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약속 - 새 마음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31:31~34)
하나님이 이 새 언약을 그 분이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 세우신 언약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언약은 외부로부터의 명령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보통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는 새 언약의 후반부만을 설교하고 가르친다.
그러나 새 언약은 죄의 용서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 외부로부터의 명령" 과 '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마음" 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딸들에게 집안 일을 시켰다. 그러나 딸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누가 자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남자 친구들을 집에 데려왔을 때, 그들은 어머니가 시키는 일을 척척 해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와 같이, 즉 자발적으로 당신을 섬기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십계명은 하나님의 뜻의 빈약한 그림자이다. 말하자면 음식에 모양을 내기 위해 얹는 고명쯤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것 이상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엄격히 지킨다 해도 이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들이 강제적 조항 때문에 할 수 없이 당신을 섬기는 것으로 간주하시기 때문이다. 율법이 하나님을 섬기라고 명령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직 옛 언약 아래 있는 자이다. 그들은 새 언약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조차 옛 언약 아래서 산다. 그들은 " 나는 이것 저것 해보려고 노력해 왔읍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옳은 것을 행할 수 없다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그들은 저주 아래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여도, 그들은 엄청난 부채와 삶의 문제, 그리고 두 마음의 싸움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교회에서 훌륭한 일을 하지만, 그들의 집에 가보면 그들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옛 언약 아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옛 언약이 구약 성경이고, 새 언약이 신약 성경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다. 옛 언약은 기록된 율법이요 새 언약은 새 마음이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26~27)
하나님은 "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윤리 체계, 새로운 계명의 계명들을 주겠노라" 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 분은 우리에게 전혀 새롭고, 그 위에 당신의 뜻을 쌓을 수 있는 획기적인 기초인 새 '마음'을 주시겠다 말씀하셨다.
새언약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암송한다고 해서 계명을 우리 마음 속에 두는 것은 아니다. 옛 언약 아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지만, 그것을 행할 수는 없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회심했을 때 새 마음을 받아 그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옛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새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쌓는 새로운 토대를 소유한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의 요구들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 은혜는 관념적이거나 이론적이지 않다. 이 은혜는 실천적이다. 또한 이 은혜는 그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행하게 하시므로 맺어지는 역동적 관계이다. 우리는 옛 언약이 필연적으로 '복종해야 할' 성문 율법들에 기초하고 있으나, 새 언약은 반드시 '따라야 할'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심에 근거함을 알아야한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옛 언약처럼 하나님의 뜻의 일부가 아닌 전부이다. 옛 언약 아래서 사람들은 도적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는 명령을 들어야했다. 오순절 날, 베드로는 새로운 구절들과 전과는 다른 명령들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의 약속의 영을 받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이 약속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26에서 그 분은 " 보혜사 곧 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그들의 모든 삶이 변화되었다. 그들은 율법의 요구를 뛰어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들은 자기의 소유를 서로 서로 나누기 시작했고 서로 사랑하고 핍박을 받을 때도 기뻐하였다. 그들은 성경책도, 주일 학교 공과도, 녹음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주신 것, 곧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도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하는, 새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으키는 믿음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채찍으로 맞고 착고에 세워져 감옥에 갇혔어도 찬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러면 초대교회에서 새 마음이 일으키는 자연스러운 결과들을 무엇이라고 생각되었는지 살펴보자.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3:3~6)
당신과 나는 성령에 의해 쓰여진, 세상으로 보내지는 그리스도의 편지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약속이다. 우리는 새 언약의 사환 노릇을 하는한 성령의 편지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옛 언약의 사환 노릇을 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아닌 종이 위에 성령의 편지를 쓸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신학교, 혹은 성경 연구소라도 의문(儀文 : 의식(儀式)의 표(標)를 이르던 말), 옛 언약의 일꾼을 만들 수 있다. 새 언약 아래서 일하는 성령의 일꾼은 오직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다. 성령의 사역은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이지 "율법의 명령을 보고 그것을 행하라" 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문해보아야 한다. " 나는 과연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죽이는 의문인가, 아니면 살리는 영인가? " 나는 지난 수년 동안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음에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의문으로써 정죄하는 일을 했다. 나는 매일 신실하고 최선의 일을 행했지만, 사역의 대부분이 바로 옛 언약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의문을 위해 일하면, 우리는 죽이거나, 저주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성령을 위해 봉사하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할 능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새 언약 안에 있는 성령을 주시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이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는 도전이다.
- 후안 카를로수 오르티즈의 " 제자입니까?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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