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하는 방언 (케네스 해긴)
1.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 (travail)를 하노니"
여기에서 다시 " 해산한다 (travail)"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 신자들을 처음 주께
인도할 때 그들을 위해 해산의 기도를 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안에서 마땅히 되어야 할 바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영적인 삶에서 충만한 분량까지
발전하도록 그들을 위해 해산의 기도를 계속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있는 진통 (해산하는 수고) 은 아이를 낳는 여자의 진통과 같은 것입니다.
자연적인 영역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엄마에게 최소한 어떤 불편을 수반합니다. 영 가운데에서도,
성령님이 그 사람과 함께 하시면서, 그에게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진통하고 중보하라는 기름부음을
주실 때에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중보자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갈라진 틈에 서서 잃은 자를 위해
진통의 기도를 시작할 때, 때때로 그들은 자신이 잃은 바 된듯한 기분을 느낄수 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몇 번 일어났지만, 이와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진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1939년 1월, 나는 텍사스 북중앙 블랙랜드의 순복음 교회에서 부흥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저녁 집회만
있었지만, 그 교회 목사님 부부와 우리부부는 매일 아침 10시쯤 사택 거실에서 저녁에 있을 예배에
대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 특별한 아침에, 소파 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중보에 대한
강한 부담이 내게 임했습니다. 당시는 내가 성령 세례 받은지 겨우 18개월 되었을 때였고, 그런 영적인
일들은 내게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 부담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는 단지 신음하며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성령의 직접적인 기름부음에 양보했습니다. 내면의 속사람 가운데, 내가 잃어버린 영혼이자 죄인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로부터 불과 몇 년 전에 잃은 바된 상태였기에, 그런 느낌을 알았습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울부짖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놓쳤어요! 놓쳤어요! 놓쳤어요! 나는 잃은 바 되었어요!
버림받았어요!" 물론, 나는 내가 잃은 바 되지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다만 그들이 느끼는 것을
느낀 것으로, 나는 그들을 위해 해산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잃은 바 되었어요! 놓쳤어요!" 나는 계속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도의 영역에서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그 기도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는 것만 압니다.
그런 후에 저녁 예배에서 15분 정도 말씀을 전하자, 설교 중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 예배당의
모든 죄인들이 구원받았고, 모든 실족한 자들이 그날 밤 자신의 삶을 다시 헌신했습니다. 그들 중
단 한사람도 빠지지않고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 날 오전에 기도한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들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거듭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전에 어떤 해산의 수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거듭날 수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 예, 저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습니다. 예, 저는 예수를 받아들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지적인 "회심"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지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며, 그들의 영안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헌신이
일어나지않습니다.
나는 수 년동안,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라는 이사야 66:8 에서 언급된
보다 높은 수준의 중보에 의해 이러한 "지적인 회심"의 문제가 엄청나게 감소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성령께서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성령안에서 중보하도록 당신과 함께 하실 때, 당신이 하나님의 왕국에까지
지속되는 열매를 낳게 하는 강력한 능력이 만들어집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기도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워질수록, 삶의 모든 영역에서 더 큰 결과를
기대할수 있습니다! 어떠한 진통도 없이 태어나는 아기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가족에서도
어떠한 영적인 진통도 없이 태어나는 아기는 없습니다. 그런 임신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은 성령의 도움없이 진통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두 경우 모두, 당신이 하고 싶을 때 신음하고
진통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아무것도 태어나지않을 것입니다.
2.
중보에 전념하는 기름부음 아래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당신은 누군가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방언으로 기도하기로 결단함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신은 그의 상황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다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당신이 마땅히 기도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 나는 단지 내 안에 사시는 성령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님, 저는 이 상황에서 마땅히
기도해야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저는 방언으로 기도할 것이고, 당신께서 나에게 이 문제를 위해 중보하는
말을 주심을 믿습니다" 당신은 성령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분께 애원하거나
탄원하지않습니다. 당신은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신성한 인격이시고
당신안에 살고 계시므로, 당신은 그분께 말할수 있습니다. 그런후에 나는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이 기도는 거의 노동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모국어로 말하기 위해서도
신중한 노력을 다하듯이, 그 말들을 "밀어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잠시후에 나는, 소위 "불을 붙이고" 기름부음가운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가 애쓰지않아도
방언이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때입니다. 또한 승리가 오고 있는 때이기도 하지요! 또한 때때로 기도의 영이
당신에게 임하면,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위해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는 강한 부담감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그런 경우, 너무나 강한 기름부음이 임하여 당신은 기도하지않을수 없는 느낌을 갖게됩니다!
