑니다.
저는 일 년에 2~3차례의 집회만을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목회자들을 향한 주님의 비통함을 알기 전까지는 이제 다른 집회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에 제가 필요하다고 부른다고해서 갈 수는 없습니다.
저를 원하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갈수는 없습니다.
이런 설교를 하면 모두가 너무나 조용하게 침묵하는데 그럴 때 저는 진정으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시간이 많이 지났고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게 제발 걱정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 원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TV와 인터넷 앞에서 몇시간씩 앉아있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주님. 이 설교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아니지만, 주님께서 여러분 중 어떤 사람들에게 매우 깊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렇게 긴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러분 간절히 부탁합니다. 저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 제 마음에 주신 말씀을 나눴지만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끝내주십시오. 주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해주십시오.
주님, 누군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목사님 저는 전과 같지 못해요, 제가 되어있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제게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데서 오는 부담이 있습니다.
저는 안락과 그저 즐겁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주님, 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비통함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붙잡고 그 열매를 볼 때 주님이 우리에게 갈 길을 알려주시고,
그 결과를 볼 때, 한 도시가 회개하게 될 때, 그 때 느헤미야는 일어서서 말합니다.
지금이 기뻐할 때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의 힘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기쁨이란 비통함을 거친 승리를 볼 때 온다는 사실을
저는 이 교회를 책망하거나 누군가에게 재앙을 부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이 일을 하시려면 제게 해주십시오
제 마음이 다시 깨어지기 원합니다.
저를 당신의 마음 가운데로 데려가셔서 이 사람들의 상처와 필요에 대해서도 느끼기 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에서 설교할 때 주님의 마음과 뜻으로 하길 원합니다.
여러분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느헤미야 8장입니다.
그는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읽어주고 있는데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멘이라고 화답하고, 손을 들고 고개를 숙이고 주님을 경배하며 머리를 땅으로 조아렸습니다.
이것이 비통함의 세례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가족을 다루고 계십니다.
왕자들과 지도자들까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에스라가 사람들 앞에서 율법의 말씀을 펼쳤습니다.
그가 말씀을 펴자 모든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으며 이스라엘인들에게 명확하게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 에스라가 사람들에게 이 날은 주 앞에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말라고 말했지만
주의 말씀이 낭독되는 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울었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나누어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얻은 결과입니다.
궁극적인 기쁨은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것입니다.
어떤 육적인 것들도 당신에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있든지 상관없습니다. 어떤 집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어떤 것도 당신에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당신이 순종하고 주님의 마음을 얻을 때
성령께서 이루실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하십니다.
이곳이 길이니 이 길로 가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을 보는 놀라운 기쁨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여러분 마음 주변에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견고한, 난공불락의 요새를 건축하십시오.
하니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십니다.
여러분 손을 드십시오.
주님께 지금 마음 안에 있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가 주님께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말씀하십시오.
주님께 무엇을 해야하는지 말씀하십시오.
주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기도 후)
이 건물 안에 계씬 여러분 들으세요.
오늘 밤부터 주께서 당신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매우 특별한 사역입니다.
집에 가시면 잠자리에 들지 마십시오.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의지를 보시면 이 모든 것을 견들 능력과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먼저 결단하셔야 합니다.
주님, 이제 제 가족이 구원받을 때까지 잠잠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제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남자가 음란물에 대해 조심하고 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기도의 세레를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시도록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결단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주님꼐서는 여러분이 전에 알지 못했던
기쁨과 평강으로 균형을 잡아주실 것입니다.
그 기쁨은 여러분이 교회 건물을 떠난다고 없어지는 그런 기쁨이 아닙니다.
영원한 기쁨이며 평강입니다!
주님이 주님의 짐을 주시면 그분의 평강도 함께 주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깨트리실 때는 그것을 치유할 모든 기름부음도 주십니다.
저는 제 생에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주님 앞에서 깨어진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제가 4-5천명의 목회자 앞에 설 때에 저는 압니다.
내일 사역을 하러 가면 모든 지옥의 문이 앞에 열려 있을 것이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더 이상 가서 설교나 한 편 하겠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TV를 없애라고 하시면 빨리 순종하십시오.
인터넷이 문제가 되면 컴퓨터를 없애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지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율법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하는게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소망이 심겨지면 그것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모든 것을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오셔서 역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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