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성취
구약의 제사는 앞으로 올 완전한 제사의 그림자요,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었습니다.(히9:11,23-25, 8:5,10:1,골2:16-17)
그것들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드릴 그날을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상식적으로도 황소와 염소의 피가 그 자체로는 결코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히10:4)
황소와 염소의 피가 백성들을 위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면
그 제사는 그만 드려야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적인 제사는 매일, 매년 되풀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개인의 제사도 필요할 때마다 다시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으로 드린 제사를 받으셨을지라도
그것은 오직 제사가 장치 오시리라고 약속된
구세주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임하셨을 때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히셨도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기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히10:5,7, 시편40:6-8)
시편에서 인용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성육신적 사역을
구약의 제사의 완성 내지 성취로서 이해하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짐승의 도살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분 앞에서 완전한 순종 가운데서 살았던
한 생명을 원하셨습니다.
오직 이러한 제물만이 제사의 참된 목적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친히 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처녀의 몸을 통한 기적적인 수태에 의하여 영원하신 말씀이
사람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우리가 혈과 육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분도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남으로써 혈과 육이 되셨습니다.(히2:14,고전15:50,갈1:16)
그분은 우리와 완전히 동일시 하셨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상상의 인물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이 세상의 거친 현실로부터 떠난 어떤 천상의 신과 같은
존재도 아닙니다.
그의 삶은 실제였습니다.
우리 모두와 같이 매일의 수고와 어려움을 그분은 아셨습니다.
그분은 고난과 실망의 고통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은
자기의 몸으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인류의 한 일원으로서 그분과 우리는 육체의 피를 함께
나누어 가졌습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경험을 통하여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는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셨습니다.
(히4:15,2:17-18)
그러나 자기 죄와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던
옛날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단 한 번 자신을 드리셨습니다.(히7:27)
태양이 머리 위에서 바로 비췰 때 그림자가 없어지는 것을 보면
놀랍지 않습니까?
본체이신 예수님의 그림자였던 이스라엘의 옛 제사의 경우에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모두에게 분명히 드러났을 때 구약의 모형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던 하나님과의 화평을
예수님안에서 얻게 됨으로써 화평을 위한 우리의 추구는 끝났습니다.
이스라엘 제단위에서 죽임당한
어떤 짐승의 피로도
죄악 된 양심에서 평회를 주거나
더러운 양심을 깨끗케 할 수는 없었네.
그러나 하늘의 어린양,그리스도께서
귀하신 자신을 친히 제사로 드리사
우리를 위해 많은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제거하셨네.
L.왓츠
대 결단
한 어린 소년이 의사에게서 여동생에게 수혈을 하면
여동생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6살인 여동생은 죽음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 소년이 2년 전 앓았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던
바로 그 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으로부터 수혈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두 아이는 모두 희귀한 혈액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소년이 이상적인 수혈자였습니다.
"쟈니 메리를 위해 피를 주고 싶니?" 하고 의사가 물었습니다.
그 소년은 망설였습니다.
그의 아랫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예,의사 선생님 여동생을 위해 제 피를 주겠어요."
곧 두 아이는 수술실로 옮겨졌습니다.
메리는 창백하고 야위어 있었고 쟈니는 튼튼하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둘 다 아무 말이 없었지만 서로 눈이 마주치자 쟈니가 싱긋 웃었습니다.
쟈니의 피가 메리의 혈관 속으로 들어갈 때 메리의 지친 몸 속으로
새로운 생명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혈이 거의 끝날 때쯤 쟈니의 작지만 용감한 음성이 침묵을
깨뜨렸습니다.
"저 의사 선생님 저는 언제 죽나요?"
그때에야 비로소 의사는 소년이 왜 망설였으며 입술이 떨렸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쟈니는 실제로 여동생에게 자기 피를 주게 되면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대 결단을 했던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는 결단과도 흡사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는 헌신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에서는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주셨기 때문에 이 비유를 직접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본질적으로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분께 드립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이런 행동을 할 때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제단에서
생명의 수혈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혈액 은행에 대하여 많이 듣고 있습니다.
혈액은행이란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혈액을 기부받아
장래에 사용하기 위하여 저장해 두는 곳입니다.
적당한 조건을 유지시켜 주면
혈액은 비교적 장기간 보관될 수 있습니다.
수혈을 필요로 하는 긴급한 일이 일어날 때 혈액 은행에 전화를 하면
대개 원하는 피를 공급받게 됩니다.
이것은 현대과학의 기적입니다.
그러나 갈보리의 혈액 은행은 훨씬 더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부패하지 않는 피를 무한정 공급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은 2천년 전 십자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 날에도 여전히 강력합니다.
그 피는 어떤 혈액형에도 잘 맞으며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만 있으면 자신의 심장에 그 피를 받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피는 무료입니다.
아직 당신이 이 신성한 수혈을 알지 못한다면 지금 그 피를
받아들이십시오.
대 결단을 하십시오.
그분께 자신을 드리십시오.
그분이 자신을 당신에게 주셨듯이 말입니다.
거룩한 생명이 당신에게 흘러 들어올 때 당신의 심장은
하나님의 심장의 고동을 느낄것입니다.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 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내 죄를 씻는 능력은
주 보혈 밖에 없도다.
정하게 되기 위하여
주께로 거저 갑니다.
C.엘리오트
로버트 쿨만 - 새언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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