물론, 영적인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면, 당신은 양해를 구하고 그 부담에 대해
혼자 기도할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만 합니다.
-------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 방언 " 에서 발췌 ----------------
중보를 위한 방언 (존 비비어)
방언 중보기도의 가장 적절한 예가 '존 비비어 미니스트리'의 호주 총책인 에스더에게 있었다.
에스더는 목회자이면서 기도용사이다.
90년대에 그녀가 성경학교를 다닐 때에, 어느 날 아침 집안 일을 마치고 손을 높이 들고,
"주님! 오늘 하루는 이제 제가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필요하다면,
무슨 일에든지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엄청난 영적 부담감이 몰아닥치면서 그녀에게 기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서 있었던 거실 한복판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을 때, 그녀의 입에서는 방언이 힘있게 터져나왔다.
그녀는 환상 가운데, 어떤 중국인 남자가 무릎을 꿇고 지저분한 마룻바닥을 원형을 그리며 청소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그녀는 기도하면서 뭔가 급박한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일어서라. 일어서라. 일어서라."는 소리를 반복해서 외쳤다는 것이다.
한 참 뒤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그래서 정상대로 다른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5개월 후에, 중국에 복음을 전하러 나갔던 뉴질랜드 선교사 한 사람이 그녀가 다니던 성경학교에
간증을 하러왔는데, 중국 본토에서 큰 박해를 만나 고생하는 여러 중국 원주민 목회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원주민 목회자들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여 곧 석방되리라는 예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 목회자들은 감옥에서 더러운 마룻바닥을 청소하며 수감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교도소에 수감된 많은 재소자 중에 유독 한 사람을 - 어떤 목회자를 - 간수가 특별히 미워했는데,
하루는 다른 모든 재소자들을 각기 자신의 감방으로 보내고 그 목회자만 남아서 더러운 마루를 청소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그래서 그 중국 현지 원주민 목회자는 혼자 넓은 마룻바닥을 원을 그리며
닦고 있었다.그런데 어디선가, "일어서라. 일어서라. 일어서라"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는 것이다.
그 소리가 너무도 강렬하고 생생했기에, 그는 일어나서 문 쪽으로 가보니, 교도소의 철창문이 열려져있고,
계속 걸어나가다 보니 교도소 밖으로까지 나오게 되었는데, 마침 그때에 지나가던 택시가 있어서 잡아타고
믿음의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간증을 들은 에스더는 참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로 자신이 5개월 전에 기도했던 그 내용과 같았기
때문이다.그래서 에스더는 이전에 단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그 뉴질랜드 선교사에게 다가가서,
자신이 5개월 전 어느 날 몇 시에 이러한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고 말을 꺼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중국 원주민 목회자가 도망나온 그 날짜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성경학교의 학생 중에 다른 남학생 하나가 다가오더니, 자신도 그 당시에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방언으로 강렬한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기도 중에 자신도 중국계 교회 지도자를 한 명 보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뉴질랜드 선교사는 자신의 품 안에서 중국인 목회자들이 합동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보여주었는데, 남학생은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서손가락으로 어떤 특정한 사람을 지적하면서 바로 그 사람을
환상 중에 보았다고 했다. 그러자 뉴질랜드 선교사는 바로 그 사람이 감옥에서 탈출한 중국 목회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성경학교의 기도 리더는 에스더와 그 남학생에게 기도일지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도일지를 비교 검토한 결과, 두 사람의 기도를 드린 날짜와 시간이 동일함을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였고, 그 기적은 방언을 통한 중보기도의 결과였음이 확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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