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조상의 죄를 내가 회개한다고 해결할 수 있나?
은사운동, 영성운동 하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미혹되어 있는 저주 이론이 있습니다. 조상들이 지은 불교, 유교, 미신을 섬기고 점친 것과 무당 말 들은 죄 때문에 자손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소위'회개기도문' 이라는 기도문을 만들어 기도문대로 기도하거나 지정한 조상 죄를 회개하도록 주문합니다. '조상의 죄가 어디 우상숭배에만 있겠는가?' 우상숭배 외에도 많은 죄가 있는데도 유독 타종교, 미신 신봉죄를 지정하여 회개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런데 어떠한 조상의 죄도 우리가 씨름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에 율법의 저주가 바로 그들이 말하는 조상 죄로 인한 저주, 가계에 흐르는 저주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속량, 다 지불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따로이 지불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구약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율법이 정한 죄로 인한 저주와 복(출20:5,신28장15절 18절 근거)으로 인해 그 후손들은 아비나 조상들 때문에 자신들이 애꿎은 고통을 당한다고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 단호히 선을 그어 말씀하셨습니다.
1. 신명기 24장 16절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2. 겔 18:19-20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 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결정적으로 우리를 각성하게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 위에서 소경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 소경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제자들은 그들의 신앙을 통해 저주이론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본인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부정하셨습니다.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오래 묵은 고정관념을 깨는 획기적인 말씀입니다. 요는 관심과 초점이 어둠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시는 빛의 일에 맞추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가 아직 낮이매 낮의 일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시고 소경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부 무지한 사역자들은 어둠이 하는 일에 사람들을 관심과 초점을 두게 하고 그들을 얽매이게 합니다.
그래서 변승우 목사님은 이렇게 탁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 우리는 귀신이나 저주가 아니라 예수님께 (혹은 예수님의 구원하는 능력에)더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이론적으로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 가슴에서 되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이나 가계에 흐르는 저주뿐 아니라 심지어는 제가 하고 있는 죄를 지적하고 회개와 거룩을 외치는 설교까지도 일부에게는 오히려 해방이 아니라 속박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믿으라고 가르치는 것은 귀신의 능력이나 가계에 흐르는 저주의 힘이나 죄의 유혹하는 힘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 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부정적인 것보다 말씀에 근거한 긍정적인 것에 믿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승리와 거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저주 이론을 가진 은사자들은 저주같이 보이는 사례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려는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주같이 보이는 불행은 본인의 잘못이거나 본인을 단련하고자하는 시험으로 보아야합니다 .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행하지 않을 때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믿는 자들이라도 그들이 허락만 한다면 지배합니다. 동의나 허락, 무지나 혹은 불순종 등이 그들에게 허락하는 이유가 됩니다. "
믿는 자라면 믿음 안에서 저주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믿는 자가 하나님을 따르고 행하지 않는 가운데 동의, 허락, 무지, 불순종으로 틈을 주어 마귀가 그에게 어둠의 일을 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하셨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고자 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스스로 그 보호를 벗어날만한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침범하여 우리를 억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저주 이론이 맞는다면 오랜 동안 힌두신을 섬겼던 선다 씽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못하는 저주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비기독교 문화에서 배출된 신앙 위인들도 다 저주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불행한 사례들만 채집하여 말씀을 해석하는 저주 이론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말씀이 먼저이고 기준이며 경험적인 것이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대적인 도의적 책임으로 조상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조상들로 인한 죄값인 저주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밖에 해결책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조상들의 알 수도 없는 죄들을 각개격파 하듯이 다루게 하는 그렇게 허약한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죄짐에서 구원하고자 십자가를 지신 것인데 또다시 하나님도 지우기 원치 않는 죄의 멍에를 지게 하는 것은 저는 악이라고 봅니다. 그러한 것이 있었다면 예수님이 그것을 놓치고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임의로 해석한 분명한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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